Chapter 199 - 199화- 세뇌당하는 마님
"제, 제발 한 번만 기, 기회를 줘."
글랜디는 애원했다.
"부, 부탁이야. 제발 마지막으로 기회를 줘."
검은색 살덩어리로 이루어진 분만대에 글랜디는 또다시 구속되었다.
내기에서 졌기 때문이다. 일어서자마자 바로 넘어져 버렸고, 탈리아는 실격 처리해버렸다.
실격되었기에 결국, 세뇌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진정으로 무서워하는 일이 기어이 벌어진다는 사실에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토록 증오하던 여자를 향해 글랜디는 자존심은 다 버리고 애걸복걸하기 시작했다.
"5, 5초라도 상관없으니까 제발" "안 줄 거야."
글랜디의 애원을 탈리아는 단칼에 거절했다.
"이미 기회를 두 번씩이나 줬는데 또 달라고? 그럴 순 없지."
이미 두 번이나 기회를 줬다.
10분 동안 글랜디가 일어서려고 악을 쓰는 모습을 탈리아는 방관했다. 그 정도 시간이면 충분히 몸을 일으키고도 충분했으나, 글랜디는 일어서지 못했다.
기회를 달라는 말에 10초 내로 일어서라고 탈리아는 조건을 내걸었다. 이 기회 역시 글랜디는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다. 일어서자마자 넘어져 버리는 추태를 보이고 말았다.
그렇게 자비를 베풀었는데도 끝내 그 자비를 이용하지 못했다. 그런 주제에 또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애원하다니. 너무 뻔뻔하지 않은가? 기회를 두 번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겨야 하는 거 아닌가? 얌전히 운명에 수긍할 것을, 수긍하기 싫으면 악착같이 버텨야 할 것을, 왜 넘어져서 이 사달을 내는 건가?
"줄 생각 없으니까 그런 줄 알아."
물론 또다시 자비를 베풀어 주는 건 가능하다. 가능하지만, 탈리아는 할 생각이 없었다.
처음부터 세뇌할 작정으로 되도 안 되는 조건을 내걸었는데, 그걸 달성하도록 놔둘 것 같나?
"제, 제발 기회를 주세요."
글랜디는 존댓말까지 쓰며 애원했다.
"저 세뇌당하기 싫어요. 가족들을 잊고 싶지 않아요. 인형이 되기 싫어요. 그러니까…." "잡담은 여기까지." "으꺄아악?"
더는 암퇘지의 말을 들어줄 마음이 없는 탈리아는 양손으로 글랜디의 머리를 붙잡았다. 탈리아가 손가락 하나하나에 힘을 주며 압박하니 글랜디는 고통에 꼼짝할 수가 없었다.
"약속은 약속이니까 세뇌해줄게."
악마 같은 목소리로 탈리아는 속삭였다.
"우리 주인님만을 바라보는 바보로 만들어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모두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으니까." "시, 싫어…."
악몽이 현실이 된다. 끝까지 글랜디가 억눌러왔던 공포가 끝내 폭발하고 말았다.
"싫어, 싫어! 세뇌당하기 싫어, 세뇌당하기 싫단 말이야!"
왜 자신이 세뇌되어야만 하는가? 사랑하던 남편을 무참히 살해하고, 큰딸을 타락시킨 것도 모자라, 자신의 기억까지 빼앗겠다고?
어디까지 사람을 괴롭혀야 시원한 거냐! 일방적으로 유린당하는 현실에 글랜디는 너무나 서러웠다.
"그렇게 소리치면 나도 어쩔 수 없지."
그 애원을 받아들인 걸까? 갑자기 탈리아가 손을 놓았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글랜디가 안심하던 그 순간,
"아주 정성스럽게 다져줄게."
탈리아의 두 손이 검은색으로 변해갔다. 살가죽은 점점 물렁물렁한 살덩어리로 변하고, 손가락은 수많은 촉수 가락이 되었다. 올가미처럼 글랜디의 머리를 감싼 촉수 가락들은,
"사람 머리 갖고 노는 것쯤은 누워도 떡 먹기이니까!" "아으윽?"
일제히 꽂혔다.
뒷머리, 좌우 옆머리에 촉수들이 꽂혔다. 두개골을 뚫고 뇌 속까지 파고든다. 침투에 성공한 촉수 가락들은 즉시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양쪽 귀에도 촉수 가락들이 침투했다. 가로막는 고막을 뚫고 그 너머까지 침범했다.
이마에도 촉수 가락들이 꽂히고, 콧구멍으로도 촉수 가락들이 침투했으며, 두 뺨에도 촉수 가락들이 박혔다. 눈을 제외한 모든 부위가 촉수에 점령당했다.
“자, 일할 시간이야.”
탈리아의 말에 따라 분만대에서 수많은 촉수 가락이 전개되었다.
“이 불쌍한 마님을 천국으로 보내드리자.” "하으으윽?"
전개된 촉수 가락들이 목에 꽂힌다. 커다란 유방에도 촉수 가락들이 덕지덕지 꽂혔고, 유두도 마찬가지로 촉수 가락들이 꽂혔다. 먹음직스럽게 살찐 몸통에도 촉수 가락들이 꽂혔고, 튼실한 허벅지에도 촉수 가락들이 꽂혔으며,
“히이이익?”
가랑이 사이에 있는 음핵에도 촉수 가락이 꽂혔다.
박힐 수 있는 모든 부위에 촉수가 꽂혔다.
자신의 분신들이 준비를 마친 걸 확인한 탈리아는 지시를 내렸다.
“지금부터 세뇌를 개시한다.”
명령을 들은 촉수들은 일제히 요동치기 시작했다.
“마기를 주입해서 실험체의 기억을 봉인한다.” 그 지시에 따라 촉수들은 꿈틀거리며 마기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아, 안 돼. 하, 하지…하오오옥?"
마기의 침식이 시작되자 글랜디는 발광하기 시작했다.
"호오오옥, 후오오오옥, 오꼬오오옥!"
마기가 피부에 스며든다. 근육에 스며들고, 뼈에도 스며든다. 글랜디를 이루는 모든 세포와 조직에 마기가 스며든다. 침식이 심화할수록 글랜디의 발광도 더욱 커졌다. 밀려드는 색욕을 견디지 못한 여체는 심하게 파닥거리고, 야릇한 숨소리가 더 세차게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더는 버틸 수 없는지 가랑이 사이에서 맑은 물이 조르륵 흘러내렸다.
“하오오오, 호오오…아, 안 돼. 안 돼….”
이렇게 탈진해버린 글랜디의 기억을 마기는 봉인하기 시작했다.
“기, 기억해야만 해.”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버텨서 끝까지 기억을 지켜야만 한다. 지키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누구인지 끊임없이 되뇌어야 한다.
“내, 내 이름은 그, 글랜디.”
글랜디는 자신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내, 내 고향은….”
고향은 기사왕이 다스리는 나라다, 그리 말해야만 했다.
그래야 할 터였으나,
“어, 어디였지?”
글랜디는 떠올리지 못했다.
“나, 남편 이, 이름은…겨, 결혼한 날은? 정사를 나누던 날은?”
사랑했던 남편의 이름도, 남편과 결혼했던 날짜도, 결혼식을 올린 직후 정사를 나누었던 날도 글랜디는 떠올리지 못했다.
“큰딸, 큰딸의 이름은…뭐였지?”
첫째 딸인 카르디안도 기억하지 못하고,
“두, 둘째 딸은 누, 누구였지?”
둘째 딸인 아르웬마저 글랜디는 기억하지 못했다.
그 어떤 것을 떠올리려고 해도, 어떻게든 붙잡아 되뇌려고 해도 다 사라진다. 마치 먹물에 칠해진 것처럼 아무것도 떠오르지 못한다. 가장 소중한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게 무엇인지 단 한 글자도 글랜디는 떠올리지 못했다.
떠올리지 못하는 기억이 많아질수록 글랜디는 허용할 수 없는 공포에 빠져들었다.
“이, 이럴 순 없어. 이럴 순 없어, 이럴 순 없다고!”
당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이렇게 많은 기억을 빼앗기는 거냐. 이러다 자기 자신마저 잊어버리는 거 아닌가? 우려가 현실이 된 상황이었으나, 글랜디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제, 제발 그만, 그만…하오오오옥!”
그저, 애처롭게 교성을 지르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좋아, 이걸로 세척은 끝.”
기억을 전부 봉인하는 데 성공한 탈리아는 글랜디에게 물었다.
“마님, 뭐 떠오르는 거 있나요?”
지금 글랜디가 어떤 상태인지 알면서 묻는 모습은 정말 가증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런 가증스러운 년을 보며,
“도, 돌려줘.”
글랜디는 다시금 애원했다.
“제발 돌려주세요, 제걸, 제걸 돌려주세요.” “싫은데?”
당연히도 탈리아는 거부했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세뇌는 이제 막 시작되었데.” “아아….” “자, 이제 두 번째 작업에 들어가자.”
절망에 빠진 글랜디를 신경도 쓰지 않은 채 탈리아는 촉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텅 빈 머릿속에 새 기억을 주입한다.”
본래 기억은 <봉인>되었다. 이제 봉인되고 남겨진 자리를 채워 넣어야 한다.
인형으로서의 기억을 주입해야 한다. 탈리아는 미리 정해둔 기억을 입 밖으로 꺼냈다.
“넣을 내용은….”
잠시 뒤, 탈리아는 모든 내용을 다 말했고,
“아호오오오옥!”
글랜디는 또다시 주입되는 마기에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시,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자신이 처음부터 제물이었다니. 가축이었다니. 죽을 때까지 아이를 펑펑 낳는 것이 운명이었다니. 사랑하지도 않은 남자를 사랑하고, 역겹기 그지없는 자지에 매달리는 여자라니.
그런 되먹지도 않은 기억을 어찌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꾸역꾸역 들어오는 왜곡된 기억을 글랜디는 저항하려고 노력했다.
“나, 난 노예가 아니야, 노예가 아니야, 노예가 아니야!”
그런 식으로 중얼거리며 저항했으나,
“난 노에, 노예, 노예, 노예가 맞아, 아냐, 틀려, 아냐 맞아, 아냐 틀려, 아냐 맞아….”
새로운 기억들이 뇌 속에 정착될수록 부정적인 생각이 점차 긍정으로 변해갔다.
“아니야, 맞아. 아니야, 맞아. 맞아, 맞아, 맞아, 맞아,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자신은 누구인가? 자신은 노예인가, 인간인가? 자신의 소유자는 그리드인가 아닌가? 자신의 의무는 봉사하는 건가, 아닌가? 자신이 해야 할 일은 평생 씨받이 도구가 되는 건가, 아닌가?
어느 쪽이 맞는 거지? 어느 쪽이 틀린 거지? 어느 쪽이 진실이며, 어느 쪽이 거짓이지? 어느 쪽을 택해야 하는 거지?
자신은 글랜디가 맞는 건가? 그게 아니면. 그것도 아니라면….
“아아, 아아아, 아아아아아악!”
너무 혼란스러워진 글랜디는 비명을 내질렀다. 뇌에 부담이 너무 가해진 탓인지 눈에서, 코에서 핏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야, 진정 좀 해!” “후끄으윽?”
당황한 탈리아는 바로 대처에 들어갔다. 입 안으로 강림의 자지처럼 굵은 촉수를 쑤셔 넣고, 음부에도 촉수를 쑤셔 넣었다. 즐겁게 해주라는 탈리아의 지시에 두 촉수는 앞뒤 운동을 시작했고,
“후이이이이잉….”
글랜디는 곧바로 표정이 풀어졌다.
“쮸븝, 쮸븝, 쮸븝, 쮸븝….”
괴로워하는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섹스에 열중하는 얼굴만이 남았다. 더는 피가 흘러내리지 않았다.
“옳지, 옳지, 이래야 정상이지.”
위기를 넘긴 탈리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죽었다면 진짜….’
지금 그리드는 여자가 죽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죽으면 상대가 누구든 간에 격노하는 남자다. 만약 여기서 글랜디가 죽어버렸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잡생각 그만하고 얼른 하자.’
그리드가 오기 전에 끝내놔야지. 그래야만 그리드의 계획대로 일이 술술 풀리니까.
“잘 좀 부탁해, 마님.”
생기를 잃은 마님의 눈동자를 보며 탈리아는 중얼거렸다.
“당신이 아군이 되어야 우리가 편해지니까.” “쮸븝, 쮸븝, 쮸븝, 쮸븝….”
글랜디는 아무 생각 없이 촉수만 빨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