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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사관 학교 (6)
“…혹시 이상하다는 생각 안 드시나요?”
같이 던전을 탐색하던 성수아가 나지막이 흘린 질문이었다.
나는 그녀의 질문에도 시선을 주변 경계로부터 떨어뜨리지 않고 입을 열었다.
“…이상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던전에 들어오고 나서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몬스터를 만난 적이 없었다.
그나마 마주한 적이 있다면, 교단에서 보낸 조직원과 괴생물체 정도였다.
성수아도 그들의 정확한 정체는 모르지만, 이 던전 내부에 존재가 아니라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저는 지금까지 이런 던전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어요. 혹시 당신은 아시는 정보가 있나요?”
“…나도 몰라.”
“그렇군요….”
성수아는 내 말을 믿는지 더 캐묻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야기를 멈춘 건 아니었다.
“거기다 던전의 형태와 규모도 제가 지금까지 다녔던 던전과 너무 다르네요.”
“….”
나는 성수아의 말에 공감하듯 고개를 슬며시 끄덕이며 주변을 둘러봤다.
피라미드 내부를 연상시키는 정교한 구조물.
벽 곳곳에 그려진 아름다운 벽화.
아무런 기능이 없지만, 역사적 가치가 뛰어나 보이는 각종 장식품….
영웅이 목숨을 걸고 들어오는 던전이 아니라, 고고학자가 들어오면 환호를 지를 것 같은 그런 장소였다.
나는 성수아의 이야기를 듣고, 딱 한 줄 평으로 대답했다.
“냄새나고 눅눅한 던전보다는 훨씬 낫네.”
“….”
성수아는 한동안 멍하니 나를 보더니….
“푸웃… 그렇네요.”
갑자기 피식 웃으며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성수아의 웃음소리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웃길 게 있나?”
“없죠. 웃기기보다는… 그냥 신기해서 그랬어요.”
“신기?”
“생소한 던전에 들어왔잖아요. 그런데 앞으로 닥칠 위험이나 떨어진 동료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마치 귀찮은 일을 맡으신 것처럼 행동하시잖아요.”
“???”
설마 비난하는 건가 싶었지만….
“실력만큼 대단한 담력이네요.”
“….”
비난이 아닌 나름대로 칭찬을 건네는 것이었다.
성수아에게 처음 봤을 때 느껴졌던 경계심은 완전히 사그라든 지 오래였다.
그야 신분을 숨기고 있어서 기본적인 불신까지 지우지는 못했지만, 현재 이 던전에서만큼은 동료처럼 대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느슨한 분위기로 던전을 탐색하는 중에….
“…멈춰.”
내 눈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네? 왜 그러세요?”
“…저기 누가 있어.”
네 개의 기질창이 내 시야에 포착되었다.
당연하게도 네 개의 기질창은 전부 나와 연관된 자들의 기질창이었다.
교단이 비밀리에 운영하는 조직의 조직원들….
내 말을 들은 성수아는 조금 전까지 느슨하게 풀렸던 표정을 바로 잡고 눈에 힘을 주며 내게 물었다.
“방향은요?”
“저쪽이야.”
“저쪽 방향이라면… 제 동료는 아닌 거 같네요.”
“대충… 1킬로 정도 떨어진 거 같네. 인원수는 넷.”
“…여기서 그게 느껴진다고요?”
성수아는 토끼 눈으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저 1킬로 범위 밖에 있는 존재의 인기척을 느낀 것에 놀란 것이 아니었다.
이런 곳에 숨어 있는 녀석들이라면 당연히 기척을 최대한 숨기고 돌아다니는 중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존재를 내가 확실하게 캐치했다는 사실에 놀라는 것 같았다.
“어디까지나 대충 느껴지는 수준이야. 너랑 내 동료가 아니라면… 누군지는 대충 알만하네.”
“…잡을 건가요?”
성수아는 내 눈치를 보며 내 대답을 기다렸다.
평소에 언제나 나를 이끌어주던 성수아가 저렇게 내게 기대니 생각보다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그런 성수아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알면서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
“…알았어요.”
성수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
..
전투는 예상보다 싱겁게 끝났다.
전투가 싱겁게 끝난 이유는 단순했다.
나는 쓰러진 녀석의 배를 걷어차며 물었다.
퍼억!
“커어억!”
“뭐야? 너희들뿐이냐? 그 이상한 괴물들은 어쩌고?”
녀석들에게 괴생물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곳으로 향할 때만 하더라도 당연히 녀석들의 옆에 괴생물체가 있으리라 생각하며 나름 치열한 전투를 예상했었다.
하지만 그런 예상과는 다르게 전투는 고작 30초 만에 끝나 버렸다.
심지어 나는 조금 전에 있었던 싸움에 참여하지도 않았었다.
조직원 네 명을 순식간에 제압한 건….
“후우….”
성수아 혼자였다.
이번 전투에 내가 참여하지 않고, 성수아 혼자 진행한 이유는 단순했다.
“와… 이거 진짜 작동하는 거였네요?”
내가 성수아에게 준 기계를 테스트해 보기 위해서였다.
당연히 내가 등을 떠민 건 아니었고, 성수아가 자진해서 시험해 보고 싶다고 해서 허락한 것이었다.
“당연히 작동하지. 내가 설마 거짓말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의심해서 한 말이 아니에요. 기분 나쁘셨다면 사과할게요.”
성수아는 진심으로 내게 고개 숙여서 사과를 해왔다.
나는 그런 성수아의 모습에 머쓱한 몸짓으로 코웃음을 쳤다.
“아까 말해준 주의 사항 잘 숙지해. 망아지처럼 날뛰다가 발목 부러지지 말고.”
“마, 망아지라뇨!?”
나는 얼굴을 붉히며 발끈한 성수아를 놔두고, 다시 쓰러진 녀석들에게 시선을 줬다.
셋은 기절했고, 한 명은 다행히 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녀석의 배를 다시 한번 걷어차며 물었다.
퍼억!
“끄어어억!”
“말하라니까? 너희 애완괴물들 어디 있냐고?”
나는 몇 차례 발길질하며 녀석에게 똑같은 말을 되물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이… 이거나 먹어라! 캬악! 퉤!”
“….”
녀석이 뱉은 피가 섞인 침이었다.
당연히 나는 녀석이 뱉은 붉은색 액체가 담긴 침을 가볍게 피한 뒤….
퍼어어억!
“커어어억!”
다시는 침을 뱉지 못하게 입술을 발로 걷어차 버렸다.
그렇게 내가 폭력적으로 조직원들을 개 잡듯 두드려 패는 와중에도….
“….”
성수아는 눈매를 좁히며 노려볼 뿐이었다.
참고로 그녀가 노려보는 상대는 내가 아니었다.
바로 조직원들이었다.
내가 아는 성수아라면 왠지 폭력을 쓰지 말라고 말릴 것 같았지만….
“정말 입이 무겁네요.”
오히려 내 폭력을 보며 다독여줬다.
성수아의 착하고, 온순한 성격은 어디까지나 도덕과 윤리가 자리 잡은 사회에서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던전에 진입한 영웅으로서의 성수아는 냉정하기 그지없었다.
심지어 지금 내가 구타하는 존재들은 자기 동료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철천지원수 같은 녀석들이었다.
성수아는 내 눈치를 보느라 얌전히 있었지만, 본인도 직접 나서서 고문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성수아에게 그런 기회를 주지 않았다.
나는 입술 맞고 입을 가린 채 바닥에 뒹구는 녀석의 종아리를 발로 밟아서 뼈를 으스러뜨리기 시작했다.
콰드득!
“끄아아악!!”
“시끄러워.”
나는 그런 식으로 녀석을 계속 고문했다.
발로 차서 상처를 만들고, 그 상처의 뼈를 으스러뜨리고, 때린 곳을 또 때리고, 부러진 곳을 또 부러뜨렸다.
평범한 인간이었으면 진작에 죽어야 했지만….
파아아앗!
내 손에서 뻗어 나온 하얀색 빛이 녀석의 찢어진 살덩이와 부러진 뼈를 복구시켜줬다.
대충 열댓 번 정도 비슷한 행동을 반복하자, 조직원은 눈물 콧물을 질질 짜며 내게 애원하기 시작했다.
“끄아아악! 그, 그만해! 다, 다 말할게! 말할 테니까!”
나는 그제야 고문을 멈추고, 녀석의 말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내게 고문받던 녀석은 횡설수설하며 모든 것을 불기 시작했다.
“싸, 싸우는 중에 던전 기믹이 발동했는데, 괴, 괴물들도 같이 흩어져 버렸어.”
“아하, 버린 건 아니라는 거네?”
“마… 맞아.”
“그럼 됐어.”
“…뭐?”
“내가 알고 싶은 건 그것뿐이었어. 잘 가라.”
나는 볼일이 끝났다는 듯이 녀석들에게 손을 뻗어서 살의를 천천히 내뿜기 시작했다.
내 살의를 느낀 녀석이 큰소리로 애원하기 시작했다.
“자, 잠깐만! 너희도 원하는 정보가 있을 거 아냐!? 나, 나를 살려주면 내가 전부 알려줄게!!”
“원하는 정보?”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손에 힘을 풀자, 녀석은 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 그래! 내 조직, 조직의 목적이랑… 그, 그리고 내 정보도 알려주겠어! 사, 살려만 주면 자, 자수도 할게!”
그렇게 설득하는 녀석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실실 웃기 시작했다.
조직원뿐만 아니라, 내 옆에 있던 성수아도 실실 웃는 내 모습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손을 뻗은 채 입을 열었다.
“서정호.”
“!?”
“??”
갑자기 튀어나온 이름에 조직원은 경악한 표정을 지었고, 성수아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남자의 이름을 거론한 뒤에 그에 대한 정보를 차근차근 읊어줬다.
이름, 나이, 출신, 조직명까지….
내 말을 전부 들은 남자가 입술을 덜덜 떨며 간신히 말을 꺼냈다.
“어, 어떻게…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냈는지는….”
나는 말꼬리를 흐리며 손을 뻗은 뒤에 손에 살기를 잔뜩 불어 넣었다.
그리고 흐렸던 말을 다시 또박또박 읊었다.
“이제부터 죽을 네 동료랑 열심히 대화로 풀어봐.”
“아… 아아…. 사, 살려…!”
그렇게 녀석들을 죽이려는 순간….
“잠시만요.”
성수아가 내 팔을 잡고 제지한 것이었다.
나는 당연히 나를 제지한 성수아를 향해 한 소리 했다.
“왜 막는 거지?”
“저자의 말처럼 저희는 정보가 필요해요. 함부로 죽여서는 안 돼요.”
“하….”
성수아의 입장은 잘 이해가 갔지만, 불필요한 짓이었다.
나는 녀석들의 정체와 목적을 이미 전부 알고 있었다.
저 녀석의 정보는 내게 단 1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탑의 소속인 성수아의 입장에서는 달랐을 것이다.
나는 나를 막아선 성수아를 보며 물었다.
“그래, 네 말대로 살려준다고 치자.”
“…?”
“설마 저 네 명을 네가 전부 컨트롤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 그건….”
성수아도 현실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지금 같이 위급 상황에 우리 둘이서 저 네 명을 데리고 다닌다?
정보 몇 개 더 얻으려다가 위험한 상황만 줄기차게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성수아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그, 그럼 한 명만이라도….”
“….”
그녀의 입장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어떻게 해서든 자신들을 덮친 녀석들의 정체를 알아내고 싶은 거겠지.
‘괜히 책임감만 높아서는….’
성수아는 자신의 안전보다 탑을 노리는 적을 알아내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렇게 성수아와 나 사이에 교묘한 기류가 흐르는 순간….
드르르르륵!
바닥에 흔들리는 지진이 어색한 분위기를 완전히 집어삼켰다.
“!?”
“이, 이건 설마!”
전이 기믹이 일어나기 전에 나타나는 전조 현상이었다.
나는 혹시라도 성수아와 떨어질까 싶어서 내 팔을 붙잡고 있는 성수아의 팔을 꽉 붙잡았다.
그렇게 던전이 흔들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파아아아앗!
애써 잡아 놓은 네 명의 조직원이 사라져 있었다.
“아….”
성수아가 한동안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조직원들이 사라진 장소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리고는 정신을 차렸는지 입술을 입안으로 말아 넣으며 내 쪽으로 살며시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다.
나는 내 눈치를 보는 성수아의 팔을 놓으며 한숨을 쉬었다.
“설마 저런 식으로 살려주자는 의미인 줄은 몰랐네.”
“저, 저도 설마 저렇게 놓칠 줄은 몰라서…!”
성수아는 다급하게 변명을 시작했지만, 금세 자기 잘못을 깨닫고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죄, 죄송해요. 저 때문에….”
나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은 성수아를 보며 별 상관없다는 듯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됐어. 어차피 나중에 한 번에 잡으려고 했어. 그때 또 잡으면 그만이지.”
“아….”
“그리고 무작정 사과하는 버릇은 고쳐.”
“…네?”
지금 상황에서 성수아의 잘못을 억지로 하나 끄집어내자면 그녀가 내 행동을 제지한 것뿐이었다.
심지어 제지하던 시간도 길지 않았다.
내가 죽이려고 마음먹고, 실행까지 옮기는 사이에 분명 전이 기믹은 발동했을 것이다.
즉, 어차피 죽이지 못했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애초에 네가 막지 않았더라도 전이 기믹은 발동했을 거야.”
“그….”
“됐으니까, 빨리 안내나 해 줘.”
“…네.”
그렇게 상황을 정리하고 다시 출발하려는 순간이었다.
[수호 님, 큰일 났습니다.]
‘응? 무슨 일 있어?’
[지금 레나 씨와 문주아가 전이 기믹의 영향을 받아서 알 수 없는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뭐!? 장소는?’
[일단 상황을 파악 중입니다. 다행히 두 사람이 같은 장소에 도착했고, 주변에 적은 없습니다.]
‘휴우….’
일단 안심할 수 있었다.
레나와 문주아의 실력이라면 어디서 쉽게 당하지는 않겠지만, 변수는 언제나 조심해야 하는 법이니까.
‘일단 성수아에게 말해줘야겠지.’
내가 그렇게 아르모니아에게 들은 소식을 전해주려는 순간, 성수아가 놀란 표정으로 스마트 워치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어!?”
“무슨 일이야?”
“아까 있었던 전이 기믹이… 저희 동료들에게도 영향을 미친 모양이에요.”
“갈수록 태산이군….”
레나와 문주아가 당했으니, 그녀들 근처에 있던 수색대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리고 성수아와 연락이 닿았다는 의미는….
“저희가 있는 구역으로 전이가 된 모양이에요!”
성수아의 말처럼 서로의 위치를 공유할 수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는 의미였다.
“좋아. 그럼 결정해. 동료들한테 가는 게 좋겠어? 아니면 탑의 수장한테 가는 게 좋겠어?”
내 질문을 들은 성수아는 손목에 있는 스마트 워치를 보더니….
“…예리엘 님에게 가죠.”
당황한 표정으로 예리엘에게 가자는 결정을 내렸다.
“이유는…?”
“그게….”
성수아가 당황한 표정으로 대답하려는 순간… 내 시야에 한 기질창이 잡혔다.
그리고 그 기질창은 내 기준에서 납득하기 힘든 속도로 빠르게 다가왔다.
“우리가 갈 필요도 없어 보이네.”
“설마….”
내 말을 들은 성수아가 놀란 표정으로 내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성수아가 시선을 돌리는 순간 기질창이 바로 앞까지 도착했고, 기질창이 복도 코너를 돌며 동시에 한 여자아이의 실루엣도 같이 등장했다.
“휴우… 드디어 만났네.”
공중에 둥둥 뜬 예리엘이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