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정복하라, 지배하라, 진짜 보스가 되어라-57화 (58/344)

Chapter 57 - 57화- 죽인만큼 낳으라는 형벌을 내리노라

'역시 이 녀석도 이리스와 별반 다를 게 없네.'

마치 절대 봐서는 안 될 악귀를 본 것처럼 겁에 질려 있다. 그런 타이의 모습에 탈리아는 과거 동료의 모습이 떠올랐다.

주제도 모르고 그리드에게 덤볐다가 소중히 여겼던 것을 전부 잃어버린 동료, 이리스의 처참한 말로를 탈리아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었다.

'누, 누가 네놈의 하수인이 될 것 같아? 반드시, 반드시 널 죽일 거다!'

권유를 가장한 협박에 굴복한 탈리아가 그리드의 노예가 되었을 때. 이리스는 그리드의 침공에 완강하게 저항한 기사였다. 그녀의 가문이 다스리는 섬이 점령당하고, 본인마저 붙잡혀도 이리스는 저항을 포기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노예가 되지 않겠다고, 고향을 불태우고, 주민들을 학살한 악마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겠다고. 침략의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소리쳤다. 그게 빈말이 아님을 증명하듯이 이리스는 틈만 나면 끊임없이 그리드의 목숨을 노렸다.

당연히도 암살 시도는 모조리 다 실패로 돌아갔으며,

'아, 안 돼. 싸지 마. 싸지 마, 싸지 마아아아!'

그 대가로 이리스는 항상 겁탈당하는 형벌을 받았다. 언제나 이리스의 음부에는 항상 그리드의 기둥이 박혀 있었고, 언제나 음란한 소리가 끊이질 않았으며,

언제나 만삭의 몸을 가지는 날이 많았다.

'아아아악! 나는, 나는 네 수하가 아니…아아아아아악!'

그렇게 수많은 실패를 겪고, 그 대가로 매일 겁탈 당하고, 그 결과 원치 않은 임신을 끊임없이 하는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도 이리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그리드의 목숨을 취하려고 했다.

결국 뚜껑이 확 열려버린 그리드는 이리스를 세뇌했다. 꼭두각시 인형으로 만든 그리드는 이리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리스의 가족을, 친구를, 주민들을 모조리 다 망가뜨리라고. 주인에게 봉사하는 것 말곤 그 어떤 것도 떠오르지 못하는 가축으로 만들라고. 자신에게 칼을 들이대는 자가 있다면 상대가 누구든 간에 그 목을 베어버리라고. 세뇌당한 이리스는 그리드의 명령을 충실히 따랐다.

자신의 어머니를, 동생들을, 언니들을, 가문을 위해 일하는 시녀들을, 자신이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주민들을 전부 가축으로 가공했다. 아무리 그들이 정신 차리라고 외쳐도 이리스의 귀에는 들어오질 않았다. 주인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만을 최우선으로 여길 뿐.

그렇게 자신의 소중한 것을 모조리 다 부숴버린 이리스는,

'이, 이게 내, 내가 저지른 일이라고?'

세뇌가 풀린 직후 그 사실을 알고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자신의 의지로 저주를 푼 건 아니다.

네놈이 저지른 짓을 직접 눈으로 보라는 이유로 그리드가 일부러 풀어준 것이다. 자신이 지켜야만 했던 소중한 사람들이 모조리 가축이 된 현실에, 그 현실을 자신이 만들어냈다는 사실에 긍지 높은 여기사는 무참히 무너졌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가, 내가, 이 남자를…아아, 아아아아악!'

자신과 약혼하기로 약속했던 남자를 자신의 손으로 손수 목을 친 것도 모자라, 시신을 토막을 내서 상어들의 밥으로 던져줬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정신이 붕괴하고 말았다.

그런 이리스를 그리드는 그 자리에서 겁탈했고,

'아하, 아하하하하! 이젠 모르겠어. 하나도 모르겠어. 아하, 아하하하하!'

원수에게 모든 걸 빼앗기고, 소중한 걸 자신의 손으로 부쉈다는 현실에 절망한 이리스는 망가졌다. 망가져 버린 여기사를 악마는 자신의 입맛대로 가공했고, 가공 당한 여기사는 악마의 충실한 노예가 되었다.

그렇게 해서 지금의 이리스가 완성되었다. 오직 주인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오직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여기사로 다시 태어났다.

그렇게 이리스를 다시 태어나는 데 일조했던 그리드의 악랄한 계략을 탈리아는 이용했다.

'세뇌로 기억을 봉인하고, 나중에 확 터트린다. 이거 참 좋은 방법이네.'

타이가 6일 동안 당했던 끔찍한 일들을 탈리아는 일부러 봉인했다. 손에 든 금속판에 저장된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으로 봉인을 하나씩 해제했다. 해제할 때마다 타이의 얼굴은 공포에 빠져들었고, 다 해제되었을 때는 예전과 같이 분노로 활활 타오르지 않았다.

또 무슨 짓을 당할까 두려워 오들오들 떨기만 할 뿐이었다. 그 모습에 탈리아는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생각해 보면 암살 부대도 마찬가지였지.’

강림의 명령에 따라 암살 부대에 걸린 세뇌도 풀렸다. 풀린 대신, 언제든 인형으로 되돌릴 수 있는 명령어가 머릿속에 심어졌다.

강림의 자비로 원래 인격을 되찾은 그녀들이었으나,

‘다들 타이처럼 겁에 질렸지.’

강림에 대한 적개심을 품기는커녕 두려워했다. 또다시 자신들을 세뇌할까 봐 두려워했다. 두려운 나머지 무조건 복종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암살 부대를 이끄는 대장도 마찬가지였다.

두려워하는 게 당연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언제든지 이용당할 수 있는 처지인데 어찌 두렵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당장 탈리아 자신도 만약 그런 꼴을 당한다면 바로 공포에 떨었을 거다. 또다시 조종당해 이상한 짓에 동원되는 게 아닐까,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도 아무 이유 없이 죽는 게 아닐까 무서워할 거다.

그렇게 되는 게 무섭다면 안 하는 게 당연하지만,

‘저런 표정 보는 것도 은근히 재밌네.’

더 하고 싶다.

‘객기부리는 여우 놈들이 몇 명 있는데 한번 써먹어 보자.’

망가뜨리고 복종시킨다. 복종시켜서 자신들의 동료로 삼자. 삼아서 행복을 누리게 만들자. 거짓이지만, 그렇다고 거짓이 아닌 낙원에서 살아가는 행복을 누리게 만들자. 그 대가가 씨받이라 해도 상관없을 거다.

어차피 그리드가 세상을 정복하면 그렇게 살게 될 운명이니까. 그런 운명에 순종하는 것을 탈리아는 불합리하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탈리아 본인도 그리드에게 겁탈당하는 걸 즐기는 몸이니까.

그렇기에, 무서워도 멈출 생각이 탈리아에겐 없었다.

‘우후후, 다들 어떤 표정을 지을까? 벌써 기대되네.’

지금까지 그리드라는 귀신 때문에 숨을 죽이며 살아왔지만, 이젠 안 그래도 된다. 맘껏 자신이 원하는 걸 펼칠 수 있다. 더는 실패한다고 덜덜 떨 필요도 없다.

마음껏 실험하자. 마음껏 실험체들을 조교 하자. 마음껏 그들의 마음을 무너뜨리고, 자신과 동류로 만들어버리자. 그러면 행복해질 수 있을 거다. 숨겨왔던 광기를 탈리아는 맘껏 드러냈다.

그 광기의 희생양이 될 타이에게 무슨 짓을 할지 탈리아는 곰곰이 생각했다.

‘육신은 개조했고, 명령어는 입력했고, 기술들은 싸그리 없애버렸고, 미각은 오늘 중으로 끝내면 되고….’

무언가 빼먹은 것 같은데. 계속 머리를 굴리던 탈리아는,

"아 맞아. 그걸 잊고 있었네."

마침내 떠올렸는지 손바닥에 주먹을 탁, 쳤다.

“매일 배란하도록 만들어야지. 그래야 순산형으로 써먹을 수 있지.” “우으윽?”

배란? 순산형?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의문을 표하는 타이를 보며 탈리아는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실은 너를 어찌 처분할지 논의했거든.”

강림이 괴수가 되어 타이를 막아내는 데 성공함으로써 여우섬이 쑥대밭이 되는 걸 가까스로 막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피해가 너무 컸다.

“우리 귀중한 철선을 바다에 수장시킨 것도 모자라 장병들까지 죽인 너를 가만히 둘 수 없다는 의견이 많았어.”

기함 두 척. 호위함 다섯 척. 전부 타이가 침몰시킨 함선 수다. 순식간에 함대 수가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여기에 희생된 장병들 숫자는 700명 이상. 가용할 수 있는 전체 병력이 2천여 명임을 고려하면 막대한 피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 정도의 피해를 이 입었다고 <더 퀸즈>가 붕괴하는 일은 없다. 바로 복구할 수 있다.

함선을 제작하는 시설은 그리드의 고향 땅에 마련되어 있다. 가서 시설을 재가동하면 바로 전력을 복구할 수 있다.

병력도 마찬가지. 현재까지 그리드가 떡을 치면서 낳은 자식들의 수는 많다. 그중에서 당장 병력으로 써먹을 수 있는 장병들은 수백 명에 이른다. 현재 이들은 이리스의 고향 땅에 잠들어 있으며, 필요하다면 당장 가서 깨울 수 있다.

강림이 깨어나야만 묻혀 두었던 보물들을 꺼낼 수 있다는 게 치명적인 문제지만 말이다.

“우리 주인님을 깨어나지 못하게 만들었으니 더더욱 가만둬선 안 된다는 말이 많았어.”

시설을 다시 가동하는 것도, 잠들어 있는 장병들을 깨우는 일도 전부 강림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 강림이 현재 6일째 혼수상태에 빠져 있어 계획에 차질이 생기고 말았다.

계획에 차질이 생기게 만든 원흉은 바로 타이다. 그러니 모두의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왕국이 자신들을 토벌하기 위해 병력을 소집 중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 마당인데 이에 대비할 수 없으니 간부들은 타이를 용서할 수 없을 거다.

탈리아 역시 간부들과 같은 의견이었다.

“해서 너한테 어떤 벌을 내리는 게 좋을까, 다들 고민했어.” “….” “옛날 주인님이 하신 방식대로 갈기갈기 찢어서 상어들한테 던져버리자는 말도 있었어.”

옛날의 그리드는 무자비했다. 자신을 머리끝까지 화나게 한 자는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하게 잘게 썰어버리고, 바다에 던져버렸다. 지금 타이가 저지른 죄를 생각하면 그렇게 되고도 남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 주인님은 그걸 바라지 않지”

그러나, 지금 주인님은 그리드가 아닌, 정강림이다.

“지금의 주인님은 불필요한 살생을 원하지 않아. 가능하면 살리고 싶어 하시는 분이지.” “….” “그것이 설사 너 같은 죄인일지라도.”

어차피 악당이 된 이상 착하게 사는 건 무리다. 싸우고, 승리해서 안락한 삶을 쟁취할 수밖에 없다. 피를 흘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필요 이상의 살생은 벌일 이유는 없다. 그러니, 만약 생포할 수 있다면 생포해라. 여자든 남자든 관계없이. 앞으로 나라를 세우기 위해선 죽이는 것 보다 살리는 게 더 이득이니까.

그게 지금의 그리드, 강림의 방식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참수 말고 다른 벌을 내리기로 가닥을 잡았어.”

그 방식에 거역하지 않는 선에서 간부들은 타이에게 어떤 벌을 내릴 건지 방침을 정했다.

“죽인만큼 낳아.”

탈리아는 담담히 선포했다.

“네가 죽인 700명을 네가 낳아. 그게 우리가 내리는 형벌이야.” “우으으으…”

새파래진 얼굴로 타이는 탈리아를 쳐다봤다.

‘미친, 그게 말이 돼?’

700명이라니. 그걸 어찌 낳을 수 있단 말인가. 죽을 때까지 임신과 출산을 반복해도 가능할 리 없다.

자연의 법칙을 생각하면 이는 옳은 소리라고 볼 수 없으나,

"말이 안 된다고? 웃기는 소리. 너희 수명 길잖아?"

유감스럽게도 <더 퀸즈>에선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무리라는 말이 판에 나오자 탈리아는 어이없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너희 수인들은 수명이 기니까 그 정도는 낳을 수 있잖아, 안 그래?" "우으으윽, 우으으윽!" "정 하기 무서우면 네 동족에게 할당량을 배분해줄까? 원한다면 그리해줄게. 어차피 다 잡았으니까." "우읍?"

다 잡았다고? 그건 또 무슨 소리지? 의문을 표하는 타이를 보며 탈리아는 충격적인 사실 하나를 알려줬다.

"수인 연합은 붕괴했어. 너희들은 전쟁에서 패배했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