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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하라, 지배하라, 진짜 보스가 되어라-46화 (47/344)

Chapter 46 - 46화- 이게 죽을죄인가?

"정말 죄송합니다, 주인님!"

거북섬에 있는 유일한 항만. 다른 섬들과의 교역을 위해 만들어진 장소에 거대한 철선이 정박했다.

철선이 이곳에 온 이유는 편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자신은 생존했다는 강림의 편지는 전서구를 통해 받았기에 거북섬으로 올 수 있었다. 강림이 편지를 보내고 약 3일이란 시간이 흐르고 난 다음에서야 나타났다.

“주인님이 실종되었다는 소식은 저도 들었습니다. 아트리아가 며칠이 지났는데도 여우섬으로 오질 않으니 수색해달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다만, 거북섬을 강림이 점령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기에 철선은 한참 동안 항만 주위만 서성거렸다. 일이 꼬이면 당장 대응할 수 있도록 모든 포문은 항만을 향해 조준했으며,

'주인님을 내놓지 않으면 섬을 불바다로 만들겠다!'

…라고 경고 방송까지 하며 위협했다.

만약 강림이 직접 항만에 나오질 않았다면, 나와서 이곳은 안전하니 포문 돌리라고 윽박지르지 않았다면 대형 참사로 이어졌을 거다.

“하지만 저는 그 요청을 거부했습니다. 연합의 붕괴가 코앞으로 다가왔으니까요.”

배를 정박시킨 후, 철선의 주인은 바로 강림에게 달려갔다.

강림 앞에 선 주인은 바로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박았다. 은발이 흙바닥에 더러워져도 여인은 개의치 않았다.

“주인님이 연합의 붕괴를 최우선으로 여기라고 지시를 내렸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명령을 완수하라고 하셨죠.”

마치 죽음을 각오한 충신처럼 여인은 왜 강림의 구조를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는지 낱낱이 고백했다.

“그 명령을 완수할 때까지 저는 단 한 척의 배도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잠자코 듣고 있던 강림이 물었다.

“성공했어?” “예.”

은발의 여인, 이리스는 즉각 대답했다.

“호랑이섬을 제외한 모든 섬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주인의 구조는 포기하는 대신, 대의를 택했다. 주인님의 소망을 이루는 것을 이리스는 최우선으로 여겼다. 그 선택을 헛된 게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이리스는 치열하게 싸웠다. 약 6일 동안 이어진 격전 끝에 남서쪽 군도 대부분을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더는 수인 연합이 설 곳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 여우섬으로 돌아가 함대를 재정비한 뒤, 호랑이섬을 총공격할 계획입니다.” “쉽지 않을 거라고 여겼는데, 벌써 거기까지 해내다니. 기특하네.”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목표였던 수인 연합 멸망이 드디어 이루게 되었으니까. 이 땅 위에 자신만의 나라를 세운다는 꿈이 현실이 될 날도 머지않았다. 남은 걸림돌도 전부 치워버린다면 강림이 원하는 바를 다 얻을 수 있을 거다. 이렇게 좋은 일을 해준 부하에겐 벌이 아닌 상을 줘야 한다.

"이야기는 잘 들었어. 왜 우릴 구하러 오질 않았는지도 잘 알았고." "주인님…." "그러니 이제 옷 좀 입어줄래?"

강림은 간곡하게 부탁했다.

"네가 대역죄인도 아니잖아. 얼른 옷 갈아입어. 남들이 이상하게 쳐다본다."

이리스는 분명 사죄할 거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주인의 위기를 무시한 건 사실이니까. 제발 자신을 죽여달라고 고개를 숙이겠지. 어처구니없는 변명을 늘어놓았다면 벌을 내릴 생각이었지만, 합당한 이유가 있었으니 강림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수인 연합 멸망을 우선시하라는 강림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으니까.

다만, 알몸으로 사죄한다는 전개는 정말 예상치 못했다.

"우리 함대의 맹장이 이러시면 안 되지. 자자, 얼른 입어. 입어." "…안 먹으실 겁니까?"

이리스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필요하다면 여기서 제 가랑이를 벌릴 수도 있습니다만." "그건 정말 좋긴 한데…."

공개 플레이를 한다? 그것도 좋지. 방에서 하는 것보다 밖에서 하는 것도 재밌으니까. 자신은 즐거움을 얻고, 당하는 자는 수치심과 굴욕으로 찍어 누른다. 일석이조(一石二鳥)를 누릴 수 있다. 수아도 그런 식으로 찍어눌렀으니 여기 항만에서 한다고 나쁠 건 없다. 이곳을 보는 시선들이 느껴지지만, 대수롭지 않다. 시샘하는 자들만 있지, 공개 능욕한다고 지적하는 자는 없으니까.

없지만….

"미안하지만, 사양하마."

강림은 정중히 거절했다.

"지금은 집으로 돌아가는 게 중요하니까."

일단 돌아가자. 돌아가서 자신이 건재하다는 걸 알려줘야 한다. 아트리아를 후임으로 선택했어도 현재 우두머리는 엄연히 자신이니까. 우두머리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걸 알려줘야 조직이 분열되지 않는다. 그러니 나중에 하자. 나중에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하자.

잊어버릴 수도 있겠지만, 하게 되면 끝내주게 해주자. 강림은 속으로 그리 생각했다.

"그렇군요."

대답을 들은 이리스가 일어섰다. 옷을 갈아입는가 싶더니만, 갑자기 검을 들었다. 검을 역수로 든 그녀는 자신의 심장을 향해 검 끝을 겨눴다.

"그러면 안녕히 계십시오." "야, 너 뭐 하는 거야!"

당황한 강림이 황급히 이리스의 손을 붙잡았다. 심장을 찔러야 했던 검은 살짝 피부를 찢는 정도에서 그쳤다.

"뭐하긴요, 저는 용서받지 못했으니까요." "괜찮다고 했는데, 왜 죽으려는 건대? 이게 죽을죄야?" "네, 죽을죄가 맞습니다."

이리스는 생전 그리드가 저지른 악행을 알려줬다.

"잘못을 저지른 노예들은 자신을 먹어달라는 방식으로 용서를 구했습니다." "…." "만약 주인에게 먹히지 못한 노예들은 예외 없이 참수당했습니다." "머, 먹지 않는다고 목을 벤다고?"

무슨 황당한 경우가 다 있어? 질리면 나중에 먹으면 그만이거늘. 유감스럽게도 이리스가 한 말은 사실이었다.

"네, 예전 주인님은 그런 식으로 저희를 지배하셨습니다." "…." "이해하셨죠?" "응, 그래. 알았어. 아주 잘 알았어."

그 핵폐기물이 얼마나 쓰레기 짓을 해왔는지. 그 쓰레기 짓 때문에 곤란에 처했음을 강림은 깨달았다.

깨달았으니 절대 하지 않을 거다. 강림은 속으로 그리 다짐했다.

"알았으니까, 옷 갈아입어. 어서." "…." "뻔히 쳐다보지 말고. 어서."

이런 말을 해도 이리스는 요지부동이었다. 여전히 검은 심장을 겨누고 있었고.

"해주시면 안 될까요?"

이리스는 애절한 눈빛으로 강림을 쳐다봤다.

"주인님이 그리워서 한숨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자리에서라도 부디 하게 해주세요." "지금은 돌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 "다시 출항하려면 시간이 좀 걸려요."

이리스가 지적했다.

"다 탑승하려면 시간이 걸리니 여기서 한 발 빼주시면 안 될까요?" "…."

이 녀석, 뭔가 좀 뻔뻔해진 것 같다? 이렇게 대놓고 안 해주면 죽겠다는 캐릭터는 아닐 텐데. 혹시 지금 이 그리드가 자신이 알던 그리드가 아니라서 그런가? 정강림이라는 영혼이 빙의된 상태라는 걸 알기에 뻔뻔스럽게 구는 건가?

'이거 뭔가 괘씸한데?'

자신은 그리드와 다르다. 그러니 편하게 대하라. 반말해도 상관없으니 마음대로 불러라. 강림은 그런 식으로 얘기한 적은 있었다. 그렇게 얘기했기에 지금 이리스가 악용하는 게 아닐까?

지금 저 얼굴 좀 봐라.

"해주세요, 제발."

이렇게 몰아붙이면 주인도 거절하지 못할 거라는 감정이 다 드러나는 데 어찌 악용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겠나?

이대로 말려들지, 아니면 말지 강림은 선택의 갈림길 위에 섰다.

“그냥 하자.”

옆에 서 있던 수아가 한 마디 꺼냈다.

"어차피 오늘도 안을 건데 지금 한다고 무슨 문제라도 생기겠어?"

2차 교육을 통해 본심을 전부 드러낸 수아는 옷을 입을 수 있게 되었다.

입은 옷은 흰색 한복. 옷감이 얇아서 다 훤히 드러나지만 수아는 알몸으로 끌려다니는 것보단 낫다고 봤다.

“아직 출항하려면 멀었으니 조금은 즐기자고요, 주인님.” “그래, 수아 말이 맞네, 주인이여.”

등껍질을 등에 메고 있는 거북이족, 아켈론도 거들었다. 오늘 사랑스러운 주인님이 떠난다는 소식에 손녀와 함께 작별 인사를 하러 왔다.

"빨리 안 돌아간다고 큰일이 생길 리 없으니 여기서 즐기다 가게나. 테가, 너도 그리 생각하지?" “….”

테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강림과 눈을 마주치기 두려운지 고개만 숙이고 있을 뿐이다.

“테가야, 고개 좀 들어라.” “하, 할머니….” "그렇게 무시하면 못 써요. 주인님 앞에서는 당당해져야지." "주, 주인님…." “배 속의 아이들도 생각해야지.” “….”

할머니의 말대로다. 지금 테가도 아켈론도 홑몸이 아니었다. 자궁에 강림의 피가 섞인 알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만약 눈앞의 남자에 거스르면 이 아이들이 어찌 될지 알 수 없다. 그러니 복종할 수밖에 없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테가는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자기 입으로 '주인님'이라는 단어를 뱉는 것도 곤혹스러웠다.

"이보시오, 할망구. 손녀에게 강요하지 마세요."

낌새를 눈치챈 강림이 한마디 했다.

"나중에 내가 가르치면 되니까."

아직 테가가 완전히 복종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림도 알고 있었다. 놔두면 화근이 될지 모르니 잘 길들여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귀환하는 게 우선이다. 귀환하고 지금 해결해야 할 문제부터 처리한 다음에 하는 게 낫다. 이미 아켈론이라는 노예가 있으니 테가가 무슨 짓을 저질러도 어떻게든 무마해줄 거다.

그리고, 더 우선으로 삼아야 할 여자가 있다.

‘테가보다는 저년을 쓰러뜨리는 게 우선이니까.’

엎드린 이리스 옆에는 사지가 결박된 초록 머리의 수인이 한 명 있었다. 전신에 악어를 연상케 하는 파충류 피부가 돋아 있었고, 꼬리도 달려 있었다. 세로로 길게 찢어진 동공은 강림을 죽일 기세로 노려보고 있었다.

입에 재갈을 물리지 않았다면 당장 물어뜯어 버리겠다고 달려들었을 거다.

악어족 수장 크로커. 무너져 가는 수인 연합을 이끄는 마지막 우두머리가 강림에게 진상되는 전리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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