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정복하라, 지배하라, 진짜 보스가 되어라-159화 (160/344)

Chapter 159 - 159화- 폭군의 스승이 동력원으로 전락했던 이유

"자네가 그 가문의 일원인가?"

테리스라는 여성이 그 섬에 오자마자 들은 첫 마디는 다음과 같았다.

"피부가 우리랑 딴판이군. 누가 보면 숯 검둥이가 살아서 돌아다니는 줄 알겠어."

아주 모욕적인 언사였다.

"대체 뭘 먹었길래 피부가 그리되는지 궁금하군. 혹시 일부러 태웠나? 가끔 정신 나간 놈들이 피부를 그런 식으로 태운다고 들었는데…."

테리스의 피부는 구릿빛이다. 구릿빛인 이유는 햇빛을 너무 받은 탓에 피부가 타버렸기 때문이 아니었다. 특정한 음식을 먹었다는 이유로 피부색이 변한 것도 아니었다.

태어날 때부터 이랬기 때문이다. 선조의 피를 이어받은 테리스와 가문 사람들은 물론이요, 방계 일족들도 전부 피부가 구릿빛을 띤다. 대대로 이어져 온 혈통의 증거이지, 자기 자신을 학대한 대가가 아니란 말이다.

그것도 모르는 주제에 감히 그런 소리를 지껄이다니. 이건 자신에 대한 모욕이요, 가문 전체에 대한 모욕이다. 당장이라도 테리스는 저 건방진 주둥아리를 뜯어버리고 싶었다.

그러고 싶었으나, 테리스는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왜, 기분이 나빴나? 근데, 사실인 건 어떻겠나? 기분 나쁜 건 사실이고 그걸 말할 권리는 나한테 있다, 내 말이 틀렸나?"

상대는 귀족이니까. 이 섬을 통치하는 영주였으니까. 같은 귀족이라도 힘의 차이는 명백하게 존재한다. 테리스를 고용한 영주 새끼는 가장 위에 있었으며, 반대로 테리스가 속한 가문은 그 아래에 있었다.

그런 관계였기에 아무리 모욕적인 말을 들어도 테리스는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제가 가르쳐야 할 제자가 누구인지 안내해주십시오."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욕을 어떻게든 참아내며 테리스는 물었다.

"그래야 내일부터라도 가르칠 수 있습니다."

훗날 그리드라는 이름으로 바뀔 섬으로 테리스가 온 이유는 하나였다.

싸움에 재능이 있는 녀석이 있다. 이대로 재능을 썩히게 두기 싫다. 그러니 부디 그 가문 쪽에서 스승 역할을 해줄 인물을 이 섬으로 보내달라. 돈은 넉넉하게 줄 테니 좋은 교사를 자신의 섬으로 보내라.

영주, 그리드의 아버지는 그런 내용의 편지를 테리스의 가문에게 보냈다. 요청을 수락한 가문에서는 노련한 전사 중 한 명인 테리스를 파견 보내기로 결정을 내렸다.

미리 계약금의 절반을 미리 받아버렸기에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테리스는 무작정 돌아갈 수 없었다.

"그래, 그래. 알았네. 그보다 말이지…."

설령,

"몸매 한 번 죽이는군. 가슴이 이렇게 크다니. 그걸 달린 채로 싸우는 게 가능한가? 혹시 싸우는 척하면서 남자들을 유혹하는 거 아닌가?"

자신을 무시하는 발언을 듣는다고 해도 말이다.

'하아, 한 대 때릴 순 없나?'

아무리 거래했다고는 하나, 남을 무시하는 이딴 쓰레기의 말을 들어줘야 하나? 그냥 때려치울 수 없나? 테리스는 당장 계약을 파기하고 본가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고 싶었으나, 가주인 어머니에게 이 말을 들어버리고 말았다.

[테리스,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꾹 참아라. 이 돈은 우리 가문에겐 없어선 안 될 물건이야.]

대대로 테리스의 가문 사람들은 용병이다. 용병으로 고용되어 싸우는 것이 그들의 일이었고, 주된 수입원이었다. 남의 피를 대가로 돈을 버는 거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살아온 대가였을까? 옛날과 달리 요즘은 용병을 고용하는 일이 부쩍 줄어들었다. 북해를 제외한 모든 나라가 사실상 안정기에 접어들었으니까. 전쟁이 아닌, 평화를 택했기에 용병을 고용할 이유가 없어졌으니까. 이러한 이유로 테리스의 가문은 크게 기울어가기 시작했다. 가문이 기울어가면서 당연히 섬에 살던 주민들도 살길을 찾아 떠나기 시작했다. 풍요로웠던 섬은 결국, 먼지만 날리는 폐허로 변해버렸다.

이러한 상황을 단순에 돌릴 수 있는 막대한 보상을 받게 되었으니 뭘 택해야 할지 답이 뻔히 보이지 않는가? 자신이 처한 현실이 매우 힘들다는 걸 잘 알기에 테리스는 속으로 분을 삭일 수밖에 없었다.

"자, 이 녀석이네."

그렇게 모욕적인 인사를 받은 이후 영주의 안내에 따라 영주의 저택에 들어선 테리스는 한 아이와 만났다.

"이 녀석이 자네가 가르쳐야 할 제자일세. 야, 인사드려라."

겁에 질린 듯한 얼굴을 한 소년은 테리스에게 고개를 숙였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제 이름은 그리드입니다."

이것이 테리스와 그리드 간의 첫 만남이었다.

●●●

'영주 녀석의 말이 빈말이 아니었네.'

이후로 수년간, 그리드가 성인이 될 때까지 테리스는 그리드의 스승이 되어주었다. 그가 타고난 전사로 거듭날 수 있도록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그리드를 가르쳤다.

가르치면서 영주가 한 말이 허풍이 아니었음을 테리스는 깨달았다.

'모든 무기에 숙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검술을 가르치면 그리드는 그 이상으로 검을 휘둘렀다.

창술을 가르치면 그리드는 그 이상으로 창을 휘둘렀다.

도끼를 휘두르는 법을 가르치면 그리드는 그 이상으로 도끼를 활용하는 법을 터득했다.

철퇴를 사용하는 법을 가르치면 그리드는 테리스가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활용했다.

어떤 무기를 쥐어져도 그리드는 테리스의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를 보여줬다.

이 중 가장 재능 있는 부분은 격투였다.

'설마 내가 밀릴 줄이야.'

격투라면 자신이 있던 테리스였다. 맨손으로 커다란 곰을 묵사발로 만들 정도로 격투에서 그녀를 비벼볼 자가 없었다.

그랬는데, 이제야 어른이 된 제자에게 자신이 압도당할 줄이야. 나날이 성장해가는 제자의 모습에 테리스는 살짝 열등감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뿌듯했다.

맨날 사람 죽이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일이 없던 자신이 드디어 좋은 일을 하게 되었다고 그리 여겼다. 아마 그리드라면 자신을 뛰어넘는 훌륭한 무인이 될 거다. 썩을 아비와 달리 성품은 좋은 녀석이니 분명 위인이 될 거다. 테리스는 그리될 거라고 믿었다.

믿었기에,

"그, 그리드. 이, 이게 무슨 짓이야?"

그리드가 자신을 덮칠 거라곤 테리스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왜,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아무리 친모가 죽었다고 해도…."

사실 그리드는 서자였다. 서자였기에 친모와 같이 마을 변두리에서 조용히 살아갔다. 그런 그리드를 후계자가 필요했던 영주가 강제로 저택으로 데리고 갔다. 천한 핏줄 자식이라는 걸 알리기 싫다는 이유로 영주는 그리드가 어머니를 만나는 것도 소식을 듣는 것도 하지 못하게 막아 났다.

이 사실을 테리스는 아트리아라는 그리드의 시녀에게서 들었다.

테리스는 이를 아주 부당한 처사라고 여겼다. 아무리 그래도 친모는 만날 수 있게 해줘야지, 뭐가 부끄럽다고 모자 사이를 갈라놓는 거냐? 영주의 방침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기에 테리스는 남몰래 그리드가 친모를 만날 수 있게 해줬다.

해줬으나, 이미 그리드의 어머니는 싸늘한 시신으로 방치된 지 오래였다. 결국, 테리스는 남몰래 그리드와 함께 그리드 친모의 장례를 치러줬다.

그날을 기점으로 그리드는 변해버렸다. 착하던 성격이 음침한 성격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훈련 시간을 제외하고는 혼자서 무언가를 끄적거리는 일이 많아졌다. 혹시 무슨 일을 꾸미는 게 아닌가 싶어 테리스는 물었으나, 그리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에 테리스는 뭔가를 저지른 거 아닌가 불안했으며,

"잠깐, 잠깐 나는…아흐으으윽?"

그 불안은 강림이 자신을 납치해 겁탈하는 것으로 현실이 되었다. 그리드는 스승이 즐겨 마시던 술에다 약을 타서 스승을 잠재운 뒤, 그녀를 자신의 은신처로 데려온 뒤, 옷을 벗겼다. 알몸이 된 스승의 젖가슴을 움켜쥔 채로 강림은 자지를 박고 허리를 들썩였다.

"흐이이이, 히이이익? 너, 너 나한테 무…하오오옥?"

최음 효과가 있는 약물을 강림은 스승의 저녁밥에다 뿌렸다. 아무 맛도 나지 않으나, 아주 독하다는 평을 받는 약물이었다. 그 약물이 스며든 음식을 먹어버렸기에 테리스는 격하게 몸부림쳤다.

몸부림치며 도망치려는 스승을 억지로 붙든 상태에서 강림은 박아댔다.

"호오오, 호오오오옥!"

그리드는 계속 박아댔다.

"후오오, 호오오옥, 호오오옥!"

안에 싸질러도 계속 박아댔다. 자지가 얼얼해질 때까지, 빳빳해질 때까지 박고, 박고 또 박았다. 사정할 때마다 테리스는 절정에 이르렀고, 절정에 이를 때마다 늠름했던 얼굴은 점차 사랑을 갈구하는 여자로 변해갔다.

"하아, 하아, 하아…그, 그리드…."

결국, 스승의 배가 약간 볼록해지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강림은 행동을 멈췄다.

"스승님."

제자에게 강간당했다는 사실에 혼란스러워하는 테리스를 향해 그리드는 말했다.

"제 편이 되어주세요." "…뭐?" "스승님의 안전은 보장해드릴 테니 제가 하는 일에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의문도 가지지 마세요. 그냥 쥐 죽은 듯이 있으세요." "그게 무슨 소리니?" "아트리아와 같이 매일 섹스해 줄 테니 그냥 눈감아 주세요. 스승님이 만족할 때까지 해줄 요량은 있으니까요."

그게 무슨 개소리냐? 멋대로 덮친 주제에 그런 소리를 해? 테리스는 순간 욱할 뻔했으나,

"만약 당신이 그러지 않는다면…."

순간, 소름이 돋았다.

"당신이라도 용서 안 할 겁니다."

모든 걸 다 베어버리겠다는 싸늘한 제자의 시선에 테리스는 얼어붙었다. 맹수에게 걸린 먹잇감이 된 것처럼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사지가 묶여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뭔가, 그리드에게서 나온 알 수 없는 거대한 형상이 보였다. 괴물처럼 보인 그 형상은 당장이라도 테리스의 영혼을 씹어먹을 기세였다. 그걸 본 테리스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할 수 없었으나, 해야 하는 일이 뭔지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널 막겠다."

그리드를 막는다. 그리드가 마침내 고향을 불바다로 만들던 그 날. 그리드의 은신처에서 나온 테리스는 그리드를 향해 검을 겨눴다.

"제자를 잘못된 길로 가는 걸 막지 못한 건 스승의 잘못. 그 책임을 여기서 지겠다."

만약 그 영주 새끼가 뭘 저지르고 있었는지 알았다면, 그로 인해 그리드가 광인(狂人)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걸 알았다면, 친모의 죽음으로 마왕이 되어버렸다는 걸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자신이 막을 수 있었을 텐데. 테리스는 후회했으나, 이미 늦은 일이었다. 이제 자신과 그리드는 서로 칼을 겨눌 수밖에 없는 처지였고, 둘 중 하나는 죽어야 끝나게 되니까. 스승의 마지막 책무를 다하기 위해 테리스는 그리드와 맞서 싸웠고,

"후끅, 후끅, 후끅, 후끄으으읍!"

패배했다. 패배하고 함대 제작 시설의 동력원이 되었다. 끊임없이 기계 촉수에 농락당하며 마력을 뽑히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

"여, 스승님. 아직 살아계시죠?" "그리드…."

악몽 같던 감옥에서 벗어날 기회가 테리스한테 찾아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