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의 여자를 빼앗는 방법-725화 (725/898)

위그드라실 (6)

똑.똑… 똑… 똑.똑.똑….

불규칙한 물방울 소리가 한가을의 귀속으로 파고들어 왔다.

규칙적인 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효과를 지니지만 불규칙한 소리는 사람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든다.

그리고 그건 자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으읏….”

한가을은 불규칙한 소리에 강제로 정신의 퍼즐이 맞춰지며 잠에서 깨어났다.

몇 차례 신음을 내뱉으며 눈을 뜨는 순간이었다.

귓속에 남자의 목소리가 파고들어 왔다.

“아, 이제 일어났네.”

“후아악!”

한가을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비명을 지르며 목소리의 반대편으로 몸을 굴렸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장면은 한창 싸움이 벌어지던 상황이었다.

몸을 구른 건 그저 살기 위한 몸의 본능이었다.

하지만 그 본능의 대가는….

콰당!

“흐악!”

머리에 난 자그마한 혹이었다.

“아으으….”

자기 머리에 난 혹을 확인하는 한가을을 보며 피식 웃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으세요?”

“아….”

한가을은 그제야 다시 초점을 맞춰서 상대방을 확인했다.

초점이 맞춰졌지만, 어두운 시야로 인해서 상대방을 확인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어둠 속에 오래 있었던 덕분인지 어렴풋이 상대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 성수호 씨?”

“저는 알아봐서 다행이네요.”

성수호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는 괜찮으세요?”

“아… 그….”

한가을은 조금 전에 자신의 창피한 행동을 성수호가 전부 봤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얼마나 웃겼을까.

잠에서 깨자마자 갑자기 몸을 날리더니, 머리를 벽에 부딪히는 여자의 모습.

어디 가서 쉽사리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한가을은 자신의 빨개진 얼굴을 어둠 속에 숨긴 채 대답했다.

“괘, 괜찮아요. 별로 세게 부딪힌 것도 아니고….”

“다행이네요. 소리가 크게 나길래 걱정했는데.”

“으으….”

장난기가 담긴 말이었지만, 한편으로 한가을의 긴장을 풀어주는 목소리이기도 했다.

한가을은 주변을 둘러보며 성수호에게 물었다.

“그런데… 여긴 어딘가요?”

“아까 한가을 씨를 만나기 전에 우연히 발견했던 장소예요.”

성수호는 한가을을 찾아 미궁을 돌아보는 중에 이곳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쓸데없이 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을 법한 안전한 장소였다.

“만나기 전에 장소를 물색해 놓은 게 다행이었어요. 설마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지만요.”

“만나기 전….”

한가을이 기억하는 마지막 장면은 성수호와 레드 소환사가 대치하는 장면이었다.

그 뒤에 갑자기 정신을 잃으며 들려온 소리는….

“어!?”

분명 한 남자가 공격받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 남자의 소리는 한가을도 알고 있는 소리였다.

한가을은 얼굴에 홍조를 지우고, 암울한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잠깐… 호, 혹시 다치셨어요?”

“네. 어쩌다 보니 다쳤어요.”

성수호는 어둠 속에서 팔을 살살 휘저으며 입을 열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마비 침에 당한 거 같아요. 눈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작은 침이 날아오는 건 보이지 않아서 맞았어요.”

“자, 잠깐만 보여주세요.”

“아니, 마비 증세니까 알아서 나을….”

“일단 보여주세요!”

한가을은 어둠에 적응된 눈을 토대로 성수호에게 다가가서 그의 팔을 더듬어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가을이 팔을 더듬자, 성수호는 몸을 움찔 거리며 신음을 내뱉을 뿐이었다.

“아야야….”

“죄… 죄송해요. 아프세요?”

“아픈 건 아니에요. 다만 움직일 때마다 저릿할 뿐이죠. 한동안 손은 쓰지 못할 거 같아요.”

“….”

한가을은 상태 이상 전문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그런 쪽으로 문외한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언제나 알려고 하는 건 한겨울이었고, 그녀가 설명해주면 그제야 아는 정도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알아둘걸.’

한가을은 그렇게 후회하며 성수호의 팔을 조심스럽게 놓았다.

“혹시 아까 저 때문에 이렇게 되신 건가요?”

“하하… 설마 갑자기 그렇게 달려드실 줄은 몰랐네요.”

“…죄송해요.”

“신경 쓰지 마세요. 예상 못한 제 책임도 있는 거죠. 그래도 둘 다 구할 수 있어서 다행이네요.”

“둘이요?”

“저기, 한 명 더 있잖아요.”

한가을은 어둠 속으로 성수호의 눈빛을 확인했다.

그리고 성수호의 눈빛이 가리키는 장소를 향해 눈매를 좁혀서 확인했다.

한여름이었다.

그것도 죽은 시신처럼 땅바닥에 얼굴을 박고 있는 한여름.

“살아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하지 않아요.”

애매했다.

가족이기에 살아 있다는 것을 안도하면서도 한편으로 저 애물단지 같은 녀석과의 인연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불쾌함도 피어올랐다.

“팔이 이 모양이 되어서 도망치는 게 생각보다 힘들었어요.”

“….”

성수호의 서글서글한 대답에 한가을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생명은 하나뿐이다.

사람은 안전할 때 절대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뿐인 생명이 죽음의 갈고리에 걸리는 순간, 사람은 갈고리를 벗어나기 위해 본모습을 드러낸다.

성수호는 조금 전에 한가을 때문에 죽을 위기에 놓였음에도 얼굴에 노기 하나 없이 서글서글하게 웃고 있었다.

‘진짜 대단한 남자야. 죽을 위기에 놓이기는 상황이 되면 사람은 본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인데….’

한가을은 한봄과 민하연이 왜 이 남자에게 반했는지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가족이라는 신뢰조차 가볍게 만들 정도로 강직한 남자.

하지만 한편으로 한가을의 머릿속에는 또 이상한 잡생각이 퍼져나가 버렸다.

‘…그런 사람이 왜 남의 집에서 자위하냐고!!!’

단 하나의 오점.

그 오점만 없었더라면 한가을은 진짜 성수호에게 반했을 것이었다.

아니, 오히려 오점이 있어서 더 화가 났다.

그렇게 성수호에 관한 생각으로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은 순간이었다.

└오! 일어났구나? 죽을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채널에서 채팅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와… 얘가 갑자기 왜 던전?

└납치당함.

└납치? 세상 살다 보니 예언자가 납치당하는 것도 구경하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한가을이 기절한 사이에 몇몇 채널의 존재들이 접속해서 관람하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 그들의 상황을 신경 쓸 처지가 아닌 한가을은 일단 성수호와 이곳을 빠져나갈 계획에 관해서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순간이었다.

└앞에 있는 남자는 누구?

└납치된 한가을을 구해준 한가을의 언니의 남자친구?

└설명 웃기네. ㅋㅋㅋㅋㅋㅋ

그 뒤에 채팅이 한동안 조용하더니….

└섹스!!!!!!

└빨리 섹스하라고!!!

└언니의 남자를 탐해라!!!!

채널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이… 이이….”

그리고 그런 채널의 모습에 이성을 잃은 한가을은….

“이런 미친 새끼들이! 또 시작이네!!”

성수호를 앞에 두고 이제껏 보여줬던 예언자의 컨셉을 집어 던지고 욕설을 내뱉어 버렸다.

한가을은 아차 싶은 마음과 함께 눈앞에 있는 성수호의 표정을 확인했다.

“어… 혹시 제가 실수를…?”

“그… 그게 아니라….”

한가을은 진땀을 빼며 변명하기 시작했다.

***

“이런 미친 새끼들이! 또 시작이네!!”

나는 한가을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에 놀라서 토끼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와씨… 깜작이야.’

진심 놀랐다.

갑자기 소리칠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도 못했으니까.

나는 한가을이 소리친 이유를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며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 혹시 제가 실수를…?”

“그, 그게 아니라….”

한가을은 바로 변명하기 시작했다.

“채, 채널에서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해서… 죄, 죄송해요.”

“하하… 괜찮아요. 갑자기 소리치셔서 제가 뭔가 실수를 한 줄 알았어요.”

“으으… 죄송해요. 제가 채널 대화를 거의 하지 않다 보니….”

“사과하실 필요 없어요. 저는 채널에 한 명만 상주하는데도 가끔 골머리를 앓을 정도인데, 많이 상대하다 보면 피곤하시겠죠.”

내 말에 반응한 건 다름 아닌 게꼬수였다.

└게이 같은 꼬추의 수호자: 한 명? 설마 나?

나는 채널 대화로 게꼬수와 대화를 나눴다.

“네.”

└게이 같은 꼬추의 수호자: 아니, 내가 뭔 잘못을 했다고!?

잘못한 건 없었다.

다만 잘못을 만들어야 할 뿐….

“게꼬수 때문에 자위하다가 한가을에게 들켰잖아요. 일단 채널 탓을 해야죠.”

└게이 같은 꼬추의 수호자: 아니, 뭐 이런….

나는 섭섭해하는 게꼬수에게 당근을 하나 던져줬다.

“대신 나중에 한 번 딸 쳐 드릴게요.”

└게이 같은 꼬추의 수호자: 이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내가 당근을 준 건지, 마약을 준 건지….

일단 게꼬수의 기분이 풀린 것을 확인하자, 한가을이 피식 웃으며 내 옆에 앉아서 입을 열었다.

“한 명뿐이세요? 이상하네요. 실력만 보면 굉장히 많을 거 같은데.”

“처음 한 명 들어오고 나서 실적이 좋아서 더 이상 들어오기 힘들다고 하더라구요.”

“아… 저도 들은 적 있어요. 실력이 좋으면 그만큼 채널 입장에 엄청난 포인트가 들어간다고….”

한가을과 나는 조용히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부분 주고받은 이야기는 서로 위그드라실에 와서 있었던 일에 관한 내용이었다.

나는 한가을과 대화를 주고받으며 안심했다.

‘휴우… 이 정도면 한동안 문제없겠지?’

한가을과 내가 숨어 있는 장소.

이곳은 소우타가 [비겁자의 술법]과 더불어서 여러 아이템을 숨겨 놨던 장소였다.

누가 근처를 지나가더라도 아마 들킬 일은 없을 것이다.

사실 들키는 건 크게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상대방의 실력.

‘설마 암기를 쓰는 녀석일 줄은 생각도 못 했네.’

지금 마비침을 맞은 건 고의가 아니었다. 순순히 내 실수였다.

정말 한가을을 구하려다가 얼떨결에 다친 것이었다.

나는 소우타의 조언에 따라서 붉은 초승달 조직원들 전원에게 최면 게이지 100%를 채웠다.

그런 상태에서 한가을을 구하러 간 뒤, 최면을 이용해서 녀석들의 진영을 엉망으로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베르덴에게는 최면이 쉽사리 먹히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녀석의 능력.

실력이 어느 정도 있을 거라고는 추측했지만, 설마 눈에 보이지 않는 암기를 쓸 줄은 예상치 못했었다.

한가을과 나를 동시에 공격한 녀석을 막아내느라 나도 모르게 공격을 허용해 버린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나를 생포하겠다는 생각을 쉽게 버리지 못해서 마비침을 사용한 것이었다.

마비에 당했지만, 호락호락 당할 내가 아니었기에 녀석을 쓰러뜨리고 두 사람을 데리고 이곳으로 피신한 것이었다.

강한나가 나를 질타하듯 한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위험한 상황을 만든 거예요? 그냥 몰래 잡았어도 됐으면서….]

그녀가 내게 잔소리하는 이유를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나라도 강한나가 위험한 일에 뛰어들면 한소리를 했을 테니까.

하지만 사실 이유도 있었다.

‘저도 언제나 안전한 일만 할 수는 없잖아요. 임기응변을 늘리려면 경험도 필요한 법이니까요.’

[흥… 그래도 조심 좀 해요.]

‘하하… 명심할게요.’

내가 그렇게 통신으로 강한나의 마음을 풀어주는 중에 한가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아까 채널에 한 분만 있다고 했죠?”

“네. 좀 독특한 분이죠.”

“그 신은 어떻게 귀찮게 하나요? 실력이 좋아서 구경만 할 거 같은데….”

곤란하네.

게꼬수가 나를 귀찮게 하는 건 단 하나뿐이었다.

자위.

그놈의 딸딸이만 빼면 참 좋은 존재인데 말이지….

내가 침묵하자, 한가을이 갸우뚱하며 다시 물었다.

“아… 혹시 위험한 일을 시키나요?”

“…아뇨. 오히려 위험한 상황이 되면 보기 힘들다고 채널을 끌 정도예요.”

“그럼… 말이 험한가요?”

“말도 얌전한 편이에요.”

한가을은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곤란한 일이 있을 수 있나요?”

“…이상한 걸 계속 부탁하거든요.”

“…? 이상한 거요? 아… 하긴 그 사람들이 대부분….”

한가을은 갑자기 골똘히 생각하는 듯이 눈을 감더니, 나는 힐끗 쳐다보며 게슴츠레한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이상한 게 뭔지 물어봐도 될까요?”

“아뇨. 말씀드리기 굉장히 곤란한 거라….”

“….”

한가을은 내 어물쩍한 대답에 고개를 돌리고는 다시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서 내게 다시 물었다.

“혹시 곤란한 거라는 게… 저의 집에서 했던 거 말씀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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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읽어주셔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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