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0 - 50화- 금단의 힘을 쓴 대가
“하으으윽, 흐으으으, 으으으으….”
남서쪽 수많은 섬 중 아무도 살지 않는 작은 무인도. 그 무인도에 있는 동굴에서 한 여성이 고꾸라져 있다. 고꾸라진 상태로 신음을 흘리고 있다. 언뜻 보면 아파서 저러는 건가 보이겠으나,
“하으윽, 흐아아아, 으아아아악!”
분노에 찬 것처럼 포효를 내질렀다. 동굴 내부가 흔들릴 정도로 여성이 내지른 포효는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 그렇게 질러대다가도,
“흐으윽, 흐으으윽, 흐아아아….”
다시 고통에 겨워하는 소리가 입에서 흘러나왔다.
신음과 포효. 결코 어울릴 수 없는 두 소리가 번갈아 가며 여성의 입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내뱉을 때마다 그녀의 얼굴은 시체처럼 창백해져 갔다.
“흐으으, 겨, 견뎌내야 해….”
머리는 사자를 연상케 하는 주황색 갈기였다. 갈기 사이사이에는 검은색 물결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성의 둔부에는 주인의 상태를 알려주듯 긴 꼬리가 축 늘어져 있었다. 옆머리 양쪽에 나 있는 꼬리도 힘을 잃은 듯이 축 처져 있었다.
본래대로였다면 진작에 기운을 되찾고 일어서야 하나, 여성은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이겨내야, 이겨내야….”
내면을 차지하려는 본성과 계속 투쟁해야 하니까. 호랑이족 수장, 타이는 이성을 유지하려고 악착같이 버텼다.
“하으으윽, 흐으으윽, 하으으으….”
머릿속에서 계속 울린다.
먹어라, 먹어라, 먹어라, 먹어라. 먹어서 강해져라. 강해져라, 강해져라, 강해져라. 그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모습. 우리가 되찾아야 할 모습. 인간이란 허물을 벗고 본 모습으로 돌아가야 할 때. 앞을 가로막은 적들은 모조리 죽이고, 모조리 먹어 치워라. 계속 먹어 치워 정점에 선 존재임을 알려줘라.
너는 그럴 자격이 있으며, 그 자격을 맘껏 뽐낼 수 있으리라.
그러니 먹어라, 먹어라, 먹어라, 먹어라. 눈앞에 기어 다니는 저 생쥐를 뜯어먹어라. 뜯어먹어라, 뜯어먹어라, 뜯어먹어라. 먹어서 본모습으로 돌아가는 거다. 돌아가는 거다. 돌아가는 거다.
‘그, 그래. 나, 나는 돌아가야….’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법칙을 버려야 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규칙이라고 여긴 저주를 풀어야 한다.
그러기 위한 첫 단추로 생육을 먹어야 한다. 눈앞에 생쥐가 있으니 저것부터 시작하자. 그런 다음에 점점 큰 놈들을 사냥하자.
몽유병에 걸린 사람처럼 멍해진 타이는 눈앞에 있는 생쥐를 향해 손을 뻗었다. 생쥐가 반응조차 하기도 전에 잽싸게 낚아챈 타이는 입안으로 생쥐를 집어넣어….
“아냐, 아냐, 아냐!”
타이는 바로 정신을 차렸다.
“또, 또 먹을 뻔했어….”
발버둥 치는 생쥐를 타이는 바로 내던졌다. 바닥에 떨어진 생쥐는 부리나케 도망쳤다. 도망치는 생쥐를 향해 타이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을 뻔했으나, 도로 거뒀다.
또다시 본능에 먹힐 뻔했다는 사실에 타이는 머리를 양손으로 감쌌다.
‘이것이 아버지께서 말한 대가인가?’
호랑이족 수장은 대대로 타이의 혈족들이 계승했다. 그러니 전대 수장이 아버지였던 타이가 그 자리를 물려받을 거라 생각되겠으나, 실상은 아니다. 다른 수인들이 수장의 자리를 두고 경합을 벌이는 것처럼, 호랑이족 수장 자리 역시 타이의 혈족들이 경합을 벌인다.
타이는 그 경합에서 승리했고, 승리의 대가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때 타이의 아버지는 이리 말했다.
‘딸아,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수정의 힘을 쓰면 안 된다.’
호랑이족 수장이라면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수정. 호랑이의 기운을 받아서 그런지 색깔은 주황색이었다. 이 수정을 삼킨 타이는 아버지로부터 주의 사항을 들었다.
‘위기에 닥치면 쓸 수밖에 없겠지만, 되도록 쓰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타이의 아버지는 이 힘을 쓴 수장의 이야기를 타이에게 해줬다.
‘우리 호랑이족이 인간들의 공격으로 멸족의 위기에 처했을 때, 네 고조할아버지께서 수정의 힘을 썼단다.’
아직 왕국이 법으로 수인들을 보호하기 전. 호랑이족 역시 인간들의 사냥 대상이었다. 인간들보다 우월한 신체 능력을 지닌 호랑이족이었지만, 인간들이 작정하고 나서면 천하의 호랑이들도 사냥당할 수밖에 없었다.
타이의 고조할아버지가 수장으로 있을 때는 사냥이 매우 심했으며, 아예 섬을 점령하기 위해 상륙전까지 펼칠 정도였다.
그런 사악한 인간들로부터 동족을 보호하기 위해 타이의 고조할아버지는 수정의 힘을 이용했다. <본능 회귀>라는 기술을 써서 거대한 호랑이가 된 고조할아버지는 사냥꾼들을 모조리 다 참살했다.
여기까지 보면 잘 끝났다고 볼 수 있겠으나,
‘힘을 쓰신 고조할아버지는 짐승으로 전락하셨단다.’
힘을 쓴 대가로 타이의 고조할아버지는 본능에 삼켜지고 말았다.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을 먹잇감이라 여기고 모조리 다 먹어 치우려는 맹수가 되고 말았다. 동족을 지키기 위해 괴물이 되었던 타이의 고조할아버지는 결국, 그 동족의 손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비극으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딸아. 무슨 일이 있어도 힘을 쓰지 마라.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결코 수정에 기대지 말 거라. 이 아비는 네가 짐승으로 전락하는 걸 보고 싶지 않단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말대로 타이는 수정의 힘에 기대고 싶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모든 걸 다 해결하고 싶었다.
그러고 싶었으나, 결국은 쓸 수밖에 없었다.
“하으으윽, 흐으으윽, 흐끄으으으….”
평화로웠던 낙원에 쳐들어온 극악무도한 악당 그리드. 그 그리드와 싸운 타이는 패배했다. 패배하고 개조당했다.
가슴이 커지고 젖으로 가득 차 무거워지는 바람에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었다. 단련을 통해 얻은 근육은 지방 덩어리로 변했고, 골반이 넓어지고, 허벅지가 튼실해진 흉측한 모습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다시는 격투가로 싸울 힘을 타이는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런 타이에게 남은 길은 하나. 가축이 되는 것뿐이다. 그리드에게 고문당한 끝에 미쳐버리고, 미쳐버린 상태에서 녀석이 원하는 대로 몸을 내준다. 그렇게 몸을 내준 대가로 녀석이 원하는 병사들을 잉태한다.
그렇게 되는 걸 타이는 원치 않았다. 아버지는 물론이요, 위대하신 선조들의 얼굴에 먹칠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힘을 사용해 탈출했다.
그렇게 탈출을 위해 쓴 대가를 타이는 처절하게 받고 있었다.
‘이겨, 이겨내야 해….’
본능에 취해지면 안 된다. 자신의 고조할아버지와 같은 비극을 맞이할 순 없다. 무조건 견뎌내야 한다. 악착같이 견뎌서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결코 짐승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아직 적이 건재한 마당에 자신이 연합을 내부에서 무너뜨리는 적이 될 순 없다.
이러한 이유로 타이는 호랑이섬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갑자기 자신이 날뛰기 시작하면 가뜩이나 약해진 연합이 무너질 수 있으니까. 동족들에게 해를 끼칠 바에야 차라리 아무도 없는 섬에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이어가는 게 낫다.
그렇게 고독한 싸움이 이어가는 동안 연합은 멸망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을 타이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아, 타이 씨, 여기에 있었군요.” “…!”
누가 왔다. 타이는 본능적으로 도약했다. 적인지 아군인지 모르나, 일단은 제압해야 한다. 아무리 약해졌어도 한 놈은 팰 수 있다. 입구에 보이는 사람 인영을 향해 타이는 주먹을 휘둘렀다.
허공을 가르는 소리만 들려왔다.
“뭐?” “와, 진짜 약해지셨네.” “윽?”
그대로 팔이 꺾인 채 바닥에 엎어진다. 대체 누가 온 거지? 제압당한 타이는 간신히 눈동자를 위로 굴렸다.
“너, 너는….” “반가워요, 타이 씨.”
흰색 머리의 구미호다. 꼬리는 물론이요, 귀도, 눈동자도, 입고 있는 한복도 다 흰색이다. 이 구미호의 정체가 누구인지 타이는 알고 있었다.
“서, 설화?”
설화. 구미호족 수장 수아의 여동생이다. 그리드를 몰아내기 위해 엘프들의 협력을 받아오라는 지시를 받았던 설화가 이 자리에 있었다. 분명히 대산림에 있어야 할 설화가 이곳에 나타났다는 사실에 타이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너, 너 왜 여기에 있는 거야? 다른 일행은? 왜 너 혼자만 있는 거야?” “놔두고 왔어요.” “뭐?” “혼자 움직이는 게 편해서 버리고 왔죠.”
별문제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 수아. 당연히도 타이는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버리고 왔다니. 너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고는 있는 거야!” “알고는 있죠. 하지만 괜찮을 거예요. 멍청한 엘프들도 수인들 한정으로는 매우 너그러운 바보들이니까요.” “내 말은 그게 아니라!” “닥치고 계세요.” “윽?”
설화가 무릎으로 등을 압박하자 타이는 신음을 흘렸다.
“패배자가 참 말이 많네요. 하기야 초창기에 나왔으니 폐물이라 불리는 게 낫겠네.” “폐, 폐물?” “아, 이런 말이 헛나왔네. 방금 건 잊어주세요.” “….”
이 새끼,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엘프들의 지원을 받아오라고 밖으로 보냈는데,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야? 그리고 자신을 보고 폐물이라고? 이 무슨 망발을. 아무리 친우의 동생이라고는 하나, 이건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
그래, 그냥 먹어버리자. 어차피 수아는 동생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니 여기서 먹어도 문제없을 거다. 그냥 풍파에 휩쓸려 죽었다고 하….
‘아냐, 아냐! 내가, 내가 또 무슨….’
또다시 본능에 먹힐 뻔했던 타이는 간신히 이성을 붙잡았다. 붙잡았지만, 언제 또 본능이 뒤 속에서 날뛰는 걸 막기 위해 타이는 안간힘을 썼다.
그래서 눈치채질 못했다.
-푹
“어?”
본능을 억누르라 설화가 주사기를 꺼냈다는 사실을. 주삿바늘을 자신의 목덜미에 꽂았다는 사실을.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색 약물이 자신에게 주입되었다는 사실을 타이는 뒤늦게 깨달았다.
그리고,
“으아아아, 아아아아….”
불길한 기운이 타이의 몸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설화는 흐뭇하게 웃었다.
“역시 고생해서 얻은 보람이 있네.” “너, 너 내게 무, 뭘 한 거야?” “치트키를 썼죠.” “치, 치트키?” “쉽게 말해 당신을 강하게 만들어 줄 비약을 먹였죠.”
이걸 얻으려고 하마터면 죽을 뻔했지만. 괴로워하는 타이의 귀에다 대고 설화는 속삭였다.
“제가 목숨 걸고 얻은 약이에요.” “으으으….” “그러니까 맘껏 날뛰어주세요, 알았죠?” “서, 설화…너…아아, 아아아아아악!”
커다란 호랑이의 비명과 함께 동굴이 무너져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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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뭐라고 했어?”
그로부터 약 일주일이란 시간이 흐른 뒤, 강림은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지금 누가 공격하고 있다고?” “호랑이족 수장 타이입니다.”
여우섬 근황을 알기 위해 파견된 거북이족 전사들이 무릎을 꿇고 강림에게 이실직고했다.
“호랑이족 수장 타이가 여우섬을 공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