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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하라, 지배하라, 진짜 보스가 되어라-121화 (122/344)

Chapter 121 - 121화- 그 섬에서 발견한 것은

“결계가 쳐져 있네.”

목적지에 도달한 강림은 전방을 주시했다.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마력의 흐름이 보인다. 너무 얽혀있어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보이질 않는다. 어쩌면 페르포네가 금고에 씌웠던 것 이상으로 강한 결계일지도 모른다.

그런 결계가 망망대해 위에 펼쳐져 있다는 건, 안에 뭔가 있다는 뜻이다. 아트리아가 말한 별장이 이 결계 너머에 있는 게 분명하다. 강림의 의구심은 바로 확신으로 바뀌었다.

“대체 별장에 뭘 놔뒀기에 결계까지 친 거야?”

지금 강림이 있는 곳은 전 영주 새끼의 별장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다. 바다 말고는 그 어느 것도 보이질 않는 장소로 강림은 함대를 끌고 왔다.

기함 한 척. 호위함 다섯 척. 총 여섯 척을 조사하는 데 쓰게 해달라고 강림은 이리스에게 부탁했다. 이리스는 흔쾌히 받아들였으며,

“결계가 보이십니까?”

함대를 지휘해 주인인 강림을 도우라는 의미로 제독 카르디안을 파견했다.

“제 눈에는 안 보입니다만.”

강철 군단을 새로 재편하면서 카르디안은 함장에서 제독으로 파격 승진되었다. 남색 머리의 제독은 눈살을 찌푸리며 전방을 주시했다.

“안 보일 수밖에 없지. 마법사가 아니면 알아보기 힘들 거야.” “그렇군요.” “자, 이제 저 결계를 어찌 돌파하냐가 문제인데….”

목적지는 찾아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안으로 들어갈 건가? 페르포네의 금고처럼 자물쇠에 열쇠를 넣어 결계를 해제하면 그만이나, 이 망망대해에서 자물쇠를 찾아낼 수 있을까? 설령 운 좋게 찾아낸다 해도 자물쇠에 꽂을 열쇠는 어떻게 구할 건가? 금고는 테미네르가 전부 얘기해줬기에 쉽사리 열 수 있었지만, 이번의 경우는 다르다. 있다는 정보만 있을 뿐, 어떻게 열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없었다.

‘헤라라도 데려올 걸 그랬나?’

언젠가 여기로 가족들을 데려올 생각이었다면, 분명 영주 새끼가 결계에 무슨 조치를 했을 거다. 사실인지 거짓인지 알아내기 위해서라도 헤라, 유노, 무트 이 세 명 중 한 명이라도 데려왔어야 했다.

유감스럽게도 전원 그리드 섬에 놔뒀다.

‘무슨 일이 터질지 몰라서 섬에 놔두기로 결정을 내리긴 했는데….’

괜히 데려갔다가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는 이유로 수아와 테미네르, 그리고 페르포네에게 세 사람의 신변을 맡겼다.

그랬는데, 그냥 한 명이라도 데려올 걸 그랬나? 그랬으면 결계를 열 방도를 찾았을지도 모르는데. 강림은 약간 후회되었다.

‘이 몸으로는 안 되나?’

문득, 강림은 그런 의문이 들었다.

‘그리드도 여기에 들어갈 권리는 있지 않을까?’

차별받았다고는 해도 그리드는 엄연히 그 영주 새끼의 아들이다. 그러면 아들에게도 별장에 들어갈 권한을 주지 않았을까? 혹시나 하는 생각에 강림은 배를 좀 더 가까이 붙이라고 지시를 내렸고,

-콰아앙!

보이지 않는 벽에 배 앞부분이 찌그러지고 말았다.

“시팔, 역시 안 되는 건가?”

혈육이 있다면 자동으로 열리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나 보다. 아니, 어쩌면 사생아 따위가 열지 못하도록 조치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 새끼는 분명 그러고도 남을 놈이니까.

그렇다면, 세 모녀 중 한 명이라도 데려왔다면 열렸을까? 아니면 배만 더 파손되는 꼴만 될까? 그 답을 이 자리에서 내리는 건 불가능했다.

“저기, 아트리아. 너 뭐 알겠냐?”

강림은 옆에 서 있는 보라색 머리의 여비서에게 물었다.

“들어갈 방도가 뭔지 좀 알 것 같아?” “아뇨, 모르겠는데요?”

아트리아가 대답하는 데 1초 걸리지 않았다.

“바다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데 저라도 별수 있겠습니까?” “그러냐? 그러면, 어찌하면 좋을까….”

써먹을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어찌하면 좋을까? 강림은 뒷머리를 짜증 난다는 듯이 팍팍 긁어댔다.

‘물안개가 점점 심해져서 이곳에 머무를 수도 없는데….’

목적지에 도착한 이후 갑자기 물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기온 차가 갑자기 심해진 것도 아닌데 난데없이 일어났다. 단순히 날씨가 변덕을 부린 게 아니냐고 치부하고 싶지만,

그렇게 치부하기에는 이상하리만큼 소름이 돋았다.

‘누가 여길 보고 있나?’

이유는 모르겠으나, 이상하게도 시선이 느껴진다. 기회가 생기면 당장이라도 먹겠다는 포식자의 시선이 사방팔방에서 느껴진다. 그 시선들에 강림은 저절로 오한이 들었다.

이는 강림만 그러는 게 아니었다.

“으음…누가 보고 있나?”

카르디안도 뭔가 싸늘한 시선이 느껴지는지 얼굴에 불안감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

아트리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마에서 식은땀이 계속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서 끝내고 돌아가야겠어.’

계속 여기에 머물고 있다간 뭔 일이 터질 것 같다. 서둘러 일을 매듭짓고 그리드 섬으로 돌아가자.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라면 먼저 결계부터 돌파해야 한다. 돌파할 수단이 강림에겐 있는가?

딱 하나 있었다.

“하아, 뒤로 물러나.”

강림은 아트리아와 카르디안에게 지시를 내렸다.

“내가 결계 부숴버릴 테니까.”

열 방도가 없다면 정공법을 쓰자. 그냥 부숴버리자. 어차피 이곳은 지하가 아니니 마음껏 힘을 써도 문제없을 거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강림은 오른손을 들었다.

오른손을 중심으로 검은색 마기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모여든 마기는 점점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커다란 손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부분 괴수화. 정복 전쟁을 통해 강림이 수시로 괴수로 변하면서 터득하게 된 기술이다.

괴수의 힘이 필요하나, 완전히 괴수가 되기에는 곤란한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강림은 이 기술을 개발했다.

비록 금고 건은 페르포네를 망가뜨리는 게 최우선이었기에 쓰질 않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딱히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힘으로 찍어누르는 게 답이다.

“호이야아아아!”

정면을 향해 강림은 있는 힘껏 오른손을 휘둘렀다. 불길하기 짝이 없는 기운을 가진 검은색 칼날이 정면을 향해 날아갔고,

-쩌저적.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금이 생기기 시작했다. 조그맣던 금은 서서히 커지더니, 점차 이 일대를 뒤덮을 정도로 확장되었다.

그렇게 확장되던 금은,

-콰르르르응!

건물이 붕괴하는 소리를 내며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무너져 내림과 동시에 어느 섬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도상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섬. 그 섬을 찾았다는 사실에 강림은 입꼬리가 올라갔다.

“됐네.”

괴수화된 오른팔을 원래 모습으로 되돌리며 강림은 그리 중얼거렸다. 행여 공격해도 역으로 튕겨 나가지 않을까 강림은 걱정했으나, 기우에 불과했다.

“카르디안, 명령을 내려. 전원 저 섬에 상륙한다.” “알겠습니다.”

강림의 지시에 따라 카르디안은 즉시 함대를 움직였다.

●●●

결론부터 말하자면, 별장은 없었다.

“역시 그딴 걸 놔둘 녀석이 아니지.”

별장으로 추정되는 오두막집도, 저택도 보이질 않았다. 우거진 숲속에 숨겨져 있는 커다란 직사각형의 건물만 보일 뿐. 건물 내부로 들어간 강림은 내용물을 확인하고는 그럼 그렇지, 라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망할 새끼가 별장을 지었을 리가 없지.”

멀쩡한 금고를 실험실로 개조한 놈이다. 그런 놈이 자기 소유의 섬에다 리조트 같은 걸 지었을까? 실험을 위한 시설만 짓겠지. 그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지금 강림 일행이 들어선 장소가 다름 아닌 실험실이었으니까.

“카르디안, 부하들 풀어서 이 건물 샅샅이 수색하라고 지시해.” “알겠습니다.” “돈 보관한 곳이 나오면 즉시 보고하고.” “네.”

강림의 지시에 따라 강철 군단은 건물 내부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여기서는 뭘 연구했던 거지?”

금고에선 인간을 대상으로 한 생체 실험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는 달랐다. 여기서 있는 거라곤,

정체를 알 수 없는 짐승들의 유해만 가득 남아 있었다.

“사람을 이용한 것 같진 않아 보이는데….”

일단 겉만 보면 그렇다. 사람을 이용했다기보다는 짐승들을 이용해 생체 실험을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수많은 유리통 속에 남겨져 있는 유해들은 물론이요, 수술대 위에 올린 채로 방치된 시신들도, 문 앞에 가득 쌓여 있는 시신들도 전부 인간이 아닌 짐승들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여기서는 동물 실험을 자행했던 걸까? 대체 어떤 걸 이루기 위해서 셀 수 없이 많은 동물을 희생시킨 걸까?

“주인님, 이것 좀 보십시오.”

그 이유가 뭔지 고민하던 중에 아트리아가 어느 공책을 가져왔다. 실험 일지로 보이는 책이었다.

“전 영주가 남긴 기록물인 것 같습니다.” “이리 줘봐.”

강림은 바로 읽기 시작했다.

[실험은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수많은 맹수를 융합해 최강의 괴수를 만들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짐승은 얼마든지 보충할 수 있으나, 이렇게 실패만 반복하면 실험에 의미가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독사>에게 빼앗은 돈은 충분히 있으니 더 많이 사들이자.]

“오호….”

썩을 새끼가. 감히 돈을 썼다고? 녀석을 가만히 놔둬서는 안 될 이유가 생기고 말았구나. 잔돈마저 없다면 끔찍한 꼴로 만들어주마. 강림의 전신에서 분노의 오로라가 피어올랐다.

강림은 일지를 계속 읽었다.

[방향을 바꿔야겠다.]

[융합으로 새로운 괴수를 탄생시킬 수 없다면 한 종을 괴수로 진화시키자.]

[트루퍼란 녀석들을 괴수로 만들자.]

[녀석들이라면 분명 훌륭한 전략 병기가 되어줄 거다.]

“잠깐, 트루퍼라고?”

트루퍼라는 말에 강림은 깜짝 놀랐다.

“그 괴수를 만든 게 이놈이었다고?”

<트루퍼>. 남부 바다 일대에 서식하는 고래. 향유고래를 연상케 하는 이 고래들은 매우 사납기로 유명하다. 대체 어떤 경위를 통해 몬스터가 되었으며, 왜 이렇게 사나운 성질을 가지게 되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원작 게임에서도 적으로 나오지만, 왜 이렇게 만나는 사람마다 적대감을 품는지 그 이유가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

‘이 녀석들을 동력원을 쓸 생각이었는데….’

그리고 강림은 이 녀석들을 함선 제작소를 돌릴 새로운 동력원으로 삼을 생각이었다. 그래서 혹사당하는 두 여자를 빼낼 생각이었다.

그럴 생각이었는데, 그 트루퍼가 영주 새끼의 작품이었다고? 강림은 계속 읽었다.

[트루퍼란 녀석들은 온순해서 실험을 쓰는 데 아주 적합하다.]

[잡을 수 있는 녀석들은 다 잡았으니 실험하는 데 지장은 없을 거다.]

[놈들이 가진 마력석을 이용한다면 굳이 함대를 만들지 않아도 될 거다.]

[내가 아주 유용하게 써주마, 짐승들아.]

본인이 트루퍼를 개조한 장본인이라고 영주 새끼는 당당하게 밝혔다.

[트루퍼 개조는 성공했다.]

[놈들이 일제히 마력포를 쏘는 모습이 실로 장관이다.]

[그 어떤 함대도 녀석들의 공격에 견디지 못할 거다.]

[이제 남은 것은 썩을 새끼의 괴수화가 완성되는 것뿐. 괴수화가 완성되면 본격적으로 남부 정벌에 돌입할 거다.]

트루퍼 개조는 성공했고, 이제 그리드의 실험만 끝나면 모든 게 완벽하다고 영주 새끼는 떠벌렸다.

[행여 침입자가 나타날지 몰라 트루퍼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나 이외에 다른 놈들이 이곳에 온다면 당장 이곳으로 집합하라고. 인정사정 봐주지 말고 공격하라고.]

[아무것도 몰라도 다 죽이라고. 씹어 먹으라고.]

[나한테 문제가 생겨도 이 명령이 사라지는 일은 없을 거다.]

“…잠깐만.”

마지막 문장까지 다 읽은 강림은 순간, 불안감이 엄습했다.

‘침입자를 배제하라고?’

트루퍼는 특정 장소에만 항상 헤엄치는 고래들이 아니다. 남부 일대를 유유히 배회하는 놈들이다.

하지만, 이 일지에 나온 대로 영주 새끼가 트루퍼를 전투 병기로 개조했다면. 개조되었기에 명령을 따를 수 있게 되었다면. 명령에 따라 이곳에 침입한 강림 일행을 격퇴하기 위해 몰려오고 있는 거라면. 일지에 나온 대로 여전히 명령이 유효하다면. 이상하리만큼 불안감이 엄습한 이유가 놈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자신들은 독 안에 든 쥐 꼴이 아닌가? 강림이 그렇게 생각한 그 순간,

-쿠과가가가강!

어디선가 날아온 마력포 세례에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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