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5 - 55화- 지옥에 돌아오신 걸 환영합니다, 호랑이여
"우으으…."
타이는 눈을 떴다.
'여, 여기는 어디야? 서, 설마….'
실험실이다. 전에 전기 고문에 시달렸던 함선 내의 실험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방이 장난 아니게 넓었다. 도대체 어디에 써먹는지 알 수 없는 설비들도 많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약병들도 많았다.
다신 떠오르기도 싫은 지옥에서 타이는 깨어났다. 왜 여기에 있는지, 언제 끌려왔는지 알 수 없었다.
더 혼란스러운 것은,
'도, 돌아왔어?'
지금 자신은 괴물이 아니라는 거다. 시선을 아래로 내린 타이는 털가죽이 아닌, 살구색 피부를 보고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도, 돌아오지 못하는 거 아니었나?'
처음 <본능 회귀>를 사용해서 선조들과 같은 모습이 되었을 때는 운이 좋았다. 장기간 그 모습을 유지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금방 본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는 그런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봤다.
돌아가겠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으니까. 자신의 명예를 실추한 쓰레기들을 모조리 다 씹어 먹어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으니까. 오직 복수만이 머릿속에 가득 채워졌으니까. 증오의 화신이 되어버린 타이는 다신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리고 말았다.
그렇기에, 영원히 괴물로 살 줄 알았다. 그것이 복수의 대가라고 하면 기꺼이 받을 생각이었다. 만약 자신을 괴물이라고 배척한다면 묻지도 따지지 않고 다 죽일 작정이었다. 자신을 존중해주지 않는 자는 이 세상에서 필요 없으니까.
그렇게 타이는 짐승이 되어갔다. 이성이 본성에 물들어지면서 인간에서 맹수로 변해갔다.
그랬던 자신인데, 어떻게 인간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걸까? 분명 마지막에 그 검은 괴물에 의해 가슴이 꿰뚫렸을 텐데. 어찌 살아난 걸까? 재생력이 봉인된 이상, 구멍이 뚫린 이상은 살아남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텐데.
혹시 이곳은 지옥이 아닐까? 그래서 자신이 가장 싫어했던 장소에서 눈을 뜬 게 아닐까?
그래, 구멍이 쉽게 메워질 리 없잖아? 어쩌면 구멍이 여전히 뚫려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번 확인해보자는 심정으로 타이는 심장이 있는 쪽으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뻗을 수가 없었다.
"우으으?"
이제야 타이는 깨달았다.
자신은 분만대에 앉아 있다는 것을. 사지가 구속되어 꼼짝할 수 없다는 것을.
"우으으, 후으으으…."
입도 봉쇄되어 제대로 말을 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깨달았다. 아직 잠이 덜 깨서 말이 잘 안 나오는 건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누, 누가 나한테 재갈을 물린 거야?'
가운데에 구멍이 뻥 뚫린 재갈. 지금까지 타이가 본 것 중 가장 큰 재갈이 입에 물려 있다. 물려 있기에 타이는 강제로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벌리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우으으, 우으으으…."
혓바닥도 강제로 사출된 상태다. 밖으로 나온 혀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작은 금속 막대기로 재갈과 혓바닥이 연결되어 있었다. 혓바닥 구석구석에는 작은 전기 패드들이 부착되어 있었다.
혀뿐만 아니라 타이의 전신 구석구석에 전기 패드가 부착되어 있었다. 목도, 가슴도, 다리도, 팔도, 전부 다. 머리에는 바가지를 연상케 하는 기계 장치가 씌워져 있으며, 젖꼭지와 음핵에는 바늘이 꽂혀 있었다. 바늘 끝자락에는 작은 전선이 연결되어 있었다. 보지와 항문에는 강림의 자지와 맞먹는 크기의 막대기가 깊숙이 박혀 있었고, 막대기는 타이 앞에 있는 직사각형 모양의 기계 장치와 연결되어 있었다.
'이, 이건….'
똑같다. 배에서 당했던, 고문받던 모습과 똑같다. 아니, 그 이상이다. 아무리 지옥이라지만 이건 좀 아니지 않은가? 아니, 지옥이 맞긴 할까? 패드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감촉은 도저히 가짜라고 할 수는 없는데.
"깨어났네?"
그렇게 타이가 현실을 부정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들어왔다.
“어제 하도 지져대서 못 일어날 줄 알았는데….”
검은색 더벅머리의 여자다. 흰색 가운을 입은 여성, 탈리아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타이를 쳐다봤다.
“우으으으, 우으으응!” “어디, 무슨 말을 하는가 볼까나?”
탈리아는 손바닥만 한 판 하나를 가운 주머니에서 꺼냈다. 금속 재질로 만든 판 위로 문장들이 나열되었다.
[네놈은 누구야, 누구냐고!]
<해독기>. 고대 유물 중 하나다. 그리드가 쓸모없다는 이유로 탈리아에게 준 선물이며, 이 선물을 통해 탈리아는 타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부 다 해독해주는 게 이 유물의 특징이니까.
“내 이름이 궁금한가 보구나. 질리도록 말했는데도 기억하질 못하다니.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지 모르겠네.” “우음?”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의문을 표하는 타이를 보며 탈리아는 자신을 소개했다.
“내 이름은 탈리아. 너를 가축으로 개조하고 있는 연구 주임이지.” “우으윽? 우으으음?” “넌 안 죽었어, 병신아. 죽었다면 이곳에 있을 수 있겠냐?”
자신이 지옥에 있는 거 아니냐는 말이 판 위에 나타나자 탈리아는 어이없다는 투로 대답했다.
“우으, 우으으으, 우으으으으….” “주인님에게 패배한 주제에 참 말이 많네.” “우으으윽, 우으으읍!” “유감스럽게도 네가 상대한 그 검은 괴물이 우리 주인님이야.”
자신이 상대한 것은 검은 괴물이다. 그리드가 아니라는 말이 판 위에 나타나자 탈리아는 진실을 얘기해줬다.
“네놈이 썼던 기술을 주인님도 썼다고 해. 그래서 검은 괴물이 될 수 있었지.” “우으으윽?”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본래 세상을 호령하던 선조들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건 수인들에게만 허락된 일이거늘, 어찌 인간이 그걸 쓸 수 있단 말인가? 타이가 놀라는 것처럼 탈리아 역시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그래, 정말 말이 안 되는 일이지. 수인이 괴수가 된 적이 있다는 말은 들었어도, 인간이 괴수가 된다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거든.” “우으으으….” “수아가 한 말에 따르면….”
실험실에서 나와 다른 사람들과 함께 기함으로 대피한 탈리아는 봤다. 멀리 떨어져서 제대로 보질 못했지만 확인할 수 있었다.
주인님이 싸우는 전장에서 검은색 아우라가 하늘 높이 솟구치는 광경을. 아우라가 사라진 직후, 전신이 검은색 갑주로 이루어진 괴물이 나타난 모습을.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탈리아 역시 마찬가지였고.
나중에 그 괴물이 강림이 변신한 모습이었다는 사실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요력석을 먹은 상태에서 주문을 그 자리에서 외쳤다고 하더라.”
무슨 조건을 만족했기에 주인님이 괴물로 변신할 수 있었던 건지 탈리아가 묻자 수아는 순순히 대답해줬다.
“위대하신 선조시여, 허물을 벗을 힘을 주옵소서. 모든 걸 불태울 힘을 주옵소서…라고, 외쳤대. 그걸 외치고 나니까 괴물이 된 거고.” “우으으으으….”
가능할 리 없다. 가능할 수 없어.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어째서 그딴 쓰레기가 수인들의 힘을 쓸 수 있단 말인가? 애초에 인간은 그런 힘을 쓸 자격조차 없는데. 세상의 법칙이 깨진 걸 목격한 사람처럼 타이의 얼굴은 충격과 공포로 도배되었다.
“믿기 힘들겠지만, 다 사실이야.”
판에 나온 문장들을 보며 탈리아는 담담히 말했다.
“아무리 부정해도 주인님이 변신했다는 것 자체는 변하지 않아.”
그때 그 광경을 탈리아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었다. 괴물이 된 주인을 본 것만으로도 무례하다는 생각에 저절로 무릎을 꿇어버렸으니까. 전능하신 창조주를 본 것처럼 탈리아는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만약 세상을 엎어버리겠다고 선언하면 진짜로 엎어버리지 않을까,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주인님도 참 대단해. 스스로 괴물이 되는 길을 택하다니. 원래부터 괴물이긴 했지만.” “....” “그래도 무리는 하지 말았어야지.”
탈리아는 짧게 탄식했다.
“이 여자를 구하겠다고 힘을 다 흡수하면 어쩌자는 건지.” “우음?”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그 의문에 탈리아는 바로 대답했다.
“네놈을 구하겠다고 네가 가진 모든 걸 흡수했어. 무슨 일이 생길지 장담할 수도 없는데도 말이야.” “우으으음?”
자신을 구하려고 모든 걸 흡수해? 그 말을 들은 타이는 뒤늦게 깨달았다.
‘히, 힘이 느껴지지 않아?’
항상 수정의 힘이 사라졌다. 수정에서 나오는 파동을 더는 느낄 수가 없다. 설마 그리드가 자신의 수정을 강탈했다는 건가? 혼란스러워하는 타이를 보며 탈리아는 입을 열었다.
“다시 말하는 거지만….”
지겨워서 다신 담기도 싫지만, 놈이 충격받는 모습이 재밌기에 탈리아는 얘기해줬다.
“주인님이 널 구한 건 씨받이로 써먹기 위해서야.”
괴수가 된 강림은 타이를 제압했다. 제압하고, 그녀의 힘을 빼앗았다. 빼앗고, 그녀를 원래 상태로 복구했다. 원래 그리드였다면 죽이고 강탈하는 게 법칙이겠지만, 지금의 그리드는 아니었다.
‘내, 내가 왜 이놈을 죽여?’
죽이기에는 아깝다. 수인 연합에서 나름 알아주는 강자가 아닌가? 이런 강자를 모체로 써먹는 게 좋지 않겠냐? 비록 우리 함대에 막대한 피해를 준 썩을 년이긴 하나, 그 피해를 복구할 자궁을 가지고 있다.
그 자궁을 써먹는 게 좋지 않을까?
‘씨, 씨받이로 쓸 건데 내가 왜, 왜 죽여야 해?’
아주 훌륭한 씨받이가 될 여자를 어찌 버리겠는가? 아무리 이 호랑이 년에게 화가 나더라도 씨받이로 쓸 거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맛보게 할 거다. 그러니 항의해도 다 묵살(默殺)할 테니 그런 줄 알아라.
‘그러니, 이 년을 개조….’
그 말을 끝으로 강림은 혼절하고 말았다.
“써먹고 싶으니 개조하라. 그래서 지금 널 개조하고 있지. 그게 일주일째고.” “우으윽?”
일주일? 자신은 이제 막 깨어났는데, 일주일 동안 개조 받고 있었다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타이를 향해 탈리아는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이상하지? 너는 이제 막 깨어났는데, 나는 일주일이라고 말하니.” “….” “하지만 사실이야.”
탈리아는 왼손 검지로 판을 꾹꾹 눌러댔다.
“이게 바로 그 증거고.”
그렇게 눌러낸 끝에,
[잘못했어.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아아아아아아!]
한 여성의 절규가 판에서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