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61 - 161화- 강림 VS 아르웬
“당신 어머니, 글랜디는 살아있어요.”
설화는 아르웬에게 이 사실을 전달했다.
“고대인들이 세운 조선소가 어찌 운영되는지 당신도 잘 알고 있죠?”
철선을 제작하기 위해선 고대인들이 세운 조선소가 필수적이다. 그 조선소를 돌리기 위해서는 동력원이 필요하며, 그 동력원에 쓰이는 재료는 바로,
“살아있는 인간을 전지로 삼다니. 정말 고대인다운 발상이에요. 제가 살던 시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면 나라가 발칵 뒤집혀 지는데….”
인간이다. 살아있는 인간을 석관에 넣고, 석관에 있는 기계 촉수로 끊임없이 농락한다. 절정에 이르러 긴장이 풀릴 때까지 농락하고, 무력화된 인간의 마력을 강제 추출한다. 앙상한 뼈만 남을 때까지 끊임없이 농락하고, 끊임없이 빨아들인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한 시간도 채 버티질 못하고 죽음에 이른다. 하지만, 조건을 만족한 인간이라면 최소 5년 동안은 생존할 수 있다.
그 조건을 가진 인간이란,
“당신 어머니는 선천적으로 마력이 높은 분이라고 들었어요. 당신도, 당신의 언니도 그렇고요.”
체내의 마력이 평균 이상을 가진 자. 아르웬과 카르디안의 어머니인 글랜디는 이 조건에 충족한 자였다.
“그리드는 이걸 알고 당신 어머니를 이용하고 있다고 봐요. 언니를 측근으로 섬기는 이유도 마찬가지고요.”
설화는 이를 근거로 글랜디가 살아있다고 주장했다.
“근거도 없는데, 왜 그리 확신하는 거지?”
아르웬은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리드 녀석에게 목숨을 잃었어. 그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야.” “네, 당신 아버지의 시신은 발견되었죠.”
딸을 되찾기 위해 그리드와 싸운 두 부모는 결국 목숨을 잃었다.
“그런 식으로 사람을 모욕한 녀석은 그리드 말곤 없을 거예요.” “….” “참, 사람을 무슨 돼지고기처럼 자르다니. 완전 사이코패스예요.”
카르디안와 아르웬의 아버지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그리드에 의해 정육점에 올린 고기처럼 토막이 난 채로 배달되었다. 아버지의 시신을 본 아르웬은 충격을 받은 나머지 그대로 졸도하고 말았다.
“하지만 어머니에 대해선 그리드가 딱히 언급하지 않았어요.”
반면, 어머니의 행방은 묘연했다. 그리드의 공격으로 배가 침몰할 때 남편과 같이 바다에 빠졌다는 것만 알려져 있을 뿐, 어머니의 옷가지나, 손가락 마디 하나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설화는 그 점이 글랜디가 살아있는 근거라고 주장했다.
“그리드는 정말 답 없는 쓰레기지만, 쓸모 있는 여자는 살리는 편이죠.” “그걸 근거로 내 어머니가 살아있다고 믿는 거야?” “예, 그리드도 바보가 아닌 이상 공장을 돌릴 동력원으로 적합한 인물을 함부로 죽이겠나요?” “….” “만약 죽였다면 당신 아버지처럼 배달했을 겁니다.”
그런 말을 들었어도 아르웬은 설화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이유는 참 잘 만들었지만, 그런 조잡한 근거로 내가 움직일 것 같아?” “당연히 움직이지 않죠. 죽창 한 방을 노리는 당신이 허망하게 죽창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을 테니까요.” “죽창?” “모르시면 그런 개념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뭐야, 그게….” “아무튼.”
설화는 다시 한번 더 말했다.
“당신 어머니는 살아 있으니까 구하고 싶으면 그걸 먹고 괴수가 되어서 당장 그리드의 고향 섬을 공격하세요.”
왼손 검지로 아르웬의 손에 든 호리병에 든 내용물, 흑광을 마시라고 주장했다.
“어차피 전쟁이 시작 전에 그리드 섬을 공격하기로 방침을 정했잖아요. 그런데도 망설일 건가요?” “….” “놈들의 조선소를 파괴해야 그나마 승산이 있죠, 안 그래요?”
지금까지 그리드라는 대악마가 미쳐 날뛸 수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철선에 있다. 다수의 철선으로 이루어진 함대를 이용해 수많은 범선을 물고기 밥으로 만들고, 수많은 섬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대악마의 만행을 알면서도 여러 나라가 묵인하는 이유도 다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구하기 힘든 철선들을 그 대악마는 다 어디서 얻은 걸까? 첩자들이 가져온 정보들을 토대로 분석한 아르웬은 그리드 섬에 조선소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비록 그 조선소가 섬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이 없으나, 어찌 되었든 그렇게 결론을 내렸으니 찾아서 파괴해야 한다. 파괴해서 다신 철선을 생산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급소를 작살을 내야만 복수에 성공할 수 있으니까.
어머니의 생존 여부와 관계없이 그리드 섬을 공격할 명분이 아르웬에겐 있었다.
‘만약….’
설화의 말대로 정말 어머니가 살아있다면 구하자. 악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해주자. 설화의 말을 다 믿지 못하는 아르웬이었으나, 마음 한구석엔 내심 어머니가 생존하길 강하게 바라고 있었다. 다시 화목했던 가족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란 희망이 내심 그녀의 마음속에 피어났다.
이것만으로도 동기는 충분했다.
“좋아, 네 말대로 해줄게.”
이렇게 해서 아르웬은 혼자서 그리드 섬을 급습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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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현재.
-크르르르….
-끼에에에….
두 마리의 괴수가 대치 중이다.
처참하게 박살이 난 조선소에 검은 괴물이 서 있었다. 격전을 벌였는지 양팔을 뒤덮고 있는 갑주가 심하게 갈라져 있었다. 살이 찢어졌는지 검은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자신을 이 꼴로 만든 것에 강림은 자신의 앞쪽에 있는 남색 괴물을 노려봤다.
‘이 괴물은 뭐지?’
가로가 길쭉한 마름모 형태의 괴물. 마치 쥐가오리를 연상케 한다. 쥐가오리와 달리 양팔이 달려 있고, 입안은 날카로운 이빨로 가득 채워져 있다. 다리는 보이질 않는데, 몸통만 내민 걸 보면 하반신은 매우 긴 것으로 추정된다. 생전 처음 보는 괴물은 강림을 죽일 기세로 노려보고 있었다.
이 괴물이 자신을 계속 미행하던 녀석이었음을 강림은 깨달았다.
‘내 뒤를 쫓던 녀석이 이놈이었나?’
징조는 있었다. 향해 중에 자신을 노려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는 아무것도 보이질 않아 그냥 착각이라고 치부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녀석은 여기까지 자신을 미행해왔다.
그 결과, 적에게 노출되지 말아야 할 국가 기밀 시설이 들통나고 말았다.
‘탈리아는, 카르디안은 잘 도망쳤을까?’
수면 위로 박차고 올라온 남색 괴물은 조선소를 향해 음파 공격을 날렸다. 순식간에 조선소의 절반 이상이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파괴되고 말았다. 만약 강림 재빨리 괴물이 되지 않았다면, 괴물이 되어 스스로 방패막이 되어주지 않았다면 그곳에 있던 모든 인원은 몰살당했을 거다.
‘제발 무사히 도망쳐라.’
트루퍼 무리의 습격 때처럼 또 누군가를 잃고 싶지 않으니까. 강림은 부디 그렇게 되기만을 바라며 전투태세를 갖췄다.
[그, 그리드….]
남색 괴물이 입을 열었다.
[이, 이 자리에서 너, 널 죽이겠다.]
간신히 이성의 끈을 붙잡은 것처럼 목소리는 덜덜 떨고 있었다.
떨고 있었지만,
[죽여서 어, 어머니를, 카, 카르디안 언니를 되, 되찾겠다.]
[…뭐?]
그 말만으로도 강림이 깜짝 놀라기에는 충분했다.
‘서, 설마 아, 아르웬?’
카르디안을 언니라고 부를 만한 인물은 동생 아르웬밖에 없다. 즉, 저 남색 괴물의 정체는 아르웬이다. 아르웬이 흑광의 힘을 이용해 괴수가 된 것이다.
‘아르웬이 괴수가 된다는 전개는 없었는데….’
아르웬이 가족의 원수를 갚기 위해 그리드와 맞서 싸운다는 내용만 있었지, 괴수가 된다는 내용은 없었다. 그래서 강림은 지금 이 상황을 순간 이해할 수 없었으나,
‘아냐.’
바로 고개를 저었다.
‘내가 됐는데, 녀석도 되지 말라는 법이 있나?’
강림 자신도 괴수가 되었다. 단순히 호랑이족 수장 타이의 기술로만 여겼던 괴수화를 강림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강림이 가능한데, 다른 인물들이라도 괴수화가 가능하지 않겠나? 아르웬이 괴수가 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러니 원작처럼 평범하게 싸울 거란 생각은 버려야 한다.
‘앞으로 어떤 녀석들이 나타나든 간에….’
손쉬운 세계 정복에 난데없이 찬물이 끼얹은 것 같은 기분에 강림은 기분이 언짢았지만,
‘이기자.’
결심을 굳혔다.
‘모조리 다 쓰러뜨리자. 쓰러뜨려서 누가 세상의 주인인지 알려주자.’
어차피 물러서 길도 없고, 도망칠 길도 없다. 무조건 승리하는 것 말곤 다른 길은 없다. 이기고, 정복하는 것만이 살길. 상대가 누구라 해도 반드시 이길 거다.
이 싸움에서 반드시 이기겠다고 강림은 다짐했다.
‘여기서 아르웬을 잡으면 왕국은 금방이야.’
현재 강림을 위협하는 존재는 아르웬뿐이다. 아르웬을 여기서 쓰러뜨린다면 왕국을 삼키는 건 식은 죽 먹기다. 괴수로 변했다고는 하나, 경험 면에서는 자신이 우위다. 그 점만 잘 이용하면 이길 수 있을 거다!
트루퍼 무리 때처럼 도중에 멈추는 일이 생길지 모르나, 강림은 이마저도 대비했다.
-후끅, 후끅, 후끅, 후끅!
괴수로 변하자마자 스승인 테리스를 삼켰으니까. 촉수에 농락당해 울부짖는 스승의 목소리가 아주 생생하게 들려왔다. 뭐라고 항의하는 소리가 들리지만, 강림은 무시했다.
지금은 아르웬을 쓰러뜨리는 게 우선이니까.
-우오오오옥!
강림은 단숨에 그 자리에서 박찼다. 멍청하게 서 있는 아르웬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공기가 가르는 소리만 들렸다.
[어?]
순간, 가슴에 어마어마한 고통이 전해진다. 아르웬이 휘두른 주먹에 강림은 자신이 있었던 자리로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내, 내 공격을 피했어?’
분명 피할 수 없었을 텐데. 피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는데. 어찌 몸을 살짝 비트는 것만으로 회피할 수 있는 거지?
고민은 그 이상 이어질 수 없었다.
-끼에에에엑!
강림은 바로 바다에 뛰어들었다. 잠시 뒤, 아르웬이 내지른 음파 공격에 강림이 서 있던 자리가 초토화되었다.
‘밑을 노리자.’
강림은 작전을 변경했다.
‘위가 안 되면 아래를 노려야지.’
방심해서 당했지만, 두 번은 당하지 않는다. 강림은 아르웬이 있는 곳으로 재빨리 헤엄쳤다.
해룡처럼 기다란 꼬리가 강림을 반겼다.
‘이, 이게 녀석의 하반신이라고?’
어쩐지 몸만 수면 밖으로 내밀어서 이상하다 했더니만. 강림은 바로 아르웬의 꼬리를 붙잡았다.
꼬리가 갑자기 움직인 건 그때였다.
[뭐?]
강림은 꼬리를 놓으려 했을 때는 이미 아르웬의 꼬리는 강림의 전신을 감싼 상태였다. 아르웬이 억세게 조이자 강림은 꼼짝할 수가 없었다. 갑주가 갈라지고, 생살이 터지고, 검은 피가 점점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 상태에서 아르웬은 마구 휘두르기 시작했다.
-우오오오옥?
꼬리로 묶은 원수를 동굴 벽에다 이리저리 패대기친다. 강림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아르웬은 사력을 다해 휘둘렀다. 벽에 부딪히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검은 괴물은 처참한 몰골이 되어갔다.
‘누가 당할 줄 알고!’
강림은 즉시 등 뒤에 있는 아홉 개의 촉수를 전개했다.
-끼에에에에엑!
꼬리가 꿰뚫리자 아르웬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러댔다. 조이던 힘이 느슨해지고, 강림은 재빨리 빠져나왔다. 바로 수면 위로 솟구쳐오른 강림은,
입을 벌리고 대기하고 있던 아르웬과 마주쳤다.
‘이런!’
바로 맞대응하기 위해 강림 역시 입을 벌렸다.
아르웬의 음파와 강림의 하울링이 격돌하는 순간,
-쿠가가가가강!
커다란 폭발과 함께 동굴은 무너져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