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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하라, 지배하라, 진짜 보스가 되어라-179화 (180/344)

Chapter 179 - 179화- 늪에 빠져버린 섬

네치아 왕국 수도와 세이렌 섬이 디자이어 제국의 침공으로 쑥대밭이 되었을 무렵.

라미드라고 불리는 섬에서도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

"이것이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최대 전력인가?" "예."

영주의 질문에 여비서는 그리 대답했다. 영주의 손에는 보고서가 쥐어져 있으며, 라미드 섬에서 징발한 병력과 함선 수가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람세스 님이 내린 칙령으로 외부로 파견 나간 혈족들도 속속 돌아오고 있으니 보고서에 적힌 내용보다 더 늘어날 겁니다." "흐음…."

람세스라고 불린 여인은 한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뒤로 쓸어넘겼다. 테리스와 똑같은 흑청색 머리였으며, 눈동자도 푸른색이었다. 피부도 역시 황갈색이었다.

람세스 역시 테리스와 똑같이 선조의 피가 흐르는 혈족이며,

라미드 섬을 통솔하는 테리스의 하나뿐인 어머니이다.

"용병 국가는? 그쪽에 파견된 혈족들은 어찌 되었지?" "그게…."

비서는 송구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배상금을 물을 테니 혈족들을 내놓으라는 서신을 용병왕에게 보냈습니다만, 대답이 없습니다." "…." "다시 한번 더 보낼까요?"

기분이 언짢아진 영주를 향해 비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 하지 마."

람세스는 거절했다.

"어차피 더 보낸다고 움직일 리 없어. 자기 안위만 중요한 그 여자가 그걸 지킬 수단을 쉽게 보내줄 리 없지. 자기 수집품은 죽어도 내놓지 않은 여자니까."

디자이어 제국이란 해적 국가가 탄생하고, 그 해적 국가에 의해 네치아 왕국이 멸망하기 일보 직전이라는 사실을 모든 나라가 다 알고 있다. 네치아 왕국이 반격을 도모하기 위해 각 나라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으나, 성과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지원보다는 관망을, 관망하면서 대비한다. 놈들의 전력이 어디까지인지 확인하고 대책을 마련한다. 모든 나라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관찰하고 있을 뿐, 함부로 칼을 뺄 마음이 없었다.

괜히 건들었다가 낭패 보면 큰일이니까. 멍청하게 의협심만 가지고 제국과의 싸움에 동참하다가 역으로 털리면 망신을 당하게 될 거고, 제국이 이를 기회로 삼아 쳐들어오면 국가적 위기를 초래하게 될 거다.

이 점을 우려하고 있기에 그 어느 나라도 해적을 퇴치하겠다고 군을 움직이지 않았다. 네치아 왕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기사왕 국가도 도와준다는 말만 할 뿐, 병력을 움직일 낌새를 보이질 않았다. 자칭 기사도를 숭배하는 기사왕도 결국 자기 나라의 안위만 생각할 뿐이었다.

용병 국가도 마찬가지였다. 왕국의 도움을 거절하고 제국과의 싸움을 대비하기 위해 파견 나간 용병들을 긴급 소집하는 것도 모자라 해외로 나가는 것 역시 금지하고 있다. 해당 국가 소속으로 일하고 있는 람세스 혈족들도 이 때문에 나올 수가 없었다.

단, 용병왕은 기사왕과 달리 방관하지 않았다.

"그냥 포기하고 지금 있는 걸로 해야지. 주기 싫다고 뻗대는 여자에게 뭘 바랄 수 있겠어?" "그럼 이 섬을 놈들의 놀이터로 사용하는 걸 허용할 방침입니까?"

비서는 약간 항의하듯이 물었다.

"용병왕이 보낸 원군을 우리가 감당해야만 하는 겁니까? 아무 대가도 없이?"

지금 라미드 섬에는 람세스가 모은 병력 외에 외부 병력이 주둔하고 있다. 전원 용병이며,

출신은 전부 용병 국가였다.

"왜 우리가 아무 대가 없이 저놈들을 먹여주고 재워줘야 합니까? 배도 왜 줘야 하고?"

네치아 왕국군을 지원하기 위해 용병왕이 친히 정예병 1만을 파병했다.

설화가 거래를 통해 얻어낸 결과다. 정예병 1만은 조만간 왕국군이 집결한 장소로 향할 예정이며,

이를 위한 모든 지원을 라미드 섬이 감당해야 한다.

"우리가 무슨 봉이 아니고." "봉 맞지." "영주님!" "그 여자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속국이나 다름없으니까."

비서의 반발에도 람세스는 담담히 현실을 받아들였다.

"우리가 아무리 용맹한 전사들이라 해도 체급에서 밀리는 걸 어찌하겠냐?"

만약 조상들이 살아 있었다면 노발대발했을 거다.

감히 우리가 일궈낸 땅에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들을 들여보내다니. 부끄러운 줄 모르냐고 람세스를 비난했을 거다. 실제로 용병왕이 보낸 원군을 먹이고 재워두는 짓을 해야 한다는 것에 섬 주민들도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걸 람세스도 알고 있지만,

"우리는 고작 수천인 데 반해, 저쪽은 수십만을 동원할 수 있어. 작정하면 이 섬의 역사를 끝내버릴 수 있지."

힘의 논리 앞에서는 아무것도 소용없었다.

"그런 편지도 받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겠냐?"

용병왕은 람세스에게 편지를 보냈다.

[라미드 섬 영주는 들어라.]

[내가 친히 정예병 1만을 보내니 잘 보살피거라.]

[이게 너의 왕국을 위한 길이고, 너를 위한 길이고, 나를 위한 길이다.]

[소홀히 다루면 어찌 되는지 각오하도록.]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전사의 후예들이 얼마나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하하하!]

조롱과 멸시가 담긴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런 건방진 소리를 당당하게 할 만큼 용병 국가는 상상 이상으로 강했다. 용병 국가보다 큰 옆 나라 성국조차 함부로 하지 못할 정도면 이미 말은 다 나온 셈이다.

그리고 용병 국가가 혈족들을 고용해주는 것으로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마당인데 어찌 용병왕의 말을 거역할 수 있겠는가. 네치아 왕국이 주기적으로 혈족들을 고용해준다면 모를까, 이마저도 아닌 상황에서 람세스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이게 아무리 굴욕적이라 해도 말이다.

"디자이어 제국을 무너뜨리려면 저놈들의 도움은 필수야." "영주님…." "그러니까, 같이 갈 때 다투지 않게 우리 애들 관리 좀 잘하라고 담당자에게 전해 줘. 일이 틀어지면 정말 골치 아프니까."

용병 국가에서 보낸 원병 1만. 라미드 섬 자체에서 징발해서 마련한 병사 6천. 이들이 왕국군과 합류한다면 디자이어 제국과의 싸움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거다. 잘만 하면 제국의 수도인 여우섬으로 들어갈 수 있을 거고,

인질로 잡혀 있는 람세스의 딸, 테리스도 구할 수 있을 거다.

'테리스….'

어느 영주가 람세스에게 편지를 보냈다.

아들을 단련시켜줄 교관이 필요하다. 당신들은 선조 대대로 전사의 피를 이어받은 혈족들이라고 들었다. 그 혈족들이라면 아들을 훌륭한 전사로 키워줄 거라고 믿는다. 대금을 보낼 테니 그에 걸맞은 교관을 보내달라.

이미 선금을 받아버렸고, 그 금액이 차마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기에 람세스는 영주의 의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딸인 테리스를 보냈다.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 살다 죽는 것보단 교관으로 사는 게 낫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어머니.'

그게 마지막 대화일 줄은 누가 알았을까? 그 섬에서 변고가 생길 줄은 누가 알았을까? 딸의 애제자가 그 섬을 불태우고, 모든 걸 다 죽이는 미친놈이 될 줄은 누가 알았을까? 그 미친 짓에 테리스가 말려들 줄은 누가 알았을까? 딸이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람세스는 모든 걸 다 잃은 기분이었다.

고작 돈 때문에 딸을 사지로 몰아넣었다고 자책했다. 어떻게든 시신이라도 찾기 위해 전사들을 몰래 파견했으나, 끝내 찾질 못했다.

그래도 살아있을 거라고 믿었다. 실종일 뿐, 사망으로 이어진 건 아니니 분명 살아있을 거다. 현실 부정이라 해도 람세스는 부정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리고, 한 여우가 찾아왔다.

‘당신 딸, 살아있습니다.’

순백의 구미호는 그리 말했다.

‘그리드의 노예로 살고 있어요. 언제 죽을지 모르니 구하려면 당장 행동해야 할 겁니다.’

그 말만 듣고 람세스는 여우섬으로 첩자를 보냈고, 구미호의 말이 사실임을 알게 되었다.

즉시 딸을 구하기 위해 병력을 소집했고, 용병왕이 파견한 원군과 함께 왕국군과 합류할 예정이다.

단독으로 쳐들어갔다간 역으로 깨질 게 뻔하니까.

‘조금만 기다리렴, 테리스.’

직접 가서 구해줄게. 반드시 구해줄게. 그 악마로부터 널 해방해 줄게.

그러니 조금만 기다리렴. 도착할 때까지 부디 살아있으렴. 이 어미는 네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윽?"

갑자기 땅이 꺼지는 바람에 람세스는 그만 앞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딱딱한 것에 부딪히는 소리가 아닌, 무언가 질척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으…이, 이건 뭐야?"

얼굴에 묻은 점액을 털어낸 람세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생선 비린내나 다름없는 역겨운 냄새에 순간 토 나올 뻔했다.

하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왜, 왜 바닥이 늪이 된 거지?”

본래 저택 바닥 재질은 대리석이다. 대리석으로 만들었기에 갑자기 땅이 꺼지는 일은 없으며, 갑자기 늪이 되는 일도 없다.

근데, 지금 이 상황은 뭐라고 봐야 하는 거지? 어째서 복도 전체가 갈색 점액질 늪으로 변한 거지?

혼란스러워하는 람세스 머리 위로 무언가가 뚝뚝 떨어졌다.

“설마….”

혹시나 하는 생각에 람세스는 고개를 들었고,

“….”

갈색 점액질로 뒤덮인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여, 영주님…."

여비서도 늪에 빠져 있었다. 이미 머리까지 잠겨 있었다.

"사, 살려 주…."

비서는 그 말을 잇지 못하고 아래로 가라앉았다.

"서, 설마 침입자가 있는 건가?"

그것 말고는 다른 것이 전혀 설명되지 않는다. 멀쩡했던 저택이 난데없이 갈색 점액질로 덮여질 리 없다. 분명 누군가가 이 짓을 저지른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짓을 한 거지? 지금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었고,

“아냐, 그럴 리가 없어.”

람세스는 강하게 부정했다.

“아무리 그리드라도 이런 짓을 할 리가….”

괴수가 되었고, 괴수가 된 영향으로 무지막지한 권능을 쓴다는 소문은 들었다.

하지만 현실을 조작할 정도로 그 권능이 신에 근접할 정도일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어, 어서 빠져나가야 해."

일단 저택 밖으로 나가야 한다. 나가서 이 상황을 알려야 한다. 람세스는 엉금엉금 기어나갔다.

"어서 나가서 이 일을 알려…."

그렇게 말하던 순간,

어마어마한 양의 점액질이 람세스 머리 위로 쏟아졌다.

●●●

라미드 섬은 생지옥으로 변하고 말았다.

-이, 이 늪은 뭐지? 빠, 빠져나갈 수 없어!

-누, 누가 좀 살려줘요! 제발, 제발!

-언덕으로 올라가! 늪이 없는 곳으로, 어서!

섬 전체가 거대한 갈색 점액질 늪으로 변해버렸다. 갑자기 나타난 늪에 주민들은 물론이요, 그곳에 있던 용병들도 크게 당황했다. 전대미문의 대재앙에 다들 살아남으려고 노력했으나, 소용없는 짓이었다.

아무리 높은 곳으로 올라가도 점액질은 그 이상의 속도로 차고 올라왔으니까. 섬에 있는 모든 사람이 늪에 잠길 때까지 고작 몇 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 광경을 보고 웃는 남자가 있었다.

"효과 한 번 죽이네."

흑발의 남자는 언덕 위에 올라 자신이 만들어낸 지옥도를 감상하고 있었다. 그가 있는 자리에도 점액질이 차올랐으나, 마치 침범해서는 안 될 영역이라도 되는 듯 점액질은 남자가 서 있는 자리까지 들어오지 않았다.

남자, 강림은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물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 이런 전술을 써봐야지.'

솔직히 될 거란 생각은 안 했는데, 막상 해보니 되네? 그럼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용해보자.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적들을 전부 생포할 수 있는 기술은 있으면 좋으니까. 그리 생각하며 강림은 시선을 밑으로 내렸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스승님."

밑에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주저앉은 스승님이 있었다.

"스승님 소망대로 최대한 살리겠습니다."

그런 스승님을 보며 강림은 그리 말했다.

"최대한 살려서 제 가축으로 삼아드릴게요, 알았죠?"

그 말에 스승은, 테리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내가 대체 무슨 짓을…나는 왜 이런 짓을…."

절망 어린 눈물을 흘리며 후회할 뿐.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잠시 시간을 거슬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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