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의 여자를 빼앗는 방법-740화 (740/898)

위그드라실 (6)

한여름은 내 옆에 있는 안대와 구속을 당한 여자를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뭐… 뭐야? 쟤가 왜 여기에 있어?”

분명 저번 회차에도 내 옆에 있는 여자는 안대와 구속을 당한 상태에서 내게 노예처럼 끌려왔었다.

그럼에도 한여름이 저렇게 당황하는 이유는 그저 연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저번 회차와 단 한 가지 바뀐 사실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한여름은 안대와 구속을 당한 한가을을 뚫어지게 보다가 내게 고개를 돌려 외쳤다.

“하, 한가을이 왜 여기 있냐고!?”

회귀자인 한여름의 입장에서 취해야 할 정확한 질문이었다.

지금 이런 사태가 벌어진 원인을 찾아내서 다음 회차에는 반복되지 않게 하려는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한여름이 내 답을 들을 수 있을 때나 가능한 이야기였다.

나는 한여름에게….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침실 좀 쓸 거니까 거실에서 대기나 하고 있어.”

나는 대답해주지 않고, 옆에 있던 한가을을 데리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철그럭, 철그럭!

“자, 잠깐만요. 시, 신호는 주고 움직여요. 제발….”

한가을의 모습은 저번 회차의 민하연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목에 초크 목걸이와 목걸이에 걸린 쇠사슬이 내 손에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안대와 귀마개로 인해 시각과 청각이 완전히 차단된 상태였다.

어떤 의미에서 노예보다 못한 취급이었다.

한여름은 그래도 눈과 귀, 그리고 손발은 자유로우니까….

하지만 한여름은 자신보다 못한 취급의 한가을을 보며 안도하는 게 아닌 분노하기 시작했다.

“야. 성수호… 지금 너 뭐 하는 짓이냐?”

“무슨 짓이라니? 아까 녹화기 안 봤어?”

나는 순간 짜증 나는 눈으로 한여름을 쳐다봤다.

내 노려보는 모습에 움찔한 한여름이 고개를 좌우로 휘저으며 대답했다.

“봐, 봤어! 봤다고! 네가 명령하는 대로 제대로 봤어!”

쫄아서 겁먹은 모습은 세계 최고일 듯….

나는 대답을 듣자마자 한여름을 보며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또… 혹시 녹화기를 박살 내거나, 버렸는 줄 알았잖아.”

참고로 어제 찍은 영상은 한가을의 허락을 받는 게 아니었다.

한가을이 유혹하는 중에 몰래 설치해놓고 촬영한 것이었다.

한가을 몰래 열심히 촬영했는데, 보지 않으면 섭섭하지.

내가 희희낙락 웃자, 한여름이 이를 갈며 다시 한가을과 나를 노려봤다.

“그래서… 그 영상이랑 지금 상황이랑 뭔 상관인데?”

“아니, 아까 영상 봤으면 지금 상황 다 파악해야 하는 거 아니냐? 진짜 빡 대가리인가….”

“이런 씨….”

한여름은 욕을 내뱉으려다가 폐 안으로 삼키고는 침착하게 내게 물었다.

“네가 한가을이랑… 한 건… 알겠… 는데…. 한가을은 왜 저 상태이고, 내 방에 온 거냐고…!”

한여름은 아까 영상이 떠올랐는지, 말하는 내내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목에 핏대를 세우며 말하는 한여름의 모습이 만족스러웠던 나는 성심성의껏 대답했다.

“오늘도 빚을 갚고 싶다고 해서 재미있는 플레이를 하기로 했지. 그런데 호텔 체크인하기 귀찮잖아? 그래서 그냥 바로 여기로 온 거야.”

“…알았다.”

한여름은 목과 이마에 새빨간 핏대를 세우면서도 고개를 끄덕인 뒤에 거실 의자에 앉았다.

생각보다 금방 얌전해져서 놀랐다.

대충 이유는 짐작이 갔다.

‘업소에 가기 싫은 건가?’

한여름이 회귀 전에 제일 싫어했던 것이 바로 업소에서 몸을 파는 일이었다.

얼마나 싫어했는지, 내게 무릎을 꿇고 애원했을 정도였다.

목소리에도 간절함이 묻어 있었고….

한여름은 아마 업소에 가지 않아도 자신이 납치될 것이라고 확신할 것이다.

상대는 대도시에서도 한가을과 한여름을 동시에 납치한 레드 소환사 집단이다.

그 정도 실력이면 자신을 납치할 빈틈은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쉽지만, 네 몸값이 비싼 걸 원망해라.’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실실 웃었다.

온몸이 구속된 한가을을 방에 두고 나와서 한여름을 불렀다.

“야, 한여름.”

“!?”

한여름은 내 부름에 움찔하더니, 천천히 일어나서 내게 다가왔다.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다는 듯한 결의에 찬 표정.

나는 그런 한여름을 보며 명령했다.

“야, 나가서 콘돔 좀 사와 봐.”

한여름은 잠시 침묵하고는 쿨하게 대답했다.

“알았어.”

업소에 가긴 정말 싫은 모양이었다.

콘돔 사러 가는 것도 만만치 않게 싫을 텐데, 저렇게 쿨하게 대답하는 것을 보면….

‘뭐, 얌전하게 굴러서 미래를 바꾸려는 노력은 가상하다만….’

나는 속으로 웃으면서도 겉으로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냐? 웬일로 말을 잘 듣네?”

“…어차피 명령으로 시킬 거잖아.”

1회차 포함해서 노예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판단력이 좋아진 모양이었다.

어차피 명령에 불복하는 것도 불가능하니 쿨하게 내 말에 따르며 기회를 찾으려는 거겠지.

거기다 업소에 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 것이고….

분명 한여름의 행동은 노예로서 굉장히 성실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니, 왜 말을 잘 듣는 건데!?”

나는 짜증을 부리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내 짜증을 들은 한여름이 발끈하더니, 소리쳤다.

“뭔 개 소리야!?”

말 잘 들었더니, 오히려 내 호통을 받으니 짜증이 폭발한 모양이었다.

그래, 내가 원하는 건 쿨여름이 아니다.

분노를 터트리는 핫여름이다.

“네가 말을 잘 들으면 안 되지!”

“이런 씨발… 너는 도대체 나한테 뭘 원하는 건데!?”

“여동생 콘돔 사 오라는 건데 당연히 빡쳐서 난리를 피워야 할 거 아냐!?”

“이런 미친 새끼가….”

한여름은 내 의도를 서서히 눈치채고는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어차피 저년이랑 딱히 친하지 않았어. 네 마음대로 써 버려, 나는 콘… 돔 사러 갔다 올게.”

한여름은 그렇게 쿨여름으로 남기 위해 무심한 표정으로 객실을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둘 수는 없지.

나는 나가려는 한여름을 붙잡았다.

“야, 잠깐.”

“아, 왜!? 사러 갔다 온다고!”

“그럼 가는 김에 하나 더 명령하자.”

“???”

나는 저 쿨여름을 계속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를 핫여름으로 바꿀 명령을 내려줬다.

***

한여름을 바라보는 여자 직원은 미소를 머금은 채 한여름에게 물었다.

“어서 오세요. 손님! 찾으시는 거 있으신가요?”

평균 이하의 외모와 과도한 친절.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부류의 여성의 친절은 한여름에게 익숙하다 못해 당연한 것이었다.

평균 이하뿐만 아니라, 연예인의 외모를 지닌 여자들조차 한여름에게 친절했다.

대한민국에 살면서 여자가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다 보니 딱히 기분이 좋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네, 사고 싶은 게 있어서 왔어요.”

한여름은 여자 점원의 친절에 순간 마음이 흔들린 나머지 미소가 머금어졌다.

경멸과 멸시로 뒤덮인 그림에 친절함이라는 물감이 살짝 덧대어진 느낌이었다.

평소라면 눈길 한번 주지 않을 법한 여자에게 호감이 생긴 것이었다

한여름은 불쾌하면서도 따뜻한 감정을 가진 채 입을 열었다.

“콘… 콘돔 사려고 왔어요.”

“아하… 콘돔….”

여자 점원은 실망한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여자가 실망한 이유는 단순했다.

‘하긴… 이런 남자가 여자가 없을 리가 없지.’

콘돔을 사러 왔다는 건 상대가 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었다.

한여름의 목적을 들은 여자 점원은 상실감을 느끼면서도 미소를 최대한 유지했다.

“어떤 콘돔을 원하시나요? 저희 가게에서 파는 건 최상품의 물건들로 갖춰져 있답니다!”

여자 점원은 친절하게 대답하며 속으로 썩은 미소를 지었다.

‘상대가 멍청하네…. 내가 이런 남자랑 잤으면 콘돔 없이 다 받아줬을 텐데….’

여자 점원은 그렇게 한여름의 상대를 욕하고 있을 때였다.

한여름은 잘생긴 외모로 미간에 지렁이를 소환하며 부들부들 떨며 대답했다.

“여… 여동생… 사용….”

“…네?”

여자 점원은 순간 자기 귀를 의심하며 고개를 살짝 옆으로 젖히며 귀를 한여름 쪽으로 향했다.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여… 여….”

한여름은 얼굴을 새빨갛게 달군 뒤, 입술을 찢을 듯이 꽉 깨물며 대답했다.

“제 여동생이… 건방져서… 교육하려고요.”

“어…? 어어…?”

“그래도… 콘돔은 필요하겠다 싶어서… 사러 왔…어요.”

여자 점원은 토끼 눈을 뜨고는 입을 벌린 채 멍하니 한여름을 바라봤다.

위그드라실에 살다 보면 별의별 손님을 맞이해본 직원이었다.

그것도 그녀가 일하는 곳은 성인용품점.

대부분은 정상이지만, 간혹 세상의 밑바닥을 훑고 있는 존재들이 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손님들을 마주했어도 지금만큼 당황한 적은 없었다.

한여름은 멍하니 바라보는 직원을 향해 다시 한번 입술을 씹으며 대답했다.

한여름은 새빨개진 얼굴로 다시 한번 말했다.

“여… 여동생이… 완전히 뻑갈만한… 콘돔 주세요. 빨리….”

그의 모습에 채널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

└씨발 이걸 진짜 하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 하기 싫다고 안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건 역대급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채널의 조롱에도 한여름은 분노하기는커녕 정신을 잡기 바빴다.

오래간만에 받은 친절로 인한 호감.

한여름은 성수호의 의지로 인해 자신의 속에 있는 호감을 깨부수기 시작했다.

여자 점원은 잠시 한여름을 멍하니 보더니, 썩은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여기로 오세요.”

“….”

여자 점원은 한여름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콘돔 매대 앞에서 콘돔에 관해서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아이템을 만지면 자동으로 설명이 보이기 때문에 굳이 설명이 필요 없지만, 여자 점원은 시작한 거 마무리라고 지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를 상대했다.

대신 아까 같은 친절함은 그녀의 목소리에 담겨 있지 않았다.

한여름은 설명을 들으며 속으로 무수히 속였다.

‘씨발 년… 아까는 그렇게 알랑방귀를 뀌더니….’

한여름은 자신의 안에 품어졌던 호감을 주고 뺏은 여자에 대한 분노로 속을 삭이기 시작했다.

“여기 미약 콘돔이 굉장히 효과가 좋지만… 굉장히 비싸고, 자칫 여동ㅅ… 아니, 여자분께 후유증이 남을 수 있어요. 좀 더 수준이 낮은 걸로….”

“괘, 괜찮네요. 어차피 제가… 쓸 거 아니에요.”

“네?”

“그게… 제가 아닌 다른 남자랑 하는 거라….”

여자 점원은 한여름의 말을 한참을 해석하고 나서야 간신히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곳은 성인용품점.

세상의 밑바닥을 경험하는 녀석들이 가면을 벗는 장소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여자 점원은….

“하아… 네.”

세상에서 제일 멋진 가면을 착용했으면서 세상에서 제일 추악한 얼굴을 한 인간을 마주했다고 생각했다.

여자 점원은 혐오스러운 눈으로 한여름을 힐끗 바라보더니, 포인트만 건네받고는 몸을 획 돌려 버렸다.

그리고는 한여름이 들리게 한마디를 남겼다.

“…쓰레기 같은 새끼.”

“크윽!”

한여름은 순간 발끈한 나머지 주먹을 치켜올리려고 했지만, 순간 자신을 죽였던 여관 주인을 떠오르며 몸이 움츠러들었다.

한여름의 모습에 채널은 박장대소를 날리기 시작했다.

└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잘 참았어. 빨리 가서 미약 콘돔에 박힌 한가을 모습 보고 싶지?

└그것 때문에 참은 거였냐? 나는 여자 점원이 무서운 줄 알았지 ㅋㅋㅋㅋㅋㅋㅋㅋ

한여름은 그렇게 조롱받으면서도 전혀 채팅의 눈을 돌릴 수 없었다.

현기증이 그의 몸을 감싸며 그저 한가을과 성수호가 있는 자신의 호텔로 이끌었다.

간신히 호텔에 도착한 한여름은….

“오… 잘했어! 가서 명령대로 실행했어?”

“…어.”

“푸하하하하하! 그걸 진짜 했다고? 푸하하하하!”

성수호의 박장대소를 들으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성수호는 한참 동안 웃어대더니, 한여름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입을 열었다.

“나 그럼 콘돔 사용하고 올 테니까. 여기서 기다려라.”

“잠깐… 밖에서 기다리면….”

“안돼. 너한테 할 말 있으니까 여기서 기다려.”

“!?”

한여름은 성수호의 말을 듣자마자 얼굴의 핏기가 완전히 가신 새하얀 피부로 변했다.

그리고 방 안에서는….

(흐으으응! 히끄으으읏! 뭐, 뭐야! 이상해! 이거 이상해!! 하아아앙! 호오오옥!!)

단번에 미약의 효과를 받은 한가을의 교성이 문을 뚫고 나왔다.

한여름은 그런 교성을 한동안 들으며 성수호를 기다렸다.

그가 방에서 제발 나오지 않길 빌었다.

한가을과 섹스하는 것에 정신이 팔려서 방을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바람은….

(흐오오오옥!!)

한가을의 추잡한 목소리를 끝으로 두 사람의 관계는 끝난 듯 보였다.

그리고 얼마 후에….

끼이익.

“후우… 와 이거 진짜 물건인데?”

성수호가 기분이 좋은 얼굴로 방을 나와서 한여름에게 칭찬했다.

“이야, 그 콘돔 대박이더라. 그런데 자주 사용하면 안 되겠어.”

“그래… 그, 그럼 만족했지?”

한여름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은 성수호는….

“어, 대박이었어. 그래서 말인데….”

한여름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내가 오늘은 특별히 보상을 해줄게.”

한여름은 성수호의 말을 듣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리며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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