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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하라, 지배하라, 진짜 보스가 되어라-128화 (129/344)

Chapter 128 - 128화- 여비서는 인정받았습니다

“시, 실은 실패할 줄 알았습니다.”

숨을 헐떡이며 아트리아는 그리 고백했다.

“주인님은, 아니 그리드 님은 워낙 눈치가 빠르니까요. 남이 무슨 꿍꿍이를 꾸는지 다 알아차려요. 심지어 제가 뭘 하려는 지도요.” “….” “그래서 수많은 암살자가 노려도 그리드 님은 살아남을 수 있었고, 반역이 일어나도 살아남을 수 있었어요.” “….” “뭐, 운이 엄청 좋은 것도 살아남은 비결 중 하나지만.”

그리드를 죽이고 싶어 하는 사람은 단순히 수아만 존재하지 않는다. 수아 이전에도 그리드를 죽이려고 시도한 자들이 있었다.

억울하게 그리드에 의해 가족과 연인, 친구, 고향을 잃은 자들. 그리드가 장차 자신들의 위협이 될 거라 여겨 암살자들을 고용한 귀족들. 그리드에게 내걸린 막대한 현상금을 얻기 위해 그리드를 노리는 모험가들. 단순히 그리드의 폭정에 불만이 생겨 들고 일어선 자들.

언제 어디서든 비수가 날아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그리드는 살아남았다. 자신을 향한 분노를 더 큰 분노로 무참히 짓밟아버렸다.

자신의 목을 노리고 단도를 휘두른 자는 목을 꺾어 세상과 영원히 작별하게 만들고, 자신의 목을 노리고 침입한 암살자들은 곤죽이 될 때까지 패버리고, 자신의 목을 노리고 쳐들어온 모험가들은 다시는 모험을 즐기지 못하게 토막을 내버렸으며, 자신의 목을 노리고 들고 일어선 반역자들에겐 죽어서도 다신 대든다는 마음을 품지 못하게 거열형으로 참혹하게 살해했다.

그나마 여자는 운이 좋아서 살아남는 일도 있었다.

살아남는 대신, 영원히 그리드의 아이를 낳아야 하는 씨받이로 전락할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이 모든 광경을 비서인 아트리아는 옆에서 다 지켜보았다. 그리드에게 칼을 들이댄 자는 예외 없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걸 다 지켜보았다. 다 지켜보았기에, 자신의 계획도 결국은 실패로 돌아가게 될 거라고 여겼다.

“그럼 실패하면 어찌할 생각이었어?”

강림은 물었고,

“자결할 생각이었습니다.”

아트리아는 그리 대답했다.

“당신의 폭주를 막기는커녕 그냥 방치해서 죄송합니다. 당신을 어떻게든 뜯어말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이 죄는 목숨으로 사죄하겠습니다, 고 말한 뒤에 목숨을 끊을 생각이었습니다.” “막고 싶었다며, 그럼 목숨을 걸고 행해야 할 것 아니야?” “목숨을 걸고 싶어도….”

아트리아는 씁쓸한 어조로 대답했다.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을 목숨을 건다고 무너뜨릴 수 있을까요? 그냥 압사당하지.” “….” “제가 할 수 있는 재주라곤 기껏해야 개미구멍에 들어가는 것뿐입니다.” “그렇게 말하던 네가 살아남았다는 건, 개미구멍에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는 거지?” “네.”

아트리아는 긍정했다.

“솔직히 이것도 의도된 것일지도 몰라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그리드 님이 일부러 이 상황을 유도한 것 같아요.”

상황을 일부러 유도했다고? 그 그리드가?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아트리아는 잠시 숨을 고른 뒤에 말을 이어갔다.

“일부러 수아의 독에 그리드 님은 일부러 당하셨어요.” “일부러 당했다고?” “네, 본인 입으로 그리 말했어요.”

구미호족 수아가 그리드를 암살하려 한다. 그 정보다 당연히 그리드의 귀에 들어갔으나, 그리드는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아트리아가 아무 말도 안 했음에도 딱히 추궁하지도 않았다.

결국 그리드는 수아가 주입한 맹독에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수아는 그 현장에서 체포되었고, 사건 현장에 나타난 아트리아는 모두를 물러나게 했다. 단둘이 있을 기회를 마련한 아트리아는 <영혼 소환식> 책을 사용하려 했다.

애당초 수아의 암살 미수 사건은 이를 위해서였다. 그래서 아트리아는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그리드의 행동에 이상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으나, 일단 잡은 기회를 아트리아는 놓칠 수 없었다.

이때 그리드는 이렇게 말했다.

“얼른 끝내라고.” “….” “난 멈추기 싫다. 끝까지 달릴 거다. 이 세상을 불태울 때까지 내 검에 계속 피를 묻힐 거다. 아트리아, 네가 뭐라 해도 나는 다 죽일 거다. 이 세상에 살아있는 모든 것을 다 쓸어버릴 거다. 다 쓸어버릴 때까지 나는 멈추지 않을 거다.” “….” “그러니 여기서 끝내라. 날 죽이고 새로운 주인을 맞이해라. 도살자를 처단하고 네가 바라는 미래를 찾아라.” “….” “그리드 님은 다 알고 계셨어요. 제가 반역을 일으킬 거라는 것을. 제가 뭘 하려고 하는 지도.” “즉, 그러니까….”

잠자코 이야기를 듣던 강림은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그리드 그 새끼는 너를 이용해 자살했다는 거야?” “네, 그런 것 같아요.” “….”

멈추기 싫다고 한 주제에 죽음을 받아들이다니. 아니, 어쩌면 멈추고 싶었던 게 아닐까? 멈추고 싶었지만, 끊임없이 차오르는 분노를 억누를 수가 없었고, 그 분노에 몸을 맡겨 항상 학살을 저질러왔다.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수준까지 가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결국 아트리아를 이용한 게 아닐까? 아트리아의 계획을 알고 그걸 기회로 삼은 게 아닐까? 자신의 손으로 자살하기 싫으니 남의 손으로 자살하는 길을 택한 게 아닐까?

‘망할 자식.’

그리 생각한 강림은 속으로 그리드를 욕했다.

‘그냥 스스로 멈출 것이지, 왜 남의 손에 피를 묻혀?’

스스로 멈출 기회는 분명 있었다. 영주 새끼를 죽이고, 섬을 불태운 직후에 분명 멈출 수 있었다. 악명이 퍼질지언정 이 세상의 적으로 규탄당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거다.

그 기회를 걷어찬 주제에, 걷어차고 끊임없이 살육을 저지른다는 최악의 선택지를 고른 주제에, 그만하자고 하소연하던 여비서를 죽이려고 한 주제에 남의 손을 빌려 자결을 해? 그것도 여비서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방식으로?

정말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다.

똥을 싸질러 주변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주제에 도망치면 다 되는 줄 아냐? 만약 아트리아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갔다면 그때는 어찌할 작정이었냐? 네놈이 남긴 여자들이 처참하게 죽으면 어찌 책임질 작정이었냐? 뒤늦게나마 제정신을 차리고 군주답게 움직였어야지.

그리드의 무책임한 행동에 강림은 정말 화가 났다.

그런 그리드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을 아트리아에게 강림은 동정심이 생겼다.

“이제 어찌하실 건가요?”

모든 걸 고백한 아트리아는 물었다.

“경멸하실 건가요? 주인을 배신하고 멀쩡히 살던 당신을 이곳으로 끌고 온 저를?” “….” “경멸하고도 남으시겠죠. 저는 어차피….” “아니.” “흐익?”

무슨 바보 같은 말을 하냐고 항의하는 식으로 강림은 멈췄던 허리를 다시 놀리기 시작했다. 굵은 고기 기둥이 안으로 밀고 들어오자 아트리아는 몸이 부르르 떨었다.

“내가 왜 널 경멸을 해?” “하으으윽? 아, 아닌가요?” “전혀. 오히려 본받고 싶을 정도야.”

자지를 박으면서 양손으로 여비서의 젖가슴을 움켜쥔다. 젖을 짜내듯이 밑으로 쭉 당겼다 놓기를 반복한다. 아트리아가 엎드려 있는 자리는 희멀건 우유로 흥건해졌다.

“너처럼 행동했어야 했는데, 난 하질 못했지.” “하아, 아아, 하, 하질 못했다고요?” “그래, 불의에 참지 말고 나서야 했는데, 난 바보같이 나서지 않았어.”

자신이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냐? 왜 자신이 부모님의 명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냐? 왜 자신이 성깔 더러운 년의 말에 복종해야 하냐? 생김새가 추하다는 이유로 왜 경멸을 받아야 하냐? 왜 자신은 꿈을 이루면 안 되는 건가? 왜 녀석들은 가지고 싶은 건 다 가지는 주제에 자신은 왜 가질 수 없단 말인가?

이런 불합리한 일에 강림은 칼을 뽑지 않았다. 어차피 뽑아서 무언가를 베어버리고 싶어도 자신이 불리해진다는 이유로. 역으로 녀석들의 파상공세에 망해버릴지 모른다는 이유로. 오히려 일을 저지른 대가로 더 큰 고난에 빠질지 모른다는 이유로. 자신이 무엇을 하든 간에 놈들은 콧방귀도 뀌질 않을 거라는 이유로. 갖가지 이유를 들먹이며 고개를 숙이는 길을 택했다.

만약 숙이지 않았다면. 숙이지 않고 반항했다면. 그리했다면 녀석들은 적어도 함부로 자신을 대하지 않았을 텐데.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데 그조차 하지 않고 지레 겁을 먹어버리다니. 자신과 달리 결단을 내린 아트리아가 강림은 너무나 부러웠고, 존경스러웠다.

그런 아트리아를 어찌 경멸할 수 있겠나?

“그런 나와 달리 너는 나섰지. 죽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너는 지옥을 바꾸기 위해 목숨을 걸었어.” “그, 그건 어, 어디까지나 그리드 님이 일부러….” “하지만 실행한 건 너야.”

몸을 좀 더 밀착한 상태로 더 깊숙이 삽입한다. 자궁구를 밀어내는 육중한 통나무의 기세에 아트리아는 저절로 입이 크게 벌어졌다. 벌린 입에서 교성이 터져 나왔다.

“흐오오오오옥!” “네가 실행하지 않았다면 그 어떤 것도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 “호오, 호옥, 호옥, 호오옥!” “그러니 자신감을 가져.”

땀으로 흠뻑 젖은 아트리아의 보라색 생머리의 향기를 맡으며 강림은 속삭였다.

“너는 영웅이야. 우리 모두를 파멸로 몰고 갈 뻔했던 폭군을 없앤 영웅이고, 모두를 구할 폭군을 데려온 영웅이지.” “아, 아니에요. 저는 영웅이….” “그 영웅 덕분에 내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어. 이 자리에 있었기에 운명을 비틀 힘을 얻을 수 있게 되었어.”

만약 아트리아가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면 원작대로 그리드 밑에 있었던 여자들은 참혹하게 살해당했을 거다. 그리드가 몰락한 이후 그에게 종사한 자들은 남녀요소 구분할 것 없이 악이라 규정되어 핍박받았으니까.

그리고 아트리아가 움직이지 않았다면 강림 역시 두 번째 인생을 살 기회를 얻지 못한 채 그대로 죽었을 거다.

아트리아가 시작하지 않았다면 장대한 대서사시는 일어나지도 않았을 거다.

“그러니까, 어깨를 펴. 너는 그럴 자격이 충분해.” “저, 저는….” “자랑스럽게 여기라고 아트리아.”

강림은 말했다.

“네가 인정한 주인이 그리 말했는데, 너는 계속 부정할 거야?” “….”

당혹스럽다. 너무나 당혹스럽다. 이런 식으로 대우를 받는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단순히 일을 잘 처리해도 잘했다는 말만 들었을 뿐, 자신을 영웅이라고 치켜세워진 적은 없었다.

어디까지나 참을 수 없어서 일어선 것에 불과한데. 어디까지나 그리드의 대타로 써먹기 위해 소환한 것에 불과한데. 어찌 이 자는 자신을 영웅이라 부르는 걸까?

그럴 자격이 없다고 아트리아는 여기지만,

이상하게도 입꼬리가 올라갔다.

“진짜,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이상하게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렇게 인정받은 적이 대체 얼마 만인지…그리드 님도 그런 식으로 말해주지 않았는데….”

뭔가 해냈다는 기분이 든다. 어머니의 한을 풀어낸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아니, 풀어냈다. 어머니는 전 영주에게 인정받으려고 노력했으나, 영주는 인정하지 않았고, 끝내는 죽여버렸다.

그런 어머니의 비참함을 잘 알기에 아트리아는 지금 상황이 너무나 감격스러웠다.

“흐윽?”

물론 감격스러운 것과 별개로 진통 때문에 죽을 맛이지만 말이다.

“이, 이제 얘기했으니까 나, 낳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응, 싫어.”

아트리아의 부탁을 강림은 바로 무시했다.

“한 발만 쏘고 낳게 해줄게.” “이, 이 심술쟁…하오오오, 호오오오옥!”

그렇게 한 발을 싸고 나서야 아트리아는 무사히 출산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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