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5 - 65화- 당신에게 왕국을 바치겠나이다
토끼 왕국.
토끼섬에 사는 토끼족들이 세운 나라. 일찍이 인간들의 문명을 받아들인 토끼족은 다른 수인들과 달리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다.
제도, 복장, 무기, 법령, 등 인간들이 만들어낸 발명품들은 하나같이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이 놀라움의 연속을 토끼족은 자신들의 것으로 삼겠다고 다짐했다. 썩은 고인 물인 낡은 관습을 버리고 인간들의 체계적인 문물을 토대로 자신들만의 문명을 세우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마음먹은 결과, 다른 수인들보다 먼저 왕국을 건립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이제 야만인이 아니다.]
레비는 기억하고 있다.
[인간들과 동등한 문명인이다. 더는 사냥당할 존재가 아니다.]
백성들이 구슬땀을 흘려 지은 왕성에서 자신의 어머니가 왕관을 쓰고 나라를 세웠다고 선포하던 날을. 자신을 어엿한 여왕의 후계자로 지명해 모두의 찬사를 받던 날을.
[비록 우리 땅은 작으나,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강국으로 키울 거다.]
신생국이지만, 언젠가 인간들의 왕국처럼 부강한 나라로 키우겠다고 선포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더는 인간들에게 사냥당하지 않고, 편안히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다짐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왕국에 영광이 있으라. 목숨을 바쳐 나를 보좌해다오.]
토끼족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거라는 사실에 다들 크게 환호했던 날을. 나라의 안녕을 위해 그날 온종일 축제를 즐겼던 날을.
레비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자신이 차기 여왕이 되었을 때도 그날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힘든 고비가 있으면 어머니가 한 연설을 되뇌며 항상 꿋꿋하게 이겨 내려고 노력했다. 최선을 다해 어머니가 세운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어머니가 지키고 싶어 하는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레비는 노력했다.
하지만 만약 둘 중 하나를 포기하라면 어찌해야 할까? 나라와 백성. 둘 중 하나를 포기하라고 하면 어느 쪽을 택해야 할까?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다. 이걸 잘 알고 있음에도 둘 중 하나를 택하라는 모순적인 갈림길에서 선택을 강요받으면 어느 쪽을 골라야 할까?
“여, 여기에 적힌 내용 대로입니다.”
레비는 선택했다.
“토끼 왕국은 오늘부로 멸망하고, 토끼령으로 명칭이 바뀝니다.”
강림에게 안긴 채로 레비는 자신이 가져온 문서를 강림에게 보여줬다. 배는 이미 만삭 이상으로 부풀어 올라 있었다.
“그러니까, 제 백성들을 잘 돌봐주세요.”
레비는 간절하게 애원했다.
“당연히 그래야지.”
그런 레비의 흰 머리를 강림은 살며시 쓰다듬었다.
“내 말 잘 따르면 토끼족이 부강하게 만들어줄게.”
수인 연합이 멸망했다는 사실을 접하게 된 강림은 레비에게 한 가지 명령을 내렸다.
[토끼 왕국을 파(破)해라. 여왕 레비와 토끼족 전원은 그리드의 노예로 복종해라.]
[명령에 따른다면 평생 행복을 보장하지만, 거부할 경우, 호랑이족과 악어족처럼 만들 것임을 명심해라.]
그리고 레비는 명령을 따른다는 증거로 문서를 가져왔다.
[여왕 레비와 토끼족은 현 시간부로 그리드 님의 노예로 복종합니다.]
이런 식의 내용을 작성한 레비는 국새와 왕관을 강림에게 바쳤다.
땅을 치고 후회할 일일지도 모르나, 레비에겐 후회할 생각이 없었다.
다른 방도는 꿈도 꿀 수 없으니까.
‘어차피 이리될 운명이었어.’
언젠가는 닥치게 될 운명이었다. 그리드가 속령이 된 토끼 왕국을 해체하고 식민지로 삼을 날을. 이에 저항할 힘은 토끼 왕국에겐 존재하지 않았다.
토끼 왕국이 운영할 함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간신히 허가를 받아 재건할 수 있게 되었으나, <더 퀸즈>와 비교하면 얼음 발에 오줌 누기나 다름없었다.
군대도 수인 연합의 침공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출산을 마치고 복귀한 장병들로 빠르게 회복되었으나, 이미 전력 차이가 너무나 큰 <더 퀸즈>와 싸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무엇보다 자신들보다 세력이 컸던 수인 연합이 <더 퀸즈>에 의해 멸망했다. 언제든 자신들을 집어삼킬 수 있었던 연합이 해적 함대의 공격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렇다면, 더는 저항할 의미가 있을까? 모든 면에서 열세인 자신들이 이길 수 있을까? 이미 녀석에게 푹 빠진 자신과 동족들이 그리드와 싸울 수 있을까?
긴 고민 끝에 레비는 이 명령에 따르기로 했다.
“네, 감사합니다.”
명령에 따르겠다는 증거로 레비는 여왕이 입는 드레스가 아닌, 유두와 음부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바니걸 옷을 입었다. 입은 상태에서 목에 쇠고랑을 찼다. 자신의 힘을 억제하는 쇠고랑을.
레비 뿐만 아니라 토끼족 전원이 이런 식으로 복장을 하고, 목에 쇠고랑을 찬 채로 충성을 맹세했다. 영원히 강림을 위한 노예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모든 토끼족이 식민지가 된다는 결정을 받아들인 건 아니었다.
-선대 여왕님이 갈고 닦으신 왕국입니다. 폐하께선 이 왕국을 하루 만에 없애실 작정이십니까?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폐하. 이럴 수는 없습니다!
-나라가 있어야 백성들이 살 수 있는 법입니다. 나라를 잃은 백성들에게 미래가 있다고 보십니까? 부디 다시 한번 생각해주십시오.
해적들에게 패배하고, 속령이 되었으나, 나라를 포기해선 안 된다. 어떤 굴욕을 당하든 자신들이 세운 나라를 버려선 안 된다. 언젠가 다시 일으킬 수 있다는 마음으로, 어떤 고난에서 버티는 고목 같은 마음으로 견뎌야 한다. 그리드의 무자비함에 공포에 떨던 신하들이었으나, 이번만큼은 용기를 갖고 직언을 날렸다.
그렇게 용기를 낸 신하들은,
“흐익, 히익, 히헤헤헤….” “죄, 죄송합니다, 폐하. 이제 모셔야 할 주군은 당신이 아니라….” “막돼먹은 짓을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폐하. 정말 죄송합니다아아아….”
한 명도 빠짐없이 강림에게 먹혔다. 신하들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반감을 품은 자들 전원을. 강림은 이들 역시 여우섬으로 데려오라고 레비에게 지시했고, 레비는 강림의 믿음을 배반하지 않았다.
그렇게 자신들이 모시던 여왕의 손에 의해 끌려온 충신들은 강림에게 겁탈당했다. 싸고, 임신시키고, 출산하기를 끊임없이 반복 당하고, 끊임없이, 끊임없이 강림이 싸지르는 정액을 먹어야 하고, 위아래로 다 당하면서 이들은 서서히 망가져 갔다.
망가진 끝에, 정액 범벅이 된 상태로 그들은 바닥에 널브러졌다. 새 생명들을 만삭의 배를 어루만지며 그들은 배시시 웃었다.
웃으면서 그들은 맹세했다.
“““모든 것은 그리드 왕을 위해서.”””
그들이 지켜야 하고, 모셔야 할 여왕은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그들이 새롭게 모셔야 할 폭군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이변이 생기지 않는 한 이들은 영원히 그리드를, 강림을 모시게 될 거다.
“그보다, 주인님. 주인님은 수도를 어디로…흐윽? 삼을지 정하셨습니까?”
레비가 물었다. 강림이 멈췄던 자지 박기를 재개하자, 그녀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원하신다면 제 왕성을 수도로 삼아도 상관없습니다.” “왕성을? 너희 어미가 피땀 흘려 새운 성이잖아? 괜찮아?” “상관없습니다. 하윽?”
강림은 레비의 오른쪽 젖가슴을 깨물었다. 쪽쪽 빨아대며 나오는 모유로 갈증이 난 목을 적셨다. 자기 자신이 빨리는 것 같은 기분에 레비의 붉은 눈동자에는 하트 문양이 새겨졌다.
“어, 어머니도 분명 이해하실 거예요.”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레비는 강림을 강하게 껴안았다. 배가 짓눌러 아프지만, 레비는 애써 참아냈다.
“동족을 부흥해줄 남자에게 바치는 걸 천국에서도 이해해주실 겁니다.” “….”
글쎄다, 이런 쳐 죽일 년이라고 통곡하지 않을까? 이유가 어찌 되었든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 짓을 저질렀으니까.
그리고 자신은 토끼족도 다른 종족과 똑같이 육노예로 삼을 생각이다. 머리가 좀 돌아가는 녀석들은 간부로 삼겠지만 그게 아닌 자들은 평생 가축으로 삼을 거다. 그런 생각으로 가득 찬 자신에게 저런 얘기를 꺼내니 강림도 살짝 양심이 찔렀다.
찔렀지만, 방향을 바꿀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래, 그렇다고 생각할게.”
입을 뗀 강림은 그리 말했다. 그가 문 토끼의 가슴은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빨갛게 달아오른 젖꼭지에는 모유가 방울방울 떨어졌다.
“근데, 나는 이 섬을 수도로 삼고 싶어.” “여기 여우섬을요?” “그래.”
강림이 수도로 삼고 싶어 하는 곳은 정해뒀다. 정한 이유는 딱히 거창하지도 않았다.
“내가 처음 눈을 뜬 곳이니까.” “눈을 뜬 곳?” “이해하지 못해도 좋아. 그냥 그렇다고 생각해 둬.”
현실에서 사망하고 그리드의 몸으로 환생했습니다. 새로 태어난 곳이 여우섬이니 여우섬을 수도로 삼고 싶습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라고 설명을 해봤자 알아먹지 못할 거다. 자신이 빙의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힘들 테니까. 아트리아가 나서서 설명하면 되겠지만, 강림은 굳이 그럴 생각이 없었다.
만약 아트리아가 진실을 밝힐 생각이었다면 진작에 밝혔을 테니까. 비서가 밝힐 생각이 없으니 당연히 강림 자신도 굳이 밝힐 생각도 없었다. 어차피 밝히든 안 밝히든 상관없으니까.
이제 자신은 폭군이 될 거고, 폭군이 되어 이 세상을 지배할 거니까. 더는 빙의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리드에게 주어진 배드 엔딩 선택지를 요리조리 잘 피해서 제국을 세우는 것. 잘 피해서 해피 엔딩을 맞이하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다.
이 과정에서 누가 배드 엔딩을 맞이해도 강림은 신경 쓰지 않을 거다. 누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든 자신이 정성스럽게 돌보면 그만이니까.
“음, 알겠습니다.”
레비는 딱히 따지지 않았다.
“군주에게는 숨기고 싶은 비밀이 하나씩 있으니까요. 캐묻지는 않겠습니다.”
물어봤자 대답하지 않을 것 같지만. 그런 속마음을 애써 입 밖으로 레비는 꺼내지 않았다. 대신, 제안했다.
“그러면 저희 쪽에서 기술자들을 보내겠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성을 대령하겠어요.” “그거 고맙지.” “하오옥?”
보답의 의미로 강림은 더 빠르게 허리를 놀렸다. 머리끝까지 관통당하는 찌릿함에 레비는 허리가 약간 휘어졌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레비. 통치자로서 조언 아낌없이 해주라.” “네, 알겠습니다…하앙, 하앙, 하아아앙!”
안이 정액으로 가득 채워지는 감각에 레비는 부들부들 떨다가 축 늘어졌다.
“아아, 아아아, 아아아아악!”
다른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레비는 그 자리에서 출산했다.
“에헤, 에헤헤, 아기다. 아기. 나와 주인님의 아기….”
새로운 다섯 명의 아이가 나온 것에 레비는 진심으로 기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