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정복하라, 지배하라, 진짜 보스가 되어라-138화 (139/344)

Chapter 138 - 138화- 심문 당하는 엘프족 수장

“티타니아 씨, 당신이 이리도 어리석은 선택을 할 줄은 몰랐습니다.”

아트리아가 내뱉는 말에는 실망스럽다는 감정이 잔뜩 묻어 있었다. 도도한 비서 복장을 한 그녀의 시선은 분만대에 앉아 있는 백금 머리의 엘프에게 향해 있었다. 엘프를 바라보는 여비서의 붉은 눈동자에는 안타까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얌전히 주인을 받아들이면 좋았을 것을, 왜 바보 같은 짓을 한 거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사지가 구속된 티타니아를 보며 아트리아는 추궁했다.

“저희한테 맞서 싸워봤자 개죽음뿐이라는 걸 아시는 분이 왜 이런 선택을 하신 거죠?” “….” “제1 왕녀조차 우리 제국에게 고개를 조아리는 상황이에요. 영주들도 우리 제국 눈치 보느라 움직이지 않고,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죠.” “….”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게 자명한데 누구에게 지원을 받을 줄 알았나요?” “….” “뭐, 그 정도로 준비를 철저하게 할 줄은 저도 예상하지 못했지만요.”

엘프들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말에 아트리아는 별거 아닌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제국에게 대항할 수단은 엘프들에게 남아 있지 않으니까.

그들의 무력 수단이었던 전사들은 한 명도 남김없이 주인님의 병사를 낳는 씨받이로 만들었다. 설령 이들을 해방한다 해도 세포 하나, 하나에 육노예라는 각인을 새겨넣었으니 다시는 활을 잡을 생각조차 하질 않을 거다. 그 각인을 이겨내 본래 자신을 되찾아도 무리다.

활조차 제대로 들지 못하게 가슴을 커다란 수박으로 만들어놨으니까. 날렵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근육은 모조리 사라졌으니까. 사라진 자리에는 포동포동한 살덩어리만 남았으니까.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오직 주인에게 봉사하기 위한 육신만 남은 전사들이 과연 싸울 수 있을까? 지금까지 노예로 전락한 여전사 중에서 다시 일어선 자는 한 명도 없었는데?

설사 주민들을 무장시켜도 결국은 날벌레에 불과할 거다. 전사들보다 낮은 전투력을 가진 녀석들이 뭘 할 수 있겠는가? 그들이 어떤 발악을 하든 손쉽게 제압할 수 있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던 아트리아는 엘프들이 준비한 모습을 보고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어디에다 그런 무기를 숨기고 있었던 건가요? 제가 전부 몰수했을 텐데….”

섬에 당도한 아트리아는 철제 무기와 갑옷으로 무장한 반란군을 보게 되었다. 기껏해야 나무나 가죽으로 조잡하게 만든 갑옷이나 입고, 돌멩이를 깎아서 만든 무기나 사용할 거라고 봤다.

총독으로 부임한 이후 반란이란 싹을 키우지 못하게 모든 무기를 몰수했으니까. 아예 무기를 만들지 못하게 섬에 있는 모든 대장간을 폐쇄했으니까. 모든 기술자를 전부 여우섬으로 압송했으니까. 반란을 일으키는데 필수적인 요소들을 전부 배제했으니 반란군은 그저 오합지졸 원시인 부대일 거라고 아트리아는 그리 여겼다.

그랬는데, 제대로 된 무장을 하고 나올 줄은 아트리아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대포를 포함해 각종 화약 무기까지 준비하고 있을 줄은 몰랐으며,

한 번 걸리면 저승길로 가버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위력을 가진 마법 도구들까지 준비할 줄도 몰랐다. 만약 아트리아가 이를 확인하지 않고 무작정 밀어붙였다면 전멸하는 건 반란군이 아니라 진압군이었을 거다. 아트리아도 허망하게 목숨을 잃었을 테고.

“주인님이 조심하라고 당부하셨는데, 어쩌면 이런 일을 예견했을지도 모르겠네요.” “….” “하지만, 이를 어쩌나? 제가 데려온 토벌군은 데스 나이트였는데.” “으….”

조롱의 의미로 티타니아의 가슴 윗부분을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는 아트리아. 치욕스러운지 티타니아는 이빨을 으득, 갈았다.

“분하죠, 화가 나죠? 하지만 어쩌겠나요? 그 어떤 함정도 다 돌파하는 불사의 군단이 적이었는데. 그런 상대에게 패배하는 건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답니다.”

데스 나이트 군단. 데스 나이트로 개조당한 헤라와 강림이 열심히 떡을 치며 낳은 딸들로 이루어진 불사의 군단. 머리에 화살을 맞아도, 신체 일부가 절단되어도, 포탄에 맞아 산산조각이 나도, 심지어 전신이 불에 휩싸여져도 순식간에 회복한다. 아무리 사기가 하늘을 찌르는 군대라도 이러한 괴물들과 마주치게 되면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으리라.

유감스럽게도 엘프들은 절대 죽지 않는 괴물들의 모습에 겁을 먹고 스스로 와해 되고 말았다. 어떻게든 병력을 추슬러서 대응하려고 해도, 자신들이 입은 상처 따윈 개의치 않고 진군하는 불사의 군단을 저지하는 건 불가능했다.

‘젠장, 왜 하필 그런 놈들이 나타나서….’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비록 함께 싸울 전사들은 없지만, 함께 동조해주는 주민들이 있었다. 그리드로부터 섬을 되찾자고 제안했을 때 단 한 명의 반대자도 없었다. 모두 이 도박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대로 가다간 십중팔구 가축이 되는 건 시간문제이니까. 거주지에 남아 있는 동포들은 나날이 줄어들어 가는 반면, 노예로 타락하는 동포들은 나날이 늘어난다.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자들은 얼마 지나지 않다 사라지고 말 거다.

그때가 오는 순간, 엘프족은 멸망하게 될 거다. 열등하다고 여긴 인간들의 노예로 살아가게 될 거다. 그렇게 되는 것을 그 어느 엘프도 바라지 않는다.

노예가 될 바에야 차라리 엘프라는 자긍심을 지키다 싸우겠다. 어차피 죽을 거면 싸우다 죽겠다. 주민들은 그런 때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티타니아가 싸우기로 결의하자 바로 찬성표를 던졌다.

이렇게 자신의 뜻에 동조해 함께 싸울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을 무장시킬 무기들도 충분히 있었다. 섬의 지형을 잘 이용할 수 있다면 다리가 뜯어질 때까지 길게 물고 늘어뜨릴 수 있다. 그렇게 계속 물고 늘어지면서 제국을 지치게 만들면,

그 여자가 말한 결전 병기가 올지도 모른다.

[저는 그리드 그 새끼를 죽일 방도를 마련했습니다.]

여자는 그리 말했다.

[마련했지만, 아직 실전에 투입하기에는 애로 사항이 많습니다.]

[아직 실험이 부족해요.]

괴수의 힘을 손에 넣은 그리드를 쓰러뜨릴 수단은 존재한다. 하지만 아직 불안정해서 당장 써먹을 수 없다. 만약 잘못되기라도 하면 복수는커녕 파멸하게 될 거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 수많은 실험이 필요하다. 수많은 실험을 위해서 그리드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릴 필요가 있다. 그리드가 자신을 가장 위험한 녀석이라 여기며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여자는 티타니아에게 부탁했다.

[실험이 완성될 때까지 녀석의 시선을 끌어주세요.]

[적어도 한 달은 버텨줘야 합니다. 그 정도 시간이 있어야 실험을 끝낼 수 있습니다.]

[버틸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약속된 시간은 한 달. 그 한 달 내에 실험은 완성될 거다. 완성되면 즉시 결전 병기가 되어 달려가겠다. 계속 버틸 수 있도록 은밀하게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 당신들이 버티면 그리드가 무서워 덜덜 떨고 있는 다른 영주들도 들고 일어설 거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 녀석을 속여 주세요.]

그 말을 티타니아는 믿지 않았다.

자신들을 이용하기 위해 좋은 말로 포장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걸 바로 꿰뚫어 봤다. 열등한 종족이 자신들을 이용하는 것에 티타니아는 열불이 났지만,

녀석이 바라는 대로 싸워주겠다고 결의했다.

이용당하는 처지라고는 해도 그리드를 타도하고 싶다는 마음은 같으니까. 그 마음이 진심이었다면 결전 병기라는 기밀 내용을 자신에게 밝히지도 않았을 테니까. 밝혔다는 건 최소한 동지라고 여기고 있다는 증거. 만약 이쪽에서 약속을 지킨다면 저쪽에서도 약속을 지켜줄 거다.

물론 그대로 토사구팽당하는 결말을 맞이할지도 모르나, 그런 날이 오면 복수하면 그만이다. 놈이 바라는 대로 악착같이 물고 늘어지자. 티타니아는 그리 다짐했다.

그리 다짐했건만, 일주일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릴 줄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자, 잡담은 이쯤하고….”

아트리아는 손뼉을 치며 티타니아에게 다가왔다.

“티타니아 씨, 이제부터 제가 하는 질문에 대답해주세요.” “….” “대답 여하에 따라 당신의 대우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대우? 대우라고?”

그 말에 티타니아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뭘 해도 노예로 삼을 주제에 대우 같은 소리 자빠졌네.” “….” “내가 속을 것 같아?” “거짓말이 아닌데요?”

아트리아는 그리 말했다.

“옛날의 주인님이었다면 당신은 이렇게 살려두지 않았을 겁니다. 시신을 토막 내서 광장에 내걸었을 거예요.”

옛날의 그리드였다면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지 않았을 거다.

잡자마자 즉결처분을 내렸을 거다. 반란을 주도한 자도, 반란에 연루된 자도, 어쩔 수 없이 반란에 가담한 자도, 반란에 일으킨 땅도 모조리 다 불태워버렸을 거다. 오직 피와 썩은 시체들이 넘쳐나는 죽음의 땅으로 만들어버렸을 거다.

지금의 그리드는 그렇지 않다.

“지금의 주인님은 자비를 잘 베풀어주시는 분이랍니다.”

지금의 그리드는, 그리드의 몸을 차지한 지금의 강림은 살생을 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경멸한다. 불필요한 피는 최대한 흘리지 않기를 원한다. 되도록 살려서 아군으로 삼고 싶어 한다. 아군으로 삼을 수 있는 수단이 무궁무진하니 죽여서 후환을 없애자는 생각이 강림에겐 없었다.

“그러니 무서워하지 마세요. 진짜로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어요.”

그런 강림의 성향을 잘 알고 있기에 아트리아는 태연하게 그런 말을 꺼낼 수가 있었다.

“평생 귀여움을 받으며 살 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세요. 당신은 충분히 사랑을 받을 수 있답니다.”

물론 그 사랑의 형태가 겁탈이라는 것을. 겁탈을 통한 정복이라는 것을. 정복을 통해 타락시키는 게 강림의 주된 목적이라는 것이 변치 않은 사실이지만 말이다.

“녀석이 주는 사랑 따윈 필요 없어.”

티타니아는 쏘아붙였다.

“필요 없으니까, 네놈이 싹 다 가지라고!” “그럴 순 없죠.” “흐윽?”

만삭의 배를 쓰다듬으며 아트리아는 티타니아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이렇게 사랑을 받은 주제에 필요 없다고 말하다니. 너무 매몰찬 거 아닙니까?” “이, 이건 그 녀석이 멋대로 날 덮쳐서….” “덮쳤다고 해도 사랑을 받은 것은 사실이죠. 안 그래요?” “미, 미친 소리를….”

이딴 걸 사랑이라 하다니. 멋대로 자신의 순결을 빼앗고, 멋대로 임신시키는 게 뭐가 사랑이라는 거냐! 사랑이란 개념을 왜곡하는 아트리아를 향해 티타니아는 경멸에 찬 시선으로 노려봤고,

“네, 미쳤습니다.”

그런 티타니아를 향해 아트리아는,

“미쳤으니까, 이런 짓도 할 수 있는 거죠.” “뭐?”

커다란 주사기를 티타니아의 배에다 꽂아 넣었다. 밀대를 쭉 미니 정체를 알 수 없는 약물이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 직후,

“으윽? 으아아아아아악!”

고통의 해일이 티타니아를 덮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