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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하라, 지배하라, 진짜 보스가 되어라-110화 (111/344)

Chapter 110 - 110화- 라미아가 된 독사

"우으으…."

페르포네는 눈을 떴다.

“이곳은….”

간신히 시야가 확보된 페르포네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바로 깨달았다.

“왜 내가 여기에…난 분명 바닥에….”

의식을 잃기 전에 무슨 일을 당했는지 페르포네는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다.

배가 터지기 일보 직전까지 그리드가 강제로 정액을 먹였다. 입으로도 먹이고, 뒷구멍으로도 먹였다. 입에서부터 창자까지 전부 정액으로 채워졌고, 이런 상태에서도 계속 정액을 쏟아부으니 페르포네의 정신은 극한까지 치달았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서 페르포네는 그리드가 묻는 대답에 무조건 응했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좌우로 흔드는 방식을 쓰며 답했다.

그렇게 했는데도 강림은 끝까지 머리채를 놓지 않았고, 페르포네가 더는 버틸 수 없는 지경까지 오고 나서야 그리드는 손을 놓아줬다.

그리드의 손에 벗어나자마자 바닥에 엎어진 페르포네는 정신을 잃었고,

다시 눈을 뜨니 커다란 유리통 속에 갇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 유리통은 분명….'

실험실에 진열되어 있던 유리통이다. 영주 새끼는 이 통을 수십 개 이상 금고에 배치했으며, 통에 갇힌 불쌍한 사람들은 괴수화 실험에 이용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자신이 할 말은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막장이 줄은 페르포네는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다. 협박을 잘하는 놈으로만 여겼지, 그리드처럼 타지 않는 쓰레기일 줄은 진짜 몰랐다.

그 쓰레기가 만든 유리통 중 하나에 페르포네는 갇혀 있었다.

페르포네가 갇힌 유리통 말고 다른 것들은 다 사라진 지 오래였다.

'왜 이렇게 텅 비어있는 거지?'

황량하다. 수많은 유리통도, 그 유리통들 속에 갇힌 시신들도, 연구에 사용되는 온갖 설비도, 보는 것만으로도 불길한 약들도, 연구 결과를 기록한 서류 더미들도 다 사라졌다.

오직 페르포네가 갇힌 유리통 하나만 실험실이었던 장소 가운데에 놓여 있었다.

'그리드 그 망할 자식, 왜 날 여기에 가둔 거지? 또 뭘 하려는 거야?'

이곳에 가둔 장본인은 그리드밖에 없다.

대체 어떤 짓을 하려고 자신을 이곳에 가둔 거지? 이미 인간이 아닌, 뱀족으로 만든 주제에 또 뭘 할 작정이지? 그렇게 정액을 죽이 기세로 먹인 주제에 또 뭘 하려는 걸까? 여전히 분노가 가라앉지 않은 걸까? 그래서 더 끔찍한 짓을 저지르려는 걸까?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 또 당할 바에야 도망치는 게 낫다! 되든 안 되든 얼른 벗어나야 한다! 유리통을 부수기 위해 페르포네는 있는 힘껏 주먹을 내질렀으나,

"아오오, 내 손아…."

팅팅 부어오른 오른손을 붙잡고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당연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보통 유리가 아닌, 실험체가 탈주할 것을 방지하기 위해 특수 제작된 강화 유리였으니까. 때려도 손에 금이 가지 않을까, 그것부터 걱정해야 한다.

"일어나자마자 주먹질이라니, 기운은 넘쳐나나 보네."

이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페르포네는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그리드…."

자신을 나락으로 떨군 흑발의 남성을 보고 페르포네는 이를 갈았다. 그런 페르포네의 반응에 강림은 재밌다는 얼굴로 유심히 살펴봤다.

"일주일 넘게 자는 줄 알았는데, 하루 만에 일어나다니. 의외로 운동은 하나 보지?" "네 알 바 아니거든. 그보다 어쩔 속셈이지?"

페르포네는 물었다.

"날 이곳에 가둬서 뭘 할 속셈이지?" "그야 개조지."

강림은 뭘 지금 새삼스럽게 묻냐는 식으로 대답했다.

"개조 말고 내가 널 그곳에 넣을 이유가 더 있겠니?" "이미 개조는 끝났잖아."

마치 문신처럼 자신의 몸 테두리 전체에 도배되어있는 초록색 뱀 비늘을 보여주며 페르포네는 따졌다.

"이렇게 만든 주제에 더한다고? 이대로 끝나는 거 아니었어?" “이놈아, 나는 개조를 끝냈다는 소리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

그 따짐에 강림은 뻔뻔스럽게 반박했다.

”그런 소리를 하지도 않았는데 무턱대고 개조는 끝났다고 여기다니. 너무 김칫국을 마시는 거 아니야?"

만족했다면 여기서 끝냈을 거다. 페르포네를 뱀족으로 만드는 선에서 개조를 마무리 지었을 거다.

하지만 강림은 만족하지 않았다. 아직 페르포네가 무너지지 않았으니까. 어설프게 금이 간 상태로 놔두면 또 뒤통수를 칠 테니까. 여기서 일어난 이들을 생각해보면 틀린 생각은 아니다.

만약 페르포네의 소망대로 금고 내부에 괴물이 아닌 진짜 폭탄이 있었다면, 정말로 폭탄을 작동시키는 스위치가 존재했다면, 그 스위치를 페르포네가 진짜로 눌렀다면 최악의 참사로 이어졌을 거다. 그런 일을 겪었는데 세상에 어느 바보가 ‘아, 괜찮습니다. 문제없어요.’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그러니 더 절망에 빠뜨린다. 더 절망에 빠뜨려서 반항한다는 생각을 아예 뽑아버리자. 너무나 심하게 망가져서 애완견이 된 타이처럼 말이다.

그러기 위한 도구가 이곳에 있었으며, 강림은 이 도구를 적극적으로 쓸 작정이었다.

"진짜 뱀으로 만들어 줄 테니까 기대하고 있으라고." "이미 만들었잖아." "네가 변한 건 뱀 인간이야. 내가 만들려는 건 이거라고."

그렇게 말하며 강림은 오래된 그림 한 장을 페르포네에게 보여줬다.

"그, 그건…."

그것은 괴물이었다. 하반신은 뱀의 꼬리로 되어 있으며, 상반신은 인간으로 되어 있다. 매혹당한 인간을 꼬리로 감싼 채 머리부터 삼키는 괴물의 모습이 담긴 그림. 그림 속에 나온 이 괴물의 정체가 무엇인지 페르포네는 알고 있었다.

"라, 라미아?"

라미아. 고대에 살았다고 알려진 반인반수. 오늘날 뱀족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이 괴물은 현재 이 세상에 남아 있지 않다.

이유는 진화했으니까. 오랜 세월에 걸쳐 라미아들에게 다리가 생겼고, 다리가 생겼기에 라이마들은 뱀족이 되었다. 그래서 오늘날 라미아를 볼 가능성은 0에 해당한다.

"서, 설마…."

그렇게 멸종한 라미아의 그림을 왜 보여준 걸까? 그 이유를 깨달은 페르포네의 얼굴은 시체처럼 창백해졌다. 창백해지는 페르포네의 얼굴을 보며 강림은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 설마가 맞아."

강림은 아주 친절하게 설명했다.

"널 라미아로 만들 생각이야. 진짜 독사로 만들 거라고." "왜, 왜 이런 짓을…이렇게 만들어도 마음에 안 들어?" "응, 안 들어."

강림의 대답에는 일말의 죄책감도 느껴지질 않았다.

"그냥 뱀족으로 만족할 생각이었는데, 네 태도를 보니 그걸로는 부족할 것 같더라고." "부, 부족하다고?" "그래서 확실하게 망가뜨리자고 마음먹었지. 반항을 일으키면 그 대가가 뭔지 확실하게 알려주고 싶었어."

그래, 이것은 전부 페르포네 탓이다. 페르포네가 얌전히 복종하기라도 했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거다. 정말로 뱀족으로 만드는 수준에서 그만뒀을 거다.

그 기회를 차버린 게 페르포네이며, 지금 이 상황을 만든 것 역시 페르포네다. 다 페르포네가 자초한 일이다. 자초했기에 개조를 당하는 거다.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잘못을 저지른 놈에게 벌을 내리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 식으로 강림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잡담은 그만하고. 얼른 해버리자. 곧 있으면 손님이 올 예정이니까." "자, 잠깐, 잠깐, 잠깐!"

페르포네는 제지하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강림은 유리통 앞에 놓여 있는 기계 장치에 다가갔다. 거치대 위에 올린 태블릿 PC를 연상케 하는 장치 위에 강림은 손을 얹었다.

"잠깐이란 없어, 페르포네. 얌전히 개조나 받아. 그게 너의 운명이야." "아, 안 돼!"

장치 안으로 강림은 마기를 불어넣었다. 불어넣음과 동시에 페르포네를 가둔 유리통이 한 번 크게 진동했고,

잠시 뒤, 통 속으로 검은색 마기가 흘러들어왔다.

'처음 하는 거라 잘 될지 모르겠네.'

검은색 마기로 채워지는 모습을 강림은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쳐다봤다.

'그래도 잘 되겠지.'

지금까지 실패한 적은 없었다.

아트리아, 이리스, 탈리아 등 간부들을 강화하는 데 성공했고, 페르포네를 뱀족으로 만드는 것도, 아트리아를 마인과 비슷한 존재로 만드는 것 역시 성공했다. 평범한 인간을 다른 종족으로 진화시키는 실험에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것도 성공할 거다. 실패하지 않을 거다. 근거는 없지만, 그리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으로 강림은 가득 차 있었다.

그러니 활짝 웃을 수가 있었다.

"초, 촉수? 왜 왜 이딴 게 여기…후읍?"

마기를 이용해 구체화한 촉수들로 농락당하는 페르포네를 보며 웃을 수 있었다.

"후윽, 후윽, 후윽, 후윽!"

전신이 촉수에 구속된 페르포네를. 촉수가 가슴을 틀어쥐는 것에 괴로하는 페르포네를. 가랑이 두 구멍이 촉수에 범해지는 것에 괴로워서 몸부림을 치는 페르포네를. 촉수가 목구멍 깊숙이까지 범하는 것에 눈물을 흘리는 페르포네를. 고농도의 마기가 주입되는 바람에 각종 비명을 질러대는 페르포네를 봐도 강림은 웃을 수가 있었다.

"후끄윽, 후끄으윽, 후끄으으윽!"

그렇게 농락당하며 수많은 촉수에 감싸지는 페르포네를. 검은색 고깃덩어리에 갇혀버린 페르포네를. 괴물이 되기 싫다며 발버둥을 치는 페르포네를 보며 웃을 수가 있었다.

웃으면서 강림은 간절히 빌었다.

"페르포네, 부디 죽지 말아라."

너는 국고를 책임져야 할 막중한 임무를 져야 하니까.

“자살하지도 말고.”

그렇게 간절히 빌며 심장처럼 박동하는 고깃덩어리를 강림은 유심히 관찰했다.

●●●

"후윽, 후윽, 후윽, 후윽!"

느껴진다. 페르포네라는 인간이 조각조각 분해되는 것을. 분해되고 괴물로 재조립되어가는 것을. 자신의 육신이 더러운 촉수에 의해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페르포네는 느낄 수 있었다.

"후끅, 우끅, 후끅, 우끄으읍!"

감각이 하나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보통은 두 다리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두 개여야 하는데, 하나만 느껴진다. 이상하게도 하반신이 등 뒤에 닿는 느낌까지 든다.

"우끅, 우끅, 우끅, 우끅!"

그게 뭘 의미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페르포네는 알 수 있었다. 잘 알고 있기에 그녀는 공포에 빠졌다. 공포에 빠져도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잔혹한 현실에 페르포네는 더욱 절망감에 빠졌다.

'지, 진짜로 되는 거야? 진짜로 괴물이 되는 거야? 진짜로?'

진짜 라미아가 된다. 다시는 인간의 삶을 누릴 수 없게 된다. 인생 전부를 바친 끝에 이룬 꿈도 제대로 누리지도 못한 채 영원히 그리드를 위한 괴물로 살아가게 된다.

영원히 놈의 씨받이로 살아가게 된다.

그걸 깨달은 페르포네의 절규는 더욱 커졌다.

"후끄으윽, 후끄으으, 후끄으으읍!"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다. 이대로 끝낼 순 없어. 이대로 끝낼 순 없다고! 간신히 꿈을 이루었는데, 경쟁자들을 모조리 다 때려눕히고 간신히 아이스 섬의 주인이 되었는데. 왕국에서도 무시하지 못할 지위를 얻었는데. 드디어 불운한 유년 시절을 잊고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 거라고 여겼는데.

왜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단 말인가. 왜 자신이 폭군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단 말인가. 왜 하필 이 폭군이 나타났단 말인가? 왜 자신이 괴물로 개조당할 수밖에 없단 말인가?

아무리 자신이 꿈을 이룬다는 목적하에 수많은 사람의 피눈물을 흘리게 했고, 이게 그 업보라고는 해건 이건 아니다. 이건 아니란 말이다.

그렇게 억울함을 토해내도 그녀의 말을 들어주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이후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을까?

"쿨럭, 쿨럭, 쿨럭, 쿨럭!"

어느 순간 페르포네를 능욕하던 촉수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맨주먹으로도 깨지지 않던 유리통이 자동으로 열렸고, 땀으로 흠뻑 젖은 페르포네는 바닥에 엎어졌다.

"페르포네, 이것 좀 봐."

그런 페르포네 앞으로 강림은 전신을 다 비추는 큰 거울을 그녀에게 내밀었고,

"아…."

페르포네는 보고 말았다.

"아아…."

멀쩡한 두 다리 대신, 커다란 뱀의 꼬리가 달린 모습을. 초록색 비늘로 이루어진 자신의 뱀 꼬리를 페르포네는 보고 말았다.

진짜로 괴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아아아아아악!"

<독사>의 절규가 금고에 메아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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