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13 - 113화- 변해버린 보좌관
“오랜만입니다, 아가씨.”
아트리아의 인도에 따라 수아와 테미네르가 저택에 도착한 건 강림 일행이 목욕을 끝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강림과 페르포네는 목욕 가운 한 장만 걸친 상태로 일행을 맞이해주었다.
시중을 들어주었던 시녀 리리는 동료들의 부축을 받으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원 없이 싸질렀으니 분명 며칠 내로 임신 소식이 들려올 거다.
"진짜로 뱀이 되었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 말이 사실이었네요."
테미네르는 페르포네를 보자마자 크게 감탄했다. 팔, 옆구리, 다리 겉면에 초록색 뱀 비늘이 생기고, 검은색 동공은 맴처럼 세로로 찢어진, 흉측한 괴물 그 자체임에도 테미네르는 페르포네를 예전처럼 대했다.
그 사실에 페르포네는 기뻐하고 싶었으나,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정말 축하드립니다, 아가씨. 이걸로 우리 모두 주인님을 위한 수인이 되었어요.” "테, 테미네르…." “이제 영원히 주인님을 위해 봉사할 수 있을 거예요.”
구미호가 되었으니까. 자신의 소중한 친구는 폭군의 계략에 의해 구미호가 되어버렸다. 그걸 직접 목격한 페르포네는 충격은 매우 컸다.
'아니길 빌었는데….'
욕실에서 그리드는 이리 말했다.
자신은 모든 여자를 개조할 거라고. 영원히 자신과 떡을 치며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몸을 만들 거라고. 그러기 위해서라면 인간이란 껍데기를 버리고 새로운 육신으로 재탄생 시키겠다고.
그러기 위한 목적으로 페르포네를 개조했다. 인간에서 뱀족으로, 뱀족의 상위 종족인 라미아로 개조했다. 여비서도 마인과 비슷한 존재로 개조했으며, 더 나아가 수도에 도착할 제물들도 개조할 거라고 얘기했다.
그렇다면, 테미네르도 예외는 아닐 터. 그래도 페르포네는 아니기를 빌었다. 괴물이 되어 다시는 인간이 될 수 없는 자신과 달리 테미네르만큼은 무사하기를 빌었다. 자신의 유일한 희망이 원래 모습을 잃지 않기를 간절히 원했다.
하지만, 희망이라 여겼던 테미네르도 결국 페르포네와 똑같은 운명에 처하고 말았다.
"이거 보세요, 아가씨. 이게 제 꼬리입니다. 어때요, 정말 복슬복슬하죠? 이것만 있으면 베개는 필요가 없어요."
테미네르 등 뒤에는 아홉 개의 꼬리가 살아있는 것처럼 살랑거리고 있었다. 수아와 똑같이 갈색이었다.
"이 귀 좀 보세요, 아가씨. 이것 덕분에 개미 발소리도 다 들려요. 정말 만능이라니까요."
머리에는 여우를 연상케 하는 길쭉한 귀가 나 있었다. 마찬가지로 갈색이었다.
머리가 단발이라는 점만 빼면, 수아와 판박이였다. 누가 보면 아직 덜 여문 수아라고 여겼을 거다. 아니면 수아와 같은 핏줄을 잇는 동생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당연히도 수아와 테미네르는 서로 피가 이어지지 않는 남남이다. 머리카락 색상과 눈동자 색상이 비슷하게 보일 뿐, 서로를 언니라고, 동생이라고 부를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래야 하건만….
"다, 수아 언니 덕분이랍니다."
테미네르는 자연스럽게 수아를 언니라고 불렀고,
"그래, 내가 우리 귀여운 동생을 손봐줬지."
그런 테미네르를 수아는 동생이라 부르며 스스럼없이 껴안았다. 껴안은 채로 테미네르의 가슴을 붙잡고 주물럭댔다.
"하아, 하아, 언니, 언니…."
주무를 때마다 테미네르의 젖가슴이 여러 가지 형태로 변해간다. 마치 슬라임을 갖고 노는 것처럼 수아는 정성스럽게 살덩어리를 반죽했고,
“하으으으, 흐으으으….”
테미네르의 입에선 뜨거운 날숨이 연신 터져 나왔다. 애원하듯이 테미네르는 등 뒤에 있는 언니를 향해 손을 뻗었다.
"더 해줘요, 더 해줘요." "그래, 알았어." "하우읍, 후으읍, 후으으읍…."
자연스럽게 키스한다. 자연스럽게 입을 벌려 수아의 혀를 받아들인다. 수아의 현가 자신의 혀를 감싸도, 감싼 상태로 당겨도, 당기면서 타액을 떠넘겨도 테미네르는 거부하지 않았다. 싫어하지 않았다. 혐오하지 않았다.
더 해달라고 앙탈을 부릴 뿐이다.
"테, 테미네르…."
그런 테미네르의 모습에 페르포네는 경악했으며,
"잘 개조했네."
강림은 감탄했다.
"멋지게 잘 만들었네. 정말 수고 많았어." "하아, 하아, 고, 고마워."
입술을 뗀 수아는 강림의 칭찬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어, 어떻게, 어떻게 테미네르가…."
강림 옆에 있는 페르포네는 친구가 수아랑 몸을 섞는 게 충격이었는지 순간, 쓰러질 뻔했지만 말이다.
"왜 테미네르가 구미호가 되었냐고? 간단해."
충격을 받은 테미네르를 향해 강림은 대답해줬다.
"<저주>를 썼기 때문이야." "저주?" "그래, 인간을 구미호로 만드는 저주. 옛날 구미호들은 그걸 써서 동족을 늘렸어."
요력이라는 강력한 힘을 가진 대가인지 태생적으로 구미호들은 임신이 잘 되질 않는 체질이었다. 지금 강림이 수단과 방도를 가리지 않고 임신이 잘 되는 체질로 바꿨지만, 그러기 전에는 이 치명적인 문제를 구미호들이 해결할 방도가 없었다.
따라서 <저주>가 만들어졌다.
몸속을 타고 흐르는 피가 보라색 요력으로 바뀔 때까지, 요력을 받아들여 구미호와 똑같은 신체 능력을 지닌 몸이 될 때까지, 반항하는 걸 막기 위한 목적으로 기억 조작이 완료될 때까지 끊임없이 고농도의 요력을 주입한다. 그렇게 주입해서 완성 단계에 이르면 최종 가공을 하게 되고, 그걸 거친 이후에 사람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저주가 새겨진다.
영원히 구미호 일족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저주가 말이다.
이것이 <저주>의 정체였다.
"구미호 대량 생산을 위한 조건은 다 만족했지만, 보험 정도는 있어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봤어. 만에 하나 문제가 생겨 생산할 수 없다면 <저주>를 써서 늘리는 것도 좋다고 봤지." "그, 그럼 그 <저주>가 제대로 되는지 알아보려고 테미네르를?" "빙고."
강림은 긍정했다.
"테미네르를 조교 할 겸 <저주> 실험체로 삼았지." "그, 그런…." "테미네르 뿐만 아니야."
<저주>의 실험체가 된 자는 테미네르 뿐만 아니었다.
"아이스 섬에서 싸우다 붙잡힌 포로들 있지? 구미호로 만들기 위해 <저주>의 실험체로 썼어."
여기사 베라를 포함한 2백여 명의 여성 포로들. 죄인이라는 신분으로 한 명당 수백 명 이상의 아이를 낳았고, 다 낳은 이들은 여우섬으로 끌려갔다 페르포네는 여우섬에 끌려간 자들은 가축으로 혹사당할 거라고 여겼다.
<저주>를 써서 구미호를 늘리는 데 이용당했을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강림의 얘기를 듣는 순간, 페르포네는 크게 경악했다.
“수아가 선조들이 금지해서 사용할 수 없다고 지껄였지만, 난 아니라고 봤어. 써먹을 수 있으면 다 써먹는 게 낫다고 봤지.” “….” “애초에 <저주>에 부작용은 없는데, 고작 인간들에게 밀렸다는 이유로 금지하는 게 말이 되냐?”
이렇게 좋은 기술을 인간들의 보복을 받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금지하다니. 정말 바보 같은 짓을 했다고 강림은 그리 여겼다.
"해서, 수아. 저주를 쓴 소감은 어때?"
그렇다면 그 선조들을 옹호하던 수아는 어떨까? 강림은 수아에게 물었다.
"아주 좋아."
왼손으로는 테미네르의 젖가슴을, 오른손으로는 테미네르의 음부를 손가락으로 쑤시며 수아는 대답했다. 언니의 훌륭한 손놀림에 테미네르의 몸은 부르르 떨었다.
"저주를 쓴 게 이토록 상쾌한 일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어."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었다.
선조들이 금지한 것을 사용하는 거니까. 금단을 어기는 것은 곧 이단이니까. 이단을 저지르면 천벌을 받는다고 어른들은 꾸준히 가르쳤다. 그 가르침을 받았기에, 수아는 죄책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토록 금지한 걸 해방했으니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찰나의 순간에 불과했다.
"우릴 무시하던 놈들을 개조하니까 기분이 너무 좋더라."
막상 해보니 즐거웠다. 자신들을 사냥감으로 취급하던 녀석들을 똑같은 처지로 만들어주니까 이상하게도 입꼬리가 올라갔고, 올라간 입꼬리가 내려가는 일은 없었다. 놈들이 <저주>를 받아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니 항상 괴롭히던 두통이 말끔히 씻겨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선조들과의 약속을 어겨 죄스럽다는 마음은 사라졌다.
오히려 더 하고 싶다. 더 망가뜨리고 싶다. 자신들이 이 세상의 주인이라며 떵떵거리는 인간들을 모조리 다 저주로 부숴버리고 싶다. 부숴서 동족으로 만들어 버리고 싶다. 예전의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잊은 채 동족으로 살아가게 만들고 싶다.
어쩌면 선조들이 힘을 쓰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던 것도 실은 이런 즐거움을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독점할 목적으로 금단이라고 여기며 후손들이 쓰지 못하게 막은 것이 아닐까?
그렇게 멋대로 해석할 정도로 수아는 저주의 매료에 푹 빠져버렸다.
“나, 더 만들고 싶은데, 수도에 있는 포로들 좀 써도 될까?”
정복 전쟁을 벌이면서 얻은 수많은 포로. 그 포로들을 동족으로 만들고 싶다. 수아는 간곡하게 부탁했다.
"당연하지, 아트리아."
수아의 요청을 강림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수아 옆에 서 있는 아트리아를 향해 강림은 말했다.
"여우섬에 전서구를 보내. 저주에 쓸 포로들을 마련하라고." "네, 알겠습니다."
활발한 정복 전쟁을 통해 강림은 수많은 포로를 붙잡았으며, 현재 수용소에 가둬둔 상태다. 언젠가 가공해서 노예로 써먹을 녀석들을 강림은 수아의 장난감으로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몇 명을 줄 생각입니까?" "그냥 다 줘."
아트리아의 질문에 강림은 짧게 대답했다.
"당장 가공하기 힘들면 구미호들의 샌드백으로 줘버리는 게 나아." "알겠습니다." "그보다 테미네르, 기분은 어떻지?"
이번에는 테미네르를 향해 강림은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아가씨랑 함께 살고 싶니?" "아, 아가씨…."
색욕에 젖은 눈동자로 테미네르는 페르포네를 바라봤다. 잠시 뒤,
"아뇨."
테미네르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아가씨랑 같이 살고 싶지 않습니다." "…뭐?"
그 말에 페르포네는 표정이 굳어졌다. 테미네르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처음에는 같이 살고 싶었습니다. 늙어 죽을 때까지 같이 살고 싶었습니다." "테, 테미네르…." "하지만, 이젠 아니에요."
테미네르는 찬양한다는 얼굴로 수아를 올려다봤다.
"가장 소중한 존재는 아가씨가 아닌, 수아 언니이니까요. 오래전에 헤어진 언니와 떨어져 있기 싫어요."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왜 저 구미호가 네 언니야. 너는 고아잖아!"
그래, 자신과 테미네르는 부모에게서 버려진 아이다. 그래서 부모도 없는 새끼라며 주변에서 손가락질이나 당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시절이 있었는데, 저 구미호가 오래전에 헤어진 언니라고? 그게 말이 되냐? 구미호의 피를 이어받지 않았는데, 그게 말이 되냐고! 페르포네는 따졌지만,
"언니가 맞는데요?"
왜 그런 소리를 하냐는 표정을 지으며 테미네르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맞는데, 왜 그런 소리를 하시는 건가요, 아가씨?" "왜냐니, 우리는 처음부터 빈민촌에서 함께…." "그건 기억하고 있어요."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테미네르는 알고 있었다.
"당신과 함께했던 추억은 다 기억하고 있어요." "그, 그럼…." "하지만, 떠올랐어요."
테미네르는 진정으로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저는 수아 언니의 잃어버린 여동생이라는 걸." "여…동생?" "네, 그걸 잊은 채로 당신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언니를 만나 모든 기억이 돌아왔어요."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페르포네는 증오 서린 눈으로 수아를 노려봤다.
“테미네르에게 무슨 짓을 했어!”
"머리를 좀 손봤지."
수아는 어깨를 으쓱했다.
"테미네르, 네 아가씨가 잘 못 믿는 것 같으니, 네가 대신 얘기해봐." "알겠어요, 언니."
언니의 말에 따라 테미네르는 여우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