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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로운 조수
강한나와 내 침실은 개인 연구소 안에 마련되어 있었다.
나는 알몸 상태로 침실에 붙어 있는 욕실에 들어가서 씻은 뒤에 침대에 누웠다.
그렇게 잠시 누워있으니 한 사람이 떠올랐다.
“이민수, 그놈은 요새 뭐하려나?”
남자가 뭘 하든 딱히 궁금하지 않은 스타일이었지만, 이민수의 경우에는 조금 궁금하긴 했다.
육체를 준 조건으로 고민태에게 평생 복종하라는 맹세를 받았지만, 그 맹세를 지금도 잘 지키는지 의문이었다.
사람… 아니, 생물체는 간혹 호의를 베푸는 존재를 호구로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었다.
‘고민태가 호구처럼 행동하지는 않겠지만….’
이민수가 그럴 인간이 아니라는 건 기질창을 통해 증명되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지금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졌다.
‘바람이나 쐴 겸 갔다 올까? 뭐… 바람이 제대로 느껴질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피식 웃으며 [유령의 시간]을 사용했다.
가벼운 영혼 상태로 육체에서 빠져나온 나는 자리를 비우는 김에 강한나가 있는 연구실로 몰래 향했다.
‘가기 전에 간단하게 상태나 확인하자.’
강한나 정도 되는 여자가 실수하지는 않겠지만,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그렇게 강한나가 있는 연구실 벽 너머로 고개를 쏙 내밀어서 그녀의 상태를 확인했다.
강한나는 내가 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여자들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새로운 육체는 마음에 드시나요? 다들 처음 육체를 얻었을 때는 엄청나게 기뻐하셨잖아요.”
강한나의 조롱에 가까운 말에 여자들은 울먹이며 통곡의 목소리를 내뱉었다.
“제발 그냥 날 보내줘… 미안해….”
“이렇게 사과할게! 제발!”
몇몇은 아까 내게 당한 강간으로 인해 멘탈이 깨져서 다시 돌려보내 달라는 식이었고….
“부, 부탁이야! 뭘 해도 좋아! 살려주기만 하면 네가 시키는 것 뭐든 할게!”
“나, 나도!”
몇몇 여자들은 강간에 대한 상처보다 생존 욕구를 더 절실하게 표현했다.
하지만 그런 다른 방식으로 애원하는 여자들의 모습에도 강한나는 오히려 미소를 머금으며 입을 열었다.
“살아 있을 때는 제게 온갖 조롱을 하시던 분들께서 이제는 애원하시네요?”
“그, 그게….”
모든 여자가 강한나의 말 한마디에 바늘로 꿰매진 듯이 입을 다물었다.
그런 여자들의 모습에 강한나는 오히려 흡족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굳이 변명을 바라지는 않았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강한나는 그렇게 말한 뒤에 갑자기 각종 기계를 끌고 오기 시작했다.
강한나가 끌고 간 기계는 하나같이 혐오감과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잔인한 도구들이 달려 있었다.
여자들은 강한나가 끌고 온 기계들을 보자마자 얼굴이 사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강한나는 그런 여자들을 보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자, 아까는 성감과 쾌락에 관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시간이었다면… 이제는 각종 고통에 관한 데이터를 수집할 시간이에요.”
“꺄아아아아악!! 싫어어어어엇!! 살려줘!! 누가 살려줘!!!!!!”
나는 여자들의 비명과 함께 바로 연구실 벽에서 고개를 빼냈다.
‘어휴… 무서운 건 알았지만, 직접 보니까 또 다르네.’
강한나가 왜 나를 침실로 혼자 보냈는지 알 수 있었다.
섹스로 얻는 신체 데이터는 결국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강한나는 그녀들의 신체를 고문하면서 그 외의 데이터를 따로 수집하려는 것이었다.
‘괜찮으려나…?’
내가 걱정하는 건 여자들이 아니었다.
강한나였다.
애초에 고민태 연구소에서 일하면서 인간성이 마모된 강한나였다.
그런 그녀가 함선에서 하하호호 웃으면서 지낼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함선과 식구들이라는 마음의 안식처가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강한나가 저런 행위를 하다가 다시 예전처럼 되돌아갈까 봐 걱정했다.
그렇게 걱정하며 연구소 밖을 나가는 순간이었다.
[그런 걱정을 하실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보고 있었구나.’
[화면은 끄고 소리만 듣고 있었습니다.]
역시 멀티 테스킹이 뛰어난 우리 함선 선장님….
나는 피식 웃으며 아르모니아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니?’
[강한나 씨가 마음이 마모되었던 건 연구소에 혼자 남겨진 채 쓸쓸하게 지냈기 때문입니다.]
연구소에 동료가 있긴 했지만, 기밀을 빼내려고 몰래 잠입한 강한나에게 연구소는 안식처가 아니었다.
오히려 철로 만들어진 가시밭길과 같았을 것이다.
강한철은 강한나를 체스 말 정도로 생각했고, 시호는 강한나에게 자주 찾아오지 못했다.
그녀는 혼자 가시밭길에 고립된 채 맨발로 그곳을 걷고 있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정 걱정되면 일 끝나고 신경 써주면 됩니다.]
나는 아르모니아의 말을 들으며 내심 감탄했다.
‘아르모니아. 너도 예전에는 동료가 있었다고 했잖아? 지금은 뭐 하고 지내는지 알아?’
[다들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르모니아의 말을 토대로 추측해보자면 NTL 코퍼레이션은 복지가 좋은 회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갈 때 퇴직금은 두둑이 주는 모양이니까….
‘보고 싶지는 않아?’
[계속 연락을 주고받으며 소통하고 있습니다.]
‘오….’
퇴직금이다 뭐라 장난으로 생각했는데, 진짜 사이가 좋았던 모양이다.
‘나중에 한번 만나보고 싶네.’
[…나중에 여유가 된다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아르모니아와의 대화를 끝으로 나는 강한나에 대한 걱정을 지울 수 있었다.
‘한나 씨는 연구 끝나고 신경 써줘야겠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영혼 상태로 이민수가 있을법한 장소로 향했다.
..
..
연구소로 향하는 길은 태양 빛이 카펫을 만들어준 것처럼 밝혀줬다.
나는 그렇게 상쾌한 태양길을 날아가며 흐뭇하게 웃었다.
“걱정했는데, 잘하고 있네.”
이민수는 내가 걱정한 것과 다르게 착실하게 살고 있었다.
새로운 육체를 얻은 이민수는 정치에 입문한 뒤에 고민태의 수족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고민태가 이민수의 뒤를 봐주면 이민수는 고민태에게 도움이 되는 입법을 추진했다.
거기다 내가 마음에 들어 한 것은 그저 고민태의 수족 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아니었다.
“복수도 잘하고 있고… 내 말을 잘 듣고 있네.”
내가 처음 이민수를 만났을 때, 그는 이미 죽어 있었다.
이민수가 죽었던 이유는 바로 구준병이라는 녀석 때문이었다.
구준병은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사람들을 현혹하고 장기 말로 쓰는 인간이었다.
그는 현재 각종 중범죄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공개 수배된 상황이었다.
잡히면 평생 감옥에서 지내던가 사형당할 정도였다.
그런 구준병은 현재 이민수가 몰래 숨겨주는 중이었다.
당연히 과거에 있었던 원한을 잊고 선한 마음으로 그를 숨겨주는 게 아니었다.
이민수는 구준병의 임시 신분을 만들어주면서 그에게 성형을 권했다.
사람들이 못 알아보는 게 더 중요하다는 식으로 설득한 것이었다.
구준병은 당연히 자신을 구해준 이민수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그가 소개해준 의사에게 성형을 받았다.
그리고 그의 얼굴은….
“처음에는 얼굴을 몰라봐서 놀랐을 정도였지.”
훈남의 얼굴이었던 구준병은 얼굴은 길거리 노숙자도 기겁할 정도로 못생기게 변한 것이었다.
이민수는 구준병을 그렇게 만들고 거기서 끝내지 않았다.
구준병의 여동생과 누나… 심지어 그의 어머니까지 협박해서 따먹은 것이었다.
분명 처음에는 협박이었다.
하지만 지금 구준병의 모녀들은 이민수에게 푹 빠져서 그의 앞에서 알몸으로 춤을 추는 신세로 전락해 있었다.
그리고 구준병은 이민수로 인해 성형한 외모와 그에게 다리를 벌리는 모녀들의 모습에 충격받으면서도 이민수에게 설설 기는 중이었다.
이미 이렇게 망가졌는데, 지금 와서 이민수에게 버림까지 받으면 진짜 지옥이 펼쳐지기 때문이었다.
“이래서 사이비 종교가 무섭다는 거지. 매몰 비용은 평생 되돌려 받을 수 없으니까.”
일단 이민수가 딴마음을 품지 않고, 내 말을 잘 이행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사실 이렇게 인생을 펴게 만들어줬으면 보상이라도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싶겠지만….
“뭐… 녀석도 나를 도와줬으니까 셈셈이라고 치자.”
이민수가 없었어도 강한철은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민수의 도움이 있었기에 좀 더 일찍 잡았을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만약 필요한 일이 생기면 나중에 말하면 그만이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내 육체로 다시 들어갔다.
그렇게 육체로 들어가자마자 마침 호출 벨 소리가 내 귓속에 들어왔다.
“아, 잠은 이따 낮에 자야겠네.”
강한나가 나를 부르는 신호였다.
나는 얼굴에 묻어 있는 피곤한 표정을 세수로 씻어내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곧바로 강한나가 있는 연구실로 향했다.
연구실 안에 들어가자마자 내 눈에 들어온 풍경은….
“오우….”
여자들이 시체처럼 축 늘어져 있는 장면이었다.
사실 그것 말고는 연구소 내부는 어제와 다른 점이 전혀 없었다.
강한나가 가지고 왔던 잔인한 도구들은 이미 사라졌고, 냄새도 숲에서 날법한 상쾌한 냄새만 풍길 뿐이었다.
강한나는 내가 들어오자마자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반겨줬다.
“늦잠 잘 줄 알았는데, 바로 왔네?”
“하하하… 박사님이 부르시는데, 바로 와야죠.”
“그런 자세 좋아.”
화사하게 웃는 강한나.
어제 여자들에게 혐오스러운 도구를 들이밀던 강한나와 동일 인물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일 끝나면 진짜 뭐라도 해줘야겠네.’
나는 어느새 소름이 돋아 있는 팔뚝을 쓱쓱 문지르며 강한나에게 물었다.
“이 여자들… 죽었나요?”
내 물음에 강한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거렸다.
“안 죽었어. 성수호 조수가 힘들게 살렸는데, 또 죽일 수는 없지.”
“하하하….”
힘들지는 않았는데….
나는 그 말을 속으로 삼키며 다시 여자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강한나의 말을 들어보니, 확실히 숨이 붙어 있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숨을 쉬면서도 신음 하나 내지 못하는 모습이 더 섬뜩했다.
강한나는 분위기를 전환하듯이 밝게 웃으며 내게 말했다.
“자, 시간이 없어. 오늘도 일을 진행하자.”
“오늘 일이라면…?”
강한나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명단에 있는 다음 영혼 소환하는 거지.”
..
..
강한나는 의자에 앉은 채 넘어질 듯한 기세로 기지개를 켜며 외쳤다.
“흐아아아~ 끝났다~”
어느덧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하루하루 같은 일의 반복이었다.
내가 영혼을 소환하면 강한나가 실험용 육체를 준비하고, 나는 그 육체에 영혼을 넣은 다음에 강간했다.
그리고 밤이 되면 강한나는 나를 침실로 보낸 뒤에 강간당한 여자들을 무자비하게 고문했다.
고문하는 장면은 내가 직접 보지 못했지만, 굉장히 끔찍하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아침만 되면 여자들이 그냥 강간만 해달라고 애원했을 정도였으니까.
나는 연구실에 구속당해 있는 여자들을 보며 물었다.
“이 여자들은 다시 돌려보낼까요?”
소환된 여자들의 숫자는 총 서른 명.
강한나의 복수 리스트에 있던 모든 여자였다.
전부 죽은 듯이 축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다들 빠짐없이 덜 잠긴 수도꼭지에서 물이 흘러내리는 것처럼 보지에서 정액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강한나는 내 질문을 듣는 중에도 기지개를 풀지 않고 대답했다.
“흐으으읏! 아니, 돌려보내지 마.”
“어째서요?”
“감각 데이터 수집은 끝났지만, 그 데이터로 장비를 만드는 건 내일 끝나. 그러니까 내일까지는 지켜보는 게 좋을 거 같아.”
마무리될 때까지는 붙잡아 놓자는 이야기였다.
나는 아직도 기지개를 켜며 신음을 흘리는 강한나의 어깨를 주물러주기 시작했다.
“흐으으으! 아, 싫어….”
“어? 싫어요?”
주물러주면 좋아할 줄 알았는데….
하지만 강한나가 싫다고 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기분은 좋은데. 나이 먹은 거 같아서 싫어. 흐으으으읏!”
“하하하….”
하지만 강한나는 내 손길을 뿌리치지 않았다.
나는 강한나의 어깨를 주물러주며 속으로 감탄했다.
‘와… 일주일간 잠을 자지 않는 게 가능한가?’
강한나는 일주일간 연구하며 잠을 한숨도 자지 않았다.
아니, 최소한 내 눈앞에서 자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아마 고문하고 나서 남은 시간에 쪽잠을 자며 일에 매진했을 것이다.
나는 어깨를 주물러주며 강한나에게 은근슬쩍 말을 흘렸다.
“혹시 또 시킬 거 있어요? 뭐든 해줄게요.”
나는 아직 강한나의 조수였고, 그녀의 명령을 들어야 하는 처지였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강한나에게 뭐든 해주고 싶은 게 지금 내 심정이었다.
강한나는 내 어깨 안마를 받으며 간신히 목소리를 흘렸다.
“흐으응… 하나 시키고 싶은 게 있는데….”
나는 내 눈치를 보며 얼굴을 붉히는 강한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든 말만 하세요.”
강한나는 내 대답을 듣자마자 홍조를 지운 뒤에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술 마시자. 단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