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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하라, 지배하라, 진짜 보스가 되어라-3화 (4/344)

Chapter 3 - 3화- 저한테 벌을 내려주세요

“주인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싱싱한 미역을 연상케 하는 보라색 머리. 뒷머리에는 머리끈으로 묶은 작은 꽃봉오리가 볼록 튀어나와 있다. 고혹적인 검은색 브래지어와 팬티를 입은 아트리아의 적색 눈동자는 강림만을 응시하고 있다. 마침내 닿았다는 듯이 활짝 웃는 아트리아의 모습에 정강림은 침을 꿀꺽 삼켰다.

“야, 야, 왜 갑자기 그런 모습을….” “그야, 이것이 전통이기 때문입니다.”

긴장한 듯이 덜덜 떨면서 묻는 강림의 말에 아트리아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죄를 지은 자는 옷을 활딱 벗어라. 벗고 주인에게 벌을 내려달라고 간청해라. 벌을 받기 전까진 옷을 입을 생각을 하지 말아라.” “….” “그것이 우리 해적 함대 <더 퀸즈>만의 속죄 방식입니다.”

더 퀸즈. 그리드가 과학자가 아닌, 해적이 되기로 마음먹으면서 지은 이름이다. 처음에 함선은 고작 한 척에 불과했으나, 약탈을 통해 얻은 자금과 자원을 바탕으로 다섯 척의 함선과 그 함선들을 지키는 열 척의 호위함을 거느린 대함대로 거듭났다.

대함대로 거듭난 만큼 군기가 중요했다. 세력이 커질수록 분열은 쉽게 일어나는 법이니까. 분열된 조직은 쉽게 파멸할 수 있다. 그래서 그리드는 규칙을 정했다.

죄를 저지른 자가 마땅히 해야 하는 것. 죄를 용서받고 싶으면 반드시 해야 하는 것. 그리드는 엄격한 규칙을 세웠으며, 아트리아는 그 규칙에 따른 것에 불과했다.

“대, 대체 누가 그런 규칙을 세웠는데?” “주인님이십니다.”

아트리아는 손가락으로 강림을 가리켰다.

“주인님이 세웠기에, 저희가 따르는 겁니다.” “….” “설마, 이것도 모르신 겁니까?” “모, 모르긴, 아, 알고 있었지. 아하, 아하하하….”

어설프게 웃는 강림이었지만, 속으로는 이를 갈았다.

‘썩을 그리드 새끼! 뭔 이상한 규칙을 만든 거야!’

게임에도 나오지 않은 설정 좀 꺼내지 말라고! 아니, 이건 단순히 그리드의 문제만이 아니다.

개발진이다. 그 막장 게임을 만든 그 개발진들이 문제다. 그 개발진들이 제대로 설정을 만들어놓지 않아 벌어진 일이다.

당장 해적 함대를 봐라. 활과 칼에서 벗어나지 못한 시대에서 무슨 철선을 넣냐?

SF 소설을 연상케 할 정도로 함선 내부에 첨단 기계들로 중무장한 시설을 만든 것도 뭐냐? 아무리 구 문명의 유산이라고는 해도 이건 좀 너무하지 않나? 적어도 판타지와 걸맞은 모습으로 설정하는 게 맞지 않나? 왜 뜬금없이 문과에서 이과로 바뀌는 거냔 말이야!

물론 이런 불평불만이 개발진에게 전해지는 일은 없을 거다. 현실에서 확성기를 가지고 1인 시위에 나선다고 해도 말이다.

“그러면 저한테 벌을 주세요.” “…뭐?” “저한테 벌을 주세요, 주인님.”

아트리아가 다가온다. 다가오자 강림이 뒤로 물러난다. 아트리아가 한 발짝 앞으로 움직이면, 강림은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앞으로, 뒤로, 앞으로, 뒤로. 다가가려는 자와 떨어지려는 자. 아트리아가 멈추질 않으니 강림은 적잖이 당혹스러웠다.

‘아니, 이 여자 왜 이래?’

왜 이렇게 무섭게 날 쫓아오는 건데? 말 안 하니까 날 만만히 보냐? 아까 했던 것처럼 강림은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아트리아, 이게 무슨 짓이지?” “후후,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내 말이 장난 같나?” “장난을 치시는 건 제가 아니라 주인님이시랍니다.” “무, 뭐?”

그 말에 강림은 순식간에 얼굴이 풀어졌다. 그걸 본 아트리아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제가 아는 주인님은 그렇게 얼빵한 표정을 짓지 않으세요.”

뒷걸음질 치던 강림은 어느 순간 무언가에 부딪쳤다. 침대 밑동이다. 계속 뒷걸음질 치다 여기까지 오고 말았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었다.

“그런 식으로 당황하지도 않고요.”

아트리아가 손가락으로 탄탄한 근육으로 이루어진 가슴팍을 탁, 튕기니 강림은 큰 충격을 받은 듯이 침대 위로 벌러덩 누웠다.

침대 위로 올라온 아트리아는 강림과 자신의 몸을 겹쳤다.

“이상했어요. 아무리 독에 당했다고는 한들, 갑자기 겁쟁이가 되실 분이 아니신데 말이죠.” “….” “마치 상어가 송사리가 된 느낌이랄까? 이렇게 달라진 주인님은 처음이었어요.” “….” “아니지, 이건 당연한 일이겠죠.”

몸을 천천히 위로, 아래로 움직인다. 아트리아의 풍만한 젖가슴이 푸드득 소리를 내며 가슴판을 쓸고 다니니 강림의 심장은 쿵쾅거렸다.

세 명의 여자가 방에 있었을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영상으로만 보던 여자의 가슴살에 짓눌릴 수 있다니. 만약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강림은 쾌재를 울렸을 거다.

“본래 육신의 주인은 죽어버렸으니까.” “잠깐, 그게 무슨….”

의미심장한 발언에 강림은 물었다.

“주인이 죽었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즉, 이런 거죠.”

아트리아는 정강림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여비서의 뜨거운 숨결이 가까이에서 들려오니 쿵쾅거리던 심장이 더욱 크게 박동했다.

“썩어 문드러졌어야 할 육신에 새 영혼이 안착하였으니까. 그러니 주인님은 어색한 연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무, 뭐?”

그 말에 강림의 눈동자는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이 여자, 설마….’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어?

시체가 되어야 할 육신에 영혼이 안착했다. 여기에 해당하는 사람은 정강림 뿐이다. 죽었어야 할 육신인 그리드 몸에 안착한 영혼은 정강림이니까. 아트리아는 그걸 비유적으로 말한 거다.

그렇게 말할 정도면 진실을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어째서 자신이 게임 속 세상에서 눈을 떴는지, 왜 하필 극악무도하고, 끔찍하게 죽는 결말이 정해져 있는 이 페이크 보스 몸에 빙의하게 된 건지.

“저기….” “쉬잇.”

입을 열려는 강림의 입에 아트리아가 왼손 검지를 갖다 댔다.

“주인님이 무슨 소리를 하고 싶어 하는지 다 알아요.”

오른손은 밑으로 내렸다.

“하지만 주인님은 알아야 해요.”

오른손은 팬티에 도달했다. 당장 나가고 싶어 안달이 나 있는, 자지가 볼록 튀어나온 부위에 도달했다.

“살고 싶으면 이 삶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 부위를 살며시 쓰다듬기 시작했다.

“이미 이룩한 것을 없었던 것으로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그러자, 자지가 서서히 위로 솟아올랐다.

“주인님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위해선 그 길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해요.”

팬티를 뚫어버릴 기세로 강림의 자지는 우뚝 솟아올랐다. 사람의 팔뚝이 붙어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크고, 굵었다.

“만약 벗어나려 하면 모든 걸 다 잃어버릴 수 있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아트리아는 왼손 검지를 뗐다.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정강림은 어이가 없었다.

“벗어나지 말라고? 벗어나지 못하면 어떤 꼴이 되는지 알면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그리드처럼 살아라. 말은 쉽다. 자기 욕망대로 여자들을 겁탈하고, 자기 욕망대로 여자들을 임신시키고, 자기 욕망대로 사람들을 학살하는 놈이 되라고? 가당치도 않은 소리를. 그런 짓을 저지른 대가로 어떤 꼴을 당했는지 봤는데 자신이 할 것 같나? 누가 악당이 될 것 같냐고? 강림은 매섭게 노려봤다.

“당신이 날 뭐라고 부르든 난 이대로 살지 않을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을 거라고!” “그 살아남을 방도가 그 길에 있다면 어떨까요?”

아트리아가 되물었다.

“그 길에도 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당신은 선택할 겁니까?” “그런 게 있을 리….” “그리고,”

아트리아가 상반신을 일으켜 세웠다.

“어중이떠중이를 부르지 않았어요.”

자지가 우뚝 솟아있는 아래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가장 적합한 자를 골랐죠.” “골랐다니, 무슨….” “욕망에 충실할 수 있는 자.”

다리 밑으로 내려온 아트리아는 강림의 팬티를 벗겼다. 흉악하기 그지없는 고기 기둥이 늠름한 자태를 보여줬다.

“이 세상에서 지켜야 할 규칙 따윈 전부 무시할 수 있는 자.”

아트리아는 양손으로 그 기둥을 살며시 붙잡았다. 손바닥에서 느껴오는 차가움에 강림은 순간적으로 파르르 떨었다.

“그런 자를 골랐답니다, 주인님.” “아주, 좋은 사람을 골랐네, 아주, 좋은 사람을….”

그런 좋은 사람을 끔쌀 당하기 좋은 환경에 내던지냐? 강림은 그렇게 쏘아붙이고 싶었다.

“네, 좋은 사람을 골랐답니다.”

아트리아는 싱글벙글 웃었다.

“….”

아무리 반박해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 모습에 강림은 살짝 오싹해졌다. 혹시 이 여자가 흑막이 아닌가,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니까, 허락해주세요.”

그런 강림을 보며 아트리아는 요구했다.

“좋은 사람에게 봉사할 수 있도록 허가해주세요. 제 잘못을 씻을 수 있게 해주세요, 네?” “….”

속을 알 수 없는 여자다. 게임에서는 그저 그리드에게 충성을 바치는 일개 여비서에 불과했는데. 아트리아가 아닌, 아트리아의 껍질을 뒤집어쓴 게 아닐까? 강림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 주인님. 얼른 결정해주세요. 저 못 버틸 것 같아요.”

자지에서 풍겨오는 향긋한 냄새에 아트리아는 강아지처럼 헉헉거렸다. 그 모습을 본 강림은 고민에 빠졌다.

‘이 녀석을 따먹어?’

아트리아 말고도 수많은 여자가 이 방을 방문했다. 방에 처박혀 있음에도 항상 3명 이상의 여자가 방문했다. 하나같이 몸매가 발군이었고, 머리에 윤기가 흘러넘치며, 외모는 시장에 내놔도 견줄 밖에 없는 자들이었다.

항상 오는 이유는 하나. 밤에 시중을 들기 위해서. 나중에 알고 보니 그리드는 밤마다 여자들을 불러 정액 범벅이 될 때까지 갖고 논다고 한다. 이를 규칙으로 세웠기에 항상 오는 거라고.

강림은 여자들을 먹질 않았다. 자신이 그리드가 되었다는 충격에서 벗어나질 못했으니까. 그래서 양쪽으로 미녀들이 놀자고 해도 도저히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시간이 되면 나가라는 말만 할 뿐, 손대지도 않았다.

그럼 아트리아는 어찌하면 좋을까?

‘나는….’

분명 아트리아도 훌륭한 여성이다. 보드라운 살이 살아 숨 쉬는 젖통. 입으로 흡입하고 싶은 분홍색 첨단. 팬티 속에 가려져 있지만, 보지 속도 외모만큼 아름다울 거다.

하지만, 강림이 진짜로 좋아하는 캐릭터들은 따로 있었다.

‘나는….’

과금을 질러서 소중하게 얻은 캐릭터들. 이야기에선 모종의 이유로 배제되었지만, 게임에선 좋은 성능을 보여주던 캐릭터들. 아름다운 외모만큼이나 사연도 기구해서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그런 캐릭터들.

강림은 그런 캐릭터들을 원했다.

그리고 만약 이곳이 구미호들이 사는 여우섬이라면, 아직 시간이 많이 흐르지 않았다면 그 구미호도 있을지 모른다.

그 구미호를, 그 갈색 꼬리의 구미호를, 주인공 설화가 복수를 다짐하는 계기를 마련한 그 구미호를,

‘그 여자랑 하고 싶은데.’

먹고 싶었다. 적어도 그 여자를 먹고, 이 여자를 후식으로 먹고 싶었다.

강림은 자연스럽게 그런 결론에 도달했다.

‘잠깐만, 내가 무슨 생각을….’

바로 부정했지만.

“주인님, 제발, 제발 대답을, 미천한 죄인에게 벌을, 벌을….”

재촉하는 아트리아를 보며 강림은 입을 열었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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