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08 - 808.마법 학교 슈트라 (6)
학장은 나를 거실에 마련되어 있는 식탁으로 안내했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학장은 그 말을 남긴 뒤에 느긋하게 발걸음으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학장이 자리를 비우자, 옆에 있던 클라우디아가 호들갑을 떨며 주변을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아니, 이 양반은 저런 궁궐 같은 학교를 지어놓고 자기 집은 이 꼬락서니로 만들어놨네?)
나는 벽 너머에 있는 학장에게 들리지 않게 혼잣말하듯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는 어울리는 거 같은데요? 학장님의 소박한 성격이랑 어울리는 거 같기도 하고….”
(소바아아악? 소바아아아아악!? 저 양반이 소박!?)
클라우디아는 경악하는 표정으로 테이블 위에 걸터앉더니, 갑자기 입을 열며 주절주절 옛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래, 자기 주머니 무거운 게 싫어서 필요할 때마다 남의 주머니에서 뺏는 것도 소박한 거라면 소박한 거겠네.)
“….”
(예전에 저 양반이라면 저 으리으리한 학교 탑 위에서 살았을걸?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들한테 마법 쏘면서 놀았겠지.)
500년이라는 세월이 대단하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광기에 가득 찼던 양반도 얌전하게 만든 것을 보면….
학장을 기다리며 클라우디아의 옛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클라우디아에게 학장의 과거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지금 그를 만난 게 천운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한창 전성기 시절의 그를 만났다면 일단 마법부터 난사하고 봤을 가능성이 컸다.
내 신원이 불분명하니, 일단 불구로 만든 다음에 이것저것 캐물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클라우디아에게 학장의 옛이야기를 들으니 점점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학장한테 클라우디아에 대한 이야기를 해줘야 하나?’
지금 학장의 성격이 변한 이유는 세월의 흐름으로 인한 정신의 마모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정신의 마모의 큰 이유는 완전히 사라진 삶의 의욕 때문이었다.
삶의 의욕이 없어지니, 모든 행동에도 의욕이 생기지 않는 것이었다.
그나마 슈트라라는 학교를 책임져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에 마지막 불꽃을 꿋꿋이 지키는 것이었다.
그런데 만약 클라우디아가 살아서 환생한다면…?
일단 삶의 의욕이 생길 테니, 내게 했던 죽여달라는 부탁을 철회할 가능성이 컸다.
문제는 철회 이후인데….
‘만약 클라우디아의 영혼이 있고, 그녀를 살려줬는데… 예전 성격으로 돌아가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인데.’
지금 이 세계는 슈트라라는 중심으로 평화를 유지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학장의 성격이 바뀌어서 돌변하기라도 하면… 평화의 막이 내릴 가능성도 컸다.
‘거기다 루나와 카린이 있는 세계를 그런 식으로 만들고 싶지도 않고….’
나는 그렇게 클라우디아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허허허, 약속 시간에 맞춰서 와주셨는데. 정작 불렀던 제가 시간을 질질 끌었군요. 미안합니다.”
학장이 쓴 미소를 지으며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그렇게 미소를 머금은 학장은 방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제가 부탁해서 마련해주신 자리이니 그런 말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데… 손에 든 게 뭔가요?”
학장은 손에 기다란 천을 쥐고 있었다.
기다랗고 면 재질로 된 평범한 천이었다.
그런데 내 질문에 먼저 대답한 건 학장이 아닌 클라우디아였다.
(어? 저거 그거네. 마법진 감지할 때 쓰는 눈가리개 같은데.)
마법진 감지 눈가리개?
내가 클라우디아의 대답에 조용히 고개를 갸우뚱하자, 학장은 미소를 지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저번에 당신이 부탁한 투명 마법진의 정체를 알려드리고자, 준비한 물품입니다.”
내가 학장의 저택에 초대받은 이유.
그건 바로 스텔라에게 걸려 있는 정조 마법진을 해체할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나는 슈트라로 돌아오는 길에 학장에게 투명 마법진에 관해서 질문했었다.
정조 마법진의 능력에 관한 설명은 빼고, 정조 마법진이 지닌 투명 능력에 관해서만 물어본 것이었다.
학장은 내가 설명한 마법진의 정체를 단번에 알아차리고, 슈트라에 도착하고 나서 알려주겠다고 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초대를 받은 것이었다.
학장은 테이블 위에 가지고 온 기다란 천을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학장의 손 위치가 클라우디아의 엉덩이로 향했다.
그리고 학장이 갑자기 손을 테이블 위로 올리자, 클라우디아는 화들짝 놀라며 테이블 밖으로 날아가며 외쳤다.
(아니, 이 양반이 갑자기 엉덩이를 만지려고 하네!?)
“….”
몇백 년간 혼자 지내서 그런지 혼자 노는 건 장인급이네.
후손들이 찾아올 때마다 저런 식으로 놀았으려나…?
학장은 클라우디아의 상황을 전혀 모른 채 천천히 이야기를 진행했다.
“전에 말씀하셨던 투명 마법진 정체는 아마 마나 드레인 마법진일 것입니다.”
“마나 드레인이요?”
마나 드레인이라고 하면 내가 슈트라에 입학하고 초창기에 특수 마법학에서 배운 마법이었다.
하지만 마나 드레인 마법을 배운 건 1~2시간이 전부였다.
마나 드레인에 관한 수업이 짧았던 이유는 바로 실효성 때문이었다.
특수 마법학을 가르쳐주던 교수는 마나 드레인이 실효성이 없으니, 그저 이런 게 있다는 것만 알아가는 데에 의의를 두라고 했었다.
즉, 그 이후에 마나 드레인에 관한 수업을 일체 진행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갑자기 마나 드레인이라니….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학장은 미소를 지으며 수업하듯 설명을 시작했다.
“아마 마나 드레인이 실효성이 없다고 배웠겠죠.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마나 드레인을 가르치지 않는 건 오히려 위험한 마법이기 때문입니다.”
“위험하다고요?”
실효성 없는 마법이 사실은 위험한 마법이었다고?
“마나 드레인은 단일 마법 학문이 아닙니다. 다른 마법과 융화를 거쳐서 영구적으로 마법진을 발동시키는 마법입니다.”
한 사람이 발동시킬 수 있는 마법진은 하나가 최대다.
하지만 이 마나 드레인은 다른 마법진과 융화하면 일정 장소에 지속적으로 마법진을 만들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대표적으로 전쟁 당시에 함정 마법진을 만들어 놓던 것이 대표적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론적으로는 사람에게도 부여할 수 있죠. 그리고….”
“…?”
“마나 드레인은 들키지 않는 게 중요했기 때문에 투명화가 기본으로 걸쳐져 있습니다.”
“아하….”
나는 순간 종속 마법진을 떠올렸다.
종속 마법진은 베아트리체의 종속 마법과 마나 드레인 마법진을 연금술로 연성해서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 종속 마법진도 나만 볼 수 있는 투명화가 걸쳐져 있었다.
즉, 스텔라에게 걸려 있는 정조 마법진은 아마도 마나 드레인과 결합한 탓에 투명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었다.
‘거참… 어떤 놈이 그런 걸 엘프들에게 걸어 놓은 건지. 면상 한번 보고 싶네.’
[왜요? 엘프들 대신 한마디 해주려고요?]
‘아뇨. 고마워서 선물 좀 사주고 싶어서요.’
[….]
당연히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 획기적인 능력 덕분에 내가 스텔라를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거니까.
나는 그렇게 강한나의 침묵에 볼을 긁적거리며 학장의 강의를 다시 경청했다.
일단 정조 마법진이 투명한 이유는 마나 드레인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다음이었다.
투명화를 어떻게 해제해야 하는 건가…?
“제가 직접 그 마법진을 본다면 바로 해체하면 그만이지만, 학생은 직접 해체하길 원하는 거겠죠?”
“네. 맞습니다.”
학장은 이미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눈가리개를 내 쪽으로 천천히 밀어내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준비한 것이 이 눈가리개입니다. 이 눈가리개는 당신의 시각을 차단하지만 대신 마법진에서 흘러나오는 마나의 흐름을 인식시켜줄 것입니다.”
원래 마법진은 마나를 룬문자로 형상화 시켜서 마나의 흐름을 외부로 유출하지 않는 존재였다.
그런데 이 눈가리개가 있으면 그런 마법진도 마나의 흐름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오오… 그럼 그 눈가리개만 쓰면 저도 숨겨진 마법진을 찾을 수 있는 건가요?”
내 말에 갑자기 학장과 클라우디아가 동시에 웃기 시작했다.
학장은 서글서글한 미소를 지었고,
“허허허….”
클라우디아는….
(푸하하하! 그게 그냥 되면 개나 소나 다 볼 수 있게? 그리고 평생 눈가리개 쓰고 생활하려고?)
비웃기 시작했다.
‘때리고 싶다. 진심으로….’
나는 최대한 미간에 주름이 새겨지지 않게 집중하며 미소를 유지하며 학장에게 다시 물었다.
“바로 되지는 않는 모양이군요?”
“허허허, 맞습니다. 이 눈가리개는 어디까지나 마법진으로 묶인 마나를 찾는 것을 도와주는 물품일 뿐입니다. 1학년들이 쓰는 마법진 구사 팔찌처럼 말이죠.”
슈트라에 입학한 학생 중에 필기 실력을 좋지만, 마나 운용에 약한 학생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바로 은팔찌였다.
1학년 때는 의무적으로 은팔찌를 장착해서 학생들이 배우는 것에 집중하게 만든다.
그리고 2학년이 됐을 때, 만약에라도 팔찌 없이 마법진을 구사하지 못하게 된다면 퇴학 된다.
마법사라면 팔찌가 없어도 마법진을 구사할 줄 알아야 하니 당연한 규칙이다.
그리고 저 눈가리개도 팔찌처럼 시작을 도와줄 뿐,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건 아니었다.
“그럼 그 눈가리개는… 빌려주실 수 있나요?”
기대감에 차오른 내 눈망울을 보던 학장은 환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그건 곤란합니다.”
“….”
내가 멍하니 학장을 바라보자, 옆에 있던 클라우디아가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푸하하하하하! 차였네. 차였어! 남자한테 차였어~)
“….”
지금이라도 클라우디아의 뒤통수를 때린 뒤에 머리끄덩이를 잡아서 학장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당황하며 머리를 부여잡자, 학장이 그제야 쓴 미소를 지으며 내게 사과했다.
“허허허, 미안합니다. 드리고 싶긴 하지만, 이 물품은 학교 내에서도 엄격하게 통제하는 물건이라 곤란하군요.”
만약 내가 눈가리개를 사용하다가 교수에게 들키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 눈가리개는 슈트라의 교수들이 마나 드레인 대항하기 위해 사용하는 물품입니다. 만약 학생이 사용하다가 들키면 곤란할 겁니다.”
학장은 내게 눈가리개를 건네줬다고 곤란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어차피 슈트라가 본인의 소유나 다름없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달랐다.
“저는 괜찮지만, 학생이 귀찮은 일에 휘말릴까 봐 걱정이군요.”
그저 내 편의를 봐줬다는 이야기가 돌아다니면 내가 곤란해질 것을 염려한 것이었다.
일단 외부 반출이 힘들다는 이야기는 대충 이해했다.
문제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눈가리개를 어떻게 써야 하냐는 것이었다.
“혹시 이 물건이 따로 모여져 있는 곳이 있거나, 몰래 쓸 수 있는 곳이 있을까요?”
“있습니다.”
“오, 어디인가요?”
학장은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여기 있지 않습니까?”
“…네?”
“이 눈가리개를 사용하고 싶으실 때는 부담 갖지 말고 이곳에 찾아와주세요. 언제든 환영하겠습니다.”
“….”
내 인생에 최고로 부담되는 환영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