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의 여자를 빼앗는 방법-721화 (721/898)

위그드라실 (6)

3층 레티티아.

유희 도시라는 별칭을 가진 이곳에는 여러 던전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중에서 제일 특이한 던전은 바로 도시 지하에 있는 미궁이었다.

미궁을 들어가는 방법은 간단하다. 도시 중앙에 있는 출입구로 내려가는 것.

출입은 모두에게 허용한다.

하지만 아무도 도시 지하 미궁으로 향하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했다.

효율이 쓰레기라는 것.

동쪽과 서쪽 던전은 대부분 저녁쯤에 클리어할 수 있는 반면에 지하 미궁은 날짜를 계산한다는 게 의미가 없었다.

들어갔다가 못 돌아온 사람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돌아온 사람이 있긴 했다.

던전 입장료도 내기 힘든 소환사들이 하루 숙박료를 구하기 위해 입구에서 사냥하는 수준?

그것조차 문제가 생기기 일쑤였다.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바로 위상 때문이었다.

지하 미궁은 미친 듯한 넓이에 어울리게 공용 위상 던전이었다.

덕분에 입구에서만 사냥하러 들어갔더니, 이미 터를 잡고 사냥하는 놈들이 있으면 바로 몸을 빼야 하는 구조였다.

아니면 더 깊숙이 들어가거나….

심지어 대부분 얻는 드랍템은 환급용으로도 사용할 수 없는 쓰레기들이 넘쳐나는 곳이었다.

모두가 들어오기 꺼리는 그런 곳.

그런 미궁 깊숙한 곳에….

“이야… 잘도 이런 곳에 은신처를 만들었네?”

붉은 초승달의 아지트가 만들어져 있었다.

내 말을 들은 소우타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여기 만드느라고 개고생 좀 했지.)

“오올….”

소우타는 한창 조직을 만들 때, 최면술로 인부들을 끌고 여기로 데리고 온 뒤에 대규모 공사를 진행했다고 한다.

그냥 적당히 사람이 사는 곳으로 만들어 놓은 게 아니었다.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미궁이지만,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서 아무도 모르게 숨겨진 은신처였다.

그리고 그렇게 열심히 건축물을 만든 인부들은….

“죽였어?”

(왜 죽여? 최면술로 계속 데리고 있으면서 하자 보수 작업 시켰지. 가끔 몬스터가 문제를 일으키더라고.)

“….”

뭐랄까 최면술 쓰는 놈들은 그냥 앞뒤 생각 없이 일을 처리하는 줄 알았는데… 선입견이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그렇게 소우타의 안내를 받아서 붉은 초승달의 은신처에 도착했다.

나 혼자….

민하연과 한봄이 가고 싶다고 한사코 떼를 썼지만, 나뿐만 아니라 소우타도 그녀들을 말렸다.

사람 숫자가 많아지면 오히려 위험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게 소우타의 설득 덕분에 혼자서 붉은 초승달의 아지트에 잠입할 수 있었다.

당연히 맨몸으로 잠입한 건 아니었다.

“이야… 이거 물건인데?”

나는 일부러 숨지도 않고, 붉은 초승달이 돌아다니는 아지트를 돌아다녔다.

그와 동시에 내 귓속에 자그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조심해. 그 아이템도 결국 상급 감지 아이템에는 걸리니까. 뭐, 여기에 그런 걸 설치해 놓을 리는 없겠지만….)

나를 걱정한다는 듯이 들려오는 소우타의 목소리에 조용히 대답해줬다.

“오케이.”

지금 내가 붉은 초승달 아지트를 여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이유는 단순했다.

던전에서 우리를 덮쳤던 레드 소환사가 썼던 아이템, [비겁자의 술법] 덕분이었다.

그럼 내가 왜 이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걸까?

레드 소환사를 죽여도 아이템을 뺏는 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내가 이렇게 여유롭게 아이템을 쓸 수 있는 이유는 단순했다.

-[비겁자의 술법] 355개-

겁나게 많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많은 이유도 소우타 덕분이었다.

(예전에 숨겨 놨었는데, 아무도 찾지 못해서 다행이네.)

소우타의 주요 능력은 최면술이다.

그러다 보니 실질적인 무술이나 마법 실력은 전무했다.

그런 그가 붉은 초승달을 만들고, 휘저을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 아이템 덕분이었다.

대놓고 눈앞에서 최면 게이지를 올리고, 사람을 조종하고, 암살한다.

그 간단한 방식이 소우타를 최고의 암살자로 만들어줬다.

다만, 믿었던 현 수장에게 배신당했지만….

나는 소우타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요긴하게 잘 써주마.”

(그래. 팍팍 요긴하게 잘 써서 그 녀석 좀 내 앞에서 비굴하게 죽여줘라.)

소우타는 그렇게 말하며 실실 웃었다.

간간이 붉은 초승달 조직원이 보이면 소우타는 벽 안에 숨었다.

나는 반대로 태평하게 그들 옆을 지나갔고….

그렇게 간간이 붉은 초승달 조직원들을 대놓고 지나가며 한가을과 한여름을 찾기 위해 돌아다녔다.

일단 한여름은 전혀 걱정되지 않았다.

‘일단 한여름은 죽지 않았어. 그랬으면 회귀했겠지.’

문제는 같은 날에 사라진 한가을.

도심 한복판에서 한여름이 납치당했다.

나는 그 사실을 토대로 한가을도 납치되었으리라 추정했다.

‘…아무 일 없었으면 좋겠는데.’

한가을은 예언자라는 특수 직업과 더불어서 한봄과 한여름의 가족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빼어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만약 정말 붉은 초승달에 잡혔다면 험한 꼴을 당할 가능성이 컸다.

‘진짜 한가을한테 문제가 생기면 봄이를 볼 면목이 없어져. 빨리 찾아야겠는데….’

일단 근처에 도달하면 한가을의 기질창을 통해서 그녀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적당히 주변을 둘러보며 빠르게 한가을의 위치를 찾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보이는 자그마한 기질창.

‘찾았다!’

=====

한가을

[예지 LV 15], [미래예지 LV 14], [의심병], [비관적인], [강한 결단력]….

=====

꽤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증명하듯 한가을의 기질창이 작게 드러나 있었다.

나는 빠르게 발걸음을 옮겨서 한가을이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녀가 갇혀 있는 장소는….

(아, 이런 곳도 있었지.)

습기가 가득한 동굴을 이용해서 만든 감옥이었다.

그리고 때마침 감옥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차피 우리를 죽일 거야.”

“상관없어.”

목소리는 이끼가 가득 낀 벽을 튕겨서 내 귓속에 흘러들어왔다.

벽에 튕긴 목소리는 당사자들의 원래 목소리와 살짝 어긋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어긋난 목소리를 들었어도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수락하지 않으면 지금 당장 죽게 생겼는데, 그런 걸 따질 상황이야?”

“하아….”

한여름과 한가을.

두 사람의 목소리라는 것을….

나는 [비겁자의 술법]을 쓴 채 철창 사이로 두 사람의 모습을 확인했다.

아니, 사실 한여름은 관심 없었다.

사지가 잘려도 목숨만 달려 있다면 문제가 없으니까.

중요한 건 한가을이었다.

그리고 나는 철창 사이로 한가을을 확인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여름과 뭔가 틀어졌는지 티격태격하는 중이었다.

‘다행이다. 별일은 없었나 보네.’

한가을이 사라진 지 아직 하루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만약 그녀가 남자들에게 험한 꼴을 당했다면 멀쩡하게 한여름과 티격태격하지 못했을 것이다.

일단 한가을의 안전은 확보되었다.

‘자, 그럼 어떻게 빠져나갈까나….’

그렇게 고민하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나는 도저히 못 하겠어. 언니가 좋아하는 남자야. 미끼가 되라니….”

한가을이 말한 남자는 나를 지칭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미끼라는 표현을 쓴 것을 보면 레드 소환사가 나를 잡기 위해 두 사람에게 협박이나 제안을 걸었을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한여름의 대사로 확실해졌다.

“너는 한봄이 그런 새끼랑 엮이는 게 좋아!?”

“그건 네가 상관할 바가….”

“그럼 하연이는!? 하연이가 바람을 피운 건 좋고!?”

“그건 네 업보 아냐?”

“닥쳐! 하여튼 나는 그 새끼를 죽여야겠어! 내가 살기 위해서라도!!”

나는 한여름의 목소리에 살짝 피가 머리로 쏠렸다.

‘저저저…. 내가 얼마나 챙겨줬는데.’

호텔에서 지내게 해주고(한여름 VIP 이용권), 스트레스 풀도록 도박도 시켜주고(포인트 벌이), 거기다 최고의 복지까지 챙겨주는(성매매) 나 같은 주인이 어디 있다고!

나는 배은망덕한 한여름의 모습에 혀를 차며 귀를 기울였다.

일단 대화 내용을 들어보니, 나를 잡는 데에 도움이 되어달라는 것 외에는 따로 들은 게 없어 보였다.

오늘 저녁까지 결정해야 정확한 계획을 알려주는 듯 보였다.

‘일단 한가을이 안전하면 됐지.’

화는 났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나는 두 사람을 뒤로하고 다시 붉은 초승달 은신처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두 사람을 놓고 가자 소우타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내게 조용히 물었다.

(야, 저 둘 때문에 온 거 아냐? 어디 가려고?)

“아… 확인해 보려고.”

나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를 잡으려고 무슨 계획을 세우는지….”

어떤 원대한 계획을 세워놨을지 참으로 기대가 됐다.

내 대답을 들은 소우타가 피식 웃으며 내게 말했다.

(그럼 간부 회의실에 가봐. 이거 주도한 녀석이라면 분명 간부쯤은 되겠지.)

“간부실?”

하긴 중요한 이야기라면 그런 회의실에서 나누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소우타가 알려준 간부 회의실로 향했다.

그런데 간부 회의실로 향하는 도중에 재미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쟤가 왜 여기 있냐?’

익숙한 기질창을 지닌 여자가 점점 가까워졌다.

=====

양지현

[무술], [은신 LV 24], [은신 감지 LV 21]…

=====

***

간부 회의실에는 단 두 명만 있었다.

한 남자는 도미 드레크와 케닐에게 의뢰를 제안했던 레드 소환사, 베르덴이었다.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오랜만이네?”

“….”

머리 위에 레드 소환사 표식이 없는 양지현이었다.

양지현의 침묵에 베르덴은 거만하게 다리를 꼬며 혀를 찼다.

“손만 깨끗한 줄 알았더니, 안 본 사이에 요조숙녀가 다 되셨구만?”

“…너랑 말 섞고 싶지 않을 뿐이야.”

“흥… 계획에 차질을 빚어놓고 당당하기까지?”

“….”

양지현은 차마 베르덴의 말에 대꾸할 수 없었다.

베르덴의 말대로 양지현이 맡은 1층에서 계획했던 일들이 전부 어그러져 버렸다.

일단 제일 중요한 한봄을 포획한다는 계획에 실패했다.

다만 그것 하나뿐이었다면 적당히 넘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갑자기 나타난 엘프였다.

5층에서 내려온 엘프.

그녀가 보리스 일당을 단번에 격퇴해버린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조직원을 몇 명 잃었을 뿐, 대부분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여관 패거리는 아직 그대로라는 점이었다.

“계획이 차질이 생긴 거지. 실패한 건 아니야.”

“오호… 엘프가 떠나지 않으면?”

“….”

그 엘프가 언제 떠날지는 양지현도 알 도리가 없었다.

양지현이 침묵하자, 베르덴은 툴툴거리며 입을 열었다.

“참 좋겠어? 손이 깨끗하니까 입도 깨끗하게 굴려는 건가?”

“…너나 잘해라.”

“나? 내가 뭘 어쨌는데?”

베르덴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능청스럽게 대답하자, 양지현이 비웃으며 한마디를 흘렸다.

“오늘 하루 만에 조직원 열다섯 명을 잃은 녀석치고는 너무 기세등등해서 말이야.”

“그, 그걸 어떻게….”

붉은 초승달이 하나의 조직이라고 해도 파벌은 존재한다.

양지현을 따르는 무리, 베르덴을 따르는 무리, 그 외에 다른 간부들을 따르는 무리.

그들은 분명 동료이지만, 한편으로 차기 수장을 노리는 라이벌이기도 했다.

현 수장의 뒤통수를 치겠다는 생각을 가진 건 아니지만, 만약에라도 수장이 죽게 되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건 그들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었다.

즉, 상대방의 약점과 실패를 알아내기 위해 혈안이 된 만큼 자신의 약점과 실패를 감추는 것에 온 힘을 쏟는다.

그래서 그들은 수장에게 직접 욕을 먹어라도 절대 다른 간부의 귀에 자신들의 계획이 들어가지 않게 조심하는 편이다.

하지만 베르덴의 실패는 하루 만에 양지현의 귀에 들어간 것이었다.

양지현은 다리를 모으고 차분하게 앉은 채 베르덴을 보며 비릿하게 미소를 지어줬다.

“정 그 자리가 힘에 부치면 내가 좀 도와줄 수도 있는데? 도와줄까?”

“…꺼져.”

베르덴은 꼬았던 다리를 팍 풀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모습은 마치 궁지에 몰린 쥐가 꼬리를 치켜세우며 자신의 두려움을 감추려는 모습과 비슷했다.

“너 같이 깨끗한 척하는 년에게 도움받고 싶은 생각 따위는 없으니까.”

“….”

베르덴은 그 말을 남기고 간부 회의실을 나가버렸다.

양지현은 베르덴이 사라지자, 한숨을 그득하니 내쉬었다.

간부끼리 사이가 좋지 않은 건 일상이었다.

하지만 양지현은 그중에서 특출나게 미움을 받고 있었다.

‘…나도 좋아서 이렇게 된 게 아니라고.’

모두 레드 소환사인 가운데에 유일하게 오점이 없는 그녀.

그리고 수장의 총애.

그런 점들이 다른 간부들의 심기를 언제나 건드리는 것이었다.

차라리 레드 소환사가 되어서 그런 오점을 벗어낼까 고민했지만, 조직에 해가 된다는 사실도 알았다.

‘…모든 게 완벽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양지현은 자신의 상황을 다시금 받아들이며 눈을 감았다.

그 순간….

끼익. 철컥.

“…?”

간부실 안으로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들었을 때만 하더라도 조금 전에 나갔던 베르덴인가 싶었지만….

‘…아냐. 느낌이 달라.’

그녀의 오감이 지금 들어온 자가 베르덴이 아니라고 그녀에게 신호를 보내왔다.

간부 회의실은 그녀의 직속 부하인 보리스도 출입할 수 없는 곳.

거기다 현재 붉은 초승달 아지트에 있는 간부는 양지현과 베르덴뿐….

양지현은 습관적으로 인벤토리에서 무기를 꺼낼 준비를 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읏!?’

하지만 인벤토리를 열려는 순간 그녀의 몸이 경직되면서 어떠한 행동도 할 수 없었다.

‘이… 이건….’

양지현은 이 감각의 정체를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눈빛만으로 자신을 항거불능의 상태로 만들 수 있는 남자….

“오랜만이네?”

“흐읏!”

자신의 처음을 뺏어간 남자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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