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16 - 116화- 새어머니를 감옥에서 꺼내는 강림
불결한 아이. 처음 남편인 영주가 데려온 사생아를 본 헤라는 그리 생각했다.
어째서 남편은 잊어버려도 상관없는 저딴 쓰레기를 왜 데려온 걸까? 두 딸만 있어도 행복하다고 한 양반이 왜 갑자기 저 쓰레기를 데려와 가문의 후계자로 내세우기로 작정한 걸까? 그냥 장녀인 유노를 내세우면 될 것을, 유노가 불안하다면 말이 좀 거칠어도 행동은 거칠 게 없는 둘째 무트를 내세우면 될 텐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
이에 영주는 이리 말했다.
'친족들이 인정하지 않을 거야.'
남자가 아닌, 여자를 후계자로 내세우는 걸 친족들이 크게 반대할 거다. 반대하는 걸 넘어 반란을 일으킬 거다. 그게 남편의 주장이었다.
'부인, 당신은 외지인 출신이라 잘 모르겠지만, 역대 영주는 무조건 남자가 되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어요. 선조 대대로 이어져 온 그 규칙을 내 선에서 깨뜨리기에는 적이 너무 많아요.'
요즘은 여자도 당주가 되고, 군주가 되는 시대임에도 이 섬은 정반대였다. 여자가 높은 자리에 있으면 세상이 망한다는 헛소문을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이 태반일 정도로 꽉 막힌 사고관으로 무장되어 있다. 영주는 그나마 그런 사고관에서 자유로운 편이었으나, 그의 친척들은 전혀 아니었다.
오죽하면 딸만 낳은 아내를 버리고 새 부인을 맞이하라는, 다소 정신 나간 발언을 서슴없이 할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그것을 데려왔죠.'
그런 놈들을 얌전하게 만들기 위해서 영주는 자신의 사생아를 데려왔다. 별생각 없이 다른 여자와 몸을 섞어 낳은 사생아, 그리드를 데리고 왔다. 강제로 친모와 떨어뜨리고, 그리드의 동의 없이, 부인과 딸들의 동의 없이 멋대로 자신의 뒤를 이을 아들이라고 소개했다.
그 사실이 헤라는 너무나 불쾌했다.
'그냥 친족 중 한 분에게 부탁해서 아이 하나 입양해달라고 부탁할 수 없었던 건가요? 필요하다면 저희 가문에서도 아이 하나를 데려올 수도 있었어요.'
헤라는 노골적으로 그리드를 쫓아내기를 원했고,
'왜 그렇게 싫어하는 거요? 고작 열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당신에게 해라도 끼칠 것 같소?'
왜 그렇게 그리드를 싫어하는지 남편은 물었다.
'그냥, 불결해요.'
헤라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냥 불결해요. 보는 순간 몸이 더럽혀지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이대로 놔두면 우리 모두를 잡아먹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불결하다. 너무 불결하다. 불결해서 당장 쳐내고 싶다. 쳐내지 않으면 정말 큰일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겉만 아이처럼 보일 뿐, 속은 무시무시한 악마가 도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냥 없애는 게 우리 모두를 위한 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헤라는 본능적으로 그리드를 혐오했고, 당장이라고 죽이고 싶었다.
이는 헤라뿐만 아니었다.
'아버지, 이 녀석 그냥 버리면 안 됩니까? 그냥 어미 곁으로 보내요. 왜 이딴 녀석을 후계자로 세웠다간 우리 망해요.'
장녀 유노도 그리드가 불결하다며, 장차 자신들을 몰락시킬 거라며 그를 싫어했고,
'지금 손을 쓰지 않으면 녀석이 뭘 할지 몰라요. 그냥 죽여요.'
둘째 무트는 아예 그리드를 죽여야만 한다고 강도 높게 주장했다.
세 모녀 모두 그리드를 추방하거나, 아니면 없애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외쳤다. 그리드 말고 다른 방도를 찾자고 얘기했다.
'허허, 조금만 기다리세요.'
그런 아내와 딸들의 말을 영주는 웃어넘겼다.
'우리의 꿈을 위한 사냥개가 되어줄지도 모르는데, 벌써 버리자니.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소?'
간단한 실험을 한 결과, 그리드는 괴수화 하는데 아주 적합한 인간이라는 게 밝혀졌다. 만약 괴수화에 성공한다면, 괴수가 된 녀석을 통제할 수 있다면 방해되는 친족들을 없애버릴 수 있다. 남부 군도 전체를 손에 넣는다는 목적도 달성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쓸모가 다하면 버리고, 두 딸 중 한 명을 후계자로 내세운다. 그것이 영주의 계획이었다. 그 계획을 위해서라도 그리드는 꼭 필요했다.
'내 책임지고 녀석을 길들일 거니, 안심하시오.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영주는 사랑하는 아내와 딸들의 충고를 무시했다. 무시하고 그리드를 괴물로 만드는 일에 몰두했다. 남편의 고집불통에 헤라는 한숨을 내쉬었지만,
‘알았어요. 당신이 뜻이 그렇다면, 저도 따라야죠.’
아들을 못 낳는다는 이유로 여러모로 불편한 시선을 견뎌야 하는 헤라에게 있어선 영주의 계획이 나름 솔깃했다. 계획대로 된다면 자신을 몰아내려 하는 자들을 모조리 다 정리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유노와 무트, 둘 중 한 명을 후계자로 내세울 수 있을 거다. 그렇게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거다.
이러한 이유로 헤라는 군말 없이 남편의 계획에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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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현재.
"하우읍, 하우읍, 헤우읍…."
헤라는 감옥에 갇혀 있었다.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는 끔찍한 환경에 헤라는 홀로 남겨져 있었다. 순수함을 상징하던 흰색 머리는 그 윤기를 잃어버렸고, 영주의 아내임을 증명하던 화려한 드레스는 걸레짝이 된 지 오래였다.
"하우읍, 하우읍, 하우으읍…."
이곳은 교도소다. 섬에서 범죄를 저지른 자들을 잡아 가두기 위해서 만든 요새. 그리드가 섬 전체를 불태웠음에도 이 교도소는 멀쩡하게 살아남았다.
이 멀쩡한 교도소에다 그리드는 섬의 생존자들을 처박아놨다. 처박아놓고, 필요할 때마다 꺼냈다. 실험체로 써먹기 위해, 자신의 분풀이 상대로 써먹기 위해. 언제 끌려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항상 공포와 불안이 교도소 전체를 메웠으며, 모두 다 나간 이후에도 그 잔재는 남아있었다.
아비규환의 현장에 홀로 남겨진 헤라는 밥을 먹고 있었다.
"하우읍, 하우읍, 하우읍…."
정액과 개 사료가 담긴 개 밥그릇에 머리를 박은 채 열심히 혀를 굴리고 있었다. 양손을 쓰고 싶으나, 등 뒤로 두 팔이 꺾여 있고, 그 상태로 묶여 있는 터라 사용할 수가 없었다. 두 다리 역시 양 발목이 묶여 있기에 꼼짝할 수가 없었다.
사지가 결박된 상태에서 헤라는 더럽기 짝이 없는 오물을 매일 먹으며 목숨을 연명했다.
"우으윽?"
종종 너무 역겨운 나머지 토사물이 턱밑까지 솟아올랐으나,
"꿀꺽…하아, 하아, 하아…."
어떻게든 삼켜 바닥이 토사물 범벅이 되는 참사를 막아냈다.
"하아, 하아, 하아…제, 제기랄."
바닥까지 싹싹 비우고 나서야 헤라는 고개를 들었다. 코끝에서 풍겨오는 정액의 비린내에 헤라는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내가 언제까지 이런 짓을…." "언제까지라뇨, 죽을 때까지 해야죠."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헤라는 매섭게 노려봤다.
"그, 그리드, 네 이놈…." "진작에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 있어서 놀랍네요."
남편을 닮아 머리카락도 눈동자도 전부 흑색인 남자, 그리드가 철창 앞에 서 있었다. 만약 사지가 결박된 상태가 아니었다면 헤라는 당장이라고 그리드에게 달려들었을 거다. 달려들어 녀석의 목을 물어뜯었을 거다.
자신이 누려온 모든 것을 다 빼앗은 녀석이 눈앞에 있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죽는다고 해도 어떻게든 죽이고 싶었다.
"그나저나 이곳은 냄새가 심하네. 청소 같은 건 안 하나?"
그런 헤라의 모습을 본 강림은 두 손가락으로 코를 막으며 불쾌해하는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원래 이곳은 관리를 안 하는 게 원칙이거든요."
그 말에 보라색 머리의 여비서, 아트리아도 손으로 코를 막으며 대답했다.
"죄인에게 희망을 주지 말아라. 끊임없이 절망을 안겨 주어라. 평생 후회하다 죽게 해라. 그것에 전대 영주의 가르침이었습니다." "그 가르침대로 멀쩡한 교도소를 쓰레기장으로 만들었다는 거야?" "네." "무자비하네."
그리드가 이럴 줄 알았는데, 실은 영주가 지시한 일이었다니. 역시 부전자전인가라는 생각에 강림은 혀를 내둘렀다.
“나라면 최소한 청소라도 했을 텐데.” "그럼 지금부터라도 할까요?" "아니, 놔둬."
아트리아의 제안에 강림은 거부했다.
"허물고 새로 지을 거야. 청소하기에는 너무 늦었어." "그럼 어떤 걸 지으실 건가요?" "그야 내 노예들이 사는 집이지."
강림은 자랑스럽게 떠벌렸다.
"최고급 자재로 지은 집을 지어서 살게 할 거야. 인구수가 늘어나면 거주지도 늘어야 하는 법이니까."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강림은 헤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위대하신 어머니를 꺼내줘야지."
그렇게 말하며 강림은 열쇠를 꺼냈다. 감옥 문에 달린 자물쇠에 열쇠를 끼워 넣은 뒤, 왼쪽으로 돌렸다. 철컹,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자, 어서 나오시죠, 어머니. 언제까지 이런 누추한 곳에 계실 수는 없잖습니까?" "뭐 할 작정이지?"
친절하게 구는 강림을 헤라는 불신하는 얼굴로 노려봤다.
"네가 날 꺼내줄 이유 따윈 없을 텐데? 혹시 이제 날 죽일 생각이냐? 유노와 무트도 죽인 것처럼?"
어젯밤, 병사들이 나타나 유노와 무트를 데리고 갔다.
'어, 어머니, 먼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죽음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직감한 유노는 마지막 작별 인사를 건넸고,
'싫어, 싫어. 죽기 싫어! 살려줘요, 살려줘요, 어머니!'
무트는 자존심도 나발이고 다 벗은 채 살려달라고 절규했다. 당연히 이를 들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소중한 두 딸이 끌려가는 걸 헤라는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제 자신도 두 딸의 뒤를 따라가게 될 처지였다.
"죽일 테면 죽여라. 네가 날 욕 보인다 해도 나는 결코 너 같은 쓰레기에게 굴복하지 않을 테니까!" "죽이다니,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오히려 강림은 되물었다.
"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소리를 하는 겁니까? 제가 여기에 가둔 사람들을 다 죽인 줄 알아요?" "뻔뻔한 녀석이, 네놈이 뭘 저질렀는지 알고도 그러는 거냐?"
헤라는 그리드가 저지른 죄가 뭔지 낱낱이 밝혔다.
"끌려간 사람들을 죽이고, 그 사람들의 목을 천장에 매달았다. 나갈 때마다 그 수가 늘어났지." “….” “그들의 시신을 먹으라고까지 강요했어. 먹지 않으면 죽인다고 했고.” “….” "그리 한 주제에 뭐, 죽일 생각이 없어? 같잖은 소리 하지 마라!"
사실이었다. 그리드는 교도소에서 나온 자중 예외 없이 다 죽였고, 예외 없이 참수해 그 목을 교도소 천장에 매달았다. 썩어 문드러질 때까지, 뼈가 앙상하게 드러날 때까지, 묶은 밧줄이 삭아서 떨어질 때까지 그대로 전시했다. 목이 없어진 시신을 고기라며 먹으라고 강요까지 했다.
그걸 잘 알고 있기에 헤라는 강림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아, 확실히 그 새끼가 저지른 짓은 맞아요."
강림은 긍정했다.
"하지만 저는 달라요."
긍정했지만, 부정했다.
"저는 그렇게 미치광이처럼 살 생각이 없어요.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대체 무슨 소리를…." "지금은 이해하지 못하겠죠. 하지만 분명히 말해두겠습니다."
강림은 이 자리에서 선언했다.
“저는 모든 여자를 노예로 만들 겁니다. 평생 제 아이를 낳게 할 거고요. 이는 당신도 예외는 아닙니다.” “뭐?” “당신도 제가 따먹을 거란 소리죠.”
이 미친놈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감히 부모를 먹는다고? 아무리 피가 섞이지 않았다고 해도 그렇지, 천륜을 위배하는 짓을 저지른다고? 헤라는 경악했으나, 안타깝게도 강림에겐 그런 도덕 따윈 버린 지 오래였다.
"자자, 잡담은 그만하고 얼른 나갑시다." "꺄악?"
강림은 바로 헤라를 양손으로 들었다.
"이거 놔, 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
헤라가 항의해도 강림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목표물을 확보한 강림은 아트리아에게 고개를 돌렸다.
"어서 가자. 가서 어머니를 씻겨드려야지." "네, 주인님."
그렇게 교도소에 남은 최후의 죄수 또한 밖으로 끌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