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15 - 815.마법 학교 슈트라 (6)
오전 수업을 마치고, 루나와 같이 점심을 먹으며 학생회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의외로 학생회 이야기를 먼저 꺼낸 건 루나였다.
“학생회에서 입부 권유를 했다면서요? 소냐 교수님에게 들었어요.”
“응. 어제 권유를 받고 고민 중이야.”
사실 이미 수락했지만, 루나와 이야기도 나누지 않고 결정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내 말을 들은 루나는 한숨을 쉬며 나를 가볍게 질책했다.
“왜 고민하세요? 좋은 기회예요. 빨리 수락하세요.”
같이 보내는 시간이 줄어서 섭섭해할 줄 알았는데, 루나는 내 예상과 다르게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내가 학생회에 들어가면 동아리에 너만 혼자 남잖아. 그러면 미안한데….”
“미안할 것도 많네요.”
루나는 피식 웃은 뒤에 설교를 시작했다.
“소냐 교수님에게 학생회가 어떤 곳인지 들었어요. 저를 생각해주는 건 좋지만, 이건 인생에 몇 없는 기회잖아요.”
루나는 자기 때문에 내가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만나는 시간이 줄어들어서 아쉽겠지만, 내 기회를 뺏으면서까지 그 시간을 늘리고 싶지 않다는 것이 설교의 핵심이었다.
“저희는 옆자리에 앉으니까 자주 만날 수 있고, 부족한 만남은 주말에 채우면 되잖아요. 꼭 수락하세요.”
“응, 알았어.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나는 루나의 말에 못이기는 척하며 수락하겠다고 말했다.
루나는 내 대답을 듣고 미소를 지으며 포크로 고기 조각을 콕 찍었다.
“후후, 수호 씨가 웬일로 제 말을 단번에 들으시네요.”
“응? 내가 말 안들은 적도 있었어?”
“흥! 가끔 고집불통일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마다 음식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를 않아요.”
“하하하….”
루나의 말대로 내가 그런 경향이 있긴 했다.
중요한 일은 한번 결정하면 쉽사리 번복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만약 그게 루나 같이 내가 사랑하는 여자와 관련된 일이라면 더 고집을 부리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결정은 천천히 해도 되지 않을까?”
“제가 함부로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이런 일을 시간을 끌면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해요.”
“왜?”
“입부 권유한 사람이 학생회장이자, 선배잖아요. 너무 시간을 끌면 자존심 상해서 나중에 화풀이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아리엘은 그런 여자가 아니지만, 아리엘을 만나보지 못한 루나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 네 말대로 오늘 가서 수락할게.”
“후후, 좋아요. 가서 무작정 수락하지 마시고….”
그렇게 루나의 잔소리가 섞인 설교를 들으며 즐거운 점심을 마칠 수 있었다.
..
..
오후 수업을 마치고, 방과 후가 되자마자 바로 학생회실로 향했다.
학생회실에는 이미 루이스를 포함한 전 멤버들이 모여 있었다.
나를 본 루이스는 인사하기는커녕 오히려 혐오감이 깃든 표정을 짓더니 시선을 피했다.
아까 오전에 나한테 말로 두들겨 맞은 후유증이 남아 있는 듯 보였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애초에 늦지도 않았고요.”
아리엘의 환한 인사를 받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루이스를 제외하고 학생회 멤버는 총 4명이었다.
그리고 아쉽게도 성별은 아리엘을 포함해서 여자 세 명, 남자 한 명이었다.
나는 통신으로 아쉬운 목소리를 흘렸다.
‘에이… 전부 여자였으면 절었을 텐데.’
[….]
[….]
일단 나와 루이스가 입부하면서 성비가 정확히 3:3이 되었다.
학생회장인 아리엘은 멤버들과 신입인 나와 루이스를 양옆에 따로 앉히고, 소개를 시작했다.
일단 시작은 막 입부한 나와 루이스의 소개였다.
“이쪽은 이번에 우리 학생회에 새로 입부한 성수호 학생과 루이스 학생입니다.”
건너편에 앉아 있던 학생회 멤버들이 가볍게 박수를 쳐줬다.
그다음은 멤버들의 소개였다.
“이쪽은 부회장인 에드가예요.”
부회장 에드가는 옅은 갈색 머리의 남자였다.
아까 서 있던 키를 보자면 170 초중반쯤 되어 보였다.
그리고 성격은….
“….”
침묵하는 것처럼 까칠함이 엿보였다.
에드가는 까칠한 성격을 대놓고 드러내듯, 아리엘이 소개했음에도 인사 없이 나와 루이스를 훑어볼 뿐이었다.
아리엘은 그런 에드가의 모습에 얕게 한숨을 쉬며 시선을 옆으로 이동시켰다.
“그다음은 회계를 맡고 있는 하넬로네예요.”
하넬로네는 오렌지색 머리카락을 지닌 여자였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은 평소에 관리를 잘해서 그런지 윤기가 사르르 흐르고 있었다.
“잘 부탁해. 하넬로네야.”
하넬로네는 에드가와 다르게 미소를 머금으며 인사했다.
다만, 학생회장처럼 밝고, 유쾌한 미소가 아니었다.
진득하고, 끈적한 미소의 느낌에 가까웠다.
뭐랄까… 사람을 홀리려고 작정한 미소라고 할까나?
“그리고 다음은 서기를 맡고 있는 밀레나예요.”
밀레나는 주홍색 머리카락을 지닌 여자였다.
주홍색 머리카락은 푸석푸석해서 색이 바랜 느낌이었고, 푸석푸석한 머리카락에 어울리게 기운도 축 처져 있었다.
“밀레나야. 잘 부탁해….”
좋게 말하자면 차분한 느낌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음침해 보이는 느낌이었다.
방금 전에 소개했던 하넬로네와는 극과 극의 모습이었다.
하넬로네는 살짝 자만심이 깃들 것 같지만, 사교적인 성격인 것에 비해서 밀레나는 착해 보였지만, 사교와는 완전히 거리가 멀어 보였다.
‘성격이 뭐가 중요하냐. 얼굴 이쁜 게 중요하지.’
하넬로네와 밀레나는 외향과 성격은 극과 극이었지만, 둘 다 학년을 대표해도 될 정도로 예쁜 편이었다.
‘뭐, 아리엘이 워낙 돋보여서 크게 눈에 들어오지는 않지만….’
아리엘은 그렇게 소개를 끝낸 뒤에 나와 루이스에게 말했다.
“오늘부터 두 분의 직책은 감사예요.”
“감사 말인가요? 저희는 1학년생이고, 이제 막 입부했는데 감사라니….”
루이스의 말대로 감사라는 직책을 1학년생이자, 신입에게 맡기는 건 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감사라는 직책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중책이 아니었다.
“하넬로네와 밀레나의 옆에서 보조하면서 배우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어떤 의미에서 그것도 감사가 되겠죠?”
겉으로는 중책처럼 느껴지는 단어였지만, 실상은 그냥 인턴 같은 존재였다.
대놓고 아무런 직책도 주지 않으면 민망하니, 표면상 직책을 주고 소속감을 증진하려는 의도인 듯 보였다.
‘나쁘지 않네. 지금 2학년생들도 이미 겪었던 일이고, 우리가 2학년이 되면 서기나 회계를 맡게 될 테니까.’
그렇게 나와 루이스는 소개 과정을 거치고, 직급을 부여받고 나서….
“학생회에 들어온 것을 환영해요.”
학생회에 정식으로 입부했다.
“이제부터 학생회가 하는 일을 알려드릴게요.”
아리엘의 설명은 소냐가 해줬던 설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단 첫 번째는 학생들 간의 트러블을 해결하는 거예요.”
저 설명만 놓고 본다면 굉장히 귀찮은 곳처럼 느껴질 것이다.
이 슈트라 마법 학교는 대륙 각지에서 재능있는 인재들을 추리고, 추려서 모인 곳이다.
자부심과 자신감이 강한 녀석들끼리 모였는데, 트러블이 없으면 그것도 이상하지.
하지만 한편으로 그런 문제들은 아이러니하게 문제로 발견되는 경우는 흔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학생들 간의 트러블은 저도 거의 본 적이 없어요. 이유는… 두 분도 잘 아시죠?”
“하하… 네.”
이유는, 교수들 때문이었다.
학생들 입장에서 슈트라의 교수는 신처럼 우러러보는 존재들이었고, 자존심 하나 지키기에는 교수들의 파워가 막강했다.
그 자존심 강한 루이스도 예전에 돼지 교수가 루나에게 스킨쉽 했을 때, 얼굴에 증오심을 가득 채울지언정 소란을 피우지는 않았으니까.
아리엘이 설명하는 중에 부회장인 에드가가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열었다.
“너무 평화로워서 난감할 정도지.”
에드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표정은 거만함이 살포시 묻어 있었다.
나는 에드가의 목소리와 표정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귀족인 거 같은데?’
여름 학기 동안 레빈에서 무수히 많은 귀족을 만나다 보니 평민과의 차이를 눈과 귀로 익힐 수 있었다.
에드가의 목소리 톤과 표정에는 내가 익히 알던 귀족 물이 잔뜩 머금어져 있었다.
그리고 내가 품었던 의문은….
[기질창을 보여드리겠습니다.]
=====
에드가 호위츠
[마법], [열등감], [계산적], [질투심], [간사함], [완벽주의자]…
=====
기질창의 적혀 있는 호위츠라는 성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이곳의 평민들은 이름만 사용하고, 성을 쓰지 않는 편이었다.
평민인 아리엘이 성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에드가의 말에 아리엘이 쓰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학생들 문제는 사실상 거의 없다고 보시면 돼요. 제가 학생회에 들어오고 나서 저희 선에서 정리되지 않는 문제는 없었어요.”
“차라리 문제 좀 일으켜서 우리 할 일이 좀 생기면 좋을 텐데.”
에드가의 말을 들은 아리엘이 처음으로 표정을 굳히며 에드가에게 경고가 담긴 말투를 건넸다.
“에드가, 1학년생 분들 앞에서 그런 말은 좋지 않잖아.”
“….”
아리엘의 말에 에드가의 입이 꾹 다물어졌다.
둘 다 3학년에서 날고 기는 존재들일 텐데, 에드가가 저렇게 찍소리도 못하는 것을 보면 아리엘의 입지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큰 모양이었다.
그런데 막상 이 상황에서 입을 연 건 다름 아닌 에드가의 옆에 앉아 있던 서기 하넬로네였다.
“에이, 회장… 너무 뭐라고 하지 마세요. 1학년생이 왔으니까 분위기 풀어줄 겸 말한 거겠죠.”
하넬로네는 그렇게 말하며 에드가의 팔뚝 쪽을 손으로 쓱 훑었다.
아리엘은 하넬로네의 말을 듣고는 표정을 풀며 입을 열었다.
“신입분들 앞이라 나도 모르게 긴장했나 보네. 에드가, 미안해.”
“….”
에드가는 아리엘의 사과에도 입을 꾹 다물고 불쾌한 표정을 계속 유지했다.
하넬로네가 에드가의 팔을 계속 만지며 애교가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자, 자. 기분 풀어요. 선배.”
“…그래.”
에드가는 하넬로네의 애교에 점점 넘어가더니, 얼굴에 미소를 비추기 시작했다.
나는 스킨쉽을 하며 미소를 짓는 에드가와 하넬로네를 보며 통신으로 말했다.
‘뭐야? 두 사람, 그렇고 그런 사이인가?’
[딱 봐도 연인 사이 같은 느낌인데요?]
[저는 두 사람보다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옵니다.]
‘누구?’
[끝에 앉아 있는 밀레나입니다.]
‘응?’
나는 아르모니아의 말을 듣자마자 조심스럽게 밀레나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밀레나는….
“하……….”
에드가와 하넬로네를 노려보며 혼자 입술을 오물오물하고 있었다.
뭔가 혼잣말을 하는 거 같은데, 옆 사람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말하는 것 같았다.
밀레나의 표정은 누가 봐도 질투심이 가득 차올라서 분한 듯한 표정이었다.
밀레나의 모습을 보자, 나는 바로 직감할 수 있었다.
‘…짝사랑?’
에드가와 하넬로네는 누가 봐도 연인 사이였고, 밀레나는 확실하지 않지만, 하넬로네를 질투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서로 알콩달콩 이야기를 주고받는 에드가와 하넬로네, 그리고 질투심에 차오른 표독스러운 눈으로 하넬로네를 노려보는 밀레나를 보며 통신으로 물었다.
‘아르모니아, 저 둘도 띄워줘.’
[알겠습니다.]
아르모니아의 대답과 동시에 하넬로네와 밀레나의 머리 위에 기질창이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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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넬로네
[마법], [쾌활], [사교적인], [이성 갈망], [속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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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레나(서기, 2학년)
[마법], [의존 성향], [부정적], [팔랑귀], [우유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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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두 사람은 기질창에 이름만 적혀 있는 것을 보니, 귀족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성격도 얼굴에 드러난 것과 나름 비슷했다.
하넬로네는 사교적인 성격인 것과 동시에 사리사욕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밀레나는 암울한 성격을 지녔지만, 하넬로네처럼 욕심이 있지는 않아 보였다.
최소한 사람은 착하다는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착한 여자가 왜 에드가와 하넬로네를 보며 저런 표정을 짓는 걸까…?
밀레나의 표정은 질투심을 넘어서 증오도 살짝 엿보였다.
내가 그렇게 의문을 가지는 사이에 아르모니아가 통신으로 말하며….
[수호 님, 하넬로네와 밀레나에게서 이런 기질을 발견했습니다.]
내가 눈여겨볼 만한 기질을 띄웠다.
밀레나가 가진 기질은 [이성 애착]이었다.
그리고 하넬로네가 가진 기질은….
‘헐…. 저게 왜 여기에 있냐?’
[NTL 기질(중)]이었다.
NTL 기질을 가진 하넬로네와 그녀의 애교에 실실 웃는 에드가, 그리고 그런 둘을 노려보는 밀레나.
나는 그런 세 사람을 보며 입가를 씰룩거렸다.
‘와… 재미있겠는데? 여기 들어오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