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07 - 807.마법 학교 슈트라 (6)
루이스를 찾은 뒤에 우리는 늦지 않게 출발할 수 있었다.
다들 루이스의 상태에 대해 의문을 품었지만, 쉽사리 이유를 묻지 못했다.
학장과 소냐의 위치에서 루이스는 학생의 신분이지만, 한편으로 귀족의 자제이기도 했다.
학교 외부이기 때문에 그의 체면을 중시하느라, 물어보지 못한 것도 있었다.
그리고 루나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결국 이유를 묻지 않았다.
걸레짝의 모습으로 마부에게 업혀 온 루이스는 입하나 뻥긋하지 못할 정도로 처참했기 때문이었다.
정작 당사자가 입하나 뻥긋하지 못하니, 어차피 질문도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나는 카린과 같이 마차를 타고 가며 그녀에게 대략적인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일단 돈으로 입을 막았어요.”
카린이 마부와 매춘부를 거액의 돈으로 매수했다는 것이었다.
“일단 마부는 입 막기가 쉬웠어요. 제가 운영하는 뢰베 상단의 어음을 써주니, 평생 비밀로 하겠다는 각서를 써줬어요.”
카린이 몰래 운영하는 뢰베 상단은 레빈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터를 잡았을 정도로 거대했다.
그만큼 상단의 신뢰도도 높고, 어음의 가치도 현물의 가치와 동등할 것이다.
거기다 여행 마부들은 슈트라에서 직접 일하는 만큼 신용을 중시하는 자들이었다.
본인들이 비밀로 하겠다는 각서를 썼다면 평생 그 약속을 잘 지킬 것이다.
문제는 매춘부였다.
“매춘부는 일단 제 경비를 넘겨줘서 입을 막았어요.”
“경비요?”
“네. 슈트라에서 지낼 동안 쓰려고 했던 생활비를 건네줬어요.”
레빈 공작의 여식이라면 여비와 생활비도 만만치 않게 챙겨왔을 것이다.
심지어 상단을 운영하다 보니 원래부터 돈이 많던 여자, 그런 카린이 자신의 전 재산을 그 매춘부에게 넘겨준 것이었다.
나는 걱정과 동시에 의아함을 느꼈다.
“굳이 그렇게 입을 막는다고 거금을 쓸 필요는 없는데.”
내가 카린에게 부탁한 건 마부와 매춘부의 입을 막는 게 아니었다.
그저 루이스의 추잡한 꼬라지를 카린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뿐이었다.
그리고 루나와 소냐에게도 보여주는 건 덤이고….
그런데 카린은 거액의 어음 쓰고, 자기 경비를 전부 털어내면서 루이스의 신변을 보호해준 것이었다.
내가 의아한 듯이 고개를 갸우뚱하자, 카린은 미소를 흘리며 대답을 회피했다.
“그건…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나는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카린이 저렇게 말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일단 루이스의 일은 카린에게 맡긴다고 했으니, 넘어가기로 했다.
하지만 내가 진짜 걱정하는 건 카린이었다.
“경비를 넘겨줬으면… 슈트라에서 어떻게 지내려고요?”
카린이 슈트라로 향하는 이유는 입학시험을 치르기 위해서였다.
입학시험 자체는 돈이 없어도 치를 수 있다.
하지만 카린의 계획은 입학시험을 치는 것과 동시에 내년 입학까지 슈트라에서 지내는 것이었다.
카린에게는 뢰베 상단을 통해 거대한 자금력을 움직일 힘이 있지만, 그것도 슈트라에서는 쉽지 않았다.
그 이유는 슈트라에 뢰베 상단의 지부가 없기 때문이다.
카린이 뢰베 상단주를 내게 접선시킨 이유도 훗날 슈트라에 뢰베 상단 지부를 놓기 위한 안배이기도 했고….
카린은 피식 웃으며 조곤조곤 대답했다.
“최소한 생활할 수 있는 수준은 남겨 뒀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정 안되면 슈트라 학교에서 제공하는 숙소에서 지내면 되죠.”
“슈트라 학교에서 숙소를 제공해요?”
“응? 정말 모르시는 건가요?”
카린은 의아해하는 내 표정을 보며 오히려 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설명해줬다.
슈트라 학교는 마법 실력만 있다면 인종, 계급, 성별 상관없이 시험을 치를 수 있게 열려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안타깝게도 기본적인 숙식도 해결 못 하는 아이들도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슈트라 학교는 그런 아이들이 입학시험을 치르고, 결과를 볼 때까지 최소한의 숙식을 제공해준다는 이야기였다.
“허… 몰랐네요.”
그냥 꽁으로 입학한 나는 전혀 모르는 정보였다.
심지어 나는 입학시험은커녕 입학했던 날 학생 자격증을 얻은 녀석이었다.
저런 사실을 알 리가 없지.
일단 카린을 통해서 슈트라의 입학시험의 공정성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 옆에 날아다니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야… 내가 살던 세상이랑 너무 다른데?)
목소리의 주인은 클라우디아.
슈타트펠트의 초대 가주였다.
레빈의 영웅이자, 루나의 선조이자, 학장의 연인.
클라우디아의 영혼은 현재 내가 소지하고 있는 반지에 묶여서 나와 같이 마차에 타고 있었다.
(나 때는 아무나 마법을 배울 수도, 가르칠 수도 없어서 귀족이라도 특별한 재능이 없는 자는 거들떠도 못 봤는데.)
카린은 마치 클라우디아의 말을 들은 것처럼 내게 설명을 이어 나갔다.
“배움에는 귀천이 없어야 한다. 그게 바로 대마법사이자, 현재 슈트라 학교의 학장이신 루트비히 리펜슈타인 님께서 슈트라를 처음 설립할 때, 하셨던 말씀이셨다고 하네요.”
내가 살던 세계에서는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었다.
(배움의 귀천이 없다라…. 정말 좋은 말이네.)
클라우디아는 동화를 듣는 아이처럼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카린의 이야기를 귀에 담았다.
분명 카린은 클라우디아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클라우디아는 카린에게 자기 말을 전달하지 못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나를 사이에 두고, 마치 직접 대화를 나누듯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
..
우리는 마부들이 이끄는 마차를 타고 간신히 슈트라에 도착할 수 있었다.
루나는 3개월 만에 학교를 보며 감탄사를 흘렸다.
“오랜만에 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고작 3개월이라는 시간이었지만, 여러 사건을 겪은 루나에게는 3개월이 아닌 1년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러게, 왠지 반년은 넘은 거 같은데….”
진짜 1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 있었다.
슈트라 학교를 떠나고, 위그드라실에 갔다가, 강한나와 시호를 만나고, 레빈에서 사건을 겪고, 다시 위그드라실에 갔다가 왔다.
내 기숙사 방도 어딘지 헷갈릴 정도였다.
그리고 슈트라 학교를 보며 감탄하는 건 나와 루나뿐만이 아니었다.
“여기가… 슈트라 마법 학교….”
카린은 마치 어린아이가 왕궁을 처음 보는 것처럼 감명받은 듯한 모습으로 슈트라 학교를 우러러보기 시작했다.
평생 동경해오던 장소에 오니, 평소처럼 가면을 쓰고 있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카린의 옆에 있던 클라우디아는 그녀와 다른 방식으로 우러러보기 시작했다.
(와씨, 학교 졸라 크네! 이게 학교야? 왕궁이야? 이걸 저 양반이 지은 거야!?)
“….”
아무리 봐도 루나와 닮은 점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었다.
성격도 다르고, 외형도 다르고, 거기다 머리카락 색도 다르고….
‘유전자의 힘이 형편없다는 증거네.’
나는 속으로 허탈하게 웃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내 눈에 들어온 건 다름 아닌 시원찮은 모습의 루이스였다.
나는 다리를 후들후들 떨며 간신히 서 있는 루이스를 보며 실실 웃었다.
“야. 몸은 괜찮아졌냐?”
루이스는 나를 노려보며 간신히 목소리를 흘려냈다.
“으윽… 마, 말 걸지 마…. 네 녀석이랑 하고 싶은 말 따위는 없으니까.”
“걱정해줘도 뭐라고 하네.”
“다… 닥쳐….”
슈트라로 오는 내내 나는 루이스를 볼 때마다 이런 식으로 한마디씩 던지며 깐족거렸다.
하지만 루이스는 그런 내 깐족거림에도 단 한 번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당연히 화가 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씨… 씨발….”
목소리를 올릴 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다리를 후들후들 떨고 있는 루이스를 향해 또다시 깐족거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야, 너 도대체 그날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 모양이야?”
당연히 나는 루이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루이스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건 그의 입에서 답이 나오길 기대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으윽….”
그 당시의 비참한 기억을 다시 떠올려주기 위함이었다.
루이스는 매춘부와의 하룻밤을 기억해내더니, 얼굴빛이 흙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나를 노려보며 내게 경고했다.
“다시는 그날 있었던 일에 관해서 묻지 마라. 알았냐?”
“거참, 걱정해줘도 뭐라고 하네.”
“닥쳐….”
루이스는 그렇게 내게 마지막 말을 남기고 황급히 슈트라로 향하기 시작했다.
추잡한 모습으로 엉기적거리며….
나는 그렇게 엉기적거리며 학교로 들어가는 루이스를 보며 실실 웃었다.
‘평생 흑역사가 떠오르게 해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라.’
루이스의 뒷모습을 보며 나도 학교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
..
슈트라에 돌아오자마자 가을 학기가 시작되었다.
슈트라에 돌아오고 나서 한가지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
소문의 발이 내 상상을 초월한다는 사실이었다.
슈트라 학교 내부에는 이미 레빈에서 일어났던 사건이 옆 동네에서 일어난 사건처럼 이미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학장이 레빈에 방문한 것부터 시작해서 레빈에서 일어났던 반역 사건까지….
그리고 그중에서 제일 큰 화제의 소문은 단연코 루나에 관한 소문이었다.
루나의 가문이 복권한 사실과 루나가 백작 지위를 승계한 사실도 이미 학교에 퍼져 있었다.
슈트라의 몇몇 학생들이 마치 레빈에 있었던 사건을 직접 본 것처럼 여기저기 퍼트리고 있었다.
나는 소문을 여기저기 퍼트리는 학생들을 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거참, 정작 당사자들은 이제 학교에 도착했는데.’
하지만 그런 소문들 사이에서 재미있는 점을 하나 알 수 있었다.
바로 내 이야기가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하긴… 내가 저지른 일까지 알고 있으면 그놈은 내가 진짜 잡아 족쳐야 하는 놈이겠지.’
내가 레빈에서 한 일들은 모두 비밀에 부쳐야 하는 일들이었다.
도적단 토벌, 반역자 처벌, 공주 강간 등등….
뭣 하나 외부에 절대 알려져서는 안 되는 일들이었다.
특히 이리스 강간은….
‘그러고 보니까. 이리스는 언제쯤 도착하려나?’
내가 이리스를 기다리는 이유는 단순했다.
이리스에게 슈트라로 오라고 명령했기 때문이었다.
현재 이리스는 분명 공주의 신분이었지만, 내 전용 성노예나 다름없었다.
그녀가 내 성노예가 된 이유는 단순했다.
슈타트펠트 가문을 멸문시킨 죄.
이리스는 본의 아니게 슈타트펠트 가문이 멸문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맡아 버렸다.
비록 이리스가 아니더라도 슈타트펠트 가문이 멸문했을 수도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그녀의 죄가 크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이리스와 한가지 거래했었다.
루나가 슈트라에서 생활하는 동안 그녀의 시종이 되라는 이야기였다.
졸업 때까지 잘 이행하면 내 성노예 신분에서 벗어나게 해준다는 약속이었다.
[이리스는 공주 신분입니다. 쉽게 자리를 비울 수 없을 테니, 시일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뭐… 2왕자가 제정신이 박혀 있다면 알아서 잘 보내겠지.’
현재 레빈 왕국은 1왕자가 교수형으로 죽고, 2왕자가 정식 승계자가 된 상황이었다.
그 모든 일에는 내가 껴 있었다.
내 덕분에 승계자가 된 2왕자는 내게 평생을 걸쳐 철저하게 복종하겠다고 맹세했다.
아마 내 심기를 거스르기 싫어서라도 나와 관련된 일은 빠르게 처리하려고 할 것이다.
“자, 수업 시작하겠습니다.”
그렇게 잡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수업 시간이 되었다.
수업을 진행하는 교수는 엄격한 표정으로 학생들의 느슨한 분위기를 휘어잡기 시작했다.
“휴식도 좋지만, 너무 나태해지는 건 금물입니다. 만약 수업 태도가 불성실하면 바로 벌점을 드리겠습니다.”
다들 침을 꼴깍 삼키며 집중하며 수업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나만 빼고….
‘얼마나 대단한 걸 알려준다고 따로 만나자는 거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수업 시간 동안 멍하니 칠판을 바라봤다.
..
..
나는 마지막 수업을 마치자마자 바로 약속 장소로 향했다.
약속 장소는 생각보다 멀지 않았다.
나는 슈트라 학교 내부에 있으면서 슈트라 학교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한 저택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런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저택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똑, 똑, 똑.
내가 문을 두드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끼이이익.
무거운 경첩 긁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면서 내부에서 환한 미소로 한 사람이 나를 맞이해줬다.
나를 환영하며 맞이한 인물은….
“수업 시간에 맞춰서 왔군요. 들어오시죠.”
슈트라 학교의 학장인 루트비히 리펜슈타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