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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하라, 지배하라, 진짜 보스가 되어라-4화 (5/344)

Chapter 4 - 4화- 수아를 만나러 가는 길

“결국은 그 여자를 원하시는 거군요.”

아트리아는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그 여자를 취하려다 독살당할 뻔했다는 걸 왜 모릅니까?” “알 턱이 있냐?”

강림은 조용히 소곤거렸다.

“난 당신이 말한 독살 당한 이후에 깨어났다고. 여우 년…이 아니라 수아가 그런 짓을 저질렀을 거란 걸 어떻게 알고 있겠어?”

수아. 강림이 빙의하기 전에 그리드가 먹으려고 했던 여자. 여우섬에 사는 구미호들을 이끄는 수장이다. 그리고,

주인공 설화의 언니다.

‘정말 아까운 여자였지.’

수아는 게임 프롤로그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여우섬이 그리드가 이끄는 해적 함대에 함락당하고, 구미호들이 사냥당할 때, 수아는 어떻게든 설화를 섬 밖으로 내보내는 데 성공한다. 탈출에 성공한 설화는 어떻게든 언니를 구하겠다고 다짐하며 그리드 타도를 위한 여정에 들어간다.

거기까지가 프롤로그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그 이후 수아는 어찌 되었나?

안타깝게도 막장 게임답게 개발진은 사람들이 원하는 전개로 가지 않았다.

강림도 그런 전개로 가는 걸 원치 않은 사람 중 한 명이었으며,

‘이번에는 살릴 수 있겠지?’

그런 전개를 무조건 바꿀 생각이었다. 자신이 애지중지하게 키운 캐릭터의 비극을 바꿀 절호의 기회인데 어찌 놓칠 수 있겠나?

또한, 이건 기회일지도 모른다.

‘수아를 살릴 수 있다면 파멸 엔딩에서 벗어날지도 몰라.’

끔찍한 최후만이 기다리는 이 그리드라는 페이크 보스가 살아남을 기회. 그 기회를 수아를 살리는 것으로 마련할 수 있을지 모른다.

‘어떤 모습일까? 삽화랑 똑같이 생겼을까?’

벌써 기대된다. 한눈에 혹할 정도로 아름다운, 핵폭탄급 가슴을 가진 구미호들의 수장이 어떤 모습일지. 마음 같아선 당장 껴안….

“주인님, 침 좀 닦으세요.” “이, 이런….”

아트리아의 지적에 강림은 손등으로 황급히 입술을 닦았다.

“그렇게나, 좋으세요? 그 여우 년을 만나는 게?” “당연한 걸 왜 물어봐?”

대답할 가치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식으로 강림은 말했다.

“나와 연이 깊은 여자야. 그 여자를 안는 게 뭐가 나쁘다는 거야?”

정강림이 수집한 캐릭터 중 자주 쓰는 여자는 바로 수아다. 삽화가 너무나 마음에 들고, 이를 맡은 성우 목소리도 정말 마음에 들며, 기구한 운명을 살다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는 결말에 강림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토록 사연이 많은 캐릭터는 최우선으로 키우는 게 도리다. 성능이 쓰레기라고 해도 무조건 최고 레벨까지 키우는 게 예의다.

쓰레기면 어떠냐? 쓰레기라도 누가 쓰느냐에 따라 진주가 될 수 있는 법이거늘. 그런 마음가짐으로 강림은 수아를 키웠다. 수아뿐만 아니라 기구한 사연을 가진 캐릭터들 위주로 키웠다.

그런 캐릭터를, 가장 맘에 들었던 캐릭터를 실물로 보게 되는 건데 어찌 싫다고 할 수 있느냐? 암살 혐의가 있다 해도 강림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애초에 잘못한 건 이 몸의 원주인이지, 난 아니라고.” “…한 가지 충언을 해도 되겠습니까?”

아트리아의 요청에 강림은 흔쾌히 허락했다.

“당신은 우리들의 주인님입니다.”

마치 잘못을 꾸짖는 선생님 같은 말투로 지적했다.

“당신이 본래 누구라는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당신이 그리드, 주인님이라는 거죠.” “….” “아무리 당신이 부정해도 모든 사람은 당신을 주인님이라고 여길 겁니다.” “….” “하물며 그 여우 년도 마찬가지겠죠. 아무리 당신이 달라지려 해도 결국은 또 독살당할 겁니다.” “…해서,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착각하지 마세요.”

아트리아는 경고했다.

“주인님의 삶에서 벗어난다고 모든 게 다 해결될 거라고 여기지 마세요.” “….” “제가 전해드릴 말은 이것뿐입니다.” “….”

이 건방진 계집을 봐라? 감히 비서 주제에 그런 소리를 해? 달라질지 아닐지 두고 봐야 하는데, 무조건 안 된다는 식으로 말하는 게 말이 되냐? 겨우 출발선에 섰는데, 느닷없이 부정당하니 강림은 배알이 꼬이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면, 벌을 내려주자. 강림은 손에 잡힌 쇠사슬을 잡아당겼다.

“흑?”

쇠사슬은 아트리아의 목에 건 개 목걸이와 연결되어 있었다. 끌려온 아트리아는,

“하윽?”

강림의 양손에 젖통이 붙잡히고 말았다.

“감히 애완견 주제에, 그런 소리를 해? 내 친히 교육해주마.”

밀가루 반죽하듯이 강림은 아트리아의 가슴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애정이라곤 하나도 없는 주무름에 아트리아는 신음을 흘렸다.

“하으으으으….” “밖에 나오면 얌전히 있을 것을. 너 이렇게 당하고 싶었냐?”

지금 강림과 아트리아는 밖에 나와 있다.

나온 이유는 수아를 만나기 위해서. 현재 수아가 암살미수 혐의로 벌을 받고 있다는 말에 강림은 자신이 직접 풀어주겠다고 나섰다.

자신이 직접 해야 파멸하는 운명에서 벗어날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아트리아의 안내를 받으며 수아가 벌을 받는 장소로 향하는 중이다.

물론 팬티 바람으로 나가면 미친놈 취급받으니 강림은 그리드가 평소에 즐겨 입는 흰색 정복 차림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아트리아는,

“흐으윽, 하으으윽. 후오오옥!”

알몸이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으로 나왔다.

“그래, 그렇게 울부짖어라.” “흐으으으….” “이럴 작정으로 알몸으로 나온 거냐? 이렇게 변태 짓을 하려고?” “네, 네….”

가슴에 진한 손톱자국이 남았음에도 아트리아는 헤벌쭉 웃었다.

“당신의 욕망을 드러내기 위해선 이게 최선이니까요.”

아트리아는 알몸으로 나가겠다고 말했다.

방에서 벌을 받지 못했으니 밖에서 받고 싶다고. 그 말에 강림은 자신을 쓰레기로 만들 거냐며 쏘아붙였으나,

‘한 번 나가 보세요. 누가 당신을 건드는지.’

…라면서 브래지어와 팬티를 홀딱 벗어버렸다. 말리기도 전에 개 목걸이까지 착용 완료했다. 이렇게 의지가 확고하니 강림은 어쩔 수 없이 아트리아를 개처럼 끌고 다녀야만 했다. 처음에는 이런 변태 여자를 데리고 다니는 게 정말 부끄러웠지만,

“좀 더 허리를 숙여.” “네.”

지금은 즐겁다. 여자의 가슴을 맘껏 유린(蹂躪)할 수 있다는 게 너무나 기뻤다. 이대로 젖을 쪽쪽 빨고 싶고, 보지도 빨고 싶으며, 아예 박아버리고 싶었다. 열망에 휩싸인 강림은 바지에다 손을….

‘잠깐, 내가 무슨 짓을….’

겨우 정신을 차린 강림은 손을 놓았다.

“하아. 하아, 왜 그러세요. 주인님?”

색욕에 젖은 얼굴로 아트리아는 물었다.

“좀 더 해요. 네? 가도 상관없으니까.” “나, 난….”

그리드와 같은 삶을 살지 않겠다고, 달라지겠다고 맹세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이런 짓을. 왜 참을 수 없었던 거지? 잘못됐으니 참아야 하는데, 저절로 움직였다. 저절로 덮치자는 생각이 들었고, 저절로 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저절로 이건 잘못되지 않았다고 여겼다.

어째서 이러는 걸까? 어째서, 왜? 본래 살던 세상에선 이러지도 않았는데 어째서…. 그런 강림을 위로해주는 이는 없었다.

“….” “….” “….”

노골적으로 혐오하는 시선들이 강림을 노려볼 뿐.

‘분위가 좀 험악해진 것 같은데….’

현재 강림과 아트리아가 있는 곳은 구미호들이 모여 사는 마을. 수아가 벌을 받는 장소로 향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지나가야만 한다. 섬 가운데가 마을 그 자체였으니까.

‘휴대폰이라도 있었으면 사진으로 남겨놨을 텐데….’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강림은 저절로 감탄하는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머리 위에 나 있는 뾰족귀. 엉덩이 뒤로 살랑거리는 아홉 개의 꼬리. 상상으로만 전해지는 구미호들의 모습에 강림은 눈을 떼질 못했다. 속옷은 입지 않고 속살이 다 비치는, 얇은 흰색 한복을 입은 모습에 눈을 뗄 수 없었다. 가슴골이 노골적으로 보이게 가슴 앞부분은 다 노출되어 있었다.

이건 전부 그리드가 만든 작품이었다.

‘그리드 녀석도 참 대단하네.’

본래 구미호들은 살이 다 드러나는 옷을 즐겨 입지 않는다. 몸을 숨겨 고혹적인 매력을 드러내는 걸 좋아한다.

이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리드는 명령을 내렸다.

지금까지 옷은 전부 폐기하라고. 함대에서 지급되는 옷만 입으라고. 입기 싫으면 알몸으로 돌아다니라고.

그래서 구미호들은 귀중히 여겼던 옷들을 전부 불살라버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짓을 강요한 남자가 눈앞에 있으니 경멸하는 눈으로 보는 건 당연했다. 마을 한복판에서 저런 짓까지 하니 더욱 경멸해질 수밖에 없고.

“뭔가, 건방지네요.”

갑자기 아트리아가 그리 말했다.

“주인님의 자비 덕분에 살아남은 주제에 왜 저렇게 불만이 많은지….”

다음 말에 강림은 식겁했다.

“다 죽여버릴까요?” “무, 뭐?”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고작 본다고 죽이다니. 이해하지 못하는 강림을 향해 아트리아는 말을 이어갔다.

“우리를 쓰레기 취급했습니다. 건방진 노예들 주제에 감히 주인인 우리를 그렇게 노려봤죠. 그것만으로도 중죄입니다.” “아, 아니 아무리 그래도….” “원하시면 자비를 베풀 수 있겠지만, 되도록 엄벌을 내리시길 바랍니다.”

무슨 엄벌을 처해! 더 파멸로 끌어당길 속셈이냐! 도대체 그리드 이 새끼는 얼마나 성격이 괴팍하면 비서마저 이런 놈으로 만든 걸까?

“음?”

한참 동안 실랑이를 벌이던 도중, 한 구미호가 자신들에게 다가왔다. 흰색 머리와 꼬리털을 가진 구미호는 그 자리에서 옷을 벗었다. 풍만한 가슴과 털이 없는 보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낸 구미호는 그 자리에서 엎드렸다.

“잘못했습니다. 우리가 노예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당신들에게 대들고 말았습니다.”

머리를 땅에 박고 싹싹 빌었다.

“부디 살려주십시오. 죽이시려면 제 목을 쳐주십시오. 모든 일은 제가 벌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

갑작스러운 사태에 강림은 할 말을 잃어버렸고,

“자, 주인님. 어서 결단을.”

아트리아는 명령을 내릴 것을 종용했다.

“…하아.”

한숨을 내쉰 뒤, 강림은 입을 열었다.

“당장 옷 갈아입어.” “네?” “옷 갈아입고 돌아가. 아무 죄도 묻지 않을 테니.”

그 말에 흰색 머리의 구미호는 멍해졌다. 이를 보는 다른 구미호들도 마찬가지. 움직이지 않자, 강림은 다시 명령했다.

“얼른 가라고. 말귀 못 알아들어?” “아, 아. 네, 네!”

흰색 여우가 물러서고 나서야 강림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실수하신 거예요.”

갑자기 아트리아가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충성을 맹세하지 않은 자에게 자비를 베푸시다니, 후회하실 겁니다.” “난 그 남자처럼 될 생각이 없거든?”

강림은 딱 잘라 말했다.

“무작정 죽이는 게 답이라고 보냐?” “물론 아니죠. 하지만….”

아트리아는 경고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달라지지 않는 게 있음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

왜 안 된다는 거지? 개과천선 좀 하겠다는데 왜 안 된다는 건가? 빙의되었다면 보통은 그렇게 하는 게 옳지 않은가? 왜 무작정 안 된다고 소리치는 건가? 너무나 기분 나빠서 강림은 입술을 깨물었다.

“….”

그 광경을 구미호들은 서늘한 눈빛으로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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