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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웅 사관 학교 (6)
예리엘과 정체불명의 망토남.
두 사람이 이끄는 무리는 용건을 주고받았음에도 한동안 같이 동행했다.
용건을 전부 주고받았다고 해도 던전을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동행하는 쪽이 서로를 위해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동행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이틀째가 되었을 때, 망토남이 예리엘을 외딴곳으로 불러낸 뒤에 말했다.
“여기서 헤어지는 게 좋겠군.”
“…그래.”
예리엘은 남자의 말에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의 통보가 아쉽긴 했지만, 그의 입장도 이해가 갔다.
동행한 지 이틀째에 접어든 수색대는 드디어 입구 쪽 대원과 연락이 닿은 것이었다.
입구 쪽 대원과 연락이 닿았다는 건 입구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는 의미이고, 조만간 입구를 통해 이 던전을 빠져나갈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당연하게도 그 입구는 망토남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예리엘은 혹시나 싶음 마음에 차분하게 질문했다.
“너희들이 이용했던 출구에 문제는 없고?”
“뭐, 없겠지.”
예리엘은 망토남의 태평한 대답에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만약 출구 쪽에 문제가 있으면 우리가 이용하는 입구로 와. 당신들이 나갈 수 있도록 손을 써놓을 테니까.”
“그럴 필요 없어.”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잖아. 당신이 하지 말라고 해도 손 써놓을 테니까. 문제가 생기면 이용해.”
예리엘의 대답을 들은 남자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필요 없지만, 일단 마음만 받아두지.”
“….”
그렇게 대화가 마무리된 뒤에 망토남이 목소리를 깔며 예리엘에게 말했다.
“내가 준 물건을 아직 잘 가지고 있나?”
“당연하지.”
예리엘은 밖에서 주운 예쁜 돌을 부모님에게 보여주듯 주머니에서 물건을 주섬주섬 꺼내서 보여줬다.
망토남은 예리엘의 모습에 피식 웃고는 망토에서 베이지색 천으로 된 보따리를 꺼내서 예리엘에게 건네줬다.
보따리는 대략 수박만 한 크기였고, 보따리 안에는 둥그런 물체들이 잔뜩 들어 있는 듯이 음영이 그려져 있었다.
“받아.”
망토남은 예리엘에게 보따리를 건네줬고, 예리엘은 부랴부랴 보따리를 받아서 품에 안았다.
“이게 뭐야?”
“마나의 교란을 막아내는 물건.”
“아!?”
예리엘은 전에 성수아가 보여줬던 보석을 떠올렸다.
마나의 교란 능력을 일시적으로 무력화하는 물건.
그 보석을 망토남에게 받았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예리엘이 바로 보따리 내부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내부에는 달걀 모양의 보석이 잔뜩 담겨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USB가 하나 담겨 있었다.
예리엘은 USB를 꺼내서 망토남에게 물었다.
“이건 뭐야?”
“그 물건을 만드는 방법.”
“!?”
예리엘은 망토남이 건네준 마나 제어 불능 큐빅을 받았지만, 한편으로 불안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었다.
문제를 아는 것과 문제를 해결하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이 큐빅을 가지고 가서 연구를 시작한다고 해도 탑의 기술적인 한계로 인해 해답을 찾지 못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로써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
“그러면 여기서 헤어지지.”
“….”
모든 게 이 남자 덕분이었다.
예리엘은 살면서 단 한 명을 제외하고 이렇게 큰 도움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 한 명은 자신의 아버지였다.
남자의 뒷모습은 과거에 아버지와 전혀 달랐지만, 분위기만큼은 완전히 일치하는 사내였다.
예리엘은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 아니, 허리를 숙였다.
“정말 고마워.”
“….”
망토남은 잠시 뒤를 돌아서 예리엘의 모습을 힐끗 보더니, 다시 정면을 보며 입을 열었다.
“힘들게 기회를 마련해줬으니, 부디 헛방질 하지 않길 빌지.”
망토남은 그렇게 말을 남기고 떠나갔다.
자칫 예리엘의 감사를 무시하는 듯 보일 수 있는 행동이었지만, 당사자인 예리엘은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
자신의 굽히는 모습을 보지 못한 척 배려해줬다는 사실을….
예리엘은 그렇게 허리를 펴고 남자가 떠나간 자리를 확인했다.
“자, 그러면… 가볼까.”
예리엘은 남자의 말을 마음속에 새기며 수색대와 같이 던전을 다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
..
던전을 들어갔다 나온 사이에 세상이 많이 변해있었다.
일단 큰 사건 중의 하나는 대형 방송국들이 괴생물체의 공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놀랄만한 사건인데, 더 놀라운 건 그 이후였다.
탑에 적대적인 기사를 쓰던 기자들이 갑자기 입이라도 모든 듯이 우호적인 기사를 뿌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이번 선발대 구출 작전이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자, 그 기자들이 예리엘의 찬양 기사를 쏟아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좋은 방향으로만 흐르는 법은 없었다.
예리엘이 직접 던전에 들어가서 구출 작전을 펼치는 사이에 총대주교인 신석권이 폭탄 발표를 한 것이었다.
그건 바로….
(저희 교단이 그 괴물들을 퇴치할 방법을 알아냈습니다.)
바로 괴생물체의 처리 방법이었다.
근원지도 불분명한 괴생물체.
(그 방법은 바로… 상태 이상 해제입니다.)
그 괴생물체를 회복사들의 [상태 이상 해제]로 쉽게 처리할 수 있다는 발표를 한 것이었다.
갑작스럽게 개체수를 늘리며 등장한 괴생물체.
몬스터도 분명 위협이 되는 존재였다.
하지만 과거와 다르게 영웅 체계가 잡히고, 치안이 안정되어 가면서 괴수와 몬스터는 던전을 제외하고 보기 힘들어진 상황이었다.
그런데 괴생명체는 그런 환경을 무시한 채 영사관이나 방송국같이 도심 한복판에 있는 시설을 덮친 것이었다.
가뜩이나 교단의 위세가 강한 상황.
(저희 교단이 시민 여러분들의 안전을 책임지겠습니다!)
만약 신석권의 말에 사실이라면 탑과 대형 길드… 심지어 그 밑에 중견이나 중소 길드들은 피 말리는 싸움을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예리엘은 신석권의 폭탄 발언이 나오는 영상을 보면서도 크게 내색하지 않았다.
그저….
“…이게 사실이라고?”
책상에 놓여 있는 노트북을 보며 경악하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노트북에는 망토남이 건네준 USB가 꽂혀 있었고, 그 USB 안에는….
“이 짓을 전부… 교단이 했다고?”
교단이 저지른 악행으로 추정되는 정보들이 무수히 담겨 있었다.
예리엘은 집무실 티비에서 나오는 신석권의 모습을 바라봤다.
(저희 교단은 탑과 3대 길드, 더 나아가서 모든 길드와 합심해서 이 위기를 극복할 것입니다.)
사람을 홀리는 듯한 은은한 미소로 연설하는 신석권.
예리엘도 신석권이 마냥 선한 인물이라는 생각은 한 적이 없었다.
가끔 만나면 으르렁거리며 견제하곤 했지만, 경쟁자라는 입장이라 그런 것이라고 생각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너무 세상을 만만히 봤나….”
예리엘은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것처럼 충격을 받은 것이었다.
예리엘은 신석권의 목소리를 들으며 망토남이 준 정보를 계속 훑어봤다.
그리고 읽으면 읽을수록 예리엘의 속에 담겨 있던 불안함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불안한 이유는 단 하나….
“이게 알려지면… 한동안… 아니, 어쩌면 복구 불가능한 상태가 될 수 있어.”
바로 혼란이었다.
교단은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도 영향을 줄 정도로 거대한 길드였다.
다른 길드의 기준으로 큰 문제도 교단이라면 쉽게 덮을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 문제를 터트린 게 예리엘이고, 망토남이 건네준 증거라면… 천하의 교단도 절대로 덮을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국가내란죄, 외환죄… 확정되는 순간 줄줄이 사형이겠네.”
그리고 만약 망토남이 건네준 정보가 정확하고, 교단이 정말 그런 악행을 저지르는 단체라면….
“절대 얌전하게 잡힐 리가 없어. 마지막 발악을 하겠지.”
차라리 자폭을 택할 가능성이 컸다.
신석권만 악행을 저질렀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현재 정보를 기준으로 교단에 있는 고위직 대부분이 사형받아야 하는 수준이었다.
예리엘은 데이터를 전부 확인한 뒤에 노트북 화면을 내리며 한숨을 쉬었다.
“하아아… 이거… 진짜겠지?”
망토남이 건네준 정보는 어렵지 않게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추측을 기준으로 뒷조사하는 것과 이미 정보를 확보한 상태에서 뒷조사하는 건 난이도 자체가 달랐다.
사실 여부만 확인하는 건 작은 실오라기 같은 정보로 시작해도 순식간에 직조기로 면을 만들어내듯 엮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뒷조사를 하지 않았음에도 예리엘은 이미….
“…맞겠지.”
정보가 정확할 것이라고 확신한 것이었다.
그만큼 망토남을 신뢰했기 때문이었다.
예리엘은 조용히 천장을 보다가 귓속에 들려오는 신석권의 목소리에 번뜩 정신을 차렸다.
(교단은 여러분들의 안전을 위해서만 존재할 것이고, 평화를 위해서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만….)
신석권은 그 말을 남기고 기자회견을 마쳤다.
그 뒤에 티비에서는 토론회 프로그램이 열렸고, 신석권이 한 말에 대한 열띤 토론이 오고 갔다.
대부분 교단에 긍정적이었고, 탑과 3대 길드에는 부정적으로 이야기를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괴생명체가 끼치는 피해와 위험함은 영웅들조차 위기감을 느낄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교단은 손쉬운 해결책을 내놓은 것이었다.
그것도 교단만 이용할 수 있는 해결책을….
예리엘은 티비를 보며 계속 한숨을 내쉬었다.
“어떡하지? 지금 당장 이 모든 것을 터트리기에는 너무 위험해.”
예리엘도 정보의 사실 여부는 확인하고 덮칠 생각이었다.
하지만 사실 여부를 확인한다고 해도 문제가 산적해 있었다.
“정부… 쪽도 분명 관여하고 있겠지. 그 많은 돈을 그냥 땅속에 파묻어 놨을 리가 없으니까.”
예리엘은 눈을 감고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겪어왔다고 자부하는 예리엘도 오늘만큼 고민한 적은 없었다.
자신이 위험하다? 온 힘을 다해서 싸우면 그만이다.
동료가 위험하다? 앞뒤 생각하지 않고 뛰어들면 그만이다.
자기 자신만 희생할 수 있다면 발 벗고 나설 자신이 있는 게 예리엘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문제는 혼자의 희생으로 끝나지 않을 게 눈에 선했다.
“…진짜 피바다를 눈앞에서 보게 될 거야.”
예리엘은 의자에 기댄 다음에 고개를 천장으로 향한 뒤에 눈을 감았다.
도저히 결론을 낼 수 없었다.
분명 교단의 악행은 세상에 알려져야 한다.
하지만 알려지는 순간 악행을 저지른 자들이 세상을 혼란에 빠뜨릴 것이다.
“내가 그런 것을 결정해도 괜찮을까?”
예리엘이 그렇게 고민하며 서서히 잠들려는 순간….
(힘들게 기회를 마련해줬으니, 부디 헛방질 하지 않길 빌지.)
“읏!?”
남자의 목소리가 예리엘의 정신을 번쩍 차리게 했다.
정신을 차린 예리엘은 주변을 둘러봤고,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예리엘은 잠깐의 졸음과 환청 같은 목소리 덕분에 머릿속이 맑아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희생이 두렵다고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 수는 없어.”
예리엘은 그렇게 말하며 손목에 채워진 팔찌를 봤다.
금으로 된 팔찌에 뱀 모양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그 뱀의 눈에는 붉은색 루비가 박혀 있었다.
사람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팔찌.
예리엘은 팔찌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외쳤다.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이제 수단과 방법을 가릴 상황이 아냐!”
예리엘은 그렇게 외친 뒤에 집무실을 빠져나가기 위해 문고리를 잡고 돌렸다.
예리엘은 그 순간 망토남의 품에 안겨서 그의 손을 마주 잡았던 것을 떠올렸다.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
‘이 일이 잘 끝나면 얻어먹었던 거 전부 갚으러 갈 테니까 기다리라고….’
***
나는 눈을 뜨며 미소를 지었다.
‘휴우… 다행이네.’
내가 준 정보는, 내가 생각해도 예리엘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 같았다.
세상에 알려지는 순간 한동안… 아니, 평생 무정부 상태가 되는 것을 각오해야 할 정도로 위험한 정보였다.
그리고 예리엘이라면 자신의 안위가 아닌 일반인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최대한 조용히 처리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그래서 영혼 상태로 그녀의 상태를 몰래 확인했다.
하지만 예리엘의 결심을 보고 안도할 수 있었다.
‘준비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터트리긴 하겠네.”
예리엘은 최대한 많은 안전장치를 마련한 뒤에 터트릴 생각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안전장치를 예리엘 혼자 마련하게 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나도 교단에 몰래 잠입하면서 계속 정보를 알아봐야지.’
내 능력이 닿는 범위 안에서 예리엘을 최대한 도울 생각이었다.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려서 다행이야.’
예리엘과 성수아의 위기를 구해주고, 더 나아가서 예리엘에게 교단의 악행까지 전부 알려줬다.
무엇보다 나는 그녀에게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히든카드까지 건네줬다.
‘팔찌를 사용하면 수월하게 해결하겠지.’
예리엘에게 건네준 [오시리스의 팔찌].
원래는 지팡이의 형태였지만, 평범한 팔찌와 연금술로 합친 것이었다.
그리고 합친 이유는….
‘좀 작게 만들었는데, 딱 맞아서 다행이네.’
예리엘을 위해서 만든 것이었다.
[팔찌를 이용하더라도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내가 준 정보의 진위도 파악해야 하고, 안전도 그만큼 중요하니까.’
일단 이번 사건을 잘 마무리되었다.
교단과 연관된 조직도 거의 궤멸시켰고, 성수아와 예리엘도 안전하게 구할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오래 기다렸지? 슬슬 보상받고 싶은데?”
“…알았다.”
내 눈앞에 있는 레이라와의 거래를 마무리할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