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47 - 147화- 언니와 재회한 엘프족 수장
“어, 어째서 어, 언니가 여기에….”
티타니아는 지금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분명 어, 언니는 세계수 님과 하나가 되었을 텐데….”
그래, 그렇게 되었어야만 했다.
선대 수장이었던 언니는 세계수 님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한 제물로 희생되었다. 육신도 영혼도 전부 세계수 님을 위해 바쳤다. 그렇게 모든 걸 바침으로써 세계수 님이 눈을 감는 시기를 다시금 늦출 수 있게 되었다. 적어도 티타니아의 뒤를 잇는 차기 후계자가 나올 때까지는 세계수 님은 충분히 버텨줄 거다.
존경하던 언니가 희생되는 것에 티타니아는 매우 슬퍼했지만, 그래도 마냥 슬퍼하지만은 않았다.
이것도 엘프족을 위한 일이라고, 성지, 이 성지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를 위한 일이라고. 언젠가 자신이 마주해야 할 운명이니 도망쳐서는 안 되고, 겁을 먹어서는 안 된다고. 언젠가 자신도 세계수 님을 위해 희생되어야 할 차례가 오면 당당하게 맞이해야 한다고. 언니가 그랬던 것처럼 차기 수장이 될 엘프에게 자신의 각오를 보여주겠다고 티타니아는 그리 다짐했다.
그렇게 다짐했는데….
왜 눈앞에 언니가 보이는 걸까?
혹시, 환각이 아닐까?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목에 쇠고랑을 채운 자신을 조롱하려고 일부러 그리드가 환각을 만들어낸 게 아닐까? 죽었던 언니를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게 해서 자신을 더 종속시키려고 하는 게 아닐까?
그래, 환각이 맞을 거다. 죽은 지 오래인 언니가 이 자리에 있을 리가 없다.
저렇게 살아서 촉수에 농락당하는 건 언니가 아니다. 언니는 자신과 같은 백금이고, 엘프라면 반드시 가지는 청옥색 눈동자를 지녔는데, 저렇게 빛을 잃은 회색 머리에 탁해진 보라색 눈동자를 지닌 여자가 언니일 리 없다. 외모가 비슷해도 언니일 리 없다. 그리드 녀석이 만들어 낸 우연의 산물에 불과하다.
그래, 아닐 거다. 분명 아니….
“아무래도 믿기 힘든가 보구나.”
강림은 그리 말했다.
“하긴, 나도 믿기 힘들었지. 죽었다고 알려진 선대 수장이 실은 살아있었을 줄이야. 아트리아가 내게 보낸 보고서에는 이런 내용이 전혀 없었는데 말이지.”
엘프섬 총독으로 부임한 아트리아는 섬에 관한 모든 정보를 수집했다. 그 정보 중에는 세계수와 관련된 것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따라서 세계수를 살리기 위해 티타니아 이전의 수장들이 희생되었다는 사실도 강림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알고 있었기에, 세계수 내부에 돌입한 강림은 상상도 못 한 사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네 언니뿐만 아니야.”
강림은 손가락을 한 번 더 튕겼다.
그러자,
“언니 말고도 다른 엘프들도 있더라.”
촉수로 이루어진 벽 일부가 개방되었다. 타락한 지금의 엘프들과 똑같이 회색 머리에 보라색 눈동자를 지닌 엘프 세 명이 알몸인 채로 벽에 박혀 있었다.
-후읍, 후읍, 후읍, 후읍!
-후익, 히익, 후이이익!
-우끅, 우끅, 우끕, 우끄으읍!
세 명 모두 촉수에 농락당하고 있으며, 세 명 모두 쾌락에 젖은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이 여자들이 누구인지 티타니아는 알고 있었다.
“이, 이분들은 역대 수장님들….”
가장 오른쪽에 있는 분은 분열되었던 엘프족들을 통합하여 성지의 혼란을 종식했던 초대 님이다. 초대 바로 옆쪽에 있는 분은 싸움이 끝난 성지를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하던 2대 님이고, 2대 바로 옆에 있는 분은 인간의 침략으로부터 성지를 지키기 위해 애쓴 3대 님이다.
이들 모두 세계수를 위해 기꺼이 제물이 된 분들이었다. 엘프족 역사서에 위인이라고 기록될 정도로 매우 명예로운 분들이며, 그 명예로운 분들처럼 되고 싶은 게 티타니아의 소망이었다.
그런 분들이 어째서 타락한 거지? 어째서 촉수에 농락당하고 있는 거지?
아니, 그보다 왜 이분들이 지금까지 살아 있는 거지? 죽었다고 역사서에 당연히 기록되어 있는데, 왜 이분들이 눈앞에 있는 거지? 어디서 잘못된 거지?
혼란스러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티타니아를 향해 강림은 설명했다.
“아무래도 세계수란 녀석은 자신의 신도를 마구 희생시키는 악신은 아닌 것 같아.”
수장들은 죽지 않았다. 세계수와 하나가 되었으나, 그들의 육신과 영혼이 전부 자신들이 모시던 신과 동화되는 일도 없었다.
그저, 세상과 단절된 채 생명을 연장하는 일종의 에너지원으로 쓰이고 있었을 뿐, 세계수가 수장들의 목숨을 빼앗는 짓은 하지 않았다. 이 수장들을 심문하면서 강림은 이러한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이럴 작정이었다면 굳이 산제물이란 제도를 만들 필요가 있었냐는 의문이 드네. 이럴 거라면 그냥 주기적으로 보살피면 그만이거늘.” “….” “뭐, 어찌 되었든 나야 좋은 일이지. 따먹을 노예가 더 늘어난 꼴이니까.” “….” “왜, 너무 충격적이었냐? 똑같이 희생될 운명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그게 아니었다는 사실이?”
그래, 충격적인 건 맞다. 설마, 이런 식으로 언니와 재회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도 못했으니까. 사후에 세계수 님 품 안에서 만날 거라고만 생각했으니까. 살아있었다는 사실에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게 정상이나, 티타니아는 그럴 수가 없었다.
“후읍, 후읍, 후읍, 후읍!”
속박당한 채로 커다란 촉수 두 개에 가랑이가 범해지고 있는 언니를,
“후끅, 후끅, 후끅, 후끅!”
목구멍 깊숙이 들어온 커다란 촉수에 입이 범해지고 있는 언니를,
“우끅, 우끅, 우끅, 우끅!”
촉수에 가슴이 짜이고, 짜인 가슴에서 나오는 모유를 촉수에게 강탈당하고 있는 언니를,
“후끅, 후끅, 후끅, 후끄으으윽!”
촉수에 농락당하면서 끊임없이 절정에 시달리는 언니를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으니까. 언제나 늠름했던 언니가 잔학한 악마에게 놀아나 자신처럼 타락했다는 사실을 티타니아는 부정하고 싶었다. 차라리 자신이 악몽을 꾸고 있다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이것은 현실이다.
“모처럼 만난 언니이니 한번 말 좀 나눠봐.”
거부할 수 없는 잔혹한 현실이다. 강림이 손가락을 다시금 튕기자 언니를 농락하던 촉수들이 일제히 행동을 멈췄다. 몸통을 감싸는 커다란 촉수를 제외한 나머지는 선대 수장의 몸에서 떨어져 나왔다. 강림이 손가락을 까닥거리자 촉수는 지시대로 선대 수장을 두 사람이 있는 곳까지 끌고왔다.
“우으응? 너, 너는….”
겨우 촉수에서 해방된 선대 수장은 눈앞에 있는 티타니아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몇 번이고 눈을 깜빡이더니,
“아, 티타니아구나.”
동생임을 알아보고는 매우 기뻐하는 표정을 지었다.
“다행이다. 너도 주인님의 노예가 되었구나.” “어, 언니….” “혹시나 해서 살해당한 게 아닌가 걱정했었는데,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그 말을 들어도 티타니아는 기쁠 수가 없었다.
“사이좋게 노예가 되었으니 평생 살 수 있겠네. 앞으로도 주인님을 위해 봉사 많이 하자. 많이 낳고, 많이 행복해지자.”
언니라면 도저히 입에 담지 않을 말을 하고 있으니까. 수장으로서 모든 엘프의 존경심을 받던 그 언니가 고작 인간 나부랭이한테 타락하다니. 언니뿐만 아니라 다른 수장들마저 그리드라는 한 인간에게 굴복했다는 사실을 티타니아는 두 눈을 감고 싶었다. 마음 같아서는 두 눈을 뽑아서 현실과 연을 끊어버리고 싶었다.
그러고 싶을 정도로 티타니아는 이 악몽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어, 언니….” “음?” “어, 어쩌다가 그리되셨나요?”
티타니아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어쩌다가 이 인간에게 굴복하셨나요? 언니는 그럴 분이….” “처음에는 저항했지.”
언니는 대답했다.
“세계수를 촉수 괴물로 만든다는 사실에 화가 났지. 감히 신을 멋대로 손대려 하다니, 천벌을 받고 싶냐고 소리쳤지.”
그렇게 말하면서 선대 수장은 자신의 몸을 마치 사랑스럽다는 듯이 양손으로 감쌌다.
“그렇게 소리치고 나서 주인님이랑 사랑을 나눴어.”
사랑스럽다는 듯이 왼손으로 자신의 젖가슴을 애무하고, 오른손으로 자신의 가랑이를 만져댔다.
“사랑을 나눈 끝에 나는 알게 되었어.”
마치 이 세상의 진리가 뭔지 깨달은 얼굴로 선대 수장은, 언니는 입꼬리가 올라갔다.
“주인님이 진정한 신이라는 걸.” “시, 신이라고요?” “그래, 우리가 모셔야 했던 신은 이 나무가 아니었어.”
자신이 깨달은 진리가 무엇인지 언니는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주인님은 이 섬을 구원해줄 유일한 분이야. 이분을 따른다면 우린 이제 희생할 필요가 없어. 더는 이 나무를 위해 평생 나무 속에 갇힐 필요가 없다고.” “저, 정신 차리세요, 언니. 이 악마는 우리 고향을, 동족을!” “그래, 다 들었어.”
언니는 이해한다는 듯이 분노에 찬 티타니아의 턱선을 어루만졌다.
“성지가 무너졌고, 네가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했고, 엘프들은 상품으로 취급당하고 있다는 걸 다 알고 있어.” “알고 있으면….” “근데, 어쩔 수가 없잖아?”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언니는 대답했다.
“우린 저항했고, 패배했어. 패배했기에 그런 취급을 받았어. 그게 법칙이고, 우린 그 법칙에 따라 당한 것에 불과해. 그게 잘못되었니?” “그걸 왜 당연하다고 보는 겁니까? 이런 놈의 노예로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요!” “의미가 있어.”
언니는 티타니아를 껴안았다.
“주인을 위해 영원히 씨받이가 되는 것. 그렇게 될 기회가 찾아왔는데 어찌 거부할 수 있겠니?” “어, 언니….”
아 틀렸다. 언니는 이미 세뇌당했다. 녀석에게 지배당하고 말았다. 자신이 저택에 갇혀 아트리아라는 여자에게 농락당하던 사이에 언니는 그리드에게 꺾이고 말았다. 다른 수장들도 마찬가지고. 당연히도 세뇌에서 풀어내야 하나, 티타니아는 도저히 그럴 자신이 없었다.
지금 자기 자신조차 그리드의 지배가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어찌 언니를 설득할 수 있겠는가? 타락의 씨앗은 티타니아의 마음속에 뿌리내린 지 오래이며, 복종하기 일보 직전에 놓여 있었다.
그 직전 앞으로 넘어가기 위해서 강림은 이곳으로 티타니아를 데려왔다.
“이해할 수 없다면 이해하게 해줄게. 그걸 위해 주인님이 널 부른 거니까.” “그게 무슨 소…후읍?”
티타니아가 채 묻기도 전에 언니가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어떤 소음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이 동생의 머리를 강하게 붙잡았다.
붙잡은 채로 두 자매는 촉수 벽으로 다시 끌려갔다.
‘아, 안 돼. 안 돼, 이럴 수는….’
언니랑 같이 촉수 벽 안으로 갇힐 때까지 티타니아를 도와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으며,
“이따가 보자고, 티타니아.”
이제 곧 펼쳐질 생지옥을 기대하며 웃고 있는 폭군만 존재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