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의 여자를 빼앗는 방법-881화 (882/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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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웅 사관 학교 (6)

어둠으로 뒤덮인 거대한 복도.

중간마다 설치된 횃불에서 노란색 불꽃이 살랑거리며 마치 저승길로 인도하는 듯한 음침한 분위기의 복도였다.

복도를 걸어가던 성수아가 옆에 나란히 걷고 있는 예리엘에게 한마디 건넸다.

“지금까지 왔던 던전과 분위기가 많이 다르네요.”

“그러게…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은 사실 거짓에 가까웠다.

그녀들의 길을 안내해주는 횃불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횃불은 마치 이 복도의 일부분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잘못된 말은 아니었다.

복도는 그 자체만으로 웅장함을 자랑했지만, 한편으로 허전하기도 했다.

장식품이나 벽화도 없었고, 심지어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돌멩이조차 눈에 띄지 않았다.

성수아는 주변을 둘러보며 감상평을 읊기 시작했다.

“이제 막 만들어진 곳 같네요.”

성수아의 말대로 만들자마자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그런 장소였다.

“그래… 그러니까 절대 긴장 끈을 놓지 마. 시간이 멈춘 듯한 것처럼 관리가 잘 되어 있다는 건… 함정도 그만큼 깨끗하다는 의미니까.”

“네.”

예리엘의 말에 성수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예리엘의 경우를 가슴 깊이 새기던 성수아는 갑자기 손목에 빛과 진동이 흘러나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수색대에서 연락이 왔어요.”

성수아는 예리엘에게 그렇게 말하며 바로 통화를 받았다.

그리고 통화를 받자마자….

(전투 상황이야!)

“전투요!? 상대는요?”

(그, 그게… 크윽!)

몇 마디도 주고받지 못한 채 통화가 종료되었다.

성수아는 다급한 표정으로 예리엘을 보며 외쳤다.

“예리엘 님!”

“그래! 빨리 가자!”

예리엘이 공중에 뜨며 순식간에 날아가자마자, 성수아도 옆에서 이동 마법을 펼친 뒤에 예리엘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여유를 부릴 상황이 아니었다.

예리엘과 성수아는 함정이 있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장소를 그냥 강행하며 돌파하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두 사람이 그렇게 전속력으로 10분간 날아가서 도착한 곳은….

“이곳은….”

“….”

거대한 홀과… 같은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홀이라는 표현을 써도 되나 싶을 정도로 광활한 넓이를 지니고 있었다.

길을 안내하는 거대한 기둥들이 천창으로 쭉 뻗어 있었는데, 정작 천장은 너무 높아서 어둠으로 뒤덮여 있었다.

마치 어둠에 기둥이 매달린 것 같은 그런 장소였다.

무엇보다 벽 대신 길을 안내하는 듯한 기둥들이 나열된 눈앞에도 어둠이 깔릴 정도로 길게 뻗어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서 두 사람의 고막을 자극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콰앙… 타탁… 파아앗….

예리엘은 앞으로 튀어 나가면 외쳤다.

“가자!”

“네!”

이 홀을 밝히는 건 초라한 횃불뿐이었지만, 두 사람은 멀리서 들려오는 싸움 소리의 안내를 받으며 전속력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소리의 안내를 받아서 도착한 장소에서는….

파아앙! 타악! 챙! 파바밧!

어둠을 지울 정도로 각종 색의 불꽃이 솟아나고 없어지길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빛이 만개하고, 사그라드는 장소에서….

“최대한 진영을 유지해!”

“조심해!”

백여 명에 가까운 인원들이 마법을 난사하고, 칼을 휘두르며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전투의 중심에는 예리엘과 성수아가 이끌던 수색대가 포위되어 있었다.

“일단 합류하자!”

“네!”

상황이 마냥 나쁘지 않았다.

수색대는 포위된 상태였지만, 진영을 잘 유지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들을 포위하는 적들의 숫자가 수색대보다 적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예리엘과 성수아가 외부의 적에게 공격을 가하려는 순간이었다.

“예리엘 님!”

“성수아!?”

수색대 일부가 예리엘과 성수아를 알아보고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예리엘은 그들의 반가운 표정에 인사가 아닌 명령으로 대답했다.

“우리는 외부에서 제압할 테니까, 집중해!”

그렇게 예리엘과 성수아가 같이 적을 공격하려는 순간….

“예리엘 님, 공격하면 안 됩니다!”

“!?”

포위된 수색대 대원의 외침에 예리엘뿐만 아니라, 성수아도 당황해서 뻗었던 팔을 거두었다.

예리엘은 순간적으로 대원이 외침을 해석하기 시작했다.

‘혹시 마나 제어 기믹 때문인가?’

그 문제라면 이미 해결책이 존재했었다.

정체불명의 남자에게 받은 보석.

성수아가 가지고 있는 보석을 사용한다면 그 문제는 단숨에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예리엘의 추측은 자신을 향해 돌아보는 적을 마주하며 잘못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으으….”

“예리엘 님! 저분은…!

“!?”

성수아와 예리엘이 놀라자마자 대원이 목청 높여 소리쳤다.

“전에 실종되었던 선발대입니다!”

예리엘과 성수아는 대원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적의 얼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복장 여기저기가 찢어져서 좀비처럼 서 있는 적들은….

“흐으으….”

전부 실종되었던 선발대 대원이었던 것이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눈에 초점이 없는 상태로 좀비처럼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하지만 흐느적거리는 행동과 다르게 그들의 공격은 매섭고, 정교하며, 살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예리엘은 적의 정체를 알고 나서야 현재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애를 먹은 이유가 이거구나!’

숫자로만 본다면 수색대가 전혀 밀릴 구석이 없지만, 상황은 수색대에게 압도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실종되었던 동료들이 세뇌당한 듯이 덤비는 상황.

수색대의 최우선 목표는 선발대를 찾고, 그들을 구하는 것이었다.

수색대 입장에서는 아무리 목숨이 위태로워도 진심으로 동료를 공격할 수는 없던 것이었다.

“그어어어어!”

조금 전까지 예리엘과 성수아를 신경 쓰지 않던 실종된 대원들이 고개를 돌려서 그녀들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수아야! 호위해줘!”

“네!”

성수아는 대답과 동시에 방어 마법을 펼쳤다.

상대방을 안전하게 제압하기 위해서는 본인의 안전을 우선적으로 확보해야 한다는 계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성수아의 계산은 잘 맞아떨어졌다.

쿵!

“끄어어억!”

두 사람에게 덤벼드는 대원들을 성수아가 막는 사이에….

“아파도 좀 참아!”

예리엘이 중력 마법을 이용해서 단숨에 제압하기 시작했다.

예리엘의 중력 마법에 영향을 받은 건 한두 명이 아니었다.

“끄어어어억!”

“크어어억!”

세뇌된 듯한 대원들의 몸을 차근차근 짓누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중력을 벗어나기 위해 예리엘에게 마법을 난사했지만, 그 마법은 모두 성수아의 방어 마법에 막혔다.

그렇게 예리엘과 성수아의 등장으로 단숨에 상황이 역전되었다.

아까까지 숨도 제대로 못 쉬며 싸우던 수색대 대원들은 정리된 상황에 허탈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후우우… 면목이 없네요.”

“그러게….”

하지만 수색대원들은 숨을 고르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예리엘의 손길이 닿지 않는 적을 빠르게 제압하기 시작했다.

예리엘은 제압하면서 대원 말고 다른 적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실종되었던 선발대 말고도 있네?”

“네. 아마 선발대를 기습했던 녀석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

예리엘은 막상 이런 상황에 놓이니 후회가 들기 시작했다.

‘간단하게라도 용건을 들을 걸 그랬나?’

정체불명의 남자는 다른 사람도 아닌 예리엘에게만 용건이 있다고 찾아왔었다.

그는 수색대를 기습한 자들을 아는 것부터 시작해서 마치 던전의 모든 정보를 손에 쥐고 있다는 듯이 행동했었다.

더 나아가서 던전의 기믹을 자유자재로 발동하고, 마나 제어 불능 현상의 정체까지 알고, 예리엘조차 생소했던 현상을 파훼하는 아이템까지….

그 남자가 무슨 용건으로 자신을 찾았는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지금 상황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하지만 예리엘은 바로 고개를 절레거리며 생각했다.

‘아냐…. 처음 보는 자의 호의를 제일 주의해야지.’

예리엘이 마음속에 새겨두었던 말 중의 하나였다.

그야 처음 보는 사람이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선한 마음을 지닌 사람은 감사의 인사 한마디로도 충분한 보답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선한 자라면 감사하는 인사 한마디로 충분하지만, 악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면 인사 한마디로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그게 예리엘이 생각하는 호의를 베푸는 사람에 대한 평가였다.

‘분명 다시 만나게 될 거야. 그전에 빨리 정리해 놓는 게 좋겠지.’

예리엘은 그렇게 생각하며 차근차근 제압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렇게 상황이 정리되나 싶은 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앙!

“감히, 누가 옥좌에서 소란을 피우는 건가!!”

이 넓은 공간을 꽉 채울 수 있을 정도로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뭐, 뭐야!”

“!?”

수색대와 성수아뿐만 아니라, 예리엘도 놀란 표정으로 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모두가 바라본 곳에는 아까까지 아무것도 없던 수많은 계단이 등장해 있었다.

아까 통과했던 석문과 비슷한 높이의 구조물이었다.

‘뭐지? 아까는 분명 빈 공간이었는데.’

갑자기 튀어나온 계단 구조물 끝에는 한 사람이 앉기에는 과분할 정도로 거대한 황금색으로 빛나는 왕좌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황금 왕좌에는….

콰아앙!

“짐의 옥좌에서 소란을 피우는 자가 누구냐고 물었다!!”

“….”

이 던전과 아주 잘 어울리는 복장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머리에 뱀 장식이 달린 네메스(파라오가 쓰던 널찍한 두건)를 쓰고, 하얀색 천 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몸 곳곳에 화려한 장신구들이 잔뜩 걸려 있었다.

그중에 제일 눈에 들어오는 건 그가 들고 있는 황금색 코브라 지팡이였다.

다들 침을 삼키며 침묵을 유지할 뿐,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침묵을 대변하듯 예리엘이 입을 열었다.

“당신이야말로 누구지?”

제일 나이가 어려 보이는 그녀는 제일 연장자인 것처럼 입을 연 것이었다.

예리엘의 목소리에 파라오로 보이는 남자는 지팡이를 다시 바닥에 찍으며 외쳤다.

쾅!

“감시 계집애 주제에 짐을 바라보고, 입을 열다니!!”

“하아….”

예리엘은 지금, 이 순간만큼 첫인상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려준다는 옛말에 적극적으로 동의하기로 했다.

예리엘이 어처구니없이 바라보자, 주변에 있던 수색대원과 성수아의 눈에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탑의 마법사들에게 존경하는 사람을 딱 한 사람 꼽으라고 하면 모든 마법사가 단 한 사람을 지목한다.

바로 예리엘이었다.

그런 자신들의 우상에게 저런 무례한 말을 하는데,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저 새끼가….”

다들 예리엘이 앞에 있음에도 분노를 쉽게 가라앉히지 못했다.

심지어 자신의 모욕을 쉽게 넘길 수 있는 성수아도 이번만큼은….

“….”

분노를 얼굴과 눈에 가득 담아서 왕좌에 앉아 있는 자를 노려봤다.

파라오로 보이는 남자는 한껏 인상을 쓰더니, 고개를 절레거렸다.

“저깟 어린 계집애에게 휘둘리는 녀석들인 것을 보니, 이번에도 별것 아닌 놈들이었군.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

다들 분노와 별개로 남자의 다음 말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자는 지팡이를 앞으로 내밀고 바닥에 내리찍으며 외쳤다.

콰아아아아앙!

“짐은 모든 존재의 위에 서 있는 파라오다! 내 백성이 될 자들의 아둔함을 이해할 수 있는 넓은 아량을 가졌도다!”

“!?”

예리엘은 지팡이로부터 퍼져 나오는 파도 같이 몰아치는 마나의 형태에 경악하며 제압하던 모든 마법을 거두고, 계단 앞으로 튀어 나아갔다.

그러고는 자신의 모든 힘을 끌어모아서 중력 마법을 펼쳤다.

파도같이 밀려오던 마나가 예리엘의 마법에 막히자, 거센 폭풍이 주변을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크으윽!”

“오….”

옥좌에 앉아 있던 파라오가 지팡이를 앞으로 내민 채 여유롭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생긴 것과 다르게 보통 계집이 아니었군!”

“크으으윽!”

“겉모습만 보고 짐이 너무 섣부른 판단한 한 모양이군!”

파라오의 웃음소리와 함께 거센 마나의 파도가 더 강하게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거센 마나의 폭풍 속에 성수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예리엘 님!”

“저희도!”

성수아와 수색대원들이 예리엘의 옆에 서서는 돕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두의 도움은 아쉽게도 이 상황을 호전시킬 수 없었다.

예리엘의 마법은 파라오의 마나를 효과적으로 막아냈지만, 나머지 사람들의 마법은 전혀 효과가 없었다.

예리엘은 머리카락이 젖을 정도로 땀을 흘리며 외쳤다.

“다들 퇴각해! 내가 막고 있는 동안!!!”

“안 돼요! 그럴 수….”

“내 말 들어!!!”

예리엘은 평소에 내지 않던 고막을 찢을 듯한 성대로 명령했다.

“선발대가 저렇게 세뇌된 원인은 저 녀석의 저 지팡이 때문이야!!!”

성수아는 예리엘의 말을 듣자마자 자신을 공격하던 선발대의 모습을 확인했다.

아까까지 최면에 걸린 듯이 공격하던 선발대가 전부 실이 끊긴 인형처럼 쓰러져 있었다.

“이렇게 방어에만 집중하면 녀석과 싸울 수 없어!!! 다들 빠진 사이에 내가 혼자 상대하겠어!!”

“하, 하지만…!”

“감정에 휘둘리지 마!!!”

“읏….”

예리엘의 외침에 성수아는 움찔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그녀의 뒷걸음질과 동시에 한 동료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다급하게 말했다.

“가자!”

“하, 하지만….”

“최악의 상황을 네 손으로 만들고 싶어? 최소한 발견한 선발대는 안전한 곳으로 빼내야 해! 그 뒤에 다시 오자고!”

“….”

성수아는 눈을 꽉 닫고 결심한 듯이 눈을 뜨며 외쳤다.

“조금만… 조금만 버텨주세요! 금방 도와줄 사람을 데리고 올게요!”

성수아는 그렇게 외친 뒤에 동료들과 같이 정신을 잃은 선발대를 업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예리엘은 점점 사라져가는 성수아의 뒷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 남자가 대단하긴 대단한가 보네. 나도 모르게 안도를 한 것을 보면….’

예리엘은 그렇게 생각하며 동료들이 전부 사라지는 것을 확인했다.

모두 확실히 퇴각한 것을 확인한 예리엘은….

“좋아!!!”

얼굴에 살기를 잔뜩 집어넣으며 계단 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예리엘은 그동안 막아내던 마법을 날카로운 송곳 형태로 만들어서 거대한 마나 파도를 뚫고 나가기 시작했다.

아까까지 거만하게 굴던 파라오는 당황해하며 지팡이를 양손으로 잡고 더 큰 마나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 이 녀석이!!”

“하으으윽!”

저돌적으로 돌진하던 예리엘도 파라오와의 거리를 5미터 정도 남긴 채 다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마나는 무한할 수 없다.

그건 마법사의 정점을 찍었다고 알려진 예리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파라오가 가진 지팡이는 예리엘의 상식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상식 이상의 어마어마한 마나를 방출했다.

예리엘은 본인이 사용하는 중력 마법에 자신이 점점 짓눌리기 시작했다.

‘조금만… 앞으로 가면….’

예리엘은 성수아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비장의 수가 있었다.

바로 자기 옷에 달린 브로치.

탑의 수장인만큼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마주할 것을 각오해서 간직하고 다닌 아이템이었다.

사용 즉시 생명력을 소진해서 폭발적인 마나를 쏟아낼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이 아이템은 외부로 방출하는 마나의 소모량에 따라서….

‘조… 좀만 더….’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위험한 아이템이기도 했다.

예리엘은 지금 당장 아이템을 쓰려는 건 아니었다.

‘저 녀석 힘의 원천은 지팡이야! 저것만 뺏을 수 있다면…!’

아직 그녀에게 희망이 있었다.

예리엘은 자기 생명력을 끌어 쓰듯이 마나를 방출하며 한 발짝 내디뎠다.

그 순간….

‘…어?’

주변이 갑자기 어둠으로 물들더니, 갑자기 과거의 기억들이 주변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현호랑… 유미…?’

현호는 에브리카의 회장이었고, 유미는 과거 예리엘의 피가 이어져 있지 않은 자매였다.

이미 늙어서 거동도 불가능한 온현호와 이미 죽어서 이 세상에 남아 있지 않은 온유미.

두 사람이 어린 모습으로 예리엘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그녀와 비슷한 나이 또래로….

‘이거 뭐지…? 꿈인가?’

그리고 세 사람 앞에 나타난 자는….

‘…윽.’

키가 족히 2미터는 넘는 거대한 풍채의 남자였다.

그리고 그 남자의 정체는….

‘…아버지.’

고아였던 삼 남매를 마치 진짜 부모처럼 키워준 존재였다.

그런 예리엘이 평생 사랑해 온 아버지는 … 성인이 된 온유미를 죽이고, 예리엘은 평생 성장하지 못하는 아이로 만들고는 자취를 감추었다.

‘…괴물.’

예리엘은 그렇게 주마등 같은 미친 듯이 몰려오는 과거 기억을 보며 아려오는 가슴을 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렇게 아려오는 심장을 손으로 진정시키자….

파아아아앗!!

“읏!?”

아까 쏟아지던 마나 파도를 막던 장면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예리엘의 모습을 본 파라오가 추한 폭소를 터트리며 예리엘을 조롱하기 시작했다.

“크하하하하! 얼빠져 있는 모습을 보니, 얼마 남지 않은 모양이구나! 네 능력은 높이 사주마. 내 친히 너를 교화해서 평생 내 옆에서 시종을 들게 해주마!! 프하하하하!”

“….”

예리엘은 파라오의 모습을 보고 나서야 자신이 본 것이 환각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본 게 그딴 환각이라니….’

삶에 대한 집착은 없었다.

하지만 바람은 있었다.

자신과 남매들을 이 꼴로 만들고 사라진 남자에게 이유를 묻고 싶었다.

왜 그랬는지 이유 하나만 알 수 있다면 죽어서도 기분 좋게 성불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예리엘은 직감했다.

‘…죽어서도 평생 이승에 남아돌겠네.’

예리엘은 지금, 이 순간이 자신의 마지막이라고….

그런 예리엘의 결심은 그녀를 한 발짝 더 앞으로 내딛게 해줬다.

‘만약 이 녀석에게 세뇌당하면… 진짜 끝이야!’

예리엘은 세뇌당한 자신이, 부하들을 공격하는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더 이상 요행을 바래서는 안 돼!’

만약 진짜 세뇌되기라도 하는 날에는 동료를 구하러 들어온 자신이 탑을 무너뜨리는 주요 원인이 될 것이었다.

두 사람의 거리는 대략 3미터.

예리엘은 점점 희미해져 가는 자신의 마법을 보며 가슴에 달린 브로치에 손을 올렸다.

예리엘은 브로치에 손을 올리는 순간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결국 그 남자의 용건은 뭐였을까?’

그 의문 하나만이 머릿속에 남은 채 브로치에 마나를 주입하려는 순간이었다.

“오… 이거 꽤 시원한데?”

“???”

예리엘은 자신을 삼킬 것처럼 쏟아지던 마나 파도가 갑자기 사라진 것을 느꼈다.

그러고는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예리엘의 눈에 들어온 건….

“마침 선풍기 한 대 사고 싶었는데, 잘됐네. 내놔.”

“….”

제일 신뢰가 가지 않으면서도 제일 바랐던 남자의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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