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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하라, 지배하라, 진짜 보스가 되어라-146화 (147/344)

Chapter 146 - 146화- 변해버린 세계수를 보고 엘프족 수장은 경악합니다

세계수는 이 땅의 수호신이요, 엘프족이 영원히 돌봐줘야 하는 신성한 존재이다.

세계수가 있기에 섬은 언제나 젖과 꿀이 흘러넘쳤으며, 흘러넘치기에 섬에 살아가는 모든 생물이 풍족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런 세계수를 지키는 것이 티타니아를 포함한 역대 엘프족 수장이 맡아야 하는 의무이며,

“그럼 뒤를 부탁합니다, 티타니아.”

세계수를 영원한 수호신으로 유지하기 위해 희생해야 하는 것 역시 수장이 맡아야 하는 의무였다.

“제가 죽더라도 슬퍼하지 마세요, 이것은 운명이니까요.”

차기 수장이 티타니아로 결정된 이후 선대 수장은 자동으로 세계수의 제물이 되었다.

이날은 세계수에게 육신과 영혼을 바치는 날이며, 이를 위해 선대 수장은 순수함을 상징하는 흰 가운만 걸쳐 입은 상태였다.

누구도 감히 출입할 수 없는 세계수의 뿌리 지하에서 선대 수장과 티타니아는 마지막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언젠가 당신에게도 후임이 생긴다면, 저와 똑같은 길을 걷게 될 겁니다. 걷게 되더라도 두려워하지 마세요.” “언니….” “수장으로 간택되었을 때부터 이리될 거라고 각오하고 있었답니다.”

친언니처럼 여겼던 수장과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이별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티타니아는 눈물을 글썽거렸고, 선대 수장은 티타니아의 등을 토닥이며 그녀를 달래줬다.

“성지를 지키기 위해선 희생이 필요하다는 걸 당신도 잘 알고 있잖아요?”

세계수는 나무다. 신으로 숭배받고 있으나, 오래 사는 거목에 불과하다. 엘프섬 생태계에 큰 영향을 끼칠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진 존재라고 여기겠으나, 근원만 따지고 보면 단순한 나무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들을 수장을 비롯해 지도층에 해당하는 극소수 엘프들만 알고 있는 사실이며,

수명의 한계가 온 세계수를 지키기 위해선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 역시 그들은 알고 있었다.

“세계수 님이 죽어버리면 이 섬도 끝나게 됩니다. 우리가 누려온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될 거예요.”

세계수라는 나무는 진작에 죽었어야 했다. 수명이 다해 썩은 고목이 되어야 했고, 신과 함께 엘프섬 역시 똑같은 운명을 맞이해야만 했다. 진작에 황무지가 되었어야만 했다.

섬과 세계수는 공동운명체니까. 엘프섬 생태계를 유지하는 쐐기가 세계수인데, 그 세계수가 무너진다면 엘프섬은 역시 무너지게 될 거다. 섬에 살던 모든 동식물은 파멸을 맞이하게 될 거고, 엘프들 역시 마찬가지다. 고향을 잃고 뿔뿔이 흩어지게 될 거다. 지금까지 이어져 온 황금시대가 종말을 맞이하게 될 거다.

그 비참한 운명을 저지하는 것이 종족의 우두머리라는 자리를 계승해 온 역대 수장들이 해야 하는 일이다.

“이 섬이 죽으면 우리는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고, 밖에 나가는 순간 인간들의 표적이 될 겁니다. 평생 놈들의 수발을 들어야 하는 노예로 전락하게 될 거예요.” “….” “그렇게 되는 걸 당신은 바라고 있습니까?” “아뇨, 그러지 않아요!”

티타니아는 강하게 부정했다.

“우리 엘프족이 그딴 취급을 받는 걸 반드시 막을 겁니다.” “그렇다면, 슬퍼하지 마세요.”

선대 수장은 충고했다.

“당신 차례가 와도 슬퍼하지 마세요.”

목소리에 약간의 떨림이 있었지만, 수장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당신의 후임에게도 똑같이 말해주세요. 이것은 필요한 희생이라고.”

세계수의 생명 연장을 위해 수장들이 목숨을 바친다. 수장들이 목숨을 바쳐 세계수의 거름이 되었기에 엘프섬은 지금까지 번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희생이 무의미하다고 여기는 수장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다들 필요한 희생이라고 여겼다.

이렇게 희생되어야 후손들이 살아갈 수 있으니까. 더러움이라곤 없는 이 성지를 지켜낼 수 있으니까. 자신들의 희생으로 순환이 끊어지지 않는다면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 도리. 신과 하나가 되어 영원히 섬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리라.

선조 대대로 내려져 온 이 주입식 교육을 선대 수장은 잘못되었다고 여기지 않았으며,

“알겠습니다, 언니.”

티타니아 역시 슬플지언정, 이 전통이 잘못되었다고 여기지 않았다.

“훗날 저도 언니 곁을 따를게요.”

뿌리 아래로 들어가는 언니에게 티타니아는 그리 약속했다.

그렇게 약속했기에,

●●●

“제, 제발 하지 말아주세요. 하지 말아주세요.”

지금 강림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있었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티타니아는 애원했다.

“제, 제발 세계수 님은 건들지 말아주세요. 세계수 님은 이 섬에 없어서는 안 될 분입니다.”

강림의 손에 붙잡힌 티타니아는 세계수 앞으로 끌려왔다. 오랜만에 본 세계수의 모습에 티타니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섬의 섬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울창했던 나뭇잎들은 전부 시들어졌고, 가지들도 앙상한 뼈처럼 변해버렸으며, 질병에 걸린 것처럼 몸에서는 껍질이 계속 떨어져 나갔다. 항상 굳건함을 자랑하던 세계수는 점점 죽어가고 있었다. 죽어가는 세계수의 몸 군데군데에는,

촉수처럼 말랑말랑한 검은색 물질이 보였다.

“세계수 님이 죽으면 이 섬은 파멸하고 맙니다. 당신이 바라던 일도 다 물거품이 됩니다.”

세계수가 죽어가고 있다. 이를 바로 깨달은 티타니아는 눈물 콧물 다 흘리며 간곡하게 부탁했다.

목숨을 바쳐 지켜야 할 대상이 지금 죽기 일보 직전이라는 걸 알아버렸기에, 죽은 언니와의 약속을 더는 지킬 수 없게 되었기에 티타니아는 다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강림의 마음을 돌려서 세계수를 지켜내려고 애썼으나,

“아니,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아.”

강림은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식으로 반응했다.

“세계수라는 나무가 죽으면 이 섬이 망한다는 사실쯤은 나도 알고 있거든? 그런 것도 모르고 섬을 지배하려고 했겠어?” “그, 그렇다면 어째서 세계수 님을 죽이는 건가요? 어째서!” “죽어가고 있는 게 아니야. 내가 아까 방에서 말했잖아.”

까먹어버린 티타니아를 위해 강림은 다시금 친절하게 설명했다.

“세계수를 촉수 괴물로 만든다. 촉수 괴물로 만들어 이 섬을 음욕으로 넘쳐나는 천국으로 바꾼다. 그리 말했잖아, 안 그래?”

엘프들의 사역마를 자신의 정액을 내뱉는 촉수 괴물로 만드는 데 성공한 문득 강림은 좋은 생각이 번뜩였다.

세계수도 촉수 괴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신이라고 떠받치고 있지만, 실상은 특이종 거목에 불과하다. 결국 나무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을 그저 따위로 만들 수 있는 상위권 존재가 아니다. 따져보면 하위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자신의 하수인으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자신의 명에 따라 이 섬을 오직 음욕과 광기로 넘쳐흐르는 세상으로 만들어주지 않을까? 오직 자신의 명에 따라 색기 넘치는 엘프들을 무한히 낳아주지 않을까?

‘처음부터 부화장으로 설정되었다는 말에 좀 놀랐지.’

세계수는 엘프들의 어머니다. 세계수가 맺은 열매 안에서 엘프가 태어난다. 그게 <여우의 은총>이란 게임 속 세상에서 엘프들이 태어나는 과정이다.

엘프라는 종족이 세계수와 큰 연관이 있다는 설정이 매우 흔하지만, 설마 세계수가 직접 엘프들을 낳는 부화장으로 나올 줄은 강림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역시 막장 능욕 게임이라서 가능한 이야기인가? 어떤 마약이라도 빨았기에 세계수가 엘프를 낳는다는 공식을 만들어냈는지 강림은 진심으로 궁금했다.

궁금했지만, 강림은 이를 요긴하게 쓸 생각이었다.

‘내가 잘 써먹어야지.’

이유가 어찌 되었든 간에 자신이 이용할 수 있을 거다.

자신의 욕망으로 점철된 괴물 속에서 자신에게 앙탈을 부리고, 자신에게 안기는 것만을 의무라 여기고, 주인을 위해 이용당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엘프들을 생산한다. 엘프라는 종족을 영원히 노예로 종속시킨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세계수를 개조해야만 한다.

따라서 강림은 일주일간 세계수를 촉수 괴물로 만들기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 강림은 꾸준히 마기를 흘러 넣어 세계수를 다른 존재로 바꾸려고 노력했다. 섬 바깥의 일을 처리하는 것도 동시에 하느라 힘들었지만, 자신의 바람을 위해 강림은 그 어느 것도 소홀하게 여기지 않았다.

“자, 이리 와봐. 아주 멋진 걸 보여줄게.”

그렇게 말하며 강림은 티타니아의 손을 이끌고 앞으로 향했다. 세계수의 뿌리 밑에 있는 거대한 구멍 안으로 두 사람은 들어왔다. 안으로 들어오게 된 티타니아는,

“어, 어떻게 이, 이런 일이….”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눈을 떼질 못했다.

“겉만 봐서 잘 몰랐지?”

세계수 내부가 어찌 되었는지 강림은 친절하게 설명했다.

“여기 지하를 통해 세계수 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이후부터 이곳에서 쭉 공사를 계속 진행했지.”

철옹성을 무너뜨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내부에서 무너뜨리는 것처럼 강림은 세계수를 집어삼키기 위해 내부에서 천천히 오염시킨다는 전략을 짰다.

그 결과,

“아직은 미완성이지만, 촉수 동굴로 만드는 데는 성공했어.”

세계수 내부를 검은 촉수로 이루어진 공동으로 만들어냈다. 끈적끈적한 정액을 흘리며 벽면이 꿈틀거리는 모습은 보는 사람을 기겁하게 했다.

아직 세계수 내부가 완전히 촉수로 점령된 건 아니나, 강림이 쉬질 않고 계속 마기를 주입한다면 내부는 물론이요, 외부까지 전부 검은 촉수로 변하게 될 거다.

향기로운 폭군의 정액을 풀풀 풍기는 초거대 촉수 거목으로 재탄생하게 될 거다.

“아아….”

이 끔찍한 광경을 본 티타니아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너무 충격을 받은 나머지 그 어떤 말도 입에 담을 수가 없었다. 그저, 덜덜 떨며 주변을 두리번거릴 뿐.

그런 티타니아를 흥미롭게 쳐다보던 강림은 갑자기 떠올랐다는 듯이 손뼉을 쳤다.

“아, 맞아. 너한테 보여줄 선물이 있었지.” “서, 선물?” “어쩌면 너한테 있어선 다행일지도 모르겠어.”

다행이라고? 자신의 의무를 박살 내 버린 주제에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지? 의구심을 품은 티타니아를 보며 강림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촉수로 이루어진 벽면 일부가 열리기 시작했다.

“어?”

순간, 잘못 본 게 아니냐고 티타니아는 그리 생각했다.

“왜, 왜….”

죽었을 터였다 세계수를 위한 거름이 되는 게 진실이었다. 세계수와 하나가 되어 영원히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 티타니아는 그리 생각해왔다.

그리 생각했는데, 왜 눈앞에….

“왜 언니가 이곳에 있는 거지?”

죽었던 선대 수장, 언니가 왜 이곳에 있는 거지?

“후윽, 후읍, 후읍, 후으으읍!”

촉수에 농락당하고 있는 선대 수장의 모습에 티타니아는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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