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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하라, 지배하라, 진짜 보스가 되어라-11화 (12/344)

Chapter 11 - 11화- 술을 마시며 불만과 의문을 토해내다

“주인님, 너무 하시는 거 아니야?”

은색 갑옷을 입은 여성이 술잔을 탁자 위로 탁, 하며 때렸다. 얼마나 마셔댄 건지 여성의 얼굴은 벌겋게 물들어져 있었고, 입에선 딸꾹질이 멈추질 않았다.

“그 여우 년이 뭐가 좋다고…딸꾹, 매일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거냐고.” “자기가 좋아하는 이상형이라고 하잖아. ‘아,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여야지.”

그런 여성의 투정을 아트리아는 태연하게 받아줬다. 술잔에 든 우유를 아트리아는 단숨에 들이켰다.

“흥, 혼자서 임신한 주제에….”

짜증 난다는 눈초리로 여성은 아트리아의 복부를 노려봤다.

“우리 모두 그 여우 년 때문에 주인님과 한 번도 떡을 치지 못했는데, 너 혼자 갖다니. 너무한 거 아닙니까, 비서님?” “후후, 기회를 잘 잡은 거지.”

남산만큼 거대해진 자신의 배를 아트리아를 사랑스럽다는 듯이 쓰다듬었다.

“나는 비서잖아? 비서는 항상 주인님 곁에 있어야 하지. 그러니 언제든 임신할 기회가 오는 거라고.”

해변에서 강림은 아트리아를 먹었다. 배가 볼록 튀어나올 때까지 원 없이 싸질렀다. 그렇게 싸지른 끝에 아트리아는 임신했다. 임신했고, 탈리아의 실험실로 가서 약물을 투여받았다. 투여받고 일주일이 지난 오늘, 드디어 만삭의 몸을 가지게 되었다.

‘이, 이게 내 아이라고. 음…믿어지질 않는데….’

만삭이 된 아트리아의 몸을 본 강림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연할 수밖에 없을 거다. 임신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일주일 만에 출산일을 맞이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있을 수 있나? 유감스럽게도 이곳은 상식이라는 개념이 우주 너머로 날아가 버린 곳이다. 그러니 말도 안 되는 일이 버젓이 일어날 수 있었다.

‘이름은 정했어? 정하지 않았다면 내가 지을까?’

원본 주인님에게 있어선 이런 건 항상 있던 일에 불과하다. 아이가 생기면 ‘음, 그래?’라고 넘어갈 뿐. 딱히 애정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것과 비교하자면 이방인의 반응은 놀라울 수밖에 없다. 자신에게 자식이 생긴다는 게 처음이라서 그럴까? 그래서 주인님보다 매우 놀라는 걸까? 이름을 지어주겠다는 말에 아트리아는 감사히 여겼지만, 정중히 사양했다.

‘괜찮습니다. 이름은 없어도 되니까요. 숫자로 불리면 그만이에요.’

자식들에게 부여되는 이름은 없다. 오직 인식 번호만 붙여질 뿐. 자신의 피를 이어받은 자식들이라도 그리드는 딱히 기뻐하지 않았다. 그저, 쓸만한 병사들이 태어났다는 것에만 관심 있을 뿐.

‘무슨 소리야. 그놈이 이상한 거지.’

하지만, 강림은 아니었다.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아? 기가 차네. 난 무조건 지을 거야. 앞으로도 그럴 거고.’

그리드는 잘못되었다고. 잘못되었으니 자신은 따르지 않을 거라고. 오늘부터 지금까지 낳은 자식들에게 이름을 주겠다고, 희생된 자식들에게도 이름을 주겠다고 강림은 그리 말했다.

그 점에 대해선 아트리아는 고맙게 생각했다. 자식들을 그저 소모품으로 여기는 옛날 주인님과 달리 지금 주인님은 진심으로 자식들을 사랑한다는 게 느껴지니까. 이점만큼은 나쁘다고 할 수 없었다.

이런 만큼 답답한 모습 좀 집어던졌으면 좋겠는데. 아트리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뭘 그리 한숨을 쉬냐? 나올 것 같아?” “아니야, 이리스. 좀 생각할 게 있어서….”

허리까지 내려오는 은색 머리의 소유자, 이리스를 향해 아트리아는 괜찮다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무슨 생각? 아, 혹시 술을 마시지 못해서? 그래서 그런 거야?” “그런 거 아니거든.”

말도 안 되는 추측에 아트리아는 어이가 없었다.

“그래? 난 이걸 못 먹어서 안달이 난 줄 알았지.”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포도주병을 흔들었다.

왕국에서 꽤 비싼 가격으로 팔린다는 포도주다. 토끼섬을 공격할 때 이리스는 전리품으로 획득했다. 포로의 말에 따르면 토끼족과 교역하게 된 왕국이 특별히 하사한 물건이라고 한다.

그리드는 이 술병이 담긴 상자들을 이리스한테 주었다. 토끼족 수장을 생포하고, 섬을 함락시키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으니까. 이리스는 자신의 함선에 있는 술집에 기증했고, 먹고 싶은 사람은 맘껏 먹으라고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이제 딱 하나 남았다. 지금 이리스가 마시고 있는 게 마지막이었다. 보란 듯이 이리스는 병째로 술을 들이켰다.

“푸하! 역시 비싼 값을 하네. 이거 어떻게 만들었을까?” “왕국 옆에 포도밭으로 유명한 섬이 있데. 그곳에서 얻은 포도로 만든다고 들었어.” “그래? 그러면 다음은 그곳을 공격하자고 주인님께 간청할까?” “개소리 좀 작작 해.”

이런 무식한 놈아, 라고 아트리아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수인 연합도 멸망시키지 못했는데, 무슨 포도밭을 점령해?” “아….”

그 말에 이리스는 시무룩해졌다.

“지금쯤이라면 진작에 끝냈을 텐데….”

수인 연합. 해적 대함대 <더 퀸즈>에 대항하기 위해 수인들이 조직한 연합 부대. 호랑이족, 악어족을 중심으로 뭉친 연합은 <더 퀸즈>에게 반격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

연합이라는 말에 이리스는 코웃음 쳤다.

고작 범선밖에 없는 놈들이 어찌 철선을 부술 수 있을까? 무기도, 병력도 전부 밀리는 놈들이? 자신에게 무한한 자율권이 부여되었다면 이리스는 놈들을 부수고, 연합을 이끄는 두 수장을 생포했을 거다.

그걸 지금 주인님이 막고 있다.

“쓸데없는 싸움은 하지 말라니. 왜 그런 명령을 내린 거야?”

당분간 전투에 신경 쓸 수 없으니 수비로 전환한다. 놈들이 도발해도 무시하고, 만약 쳐들어오면 그때 대응하도록. 느닷없이 겁쟁이 전략으로 태세를 바꾼 것에 이리스는 불만이 가득했다.

“다 이긴 밥에 왜 멈추라는 건지. 아트리아, 왜 그런지 알겠어?” “글쎄….”

그 부분에 대해서 아트리아는 항의한 적이 있었다.

정복을 이대로 중단해선 안 된다고. 우리는 대함대지만 해적이다. 해적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조직이다. 막강한 전력을 가졌지만, 언제까지고 우위를 점할 거란 보장은 없다. 그러니 남서쪽 섬들을 모조리 점령해 자신들의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 삼아서 외부 세력이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부상해야 한다. 그래야 대의를 도모할 수 있다.

그렇게 주장했지만, 강림은 거부했다.

’난 학살자가 되고 싶지 않아.‘

그게 이유였다. 전쟁을 벌이면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간다. 자신이 살던 시대에도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고, 그걸 접할 때마다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 걸 자신이 해야만 하는가? 라는 이유로 강림은 일방적으로 전투를 금지했다.

도대체 어떤 시대를 살았기에 전쟁이라는 것을 싫어하시는 걸까? 이쪽은 하지 않으면 죽을 판국인데. 이리스만큼이나 아트리아도 알고 싶었다.

“혹시 그 여우 년 때문 아니야? 그 여우 년이 쓴 독 때문에 그런 거 아니냐고.”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어.”

이리스의 질문에 대답한 건 아트리아가 아니었다.

“주인이 이상해진 건 그때부터였으니까.”

대체 언제 술집에 들어온 걸까? 오늘은 중요한 아트리아와 술잔을 나누기 위해 술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이리스가 엄명을 내렸다. 만약 왔다면 이리스도, 아트리아도 눈치챘을 거다. 그런데 이 흰색 가운을 입은 검은색 더벅머리의 여성은 언제 들어온 걸까? 두 사람 모두 놀란 토끼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는 걸 아랑곳하지 않은 퀭한 회색 눈동자의 소유자는 술잔을 차 마시듯이 쭉 들이켰다.

“타, 탈리아. 너 언제 왔어?” “조금 전에.”

이리스의 질문에 연구 주임, 탈리아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뭐, 내가 온 건 신경 쓰지 말고 아까 하던 얘기나 하자.”

품에 가져온 술병을 잔에 따르며 탈리아는 중단했던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그때 주인은 죽어가고 있었어.”

당시 참상을 탈리아는 기억하고 있다.

수아라고 했던가, 그 암여우가 수작을 부리는 바람에 주인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장기 곳곳에 독이 퍼졌기에 일 분 일 초라고 아까운 상황이었다. 탈리아가 급히 해독제를 만들어 주인에게 먹였으나, 완전히 낫지를 않았다. 여전히 독은 진행 중이었고, 심장 박동 수도 점점 약해졌다.

이대로 주인이 죽어버리면 어찌 되는 건가? 해적인 자신들은 주인 없이 살 수 있을까? 주인 없이 사방이 적인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탈리아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주인이 일어나기를 바랬다.

“그랬던 주인이 말짱한 채로 일어났지.”

주인은 다시 깨어났다. 깨어났지만, 뭔가 많이 달라졌다.

“아주 이상해졌지만.”

항상 잔혹한 사람이었다. 자신에게 걸리적대는 자는 아무리 충신이라 해도 가차 없이 망치로 뚝배기를 깨버리는 사람이었다.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이 함대에 합류했으나, 가끔 사람을 무자비하게 죽이는 모습에 탈리아는 소름이 돋았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고는 하나, 괜히 배에 올라탔다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그랬는데, 왜 갑자기 바뀐 걸까? 아무리 독에 중독되었다고는 해도 확 바뀌지 않을 텐데. 탈리아는 가장 유력한 용의자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말해 봐, 아트리아. 너, 뭐 했니?” “….”

아트리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빈 잔만 홀짝일 뿐.

“주인이 정신 차리기 하루 전에 주인의 방에 방문한 건 너뿐이야.” “….” “얼른 말해봐. 지금 이 상태로 놔두면 우리만 곤란해진다는 걸 너도 잘 알잖아?” “...” “말 안 하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 탈리아는 아트리아의 등 뒤로 돌아갔다. 양손을 펼친 그녀는,

“흐익?”

만삭의 배를 열심히 주무르기 시작했다.

“후오, 호옥, 그, 그만, 그만!” “태아를 위한 마사지야. 얌전히 받아.” “흐익, 히익, 후아아악, 하아아앙!”

정성스럽게 주무른다. 만삭의 배를 주물럭거리고 싶다는 이유로 마사지하는 방법을 책을 통해 습득했는데, 의외로 효과가 굉장했다. 그 어떤 임산부도 탈리아의 마사지를 받으면 바로 자지러졌다.

당연히 아트리아도 이를 견딜 재간 따윈 없었다.

“하아, 하아, 하아, 하아….”

몇 분 동안 이어진 마사지는 탈리아가 손을 놓으면서 끝났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아트리아의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가랑이 사이도 살짝 축축해졌다.

“자아, 이제 말할 기분이 생겼어?” “하아, 하아, 이따, 이따가 이, 이리스와 같이 제 방에 오세요.”

결국 아트리아는 백기를 들었다. 더는 숨길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고집을 부렸다간 탈리아가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여기서 끝내는 게 현명했다.

“그러면 제가 뭘 했는지 알려드릴….”

[아트리아 님.]

이때, 아트리아의 귀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리스와 탈리아에겐 들리지 않게 오직 무음으로.

[긴급 상황입니다. 우려한 일이 기어이 벌어졌습니다.]

전한 이는 암살 부대를 이끄는 대장이다. 과거 현상금을 받기 위해 그리드를 죽이려다가 실패하고, 역으로 세뇌당해 그리드에게 충성을 바치는 자다.

암살 부대에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자는 그리드나, 원주인인 그리드가 제정신이 아닌 상황에서 임시 대리인이 이들의 명령을 내릴 수있다.

현재 임시 대리인은 아트리아. 아트리아가 내린 명령에 따라 암살 부대는 특정 존재들을 감시하고 있었고, 드디어 터졌다.

[현재 상황은?]

아트리아가 똑같이 무음으로 묻자, 대장은 대답했다.

[방에는 이미 놈들이 들어왔습니다. 아직 주인님은 죽지 않았지만 계속 방치하면….]

[하세요.]

아트리아는 지시를 내렸다.

[당장 대원들에게 지시를 내리세요. 모조리 다 잡으라고. 죽이지 말고 생포하세요. 알았죠?]

[알겠습니다.]

[저도 이 두 친구를 데리고 갈 테니 잘 정리하세요.]

[존명.]

그 직후 기척은 사라졌다. 아트리아는 몸을 일으켰다. 갑자기 친구가 일어난 것에 이리스와 탈리아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트리아, 왜 그래?” “설마, 내 마사지가 너무 굉장했나?” “아니, 그런 거 아니야. 그보다….”

아트리아는 두 친구를 향해 권유했다.

“같이 따라와 주지 않겠니?” ““어디로?””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식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두 친구를 향해 아트리아는 대답했다.

“이상이 악몽으로 끝나버린 주인님을 구하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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