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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하라, 지배하라, 진짜 보스가 되어라-93화 (94/344)

Chapter 93 - 93화- 이걸로 내가 만족할 것 같냐?

프테라. 그녀는 누구인가?

한마디로 말하면 외교관이다. 제1 왕녀가 반 그리드 동맹을 형성하기 위해 여러 나라와 손을 잡으려고 노력했으며, 그 노력이 결실을 얻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프테라다. 프테라의 뛰어난 외교적 수완이 없었다면 반 그리드 동맹이 형성되지도 못했을 거고, 세상은 그리드에게 먹히기 일보 직전까지 갔을 거다.

이러한 프테라의 능력이 위협적이라고 여겼는지 그리드는 기회가 되면 그녀를 암살하려고 시도했다. 그때마다 설화가 막아서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렇게 목숨을 위협받던 프테라는 그리드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1부 이야기 마지막까지 생존했다.

이야기 내에서 무시할 수 없는 역할을 맡았던 만큼, 게임상에서도 마찬가지다. 후방 지원을 제대로 해주는 캐릭터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한 번 기술을 사용한 직후 재사용까지 걸리는 시간을 0초로 되감아 버리는 프테라의 능력은 사기라는 평이 많다. 걸리는 시간이 사라지면 두 번 연속 필살기를 난사할 수 있다는 이점이 생기니까. 강림도 직접 프테라를 활용해봤기에 그녀가 얼마나 좋은 캐릭터인지 잘 알고 있었다.

스토리도 다 봤기에 가장 먼저 포획해야 할 대상이라는 것 역시 인지하고 있었다.

사실상 그리드를 몰락시키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 여자다. 그렇다면, 아예 공을 세우지 못하게 만들자. 사신단 대표로 이곳에 왔으니 이곳에다 발을 묶어 버리자. 배를 침몰시키고, 녀석을 끊임없이 안고, 조교 하며 자신의 여자로 만들어버리자. 그렇게 된다면 제1 왕녀도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될 거다.

해서 오늘 저녁 만찬에 초대해 잠재운 뒤 먹을 생각이었는데, 설마 자신도 제물이니 따먹어도 상관없다는 말을 들을 줄이야.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때릴 줄은 강림도 예상하지 못했다.

못했지만, 알 수 있었다.

‘떨고 있네.’

자신을 바라보는 프테라의 얼굴. 눈가가 미세하게 떨고 있다. 자신감 있게 대답했지만, 실상 그녀도 무서워하고 있는 거다.

‘왕녀 녀석,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한 거지?’

설마 첩자 노릇 좀 하라고 자신의 오른팔을 보낸 건가? 그런 거라면 자신을 너무 우습게 봤다. 제국의 기밀을 빼내려고 침투한 첩자만 수백에 달하며, 그 수백 명 모두 붙잡혔다. 붙잡히고, 조교 당하고, 굴복하고, 평생 병사를 낳는 씨받이로 전락했다.

그러니 만약 프테라가 그런 짓을 저지른다면 처절하게 응징할 거다. 자신의 낙원을 엉망으로 만들려고 한 죄는 무거우니까. 설사 안 한다 해도 할 거다.

프테라 조교는 그녀가 어떤 역할을 맡든 간에 정해져 있었으니까.

“전부 영애들 맞나? 거지들 섞은 거 아니지?” “아닙니다. 여기 명단이 있으니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프테라는 소매 속에 숨겨둔 명단을 강림에게 전달했다.

“이런 걸 왜 늦게 준 거지? 서신과 함께 줘야 하는 거 아닌가?”

명단을 받으면서 강림은 그리 물었고,

“조약의 확답을 듣는 게 우선이라 생각해서 드리지 않았습니다.” “내가 화가 나서 엎어버렸을지도 모르는데도?” “폐하는 그럴 분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여전히 눈가의 떨림은 멈추질 않으면서도 프테라는 차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정말로 그런 분이셨다면 진작에 저희를 바다에 수장시켰을 테니까요.” “….”

틀린 말은 아니다. 만약 강림이 아닌 그리드였다면 협상 따윈 필요 없다며 화포를 있는 대로 다 쏴서 사신단을 수장시켰을 거다. 어쩌면 프테라는 그리드가 좀 달라졌다는 말을 듣고 이런 짓을 저지른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왜 숨기고 있었던 걸까?

‘우위에 서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네.’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저런 소리를 하는 건가, 라고 상대방이 궁금증을 자아내도록 유도하며 서서히 상황의 주도권을 잡아간다. 원작 게임에서도 프테라는 이런 식으로 외교술을 펼쳐왔다. 망국의 외교관이면서도 반 그리드 동맹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도 다 이 전략이 먹혔기 때문이다.

가끔 억지나 다름없는 전개가 있어서 진짜로 저런 게 말이 되냐, 라는 생각이 종종 들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 자신 앞에서 외교술을 쓰는 이유가 뭔가?

'자기들 좀 편하게 살고 싶어서 그러는 건가?‘

그게 가장 유력할 거다. 공물이 된 이상 자신에게 혹사당하는 건 당연할 터. 그걸 피하고 싶으니 어떻게든 이야기 주도권을 가져가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프테라가 착각하고 있다.

’바보 같은 생각을. 누가 편히 지내게 해줄 것 같냐?‘

지금 이 자리는 두 나라 간의 화평을 위한 자리가 아니다. 외교를 하는 자리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갑과 을의 관계. 갑인 강림이 을인 왕국의 굴복을 받는 자리다. 대등한 관계에서 조약을 맺는 그런 자리가 아니며, 주도권은 가져가는 것도 의미가 없다.

뭘 하든 간에 주도권은 강림한테 있으니까. 판을 뒤엎는 것도, 이대로 유지하는 것도 다 강림의 손아귀에 달려 있다.

'프테라, 네가 뭘 원해도….'

가질 수 없을 거다. 이 몸이 다 가질 테니까. 설령 버틴다고 해도 자신이 무너뜨릴 거다. 지금까지 자신을 이기겠다고 버틴 여자는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어디 보자. 와, 그림도 붙어 있다니 진짜 대단한데?"

약간 놀라는 시늉을 보이며 강림은 명단을 읽어내려갔다.

공물이 된 귀족 영애들의 인적 사항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알현실에 있는 영애들 한 명, 한 명씩 대조해가며 강림은 조작된 게 없는지 전부 확인했다.

확인하면서 강림은 깨달았다.

'다른 왕녀들을 지지했다가 몰락한 귀족 가문 출신들이잖아?'

왕국을 삼키기 위해 강림은 첩자들을 파견했다. 파견한 첩자들을 통해 여러 정보가 강림의 귀로 흘러들어왔으며, 제1 왕녀가 아닌, 다른 왕녀들을 주군으로 모시다가 몰락한 귀족들의 정보 역시 들었다.

지금 명단에 있는 귀족 영애들의 성씨가 묘하게 익숙하다고 생각되더니만, 몰락한 귀족 가문 출신들이었다. 어쩐지 귀한 귀족 영애들을 무려 100명 이상 보내는 게 이상하다 싶었는데, 다 이유가 있었구나.

자신을 지지하는 귀족 세력은 건들 수 없지만, 반역자는 무엇이 되었든 간에 문제없다고 본 건가? 그래서 이들을 쉽게 희생양으로 삼은 건가? 진짜 대단하네. 자신을 적대한 자들에겐 이리도 끔찍한 형벌을 내린다는 사실에 강림은 혀를 내둘렀다.

'프테라의 이름은…여기 있네.'

명단에는 프테라의 이름도 적혀 있었다. 이를 본 강림은 프테라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도 수상한데….'

외교관을 이리도 쉽게 내치면 안 될 텐데. 왜 이러는 걸까? 혹시 다른 수단이 있기에 이러는 걸까? 다른 수단이 분명 있으니 프테라를 희생양으로 삼은 걸까? 그래도 이건 부담이 너무 큰 거 아닐까? 프테라보다 서열이 좀 낮은 녀석을 보내는 게 정석 아닐까?

"음…."

약간 고민한 끝에 강림은 결정을 내렸다.

'일단 놈들은 씨받이로 쓰자.'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넝쿨째 들어온 호박을 돌려보낼 수 없다. 써먹을 수 있다면 확실하게 써먹자. 평생 자신의 자지 냄새와 정액 냄새에 푹 빠진 암퇘지들로 만들자. 어찌 보면 영애들에게 있어서는 지옥일지도 모르지만,

동시에 축복일 거다.

'연좌제로 가문 전체가 몰살당하는 것보단 낫지.'

제1 왕녀는 자신과 적대한 귀족들만 처형하고 그들의 가족은 살려줬다. 필요하다면 같은 혈육조차 가차 없이 참수하는 왕녀의 성격을 고려하면 나름 너그럽게 봐준 거나 다름없다.

하지만, 영지와 재산을 전부 몰수한 게 원인이었다. 왕녀에게 있어선 다신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게 기반을 없애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빼앗기는 자들은 아니다.

이렇게 밑천까지 다 빼앗아 버리면, 어떻게 먹고 살 수 있단 말인가? 맨손으로 시작해도 일단 뭐가 있어야 시작할 수 있지, 다 가져가면 어쩌라는 건가? 살아남은 자들은 크게 분개했고, 다시 모여서 제1 왕녀를 암살하기로 모의하기에 이르렀다.

그 암살 모의는 사전에 발각되어 흐지부지하게 끝났고, 크게 분노한 왕녀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전부 처형했다. 그들에게 고용된 사용인들까지 포함해서.

이런 잔혹한 결정에 왕녀를 지지하던 귀족들도 '자신들도 저 꼴이 되는 거 아냐?'라는 불안감에 서서히 이탈하기 시작했고, 이는 그리드에게 패배하는 결말을 맞이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이것이 원작 게임에서 나오는 왕국 멸망의 전말(顚末)이며,

눈앞에 있는 100명의 영애는 사형당하기 직전에 이곳으로 끌려왔다고 봐야 한다. 남은 가족들이 사형당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조만간 시행한다고 봐야 할 거다. 가뜩이나 자신과 싸울 힘을 길러야 할 마당에 자신에게 비수를 꽂으려는 자들을 놔둘 수 없을 테니까.

’가만….‘

죽게 내버려 둘 필요는 있을까? 남자들은 상관없지만, 여자들은 굳이 죽일 필요가 있나? 이쪽은 써먹을 데가 엄청 많은데. 아예 이쪽으로 데려올 수 없나?

그런 의구심이 들자, 강림은 좋은 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래, 그렇게 하자.‘

그렇게 결론을 내린 강림은 행동에 들어갔다.

“부족해.” “네?” "고작 100명으로 날 만족할 수 있다고 보냐?" "…그게 무슨 말씀인지."

갑자기 이런 식으로 나갈 줄은 몰랐는지 프테라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를 본 강림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반역을 저지른 자들 전원을 데리고 왔어야지." "…!"

그 말을 들은 순간 프테라는 표정이 굳어졌으며,

뒤에 있던 영애들 역시 표정이 새파래졌다.

"남자들은 어찌하든 상관없지만, 여자들은 전부 나한테 바쳤어야지, 백 명이 뭐야, 백 명은. 설마 나보고 이 영애들만 먹고 떨어지라는 거야?" "그, 그건 아닙니다!"

설마 이런 식으로 지적받을 줄을 몰랐는지 프테라는 황급히 사과했다.

"그러면 내가 직접 왕녀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지. 남자들을 제외한 모든 반역자 가문의 여식들을 모조리 나한테 보내라고. 시녀들도 포함해서."

이왕 받을 거 다 받자. 왕녀에게 죽임을 당할 바에야 차라리 자신이 써먹겠다. 어차피 왕녀도 자신에게 칼을 들이댄 자들을 어찌 처리할까 고심할 테니, 분명 귀가 솔깃해질 거다.

만약 넘겨주기 싫다면….

짓밟아버리면 그만이다.

"이쪽에서 사신을 파견할 테니 너는 돌아갈 생각하지 말아라. 행여 도망치면 조약이고 나발이고 다 무효니까." "아, 알겠습니다."

이렇게 협상은 끝났다.

"자, 할 말은 다 했으니 이제 지하로 내려가 볼까?"

그렇게 말하며 강림은 옥좌에서 일어섰다.

"다들 일어서서 나를 따라오도록."

긴장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프테라와 영애들을 보며 강림은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가서 일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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