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22 - 122화-강림 VS 괴물 고래 무리
침입자를 배제하라.
향유고래처럼 생긴 해양생물. 아니, 이젠 전투 병기로 전락한 트루퍼들의 주인은 그리 말했다.
언제부터 트루퍼들에게 주인이 생겼는지 알 수 없다. 자유롭게 바다를 누비며 살아가는 트루퍼들에게 있어서 주인이 있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오히려 주인이라며 나대는 자가 있다면 트루퍼들의 분노를 사서 심해 깊숙이 수장당하는 결말을 맞이할 거다.
그런 트루퍼들에게 주인이 생겼다. 주인이 생긴 것에 트루퍼들은 누구 한 명 의구심을 품지 않았다.
처음부터 존재했으니까. 처음부터 자신들에겐 주인이 있었고, 그 주인의 말에 따라 복종하는 게 의무였으니까. 그 의무에 따르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트루퍼들은 생각하지 않았다.
따라서 지금 하는 행위도 이상하지 않다.
-콰가가가강!
침입자들이 들어간 건물을 향해 일제히 마력포를 쏘는 것도.
-콰가가가강!
침입자들이 사용한 배들을 모조리 다 침몰시키는 것도.
-콰가가가강!
자신들을 쓰러뜨리겠다고 지상에 나온 침입자들을 일거에 쓸어버리는 것에도 트루퍼들은 의구심을 품지 않았다.
주인이 그리 명령했으니까. 그 명령에 따르라고 했으니까. 그래서 하는 건데, 뭐가 잘못되었다고 볼 수 있나? 복종하는 것만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니까.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트루퍼들은 개조당했다. 뒤틀린 욕망으로 가득 찬 영주에 의해 자신들이 누구인지조차 잊어버린 향유고래들은 노예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 영주는 죽은 지 오래지만, 영주가 남긴 명령은 유효했다. 유효하기에 그들은 복종할 수밖에 없다. 망령의 명령에 구속된 이들을 구원할 방도는 없다.
오직 안식을 주는 것 말곤 답이 없다.
-우오오오오옥!
갑자기 섬 중앙에서 괴수의 포효가 들려온다. 트루퍼들은 사격을 멈추고 소리가 들린 장소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괴물이 있었다. 흉흉한 검은 기운을 피어오르는 검은색 괴물이 서 있었다. 괴물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고, 분노에 가득 찬 검은 눈동자는 트루퍼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해 있었다.
당연히 그러한 시선에 공포에 떠는 트루퍼들은 한 마리도 없었다.
[이 망할 것들이….]
자신들을 향해 화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겁에 질릴 트루퍼들이 아니었다.
[감히 우리를 공격해? 오늘 네놈들 제삿날이다!]
괴물이 자신들을 향해 달려와도 트루퍼들은 겁에 질리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쳐들고, 머리를 검은 괴물을 향해 정조준하고, 머리를 중심으로 마력을 집중하고,
-콰아아아앙!
포를 쏠 뿐이다.
검은색 괴물을 향해 트루퍼들은 일제히 마력포를 발사했다.
●●●
'이, 이 망할 새끼들….'
몸에 묻은 흙더미를 털어내며 강림은 몸을 일으켰다.
'고래 주제에 무슨 마법을 써? 이 무슨 살인 고래도 아니고.'
마력포 세례를 정통으로 얻어맞은 강림은 뒤로 크게 밀려났다. 꼴사납게 몇 바퀴 구르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반대편 해안가까지 밀려나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몸은 아니었다.
'녹아내렸잖아?'
트루퍼들이 쏜 마력포 세례를 맞은 신체 부위가 녹아내렸다.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으나, 지금까지 무적을 자랑하던 괴물의 몸에 흠집이 생겼다는 사실에 강림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이대로 계속 마력포에 얻어맞는다면 뼈도 못 추릴 거다.
'썩을 영주 새끼. 얌전히 죽을 것을. 왜 거지 같은 명령을 남긴 거야?'
누군가가 자신이 저지른 행위를 보고 규탄할까 봐 그랬나? 역사에서 용서받을 수 없는 쓰레기로 기록될까 봐 그랬나? 그래서 자신이 죽어도 이 섬을 지키라고 명령을 내렸나? 어차피 다 밝혀질 주제에 무슨 그딴 명령을 내렸단 말인가? 영주 새끼가 남긴 마지막 명령 때문에 강림은 물론이요, 섬에 온 모든 사람이 죽을 위기에 처했다.
이런 사태를 일으킨 영주를 강림은 용서할 수가 없었다.
'돌아가면 가만히 두나 봐라.'
괴수를 만드는 데 페르포네의 재산을 다 탕진한 죄. 사후 괴수들을 이용해 자신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죄. 그 죄를 엄히 물을 것이다. 절대로 편히 죽게 놔두지 않을 거다.
강림은 그리 다짐했다.
'이런, 온다!'
그전에 살아남은 게 우선이지만. 강림은 전방을 향해 크게 포효했다.
-우오오오오옥!
어마어마한 진동파가 터져 나온다. 발사된 진동파는 강림을 향해 날아오는 수많은 마력포와 충돌했다. 주변 일대가 날아갈 정도로 어마어마한 파장이 일어났다. 서로를 밀어내기 위해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힘겨루기.
잠시 뒤, 마력포들의 방향이 위로 꺾였다.
'지금이다!'
강림은 바로 트루퍼들이 있는 바다를 향해 있는 힘껏 도약했다.
'어떻게든 나 혼자서 저놈들을 쓰러뜨려야만 해!'
건물이 붕괴하면서 다수의 사상자가 나왔다. 아트리아와 카르디안은 무사했지만, 많이 다친 상태다. 서둘러 치료를 해야 하나, 고래 놈들이 있는 이상 지원을 부르는 건 불가능하다. 설령 온다 해도 고래들의 놀잇감으로 전락할 거다.
그러니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괴수에게는 괴수로 맞상대해야 한다. 해안가에 도착한 강림은 다시 한번 더 도약했다.
도약해서 회색 향유고래들이 모여 있는 바다 가운데로 수직 낙하. 그 자리에 있던 향유고래 몸이 두 동강이 났다. 시뻘건 피가 수면 위로 퍼져나갔다.
강림은 전투를 속행했다.
-우오오오옥!
왼쪽에 서성거리는 고래를 향해 달려든다. 당황한 고래가 꼬리로 자신을 치자, 강림은 그 꼬리를 붙잡았다. 풍차를 돌리듯이 강림은 있는 힘껏 고래를 집어 던졌다. 서너 마리의 트루퍼가 있는 곳으로 집어 던진 강림은 바로 입을 벌리고, 하울링을 날렸다.
트루퍼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수많은 살점으로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
뒤에서 살기가 느껴진다. 강림은 즉시 옆으로 몸을 비틀었고, 그와 동시에 마력포가 강림이 있던 자리를 꿰뚫었다. 강림이 고개를 뒤로 돌리니 수십 마리 이상의 트루퍼들이 강림을 향해 머리를 조준하고 있었다. 머리 위에는 마력포를 발사하기 위한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저놈들을 죽이는 게 아깝지만….'
함대와 함께 운영했다면 여러모로 좋은 조합이 되었을 텐데. 그런 놈들을 이 자리에서 죽여야 하는 게 강림은 내심 아쉬웠다. 저 녀석들이라도 있다면 아르웬과의 싸움에서 아주 큰 도움이 되었을 거다.
물론 어디까지나 아쉬운 건 아쉬울 뿐. 없애야 할 골칫덩어리임은 변함없다. 자신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망령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놈들이라면 철저하게 배제하는 것이 답이다. 연구해서 망령의 목소리에서 벗어나게 할 방도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그런 걸 할 여유는 없었다.
그러니 마음 굳게 먹고 처리하자. 그렇게 되뇌며 강림은 트루퍼들을 향해 돌진했다. 돌진하면서 등에 달린 아홉 개의 검은 촉수를 전개했다.
날카로운 창이 된 검은 촉수들은 눈으로 좇을 수 없는 속도로 향유고래들의 머리를, 가슴을, 꼬리를 관통했다. 관통당한 트루퍼들은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잠시 뒤, 트루퍼들의 몸이 풍선처럼 크게 부풀어 오르더니,
펑, 하고 터졌다. 수많은 살점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지고, 그들이 있었던 자리에는 오직 날카로운 가시들밖에 없었다.
수많은 날카로운 잔가지로 이루어진 커다란 가시들만 그 자리에 있었다.
'좋아, 이대로 계속 가자!'
마력포에 얻어맞았을 때는 살짝 겁이 났으나, 접근전으로 나서니 녀석들도 별거 아니다. 원거리 공격이 특기인 녀석들은 근접에선 약하다는 공식이 종종 있는데, 여기서는 통하나 보다.
물론 그렇다고 안심할 때는 아니었다. 강림은 전방을 주시했다.
수백 마리의 회색 향유고래들이 보인다.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눈동자로 이쪽을 주시하고 있으며, 한 마리도 빠짐없이 머리 위에 마법진이 형성되어 있었다.
강림은 바로 돌진했다. 물보라를 일으키며 놈들이 있는 위치보다 더 위쪽으로 헤엄친다. 트루퍼들이 고개를 돌려야 한다고 인식하기 전에 강림은 녀석들의 후미에 나타났다.
'이걸 끝이다!'
하울링으로 산산조각을 내주지. 강림은 입을 벌렸다. 괴수의 입에서 다시 한번 진동파가 나오기 직전,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뭐?]
왜 하필 지금 멈추는 거지? 너무 격하게 움직여서 그런가? 그래서 행동할 수 있는 시간이 크게 단축되었나? 하지만 아직 여유는 있을 텐데….
강림이 멈춘 이유는 간단했다.
여자가 없어서다. 동력원에 사용할 여자가 없기에 갑자기 기능이 정지된 거다.
동력원에 여자를 집어넣고, 그 여자들을 능욕하며 성욕을 배출한다. 성욕을 배출하지 않으면 강림은 움직이지 못한다. 여자 없이 움직여도 최대 10분까지만 행동할 수 있다.
그래도 제한 시간이 다 될 때까지는 아직 멀었기에 충분히 녀석들을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 강림은 그리 여겼다. 그리 여겼는데 여기서 갑자기 멈추게 될 줄은 강림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한 명이라도 먹었어야 했나?'
항상 전장에서는 포로들을 잡았으며, 그 포로 중에는 여자들이 있었다. 붙잡은 민간인 중에서도 여자들이 있었다. 연료로 써먹을 여자들이 항상 있었기에 강림은 굳이 동력원에 쓸 여자들을 챙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어디까지나 별장이란 이름의 섬을 탐사하는 게 주된 목적이었을 뿐, 싸우러 가는 게 아니었으니까. 굳이 챙길 필요는 없다고 여겼다.
설령 생긴다 해도 자신의 선에서 끝낼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그렇게 오만하게 군 결과, 강림은 갈가리 찢겨나갈 처지에 놓였다.
'다들 심하게 다쳐서 그냥 놔뒀는데….'
그냥 삼킬 걸 그랬나? 어차피 동력실에 들어가면 다들 멀쩡한 상태로 나오니 삼켜도 문제없었을 거다. 부상이 심하다면 그런 식으로 치료하면 될 터. 다짜고짜 적부터 때려 부수는 게 우선이라 여기고 무턱대고 달려든 자신의 어리석음에 강림은 크게 후회했다.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이미 트루퍼들은 방향을 바꾼 지 오래이며, 마력포 충전까지 다 완료된 상태였으니까.
[이, 이런….]
아차 하는 순간, 강림의 시야는 새하얀 빛으로 뒤덮였다. 그리고,
-콰아아아앙!
커다란 물기둥이 수면 위로 솟구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