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그드라실 (6)
나는 다시 하얀색 드레싱이 잔뜩 묻은 샐러드를 찍어서 스텔라의 입으로 향했다.
“으음….”
잠시 골똘히 샐러드를 응시하던 스텔라는….
“하암.”
내가 건네준 샐러드를 다시 입 안으로 옮겨 넣었다.
그리고는 씹으며 감상평을 남기기 시작했다.
“뭔가… 흐음… 맛이 평소랑….”
스텔라가 뭔가 이상함을 감지한 모습에 나는 바로 그녀의 말을 끊었다.
“맛없어? 돌려보낼까?”
“그, 그런 건 아니에요. 그저….”
“혹시 내가 먹여준 게 마음에 안 드는 걸 돌려 말하는 거 아냐?”
“그, 그런 거 아니에요! 맛있어요. 괜찮으니까. 또 주세요.”
스텔라는 내 말에 화들짝 놀라며 조용히 음식을 맛보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도 스텔라는 계속 이상함을 느꼈지만, 더는 그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내가 계속 스텔라의 말을 끊은 이유는 단순했다.
분명 스텔라의 불만이 담긴 화살은 음식의 맛을 향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스텔라의 앞을 가로막아서 화살을 내 쪽으로 향하게 했다.
스텔라는 내 모습에 화들짝 놀라서 맛에 대한 불만을 거둔 것이었다.
그저 맛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싶었는데, 내게 불만을 토로하는 것처럼 보이게 된 것이었다.
나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내가 준 샐러드를 꾸역꾸역 먹는 스텔라를 보며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흐흐흐… 그래, 보지에 들어가기 전에 위 입으로 실컷 먹어놔.’
사실 내가 스텔라에게 먹이는 샐러드에 들어있는 정액은 내가 한번 사정하는 양에 한참 못 미치는 적은 양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정액 범벅을 해 놓으면 누가 봐도 이상함을 느낄 테니까.
그래서 대충 50mL 정도를 드레싱과 같이 섞어서 버무린 것이었다.
‘뭐, 그렇다고 50mL가 전부 입으로 들어가는 건 아니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샐러드에 묻은 드레싱은 기본적으로 그릇 바닥으로 고이기 마련이다.
돈이 없는 가난한 거지라면 드레싱까지 혀로 싹싹 닦아 먹었겠지만, 내 정액 드레싱 샐러드를 먹는 존재는 엘프… 그것도 왕족이다.
스텔라는 내가 준 샐러드를 적당히 먹고 나서 카트 위에 마련된 천으로 입을 닦기 시작했다.
나는 스텔라를 보며 물었다.
“맛은 어때?”
“그….”
나는 스텔라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압박이었다.
내가 ‘준’ 샐러드 맛있지?
라는 압박.
만약 스텔라가 지금 아르보스 왕궁에 있고, 내가 그녀를 보좌하는 호위였다면 진작에 욕을 처먹고 사형을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와 스텔라의 관계는 대등하거나, 내가 우위에 서 있는 관계였다.
스텔라는 내 눈치를 보더니,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맛있네요. 처음에는 바뀐 맛에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금세 혀에 녹아들어서….”
스텔라는 샐러드에 대한 칭찬을 일장 연설 늘어놓았다.
그리고 붉은색 입술에 묻은 정액을 천으로 마저 닦아내며 마무리했다.
“또 먹고 싶을 정도로 훌륭했어요.”
나는 그런 스텔라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 내일 점심에도 룸서비스 시킬 때, 이 메뉴는 다시 달라고 부탁할게.”
“그… 아….”
스텔라는 아차 싶은 표정을 짓다가 슬며시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해주세요….”
스텔라는 알고 있을까?
본인은 나를 손에 쥐락펴락하는 줄 알겠지만, 사실 본인이 쥐락펴락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미소를 지으며 다음 음식을 스텔라에게 먹여주기 시작했다.
대부분 음식을 먹여주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다만 귀찮은 부분은 단연코 스테이크였다.
“썰 때는 제 입에 알맞게 들어갈 수 있도록 잘 잘라 주세요. 특히 식기에 나이프가 닿는 것을 정말 싫어하니까. 그것도 엄수해주시고요.”
스텔라는 당연히 손을 못 쓴다는 꾀병을 부리는 중이기 때문에 스테이크도 자를 수 없었다.
나는 포크와 나이프를 들면서 한숨을 쉬었다.
‘여기 엘프들은 비건이 아니네….’
내가 알던 몇몇 엘프들은 국가 단위가 아닌 토착민 단위로, 풀이랑 이슬만 먹고 살던데….
하지만 이미 거쳐온 진화론을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법.
나는 예전에 루나에게 배웠던 식사 예절을 최대한 떠올리며 스텔라의 스테이크를 조심스럽게 썰었다.
그리고 들려오는 감탄.
“…혹시 어디서 식사 예절을 배우셨나요?”
스텔라는 스테이크를 써는 내 솜씨를 보며 진심을 담아서 감탄했다.
“여기 오기 전에… 배웠어.”
스테이크를 썰다 보니 루나 생각이 번뜩 떠올랐다.
한가을의 위험, 한여름의 회귀, 그리고 갑자기 등장한 엘프들 덕분에 위그드라실 생활이 생각보다 길어졌다.
내가 루나를 떠올리며 그리워하자, 스텔라가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
“더 이상 보지 못할 인연에 너무 목매지 마세요. 당신은 평생 말도 못 붙여볼 저랑 이렇게 대화 중이라고요?”
“….”
뭔 소리냐. 이 엘프는….
뭐랄까… 나를 위로하기보다는 현실을 직시하라는 꼰대질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내 숙련된 나이프 솜씨로 스텔라의 식사는 순조롭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스텔라는 입술에 묻은 소스를 천으로 닦았고, 나는 식기를 정리했다.
그리고 식기를 정리하며 피식 웃었다.
“생각보다 잘 먹네?”
“그,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저는 평범한 식사량을….”
나는 혼자 횡설수설 변명하는 스텔라를 보며 또 웃었다.
“그게 아니라,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그랬어.”
“재미…요?”
“성취감이 느껴지는 건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음식을 먹여주는 건 생각보다 재미있는 경험이었어.”
“…그거 다행이네요.”
스텔라는 마치 자신이 칭찬받는 것처럼 냅킨으로 입을 가리며 싱긋 웃었다.
“그럼 이따 저녁에도 또 부탁드려도 되겠죠?”
“아… 뭐, 그래.”
“…이렇게 흔쾌히요?”
내가 바로 수락하자, 스텔라는 의외라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어차피 너 간병이 필요한 몸이잖아. 너 맛있게 먹는 모습도 생각보다 보기 좋으니까 해줄게.”
“흐….”
스텔라는 실소가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람이란 간사하다.
아니, 엘프도 간사하다.
특히 엘프 중에서 스텔라는 더욱더 간사한 존재다.
호의를 베푸는 자를 호구로 받아들이는 여자가 스텔라다.
스텔라는 입을 마저 닦고 명령하듯이 내게 말했다.
“그럼 오늘 저녁에는 발 관리 좀 부탁드릴게요. 이왕이면 저녁 먹고….”
“아, 그건 싫어.”
“왜요!”
자연스럽게 말하면 당연히 수락할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어디서 그런 허접한 낚시로 나 같은 사람을 낚으려고….
나는 고개를 절레거리며 대답했다.
“전에도 말했지만, 그건 내키지 않아.”
“설마 제 발이 더럽다고 생각하시는 건….”
“그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스텔라는 내 대답을 듣고 나서야 그나마 안심하듯 한숨을 내 쉬었다.
나는 그런 스텔라를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여하튼 나는 이거 식기 갖다주고 올게.”
“그럼… 갔다 와서 손 마사지….”
“하아, 알았어. 갔다 와서 해줄게.”
“흐흐….”
스텔라는 내 대답에 실실 웃으며 자신의 손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진짜 손 마사지가 어지간히 좋긴 좋은 모양이었다.
사실 귀찮은 티를 내며 대답했지만, 나도 싫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귀찮은 티를 낸 것도 다 일부러 한 것이었다.
‘계속 이런 식으로 밀당하면서 계속 족쇄를 채워나가야지.’
스텔라는 본인의 손목에 족쇄가 채워지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실실 웃고 있었다.
..
..
스텔라의 원래 일과는 욕실, 웨드록 가문, 침실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중에서 단연코 제일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욕실이었다.
아침에 욕실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아침을 먹고, 다시 욕실에 들어갔다가 점심을 먹고, 다시 욕실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웨드록 가문에 갔다 와서 다시 욕실에 들어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침실에서 잠을 잔다.
스텔라는 그만큼 로열층의 욕실을 사랑하는 여자였다.
하지만 스텔라는 어제와 다르게 점심을 먹은 뒤, 욕실에 가지 않고 계속 침대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녀가 욕실을 가지 않는 이유는…
“흐으… 좀 더 아래….”
“여기?”
“네에… 네.”
내 손 마사지 덕분이었다.
그녀는 내 손 마사지를 받는 것에 정신이 팔려서 욕실에 갈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그래, 손 마사지에 푹 빠져든 건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내 손기술이 얼마나 사기인지 알고, 그걸 노리고 스텔라에게 손 마사지를 해줬던 거니까.
하지만….
‘아니, 다섯 시간 정도면 지루할 만하지 않나?’
스텔라는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빠르고, 강하게 손 마사지에 중독되어 갔다.
내가 간혹 그녀의 매끄러운 마디를 툭툭 눌러줄 때마다 스텔라는 몸에 전기가 흐르듯 파르르 떨었다.
“하으으….”
그중에 특히 심하게 떠는 곳은 단연코 이불에 덮인 골반이었다.
이불에 덮여서 내 눈에 보이지 않음에도 스텔라의 골반은 티가 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스텔라는 그런 추한 자신의 모습 따위는 전혀 관심 없어 보였다.
그저….
“손바닥도….”
“알았어.”
그저 내게 자신이 마사지 해줬으면 하는 부위를 계속 읊을 뿐이었다.
살짝 하대하는 듯한 느낌이긴 했지만, 넘어가 줄 수 있는 수준이었다.
골반이 떨릴 정도로 흥분하는 중이라면 이성이 꽤 많이 날아간 상태일 테니까.
그렇게 마사지하다 보니 어느새….
“나 슬슬 손 아프다 그만하자. 그리고 이제 저녁 시간이야.”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
그렇게 내가 손을 놓으려는 순간….
“자, 잠깐!”
스텔라는 내가 손을 놓자마자 경악하듯 내 손을 확 낚아챘다.
그리고는 평소의 냉정하게 보이던 스텔라의 눈동자에는 이성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중독된 엘프가 있을 뿐….
“누, 누가 허락도 없이 끝내라고 했어요!? 저녁은 나중에 먹어도 되니까 좀 더….”
“나 팔 아파.”
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스텔라는 어깨를 움찔거렸다.
스텔라는 분명 아까까지 나를 발밑에 두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정반대였다.
지금 상황에서 결정권이 있는 건 내 쪽이었다.
스텔라는 갑자기 투덜거리는 표정으로 내 손을 부드럽게 만지기 시작했다.
“하, 하지만… 갑자기 그만두면….”
“저녁 먹고 나서 해줄게.”
“…정말요?”
갑자기 어린애처럼 실실 웃기 시작했다.
그래, 웃는 모습이 예쁘긴 하네.
하지만….
“나 저녁 가지러 갔다 오게. 손 놔줘.”
“!?”
스텔라는 내 손을 만지작거리던 자기 모습에 화들짝 놀라며 손을 떼어냈다.
“가, 갑자기 당신이 손을 놓는 바람에 몸이 휘청거려서….”
“알았으니까. 기다리고 있어. 저녁 가지고 올게.”
“…네.”
나는 그렇게 스텔라를 방에 두고, 저녁 식사용으로 룸서비스를 시켰다.
이번에는 저녁 식사라 그런지 낮에 먹었던 룸서비스랑 메뉴가 살짝 달랐다.
메인 메뉴인 스테이크는 그대로 있었다.
하지만 빵과 수프가 추가되어 있었고, 생선요리가 추가되어 있었다.
아까 드레싱 샐러드는 그대로 있었다.
저녁 식사라 그런지 점심 식사보다 무게감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술은 안 마시나?’
로열층은 당연히 원하면 술도 제공해준다.
그런데 내가 스텔라의 음식을 룸서비스로 시켰을 때는 단 한 번도 술이 나온 적이 없었다.
‘뭐, 나중에 본인한테 직접 물어보면 그만이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음식 카트를 끌고 다시 식당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식당의 문을 잠가 놓고 카트 위에 있는 음식들을 천천히 훑어봤다.
그리고는….
‘자, 내가 만든 특제 소스를 먹을 시간입니다. 공주님.’
바지를 벗기 시작했다.
..
..
스텔라는 카트 위에 올라와 있는 음식을 보며 상기된 얼굴로 내게 말했다.
“자, 빨리 먹죠.”
그녀가 서두르는 이유는 단순했다.
손 마사지.
빨리 먹고 손 마사지를 받고 싶어서 저러는 것이었다.
‘지가 알아서 먹었으면 애초에 금방 먹었을 텐데….’
스텔라는 침대에 걸터앉은 채 양손을 허벅지 위에 다소곳이 올려놨다.
즉, 이번에도 자신은 손 하나 까딱할 생각 없으니 내게 먹여달라는 이야기였다.
사실 스텔라다운 행동이었다.
한번 남의 영역에 발을 들이면 그 장소가 곧 자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여자다.
지금 스텔라는 나와 밀당을 하면서 자신이 잘 이겨나가고 있다고 착각하는 중이었다.
‘그래, 계속 그렇게 생각하면서 들어와라.’
늪으로 빠져드는 줄도 모르는 스텔라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자, 일단… 수프부터 먹을래?”
“좋아요.”
“그래, 자….”
나는 거울 같은 은수저를 이용해서 수프 한 숟갈을 뜬 뒤에 스텔라의 입으로 향했다.
스텔라는 전혀 거부감 없이 입을 열고는 내가 떠준 수프를 입에 쏙 넣었다.
그렇게 스텔라의 입에 들어갔던 수프가 담긴 은수저는 그녀의 입술로 거울처럼 깨끗하게 닦여서 입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수프의 맛을 보던 스텔라는….
“흐음…?”
또 맛이 이상함을 감지했다.
스텔라는 오묘한 맛을 느끼며 수프를 간신히 삼켰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 수프에 뭐 넣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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