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그드라실 (6)
“그럼 바로 제 방으로 따라오세요. 당신이 해줘야 할 일이 있으니까요.”
“???”
나는 의문이 담긴 표정으로 스텔라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하지만 스텔라는 그 말을 남기고, 아무런 설명도 없이 바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멍한 표정으로 2층에 있는 스텔라의 방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스텔라의 정보창이 고스란히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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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라 아르보스
스텔라의 체내로 들어간 정액량 : 145.2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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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속을 걸기 위해서는 그 여성에게 총 1L의 정액을 체내에 넣어야 하는가.
하지만 스텔라의 체내에 들어간 정액은 아직 1L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였다.
‘어제 계속 헛구역질해서 중간에 포기했는데… 어떻게 된 거지?’
즉, 스텔라는 아직 종속에 걸린 상황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뭐지…? 설마 종속에 걸리기 전에 벌써 푹 빠진 건가?’
내 의문에 강한나의 피식 웃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는 빨리 함락되면 좋긴 하겠네요.]
‘그럼 재미가 없는데….’
강한나는 좋을지 모르지만, 나는 쉽게 함락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스텔라가 좀 더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괴로워하길 빌었다.
그리고 마음은 넘어오지 않지만, 몸만은 나를 갈망하게 만들고 싶었다.
내 애를 갖기는 싫지만, 내 자지가 보지를 쑤셔서 자궁에 정액을 채워주길 바라는 그런 여자 말이다.
그런데 예상외로 아르모니아가 내 마음을 알아주면서 좋은 정보를 알려줬다.
[만약 그런 몸을 만들고 싶다면 잘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부 기질이 추가되었습니다.]
‘엥?’
아르모니아의 말과 함께 내 앞에 추가된 기질이 나열되었다.
-[손 페티쉬], [성감대(손)]-
흔히 볼 수 있는 성적 기질이었다.
문제는 그 기질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 흔하지 않다는 게 문제지.
‘허… 아까 잠깐 손 만져준 걸로 저렇게 됐다고?’
스텔라의 기질창을 확인해 본 바로는 그녀에게 성적인 취향은 존재하지 않았다.
정조 마법과 공주라는 신분 때문에 호감이 가는 엘프가 있었더라도 같이 대화도 나누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스텔라라면 아무리 뛰어난 능력과 혈통을 지닌 엘프라고 해도 눈에 차지 않았겠지만….
그런 그녀가….
[아까 당신이 손을 잡고 나서 생긴 기질이에요. 확실해요.]
혐오하는 인간을 상대로 처음으로 성기질이 발현된 것이었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내가 손기술이 좋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나와 손을 만진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야, 스텔라의 에스코트를 할 때, 손에 신경을 곤두세우긴 했었다.
그리고 스텔라에게 반응이 온 것도 눈에 보였다.
하지만 이렇게 극적인 효과가 나타날 줄은 예상하지 못했었다.
[엘프는 태생이 성(姓)에 둔감하고, 정조 마법 때문에 배우자가 나타나기 전에 성욕을 느끼는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살면서 처음으로 성적 감각에 눈을 뜬 거죠. 당신의 손에 의해서….]
‘아하….’
그렇다면 이해가 가긴 하네.
스텔라는 로열층… 그것도 로열층의 욕실을 갖고 싶다는 욕구 하나만으로 나와 합숙을 수락했다.
정조 마법이라는 보험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스텔라가 한번 터진 절제에 얼마나 약한지 모여주는 단적인 예이기도 했다.
‘일단 들어가 봐야겠네.’
나는 그렇게 속으로 흥얼거리며 스텔라의 방에 들어갔다.
스텔라는 방에 있는 테이블 의자에 다소곳하게 앉은 채 나를 힐끗 바라봤다.
“문 닫고, 이리 와서 앉으세요.”
“???”
엄청난 파격 대우였다.
스텔라가 내게 착석을 권유하다니….
내가 아는 스텔라는 길드온에게도 착석을 권유할 여자가 아니었다.
나는 의문을 가진 채 문을 닫고, 스텔라의 건너편에 앉았다.
스텔라는 차분한 표정으로 마주 보며 내게 손을 뻗었다.
아까 석양빛에 붉게 물들었던 스텔라의 손은 지금 백옥으로 조각된 것같이 새하얗고 반짝이고 있었다.
잘 다듬어진 손톱과 가느다란 손가락은 마치 ‘미의 여신’의 손을 본따 만든 것처럼 아름다웠다.
스텔라는 내가 감탄하듯 손을 바라보자, 만족스럽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오늘 마침 그날이에요.”
“…그날?”
마법의 날 말하는 건가?
내가 게슴츠레하게 바라보자, 스텔라가 답답하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오늘 마침 제가 손 관리받는 날이라고요.”
“….”
세상 살다 보니 손 관리받는 날이 따로 존재할 줄이야….
‘아니, 왕족… 그것도 왕국의 마스코트 같은 공주이니 있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나?’
일단 아르보스 엘프 왕국의 지식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아르보스 엘프 공주의 스케쥴에 ‘손 관리받는 날’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나를 부른 이유는?
“설마 손 관리해줄 사람 구해오라는 거야?”
만약 있다고 해도 내가 데리고 와줄 의무는 없었다.
그래, 만약 호위라는 입장상 데려와 주는 것까지는 해준다고 치자.
스텔라가 내가 데리고 온 사람에게 얌전히 손 관리를 받을까?
입으로 욕을 내뱉지는 않겠지만, 눈빛으로 내게 욕이 담긴 시선을 보낼 것이다.
하지만 스텔라는 그런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고개를 저으며 내게 말했다.
“제가 설마 그런 미천한 자에게 손을 맡길 것 같나요?”
일단 귀찮게 돌아다닐 필요가 없어져서 한시름 놓았다.
하지만 슬슬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말 돌리지 말고, 제대로 말해. 원하는 게 뭐야?”
“….”
스텔라는 자신의 손등을 내게 보인 채 팔을 뻗은 뒤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당신이 손 관리를 해주세요.”
“뭐? 내가?”
나는 스텔라가 말하는 손 관리하는 것과 이역만리 떨어진 존재다.
평생 해본 적도 없고, 심지어 손 관리라는 소리도 오늘 처음 들었을 정도였다.
“야. 나 그런 거 해본 적 없어. 애초에 손 관리가 뭔지도 모르고….”
“그냥 손톱 정리와 손 마사지를 해주면 돼요.”
“그냥 참으면 안 돼? 어차피 너 열흘 후에 다시 돌아가잖아.”
“참기 힘들어서 그래요.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 맡기기도 싫고요. 대신 포인트 드릴게요. 1억 포인트.”
“이랏샤이마세!”
“뭐, 뭐라고 했어요?”
“아, 승낙하겠다는 말이야.”
“후우… 아무리 승낙한다고 해도 그렇지,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그래요.”
어차피 나도 스텔라의 손을 잡는 건 환영이었다.
저런 예쁜 손을 잡고, 오히려 포인트를 받다니… 이것이야말로 일석이죠.
다만 해주고 싶은 마음과 별개로 걱정이 들었다.
“야, 해줄 수는 있는데. 나 남의 손 관리해 본 적 없어서 문제 생길 수도 있는데?”
“그때는… 실수 한번당 천만씩 깎을게요.”
“….”
봉건시대에 사는 주제에 하는 짓은 자본주의자네.
그래도 봉건시대처럼 매질하지 않는 게 어디인가.
정석대로라면 나 같은 존재가 공주의 손에 생채기를 내는 순간 바로 사형 루트를 타야 한다.
특히 스텔라같이 까칠한 공주라면 더더욱이….
내가 고민하듯 스텔라의 손을 뚫어지게 쳐다보자, 스텔라는 오히려 다급해진 듯이 내게 말했다.
“자, 작은 실수는 적당히 눈감아 드릴게요. 너무 부담 갖지 마세요.”
“….”
내 눈치를 보는 스텔라의 모습으로 충분히 보상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손으로 절정 시킬 수 있는지 한번 시험해보자.’
나는 속으로 비릿하게 웃으며 스텔라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좋아. 해줄게.”
“후후후후.”
스텔라는 오히려 자기 뜻대로 일이 풀린다고 착각하며 웃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스텔라의 손을 잡은 채 말했다.
“자, 그럼 시작한다.”
“…네.”
스텔라는 내가 막상 시작한다고 하니까 긴장하기 시작했다.
기분이 좋은 것과 별개로 손톱에 흠집이나 손에 생채기가 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일단 조심스럽게 손을 잡은 채 물었다.
“손톱은 뭐로 깎아?”
“마침 저한테 손톱 관리 도구가 있어요.”
“…그걸 왜?”
그런 걸 왜 공주가 가지고 다니나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스텔라는 내 의문 따위는 관심 없다는 듯이 인벤토리에서 손톱 관리 도구를 꺼내서 테이블 위에 나열하기 시작했다.
‘내가 살던 곳의 상식을 따지면 안 되겠네.’
이곳은 NPC들도 기본적으로 인벤토리를 가지고 있는 세상이다.
내가 아직 이곳 생활이 짧아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인벤토리의 제약은 없어 보였다.
스텔라가 공주의 신분임에도 호위만 데리고 오고, 시종을 데리고 다니지 않는 이유를 여기서 알 수 있었다.
옷을 입고 벗는 것도 혼자 가능하고, 짐은 모조리 인벤토리에 넣으면 그만이니까.
“이걸로 부탁드릴게요. 도구마다 사용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이 도구는….”
무수히 많은 손톱 관리 도구는 분명 손톱을 관리하는 목적이 같았지만, 각각 용도가 달랐다.
갑자기 손톱 관리 공부를 받아야 해서 귀찮긴 했지만, 나는 스텔라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일단 해주기로 했으니까.’
해주기로 했으면 웃으면서 해주자.
그렇게 생각하며 설명을 전부 듣고, 첫 번째 도구를 들어 올렸다.
“자, 시작한다.”
“…할 때는 최대한 집중해서 해주세요.”
“걱정하지 마.”
어제, 네 입 안에 정액을 골인시키기 위해 집중한 것처럼 집중할 테니까 걱정 붙들어 매라.
“나는 일단 하기로 했으면 어설프게 마무리 짓지는 않아.”
“…그 말도 마음에 드네요.”
내 자신감이 담긴 목소리에 스텔라는 마음을 놓고 눈을 감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텔라가 눈을 감은 것과 동시에 그녀가 설명한 것을 떠올리며 손톱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
..
“후우… 이 정도면 됐나?”
나는 그렇게 마지막 도구를 사용한 뒤, 고개를 들어서 스텔라를 올려다봤다.
스텔라는….
“아흐으으….”
어느새 눈을 뜨고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상태는 도저히 공주라는 신분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눈에는 초점이 없었고, 입가에서는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그냥 손으로 마사지하듯 만지면서 손톱을 관리해준 것뿐인데, 저렇게 반응할 줄은 몰랐다.
나는 스텔라의 얼굴 앞에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야, 정신 차려.”
“흐엇!?”
스텔라는 내 말에 눈에 초점을 맞추며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 소, 손톱 관리는….”
“다했어.”
스텔라는 내 말을 듣자마자 황급히 손등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토끼 눈을 뜨며 스텔라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어… 이, 이거… 정말 당신이 한 건가요?”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마지막으로 쥐었던 도구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그럼 내가 했지. 마법이 해줬겠냐?”
“의, 의심할 생각으로 한 말은 아니었어요. 미안해요.”
스텔라는 오히려 내게 사과한 뒤, 자신의 손등을 바라보며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잘 다듬어진 손톱은… 살면서 처음이에요.”
정말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아까 손을 만질 때마다 절정하면서 몸을 흠칫흠칫 떠는 바람에 짜증이 좀 났지만, 막상 본인이 만족하니 나도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장인은 무료 봉사로 만족하지 않는 법.
“마음에 들어서 다행이네. 포인트 내놔.”
“줄게요.”
스텔라는 분위기를 깬 나를 질타할 법했지만, 전혀 불만을 내비치지 않고 내게 포인트를 건네줬다.
그리고는 다시 제안했다.
“혹시… 발도 부탁드려도 되나요?”
나는 스텔라의 말을 듣는 순간 테이블 밑에 있는 그녀의 발을 확인했다.
은빛의 굽이 놉은 하이힐을 신겨 있는 스텔라의 발.
어제 욕실에서 잠시 봤지만, 그녀의 발은 손과 마찬가지로 비교 대상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심지어 발 하나만 따지자면 민하연과 한봄보다 예쁠 것이다.
솔직히 손만큼 발도 하루종일 만지고 싶을 정도로 예쁜 편이었다.
하지만….
“거절.”
나는 냉정하게 거절했다.
스텔라는 내 거절에 오히려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왜, 왜요!? 설마 제 발이 더럽다고 생각하신 건…!”
“그건 아냐.”
나는 바로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내 부정에 스텔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그… 그러면 왜 거절하시는 거죠?”
나는 스텔라의 물음과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내키지 않을 뿐이야.”
“….”
“그럼 내일 보자.”
스텔라는 대답 없이 불만이 담긴 표정으로 나를 쏘아볼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노려보는 스텔라를 무시한 채 방을 빠져나갔다.
‘아,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손톱 관리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도구가 많은 탓도 있지만, 내가 그만큼 집중하고 있던 탓도 있었다.
이왕 시작한 거 완벽하게 끝내고 싶다는 욕구.
무엇보다 내게 등장한 또 다른 희귀한 기질 때문이기도 했다.
‘살다 보니 저런 스킬이 있을 줄은 또 몰랐네.’
-[수족 관리 기술 LV 95]-
아마 스텔라 말고 다른 곳에서 이 스킬을 쓰는 날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하찮아 보이는 기술이라고 해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이 대부분 사람의 생각이니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나중에 저도 해주세요.]
‘하하하… 알았어요. 다음 예약 스케쥴에 넣어 놓을게요.’
나는 강한나의 콧김이 섞인 웃음소리를 들으며 스텔라의 방문 쪽을 확인했다.
내가 닫아놓은 문이 바로 열리며 스텔라가 우아하게 걸어 나왔다.
그리고는….
“…흥!”
고개를 팽 돌린 채 나를 지나치며 욕실로 걸어갔다.
그리고 닫힌 욕실 문.
나는 그 욕실을 바라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자, 오늘도 그럼 몰래 들어가 보실까.’
그런데 내가 웃는 것과 별개로 아르모니아의 의문이 담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마지막 제안은 왜 거절하신 겁니까?]
스텔라의 마지막 제안.
발도 똑같이 관리해달라는 부탁이었다.
사실 아까도 말했다시피 못 해줄 건 없었다.
상대방에게 발을 관리해달라는 말은 하대하는 것이지만, 스텔라의 발은 그런 하대를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그냥 해주면 곤란하지.’
[…?]
[그럼 어떻게 해주려고요?]
나는 인벤토리에서 [비겁자의 술법]을 꺼낸 뒤, 사용하며 통신으로 말했다.
‘나중에 제 발을 핥아서라도 발을 만져달라고 애원하는 상황을 만들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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