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43 - 143화- 독사의 마지막 금고의 행방
“정말 정신 나갔군요, 당신은.”
외부인을 일절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것이 엘프섬의 규칙이다.
외부인은 성스러운 땅을 오염시킬 수 있으니까. 외부 세계와 관계를 맺는 것이 향후(向後) 엘프족 발전을 위해선 필요한 조치하는 걸 잘 알면서도 정작 외부인이 섬에 정착하는 것을 엘프들은 달갑지 않았다. 자신들에게 필요한 기술과 물건만 주는 것에 만족하고 싶었다.
그러한 엘프들의 통념을 수장 티타니아는 깨뜨렸다.
“자신의 귀중한 재산을 남에게 맡기다니.”
그 통념을 깨뜨리고 데리고 온, 미역처럼 구불거리는 초록 머리의 여성을 보며 티타니아는 기가 찬다는 듯이 반응했다.
“제가 이 돈을 횡령하면 어쩌려고 저한테 모든 걸 맡기는 겁니까?” “당신은 절대로 그런 짓을 할 악당이 아니니까 맡기는 겁니다.”
초록 머리의 여성, 페르포네는 눈웃음을 지었다. <독사>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는 그녀는 최초로 엘프섬 내부에 발을 디딘 인간이었다.
“세계수의 이름을 걸고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그것이 엘프들의 규칙이잖아요? 자신이 모시는 신의 이름을 걸고 한 약속을 당신이 어길 거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저희에 대해서 잘 알고 있군요.” “제 부하 중에 엘프들이 몇 명 있거든요.”
엘프들이 항상 섬에 기거하는 건 아니다. 바깥세상을 동경하여 섬 밖으로 나가는 엘프들도 존재한다.
물론 뭣도 모르고 나갔다가 인간들에게 사냥당해 수인들처럼 노예로 팔려나가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나, 성공적으로 정착에 성공한 엘프들도 존재한다. 페르포네의 수하로 일하는 엘프들은 후자에 해당한다.
그 엘프들 덕분에 페르포네는 손쉽게 티타니아와의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었다.
“신의 이름을 건 약속을 절대 어기지 마라. 약속을 어기는 건 종족의 명예를 더럽히는 행위다. 약속을 어긴 자는 양쪽 귀가 잘리고, 힘줄이 잘린 채로 영원히 섬에서 추방된다.” “….” “수장인 당신이라도 신의 이름으로 건 약속을 어길 수 없다고 그러더군요.” “….” “근데, 그거 사실인가요? 약속 안 지키면 그런 식으로 추방당하는 게?” “사실입니다.”
티타니아는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신을 모독한 자는 그런 형벌을 받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그럼 당신이 제 약속을 어기면 당신도 형벌을 받는다는 소리군요.” “네, 그렇죠. 세계수 님은 저희가 하는 모든 걸 기록하고 계시니까요.”
티타니아는 페르포네와 거래를 했다.
페르포네를 중개인으로 삼아 왕국과 무역을 한다. 엘프섬에서만 나오는 최고급 목재를 수출하고, 왕국에서 무기와 식량, 약재 등 섬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각종 생산품을 수입한다. 엘프족 발전을 위해 티타니아는 페르포네와 접촉했으며,
페르포네는 거래를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자신의 요구를 받아들여 달라고 말했다.
“근데, 이렇게 금고를 여기에다 보관해도 되는 겁니까? 아이스 섬엔 보관할 데가 없어요?”
자신의 금은보화가 잔뜩 든 보물 창고를 엘프섬에 숨길 수 있게 해줄 것. 보물 창고지기를 티타니아가 맡아줄 것. 금고를 열 권한을 티타니아에게 줄 테니 자신의 돈을 훔쳐 가지 못하게 잘 지켜줄 것.
그것이 페르포네의 요구 조건이자 세계수란 신의 이름으로 내건 티타니아의 약속이었다.
“네, 없습니다. 너무 많아서 보관할 데가 없어요.”
페르포네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 말을 들은 티타니아는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돈이 많아서 넣을 곳이 없으면 베풀기라도 하지, 그런 것도 안 합니까?” “제가 왜 해요?”
페르포네는 되물었다.
“제가 피땀을 흘려가며 모은 돈을 왜 남을 위해 써야 하죠? 저는 악덕 상인이지, 아랑이 넓은 인간이 아니랍니다.” “그렇게 욕심을 부리다가 패가망신한 자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유감스럽게도 저는 그렇게 될 생각이 없답니다.”
페르포네는 자신감 넘치는 듯이 웃었다.
“악착같이 벌어서 제가 원하는 걸 다 얻을 겁니다. 그걸 얻기 전까진 누구에게도 돈을 주지 않을 거예요.” “지독한 구두쇠군요, 당신은.”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에겐 수고비는 확실히 줄 테니까.” “얼마나 줄지 참 기대됩니다.”
이렇게 욕심 많은 여자가 과연 얼마나 줄까? 이미 받을 건 다 받았기에 얼마를 주든 상관없지만. 기대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티타니아의 표정에 기대감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그보다, 티타니아 씨. 이 나무 안에 보관하면 누구도 침입하지 못한다는 거죠?” “예, 오직 제 명령에만 반응합니다.”
페르포네가 티타니아에게 맡긴 금고. 아이스 섬, 그리드 섬에 있는 것과 똑같이 매우 크고, 쓸데없이 웅장했다.
그런 큰 크기의 금고가 어느 거대한 나무뿌리 속에 박혀 있었다. 마치 아기를 껴안은 것처럼 나무 내부에 있는 수많은 넝쿨이 금고를 감싸고 있었다.
이 나무가 금고를 지켜줄 최강의 경비 요원이다.
“제가 아닌 다른 자가 오면 그 즉시 배제할 겁니다.” “배제라는 건 곧 죽이는 건가요?” “죽이지는 않습니다.”
티타니아는 고개를 저었다.
“죽을 때까지 괴롭힐 뿐입니다.” “와, 의외로 잔인하군요.”
페르포네는 놀랐다는 듯한 투로 말했다.
“자연을 사랑하는 엘프이니 훈계할 줄 알았는데….” “불경한 행위를 하는 자는 누구도 가만두지 않는 게 엘프족의 철칙입니다. 그것이 동족이라도 해도 예외는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엄격하게 가야 세계수 님을 지킬 수 있고, 성지를 지킬 수 있다. 엄격하지 못하면 어찌 성지를 지킬 수 있겠는가? 욕심에 눈이 먼 나머지 파멸로 향해가는 인간과의 약속이라도 이 엄격함을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 유지되지 못하면 선조 대대로 지켜온 소중한 유산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테니까.
그러니 반드시 지킬 거다. 그 누구도 페르포네라는 인간의 금고를 건들지 못하게 만들 거다.
“당신이 이 돈을 회수할 때까지 안전하게 보관하고 있겠습니다.”
티타니아는 그렇게 다짐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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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떻게 이럴 수가….”
눈앞에 나타난 광경에 티타니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이게 내 사역마라고? 이 더러운 괴물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로 티타니아는 폭군과 여비서와 함께 금고가 숨겨져 있는 거대한 나무 앞으로 끌려왔다.
금고는 나무뿌리에 박혀 있었으며, 거대한 철문을 수많은 넝쿨에 감싸여 있었다. 다른 두 섬에 있는 금고와 달리 침입자를 막기 위한 결계로 도배되어 있지 않았다. 페르포네의 생체 인식이 없어도 개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어 번거롭게 페르포네를 데려올 이유도 없었다.
없었지만, 금고의 문을 여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나무가 있으니까. 금고를 감싸는 넝쿨이 침입자를 무참히 패버리니까. 일개 나무가 아닌, 엘프족 수장이 손수 키운 사역마라서 가능한 일이다. 사역마는 주인에게 복종하는 것이 철칙이며, 주인이 어떤 명령을 내리든 철저하게 지키는 것이 사명이다.
티타니아가 나무에게 내린 명령은 하나. 금고에 접근하는 침입자를 배제하는 것. 나무는 그 명령에만 복종해야 한다.
그래야 할 터인데….
-후읍, 후읍, 후읍, 후윽!
-우끅 우끅, 우끅, 우끅!
-우으으응, 으으응, 으으으읍!
나무는, 아니 나무였던 검은색 고깃덩어리는 명령에 따르지 않고 있다.
마치 섹스하는 것처럼 백 명의 엘프를 농락하고 있다. 수많은 검은색 촉수로 엘프들의 음부를 벌겋게 부어오를 때까지 괴롭히고, 턱이 더는 닫히지 않을 때까지 입 안으로 꾸역꾸역 들어오며, 안에 있는 우유를 모조리 다 짜낼 기세로 가슴을 세게 틀어쥔다.
거대한 촉수 괴물 그 자체가 되어버린 나무의 몸통에는 99명의 엘프가 박혀 있었다. 전신이 촉수에 휘감긴 엘프들의 몸에는 희멀건 액체가 뚝뚝 흘러내렸다.
촉수 괴물의 먹이가 된 엘프들은 더욱 망가져 갔다.
-후으윽, 후으으으, 후으으으으….
-후끄으으, 흐끄으응, 후끄으으응….
-후으응, 으으응, 후으으으응….
끊임없이 강림에게 겁탈당한 탓에 본래 모습을 잃고 타락해버린 상태에서 또 타락한다. 가뜩이나 성욕에 대한 갈망으로 가득 차 있던 머리가 더욱 갈망으로 채워져 간다. 더 하고 싶다고, 더 괴롭혀 달라고, 더 자신들을 범해 달라고 더 크게 아우성친다. 더는 엘프들에게 긍지란 찾아볼 수 없었다.
오직 주인님의 자지에 먹히고 싶다는 소망만 있을 뿐이었다.
이 광경을 본 티타니아는 자신이 보고 있는 게 꿈이 아니냐는 착각이 들었다.
“대, 대체 내가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어째서 자신의 사역마가 명령하지도 않은 짓을 하는 걸까? 어째서 촉수가 되어 동족들을 겁탈하고 있는 걸까? 혼란스러워하는 티타니아에게 설명한 사람은 강림이었다.
“그야 내가 저 나무를 지배했기 때문이지.” “지배?” “그래, 이것 덕분이지.”
강림은 손바닥을 폈다. 손바닥 위로 검은색 마기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이를 본 티타니아는 ‘설마’ 하는 얼굴로 강림을 쳐다봤고, 강림은 씨익, 웃었다.
“마기로 침식해서 촉수 괴물로 만들었지. 여기 금고는 나무가 지키고 있으니 나무만 지배하면 장땡이라고 페르포네가 그러더라.” “페, 페르포네가?” “응, 덕분에 금고를 쉽게 장악할 수 있었지.”
엘프섬에 도착하기 전, 페르포네는 엘프섬에 있는 금고는 어떤 형식으로 잠겨져 있는지 알려줬다.
엘프족 수장 사역마가 금고의 수문장 역할을 맡고 있다. 그 말을 들은 강림은 사역마를 자신의 것으로 삼아 금고 문을 열기로 마음먹었다.
번거롭게 문을 열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단순히 사역마만 지배할 수 있다면 게임은 끝난 거나 다름없으니까. 실제로 나무를 거대한 촉수 덩어리로 만들자, 나무는 강림에게 복종했으며, 알아서 금고 문을 열어주려고 했다.
그런 싱거운 결말을 강림은 받아들이기 싫었다. 새로운 놀이 도구를 허망하게 끝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주 잔혹한 방법이 강림의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강림은 싱글벙글 웃으며 설명했다.
“원래는 그냥 열까 싶었는데, 그래선 재미가 없으니 자물쇠를 바꿨어.” “자, 자물쇠를 바, 바꿔?” “그래, 뭐일 것 같아?”
티타니아는 덜덜 떠는 눈동자로 촉수에 농락당하는 동포들을 쳐다보았다. 체액 범벅이 된 누구도 제정신을 유지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색욕에 빠져 실성한 듯이 웃음만 흘리는 자들만 있을 뿐.
답이 나오기까지 수초도 걸리지 않았다.
“서, 설마 너는….”
티타니아는 자신이 생각한 최악의 전개를 입에 담았고,
“그래, 그 설마가 맞아.”
그 전개가 사실임을 강림은 긍정했다.
“그리고 그 설마 대로 너는 마지막 제물이 될 운명이고.”
강림은 손가락을 튕겼다. 튕김과 동시에 촉수 무리가 티타니아를 감쌌다.
“자, 잠깐, 잠깐…기다 후으윽?”
제대로 항의하기도 전에 티타니아는 그대로 동족들이 농락당하는 촉수 더미로 끌려갔고,
“후으윽, 후으읍, 후으으윽!”
동족들과 마찬가지로 농락당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