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 학교 슈트라 (6)
“이제 두 번째 부탁입니다. 그 반지… 어디서 구하셨습니까?”
“….”
생각해보면 내가 반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학장이 몰랐을 리가 없었다.
클라우디아의 반지는 학장이 직접 만들었고, 그녀에게 직접 건네준 물건이었으니까.
거기다 생긴 것과 다르게 평범한 예식용 반지도 아니었다.
착용하는 순간 반지를 만든 학장과 수명을 공유하고, 반지의 주인에게 평생을 복종한다는 저주까지 걸어 놓았다고 클라우디아가 설명했다.
다른 세계는 몰라도 슈트라 세계에서 이런 반지를 만들 수 있는 존재는 학장… 대마법사 루트비히 리펜슈타인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 없었을 것이다.
살짝 고민했다.
‘어떻게 하지? 클라우디아를 만났다고 이야기해줄까?’
반지에 대해서 말하려면 일단 내가 영혼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말해야 했다.
그 사실을 말하지 않고 반지를 찾았다는 것을 설명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고민하는 순간 클라우디아가 다급하게 내 코앞에 튀어나와서 소리를 질렀다.
(절대! 절대 말하면 안 돼!!)
“….”
클라우디아의 샤우팅에 깜짝 놀라서 몸이 흠칫했지만, 다행히 그 이상의 반응은 하지 않았다.
‘설마 쑥스러워서 그런가?’
…라고 추측하는 순간이었다.
클라우디아는 이미 죽었으면서도 얼굴이 사색이 되어서는 내게 안달하며 외쳤다.
(절대 말하면 안 돼! 지금 그 말 하면 진짜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생길 수도 있어!)
“….”
클라우디아는 그저 쑥스러워하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일단 영혼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 말자.’
그렇게 결정하며 나는 학장에게 어느 정도 거짓을 첨가해서 설명을 시작했다.
“우연히 슈타트펠트 가보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가보를 찾았는데… 이 반지였죠.”
나는 주머니 속에 있던 반지를 꺼내서 테이블 위에 올려뒀다.
학장은 평소와 다르게 무표정을 지으며 반지를 응시했다.
나는 모르는 척하며 물었다.
“아시는 물건이신가요?”
“…알다마다요. 제가 만들었으니까요.”
학장은 내 질문에 착실히 대답하면서도 내 질문의 의중을 파악하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학장의 눈빛에서 느껴졌다.
이미 알고서 질문하는 당신의 의도가 무엇이냐… 라는 듯한 눈빛이었다.
“설마 슈타트펠트 가보가 학장님께서 만든 물건인 줄은 몰랐네요.”
“그 물건에 대해서 어디까지 알고 계십니까?”
“함부로 끼우면 안 된다는 느낌만 받았습니다. 그래서 루나에게도 말하지 않았죠.”
“….”
학장은 반지가 아닌 나를 응시했다.
그렇게 애매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응시하던 학장은….
“부탁하긴 했지만, 곤란한 질문에 솔직하게 답해줘서 고맙습니다.”
싱겁게 상황을 정리하며 마무리 지었다.
“반지 돌려드릴까요?”
“허허허… 아닙니다. 그 반지는 제가 만들긴 했지만, 이미 제 손을 떠난 물건입니다.”
학장은 그렇게 대답하며 내게 다시 반지를 돌려줬다.
그리고는 반지에 대해서 이런저런 설명을 시작했다.
“슈타트펠트의 가보라고 하지만, 가보라는 명칭에 어울리는 물건은 아닙니다.”
학장은 반지에 관한 설명을 시작했다.
반지를 착용한 자는 학장과 수명을 공유하고, 한번 착용하면 학장의 능력이 아니면 벗어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미 내가 알고 있는 사실들이었다.
다만 복종하는 능력은 없어서 넘긴 건지, 말하고 싶어서 넘긴 건지는 알 길이 없었다.
학장은 간략하게 설명을 마치고 평소처럼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제가 너무 늦게까지 잡았군요.”
“아닙니다. 그동안 마나 감지 연습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허허허… 그동안 즐거웠는데, 또 심심해지겠군요.”
그렇게 학장과 몇 차례 대화를 주고받은 뒤에 나는 학장의 집을 나왔다.
“만약 또 필요한 게 있다면 기탄없이 말씀해주세요.”
“네. 언제나 감사합니다.”
나는 학장에게 인사를 한 뒤에 기숙사로 향했다.
그리고 향하는 순간에도 클라우디아는 우렁찬 샤우팅을 포효했다.
(야, 야! 뒤돌아보지 마! 저 양반 계속 너 본다!)
“….”
뒤돌아볼 생각 없었는데, 당신 때문에 더 보고 싶어졌어.
나는 속으로 투덜거리며 기숙사로 돌아왔다.
기숙사 방에 들어오자마자 차음 마법을 펼치고 클라우디아와 대화를 나눴다.
“아까 말하지 말라고 한 이유가 뭐예요? 엄청 다급해 보이던데.”
아까 클라우디아의 모습은 쑥스러움과 거리가 있어 보였다.
마치 죽음을 직면한 사람의 모습과 비슷해 보였었다.
뭐, 이미 죽었지만….
클라우디아는 내 말을 듣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뭐랄까… 무서워서 그랬어.)
“무섭다고요? 아… 학장님이 영혼 상태라는 것을 알면 한 소리 하실까 봐요?”
클라우디아가 죽은 이유는 학장이 준 반지를 끼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 말을 들은 클라우디아는 고개를 절레거렸다.
(그 양반에게 욕먹는 건 하루 이틀이 아니라서 딱히 무섭다는 생각은 없어.)
“그럼 도대체 왜…?”
클라우디아는 나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만약 내가 영혼 상태로 있다는 사실을 알면… 그 양반이 너를 가만히 두지 않았을 거야.)
“가만히 두지 않는다는 건…?”
(아마 너를 바로 잡아내서 그 능력을 뽑아내려고 하지 않았을까?)
“에이… 그건 좀….”
예전에 학장이 그런 면모가 있었을지 몰라도 지금 학장은 완전 다른 인물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고개를 절레거리자, 클라우디아가 진짜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경고했다.
(너는 슈트라의 학장만 알지만, 나는 대마법사였던 그 양반도 알고 있어. 세월이 사람의 면모를 풍화해도 깊숙한 곳에 남아 있는 본성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아.)
클라우디아의 경고는 가볍게 생각하던 내 생각을 순식간에 무거운 돌덩이로 만들어 버렸다.
나는 그녀의 진지한 표정에 맞춰서 표정을 굳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할게요.”
(후우… 좋아. 다음에도 조심해. 그 양반이 생각이 바뀌면 또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까.)
“….”
나는 클라우디아의 수다를 들으며 다시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클라우디아가 살아난다면 과연 학장은… 슈트라의 학장으로 기뻐할 것인가, 아니면 대마법사 시절로 돌아가서 기뻐할 것인가.
그리고 그의 부탁… 죽여달라는 부탁도 과연 그때도 유효할까?
나는 아르모니아와 강한나에게 말해줄 수 없는 비밀을 혼자 곱씹으며 계속해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클라우디아의 수다를 들으며 고민에 잠겨 있을 때, 마침 아르모니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함선으로 복귀하시겠습니까?]
‘아, 맞다. 오늘 돌아가기로 했지.’
오늘 마침 복귀 날이었고, 복귀하고 나면 생각할 시간은 넘쳐날 것이다.
일단 돌아가서 생각해도 늦지 않겠지….
‘워프 준비해줘. 클라우디아에게 대충 둘러댈 테니까.’
나는 그렇게 반지와 클라우디아를 방에 두고 나와서 워프로 함선에 복귀했다.
..
..
함선에 돌아오자마자 회의를 진행했다.
첫 번째 주제는 강한나와 관련된 일이었다.
“일단 강한나 씨의 고향을 한번 들렀다가 영사관으로 가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원래라면 영사관으로 바로 직행해야 했지만, 클라우디아의 육체를 만드는 것도 중요했기 때문에 강한나의 고향을 경유하기로 했다.
경유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가 되는 건….
“가서 확인한 다음에 체류 시간을 정해야 할 거 같아요.”
강한나의 고향에서 어느 정도 체류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강한나가 체류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는 그녀가 향수병을 겪고 있나 걱정이 들었었다.
하지만 강한나가 오래 머물려는 이유는 그런 사적인 감정이 아니었다.
“상황에 따라서는 좀 더 시간이 걸릴 수도 있어요. 그저 조언만 듣고 오는 게 아니라서.”
강한나의 말처럼 그녀가 고민태를 만나러 가는 것은 그저 대화나 몇 마디 주고받자고 가는 것이 아니었다.
클라우디아의 육체로 쓸 수 있는 분리 신체를 완벽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나는 강한나의 대답을 듣고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은 여유로우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사실 제가 신경 쓰여서 그래요.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이니까.”
“아….”
처음에는 고민태 연구소가 지옥 같은 곳이라서 싫은 건가 싶었다.
하지만 그녀가 그곳에 가기 싫어하는 이유는 내가 생각하는 것과 완전 달랐다.
“연구소는 고향 같아서 좋은데, 거기 가면 그 새끼 얼굴이 떠올라서 싫어요.”
“아… 아아….”
그냥 강한철이 떠오르는 것이 싫은 모양이었다.
이해는 갔다.
내가 계략을 꾸며서 두 사람 사이를 멀어지게 하긴 했지만, 강한철은 애초에 강한나를 장기 말처럼 이용하던 녀석이었다.
강한나는 그 사실을 알고 난 뒤에 그에게 평생 쌓아놨던 호감이 오히려 역전되어서 강한철을 증오하게 되었다.
‘이런 거 보면 인간관계는 참 재미있네.’
나는 속으로 웃으면서도 다짐했다.
‘나도 평생 조심하면서 살아야겠네.’
강한나나 다른 여자들을 속일 생각은 없지만, 나도 실수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나도 누군가의 계략에 빠져서 강한철처럼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질지도 모르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한 가지 제안을 던졌다.
“그러면 한나 씨가 그곳에 머무는 동안 우리가 영사관에 있으면 어떨까?”
나 딴에는 굉장히 효율적인 제안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가 그 말을 하자마자….
“싫어요.”
강한나가 팔짱을 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안 돼요’가 아니었다. ‘싫어요’였다.
강한나는 나를 못마땅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투덜거렸다.
“아무리 효율을 따져도 그렇지 저 혼자 두고 떠날 생각을 하세요?”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괜히 신경 쓰이게 할까 봐 한 말이었어요.”
“…방해돼도 좋으니까 저 놓고 가지 마세요.”
“알았어요.”
다행히 강한나의 투정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나는 그런 강한나를 보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거참… 방금 전에 조심하자고 다짐해놓고 바로 실수해버리네.’
내 딴에는 좋아하는 연구실에서 한동안 휴식이라도 취하며 편하게 있었으면 해서 한 말이었다.
하지만 강한나는 내 말의 의도를 다른 쪽으로 해석한 모양이었다.
내가 안도의 한숨을 쉬는 사이에 아르모니아가 첫 번째 안건을 마무리 지었다.
“그럼 강한나 씨의 고향에 가서 상황을 보고, 체류할지 바로 영사관으로 갈지 결정하겠습니다.”
그렇게 첫 번째 안건을 넘기고 다시 회의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
..
이틀이 지나고 나서 고민태의 연구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를 찾아간 강한나가 들은 대답은….
“가능할 거 같다고 하네요.”
예스였다.
사정상 다른 세계의 인물인 것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인간의 범주에 들어있다면 가능하다는 것이 고민태의 대답이었다.
다만….
“대신 확실한 방법을 배우고, 원하는 신체를 제작하려면 시간이 걸릴 거 같아요.”
“어느 정도 걸릴 거 같아요?”
“빠르면 일주일 정도? 늦어도 열흘 안에는 끝낼게요.”
강한나가 저렇게 포부를 밝혔다는 건 그만큼 그녀가 고생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혹시 제가 도와줄 거 있어요?”
“….”
원래 체류 기간이 길어졌을 때의 계획은 휴식이었다.
아르모니아, 비올라, 레네, 베아트리체, 시호와 같이 이쪽 세계를 여행하기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휴식하는 동안 강한나는 결국 머리 싸매며 일해야 하는데… 내 입장에서는 내키지 않았다.
“한나 씨,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요. 제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있으면 도와줄게요.”
“….”
강한나는 미세한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나를 멀뚱멀뚱 쳐다봤다.
그리고는 얼굴에 갑자기 슬그머니 미소가 번져 흐르기 시작했다.
강한나의 얼굴에 미소가 완벽하게 안착하고 나자, 그녀의 입이 슬며시 열렸다.
“그럼… 여기서 지내는 동안에 제 조수 좀 맡아주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