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그드라실 (6)
“끄히아아아아악!!”
다리가 잘린 채 바닥에서 뒹구는 베르덴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역시 레나야.’
베르덴이 이렇게 바닥에 뒹굴게 만든 건 내가 아닌 레나였다.
심지어 레나는 녀석을 그냥 죽이기 싫다는 내 생각을 잃었다는 듯이 딱 다리만 잘라서 제압한 것이었다.
그것도 원래 서 있던 두 발은 땅에 딱 달라붙게 만든 채….
내가 레나의 검술 실력에 감탄하는 사이에 레나는 번개 같은 손놀림으로 검을 또 휘둘렀다.
솨아아악!
“끼아아아악!!”
이번에는 베르덴의 양팔이 반듯하게 잘려서 바닥에 떨어졌다.
레나는 베르덴의 망자 같은 비명에도 불구하고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에게 말했다.
“주인님에게 위해를 가하려고 해서 팔을 잘랐습니다. 또 이상한 짓을 하려고 할 시에는 죽이지 않고, 잘린 부위를 회처럼 썰어드리겠습니다.”
“히끼이이익!!”
레나의 말을 듣고 나서 왜 또 검을 휘둘렀는지 알 수 있었다.
베르덴이 발이 잘려 바닥에 뒹구는 와중에도 내게 뭔 짓을 하려고 했던 모양이었다.
베르덴은 양손과 양팔을 잃은 대신에 공포와 고통을 얻으며 기쁨의 춤을 추기 시작했다.
비록 그 춤의 점수는 10점 만점에 1점도 주기 힘든 수준이었지만….
나는 사지에서 피를 쏟아내는 베르덴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까 이야기 계속해볼까?”
“크아아아악!! 무, 무슨 이야기!?”
“정신이 오락가락하나 봐? 아까 너 계약했잖아. 나 산 채로 데리고 가는 거. 내가 직접 출두했는데, 나한테는 따로 보상이 없나 해서.”
“끄으으윽! 하카아아악!!”
베르덴은 격통을 참지 못하고 중간중간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는 갑자기 양손, 양팔이 없음에도 무릎을 꿇고 나를 올려다보며 애원하기 시작했다.
“사, 살려줘! 뭐, 뭐든 할게! 사람을 죽여줄까? 아니면 여자가 필요해? 뭐든 말만 해! 끄어어억!”
베르덴은 무릎을 꿇은 상태로 휘청거리다가 손이 잘린 부위로 바닥을 짚어 버렸다.
“카아아악!! 끄아아아아악!!”
“아이고… 아프겠네.”
빈말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잘린 팔 단면적으로 바닥에 피 도장을 찍으면 나 같아도 저렇게 비명 지르겠다.
베르덴은 내 동정심이 담긴 말에 희망을 느꼈는지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외쳤다.
“내, 내가 이래 봬도 암살자 집단의 수장이야! 말만 하면 뭐든 다….”
“오, 수장…? 너 이름이 뭐야?”
“끄으윽! 내, 내 이름은… 마르코! 존 마르코야! 내가 푸, 푸른 달빛이라는 조직의 수장으로….”
존 마르코, 푸른 달빛, 수장….
‘와… 이 짧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거짓말이 저렇게 술술 나올 수 있는 인간이 몇이나 될까?’
[어떤 의미에서 존경스럽네요.]
이 녀석 입장에서는 어차피 검증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니까 막 내뱉는 것이다.
생존 욕구와 조직의 기밀 유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챙기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어쩌나….
나는 실실 웃으며 애원하는 베르덴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존 마르코, 푸른 달빛의 수장….”
“그, 그래! 처음 들어봤을 거야! 음지에서 활동하는 레드 소환사 집단….”
“시작부터 거짓말을 내뱉으시네. 베르덴 씨?”
“어…?”
베르덴은 과다 출혈로 죽어가는 와중에도 고통을 잊은 듯이 나를 멍하니 올려다봤다.
나는 그를 내려다보며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베르덴… 붉은 초승달의 일개 간부.”
“어… 어떻게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나는 고통도 잊은 듯이 나를 멍하니 바라보는 베르덴을 보며 화살을 활시위에 걸었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향해 겨누며 미소를 지었다.
“그건… 2층에 가서 죽은 사람들한테 열심히 물어봐.”
“아… 자, 잠깐…!”
죽음을 직감한 베르덴은 마지막 발악을 하며 자기 팔을 들었다.
마치 손바닥을 교차해서 내 화살을 막아내려는 듯한 발악이었다.
하지만 그가 들어 올린 팔에는….
“아… 아아아!!”
손이 달려 있지 않았다.
그저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잘린 팔목만 자신을 반겨줄 뿐이었다.
나는 절망에 휩싸인 베르덴을 보며 한마디 남겼다.
“나중에 또 보자.”
“살려…!”
그게 베르덴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
..
베르덴을 처치한 뒤, 나는 바로 레인트리 술집에 돌아왔다.
일단 모든 상황은 잘 처리되었다.
레드 소환사들과 베르덴의 정보망 역할을 했던 NPC, 그리고….
“우린 잘못 없다고!”
도미 드레크와 케닐 팀은 병사들에게 잡힌 채 변명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래! 언제부터 레티티아가 사생활까지 통제했지!?”
“녀석들이 먼저 접근했을 뿐이야! 그리고 이야기도 거의 나누지 못했어!”
두 사람은 콜로세움의 지배자로 오랫동안 군림한 덕분에 꽤 높은 인지도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인지도를 가지고 병사들을 향해 변명하는 중이었다.
병사 중의 몇몇은 그들의 말에 동조하듯이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레드 소환사와 만나는 건 좋은 행위가 아니다.
하지만 죄를 묻냐고 하면… 일단 위그드라실의 제재를 받는 죄는 아니었다.
아니, 경고조차 받지 않는 개인의 자유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위그드라실의 기준이었다.
“크히히히!”
시끌벅적하던 술집 내부가 기괴한 웃음소리와 함께 침묵이 감돌았다.
심지어 과격하게 변명을 늘어놓던 도미 드레크와 케닐의 시선도 돌아갔다.
술집에 들어온 건 두 사람이었다.
“크히히히! 오랜만에 재미있는 장면을 보게 되는군.”
“재미라… 루드윅 님께서는 제가 느끼는 즐거움의 가치관이 많이 다르시네요.”
콜로세움의 관리자 루드윅과 유흥 업소의 관리자 마담이었다.
갑자기 생뚱맞게 두 사람이 나타난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불렀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왜 내가 그들을 불렀냐?
나 혼자서 베르덴을 처치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도미 드레크와 케닐… 그리고 그의 파티원까지는 내 손으로 잡는 건 쉽지 않았다.
그야, 방법은 존재했다.
양지현의 도움을 받거나… 내가 직접 레드 소환사가 되거나….
하지만 전자는 자칫 양지현이 배신자라는 후문을 남길 가능성이 있었고, 후자는 애초에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생각해 낸 절묘한 묘수는 바로 루드윅과 마담의 도움을 받는 것이었다.
루드윅은 콜로세움의 지배자인 나를 봐서 부탁을 들어줬고, 마담은 한여름이라는 인재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나를 도와줬다.
그야, 도와줄 때 한 가지 조건을 제시했지만….
루드윅은 술집에 들어오자마자 다른 사람들은 다 제쳐두고 내게 말을 걸었다.
“크히히히… 자… 지금까지 당신의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중요한 건 다음이군요.”
루드윅이 나와 친한 듯이 말을 걸자, 도미 드레크와 케닐은 발끈해서는 그를 향해 소리쳤다.
“이봐! 루드윅! 설마 당신이 우리를 이렇게 잡아들인 거야!?”
“너무 하잖아! 그간 우리가 콜로세움을 얼마나 도와줬는데!”
두 사람의 말에 루드윅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크흐흐… 당신들의 활약은 언제나 감사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루드윅은 그간 보여줬던 가벼운 인상이 아닌 매서운 눈빛으로 그들을 보며 낮은 목소리를 흘렸다.
“만약 당신들의 활약이 거짓된 것이라면 당신들의 배와 머리를 갈라서 당신들에게 넘겨준 제 감사함의 기억과 감정을 모조리 끄집어내 버리겠습니다.”
“무… 무슨….”
저 자그마한 고블린의 기세에 도미 드레크와 케닐은 순식간에 뱀 앞의 쥐처럼 옴짝달싹 못 하듯이 달달 떨기 시작했다.
‘와… 고블린이라길래 그냥 돈만 밝히는 놈인 줄 알았는데. 얕보면 안 되겠네.’
나는 그렇게 과거에 루드윅을 무시했던 것을 반성하며 루드윅의 말을 기다렸다.
루드윅은 도미 드레크와 케닐을 분위기로 제압한 뒤, 다시 실실 웃으며 내게 말했다.
“하지만 저들의 활약에 거짓이 없다면 곤란한 건 당신이 될지도 모릅니다.”
“뭐, 그건 걱정하지 마.”
나는 루드윅에게 보석 형태의 아이템 하나를 건넸다.
루드윅은 내 아이템을 보자마자 바로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크흐흐흐! 제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녀석이군요!”
촬영기.
루드윅은 칼이나 마법, 레드 소환사보다 촬영기가 더 무섭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슬레이프니르는 신계와 명계 모두를 누빌 수 있는 신의 말이지만, 이 촬영기에 담긴 말은 지성인의 기억에 담겨서 모든 사람의 기억 속을 돌아다닐 수 있죠.”
대충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 같은 속담을 말하는 듯 보였다.
어느 세상이든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은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루드윅은 더 이상 말을 늘어놓지 않고, 촬영기의 내용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촬영기 안에는 아까 베르덴과 두 사람이 나눈 대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확인을 마친 루드윅은….
“….”
웃음기를 싹 지운 채 도미 드레크와 케닐 파티를 보며 나지막이 목소리를 흘렸다.
“끌고 가.”
그 뒤에 도미 드레크와 케닐 멤버들은 몇 차례 변론하듯 말을 내뱉었지만, 루드윅의 마음을 흔드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그 뒤에 붉은 초승달 조직원 셋과 NPC 셋도 같이 끌려갔다.
처음에 끌려갔던 도미 드레크, 케닐과 다르게 그들은 최대한 루드윅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조용히 끌려갔다.
그렇게 사건이 마무리되었고, 루드윅은 손뼉을 치며 다시 깃털처럼 가벼운 목소리로 분위기를 바꿨다.
“크히히히! 그럼 볼일도 끝났겠다. 이만 가봐야겠군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크히히! 오히려 고마운 쪽은 저입니다.”
루드윅은 콜로세움을 관리하는 자인 만큼 부정한 방법으로 승리를 쟁취한 자를 절대 용서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의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아까 분위기를 보니까 적당히 넘어가지는 않겠네.’
루드윅은 내게 감사 인사를 건넨 뒤, 병사들을 이끌고 돌아갔다.
그리고 술집에 남은 건….
“저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네요.”
나와 마담이었다.
“죄송합니다. 도와줄 사람이 많은 게 좋다고 판단했거든요.”
마담은 실실 웃으며 장난스럽게 툴툴거렸다.
“저는 실익보다 그저 루드윅 님에게 선수를 빼앗긴 거 같아서 실망했을 뿐이에요.”
즉, 그냥 자기에게만 도움을 요청했어도 충분했다는 이야기였다.
마담의 말만 들어보면 이 여자도 보통내기는 아닌 듯싶었다.
나는 마담의 투덜거림을 적당히 받아주며 미소를 지었다.
“그럼 업소까지 바래다 드리겠습니다.”
“후후… 그거 좋네요. 가는 길에 심심하지도 않고, 마침 용무도 있었고.”
“용무요?”
내 물음에 마담은 미소를 흘리며 대답했다.
“사장님께서 약속을 시간을 정하셨어요. 바로… 내일이에요.”
..
..
나는 약속을 잡은 뒤, 마담을 업소까지 바래다주고 바로 콜로세움으로 향했다.
그리고 콜로세움에서 나를 맞이한 건….
“아~~~ 아죠씨네.”
힘없이 나를 바라보는 한봄의 모습이었다.
어깨를 축 늘이고, 힘없는 표정과 힘없는 목소리로 나를 바라보는 한봄.
나는 그녀를 보자마자 걱정이 들었다.
“왜 그래? 혹시 다쳤어?”
혹시 경기 중에 다쳤나 싶었다.
하지만 그녀가 힘이 없는 이유는 그런 외부적인 요인 때문이 아니었다.
“내 경기 그렇게 재미없었어요?”
나 때문이었다.
“하하… 봄아, 미안해. 내가 정말 바쁜 일이 있어서….”
“아아아~~~ 그렇겠죠. 아죠씨는 언제나 바쁘죠. 제 경기를 볼 시간은 없겠죠~”
“하하하….”
한봄은 그 이후로도 힘이 빠진 ‘아죠씨’소리로 자신이 삐쳤다는 신호를 계속 보내왔다.
나는 그렇게 삐진 한봄을 풀어주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
한여름이 방문을 열자, 낯익은 얼굴이 그를 맞이했다.
“오늘도 모셔다드리겠습니다. 가시죠.”
“….”
업소에서 파견 나온 경호원이었다.
한여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경호원의 숫자는 어제와 같이 다섯 명.
한여름은 경호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미소를 지었다.
‘흐흐흐… 좋아.’
드디어 지옥 같은 굴레에서 벗어날 시간이 돌아온 것이었다.
‘이번에 내가 중간에 행동을 바꿔서 성수호의 행동도 바뀌었지만… 이것만큼은 바뀔 리가 없지.’
자기 행동으로 인한 나비 효과를 두려워하는 한여름이었지만, 이번만큼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상대는 미궁에서 활동하는 레드 소환사 집단.
한여름이 다르게 행동했다고 해서 그들의 행동까지 변할 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좋아…. 저기다.’
한여름은 저번 회차에서 습격당했던 장소에 다다르자 속으로 외쳤다.
‘와라!!’
상대는 레드 소환사.
하지만 그 레드 소환사들은 한여름을 성수호라는 악마가 만들어 놓은 지옥의 쳇바퀴로부터 구해줄 천사였다.
그래, 저번 회차에 자신을 구해줬던 그 천사들은….
‘…어?’
자신의 눈앞에 나타나 주지 않았다.
‘아, 아냐. 내, 내가… 차, 착각 한 거겠지? 여기가 아니었나?’
한여름은 그렇게 코너를 돌고, 어두운 거리를 들어설 때마다 속으로 외쳤다.
‘나와! 이제 나오라고!! 어차피 내 옆에 있는 놈들 정도는 쉽게 처리할 수 있잖아!!!’
한여름은 그렇게 속으로 천사를 부르짖으며 외쳤다.
하지만 그를 반긴 건….
“어머머… 오늘도 또 왔구나!? 오늘은 꼭 내가 1차 픽해줄게!”
어제 자신의 정력을 쏙 빼먹은 100키로가 넘어 보이는 거구의 여성이었다.
한여름은….
‘아… 아아아….’
그 거구의 여성의 품에 안긴 채….
‘안돼!!!!!!!!!!!!!’
성수호가 만들어준 지옥의 쳇바퀴를 열심히 돌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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