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그드라실 (6)
“으으으….”
한가을은 신음과 함께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시야에 들어온 장소는….
‘하아… 결국 잡혔네.’
확정 예지에서 봤던 동굴이었다.
메케한 곰팡내가 풀풀 풍기며 사람의 마음을 좀먹을 것 같은 분위기의 감옥.
철창은 습기가 가득한 동굴과 어울리게 주황색 녹과 진한 녹색의 이끼가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었다.
그리고 한가을의 상태는….
‘밧줄….’
밧줄에 묶여서 감옥 안을 돌아다니는 것도 불가능한 상태였었다.
한가을은 두려움에 몸을 오소소 떨면서도 한탄의 한숨이 절도 새어 나왔다.
‘남의 미래를 봐주면 뭐 해. 내 앞날도 챙기지 못하면서….’
예전에는 아침마다 자신의 예지를 보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했던 한가을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행동이 오히려 하루를 엉망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작은 문제가 예지로 보이는 순간 안전지대 밖으로 나돌지 않던 한가을.
그녀의 모습에 쌍둥이 동생 한겨울은 언제나 그녀를 다그쳤다.
(오늘도 안 나간다고!?)
(어. 오늘 다칠 거라는 예지가 떠서.)
(그까짓 거 좀 다치면 어때!? 멍청하게 굴지 말고 나와!)
(아! 팔 아파!)
(오늘부터 예지 보면 가만 안 둘 줄 알아라!)
그렇게 한겨울의 몰아세움 덕분에 결국 자신의 예지를 보지 않게 된 것이었다.
‘사실 예지가 틀리는 경우가 더 많기도 했고….’
사실 예지가 틀리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발생했다.
그날 예지에 특별한 일이 없을 것이라고 떠도, 막상 큰 사건이 일어난 경우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그건 결국 한가을의 문제였다.
‘…틈틈이 레벨이나 올려둘 걸 그랬어.’
레벨이 정체되다 보니 레벨을 뛰어넘는 상황을 예견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오늘 있었던 확정 예지도 레벨이 부족한 탓에 뒤늦게 감지한 것이었다.
그렇게 레벨을 올리지 못한 것에 대해서 후회하는 한가을의 머릿속에 한 남자가 떠올랐다.
‘성수호….’
한가을은 성수호와 친했다면 자신이 이런 상황에 몰리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후회해도 늦은 상황이었다.
이미 납치당했다.
두려움이 온몸에 잠식당해서 후회해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한겨울과 지내면서 수없이 깨달았었다.
한겨울은 이름과 다르게 평소에는 다혈질이었지만, 위기의 순간에는 이름처럼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하는 아이였다.
한가을은 한겨울이 했던 것처럼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해보기 시작했다.
‘일단… 상황부터 집어보자.’
레드 소환사들에게 납치당했다.
그것도 안전하다고 여겨졌던 레티티아 도시 한복판에서.
무엇보다 그들은 콕 집어서 한가을을 노리고 있었다.
결과는 금세 도출할 수 있었다.
‘케닐…. 아니, 도미 드레크도 한통속이겠네.’
한가을은 두 사람이 자신을 납치한 범인은 아니지만, 범인과 연관이 있다고 확신했다.
대충 원흉을 알아냈다.
이제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일이었다.
‘일단 밧줄은 못 풀어… 철창밖에 사람이 없나?’
한가을은 낑낑거리며 철창 쪽으로 다가가서 인기척을 확인하려는 순간이었다.
저벅, 저벅, 저벅.
“!?”
재수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때마침 그녀가 있는 감옥으로 몇몇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한가을은 기절한 척을 하려고 했지만….
‘아냐. 만약 나를 깨우러 오는 거라면 차라리 대화가 통하는 상태가 훨씬 나아.’
예전의 한가을이었다면 현재 상황이 무서워서 즉시 눈을 감았을 것이다.
하지만 위그드라실에서 한겨울과 지내면서 자신의 소심함보다는 한겨울의 대담함이 훨씬 낫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가을은 한겨울이 했을 법한 행동을 취하는 게 좋다고 판단하고는 그들을 기다렸다.
그렇게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고….
저벅……….
철창 앞에 대여섯 명의 신원 불명의 존재들이 나타났다.
전부 머리 위에 붉은색 보석이 둥둥 떠 있었다.
단, 한 사람만 빼고….
“한여름?”
한여름이 레드 소환사 한 명의 어깨에 축 늘어진 채 걸쳐져 있었다.
레드 소환사가 철창문을 열고는 입을 열었다.
“녀석을 안에 넣어.”
“네!”
대답과 동시에 한여름을….
콰당!
바닥에 던지듯 놓았다.
그렇게 바닥에 얼굴을 처박은 한여름이 비명과 함께 기상했다.
“씨발!!! 아파!!”
“….”
민하연과 한봄의 말에 의하면 성수호의 파티는 무수한 위기를 거쳐왔다고 말했다.
그런데 한여름은 그런 무수한 위기를 거쳐왔으면서도 이곳에 오기 전과 완전히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쟨 평생 안 변하겠네.’
기대한 적은 없었다.
대게 기대감이 없으면 실망이 없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한여름의 모습은 기대감이 1도 없었는데, 실망감은 계속 무한대로 늘어나게 하는 신기한 존재였다.
그렇게 한여름이 깨어나고 나서 주변을 둘러보더니, 한가을을 보며 중얼거렸다.
“뭐야? 네가 왜 여기 있어?”
“…몰라.”
한가을은 대답과 동시에 레드 소환사들의 모습을 바라봤다.
한여름의 궁금증을 해결해달라는 듯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중의 리더로 보이던 녀석이 나서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마침 일어나 있었군.”
“…너희는 누구야?”
“그걸 알면 당장 죽어야 하는데. 그래도 알고 싶어?”
“….”
상대는 전부 레드 소환사.
그의 말은 그냥 장난스럽게 하는 협박이 아닌, 진심이었다.
“그럼 우리를 여기에 데리고 온 이유가 뭔데?”
“…한 가지 제안을 하지.”
“제안?”
한가을의 되물음에 한여름도 반응했다.
“무슨 제안인데?”
“…한 소환사를 잡고 싶은데, 너희를 이용하고 싶다.”
“….”
한가을은 레드 소환사의 말을 듣자마자 몇몇 사람이 떠올랐다.
민하연, 한봄, 그리고….
“설마… 성수호?”
한여름의 목소리에 레드 소환사들의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마치 동굴 안에 있는 습기들이 전부 얼어버릴 것처럼 강한 한기를 내뿜고 있었다.
한동안 침묵하던 레드 소환사가 입을 열었다.
“그래. 그 녀석을 잡는데, 협조하면 안전하게 풀어주지.”
“만약에 거절하면?”
한여름의 대담한 모습에 한가을은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아예 죽여달라고 빌지 그러냐? 진짜 생각 없는 건 여전하네.’
그리고 한가을의 생각과 똑같다는 듯이 레드 소환사가 비웃었다.
“뭐… 이곳에서 마지막 삶을 장식하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
한여름은 그런 레드 소환사의 협박성이 담긴 말에도 불구하고….
‘…웃어?’
실실 웃기 시작했다.
“좋아. 해주지.”
선심 쓰듯이 대답하는 한여름의 모습에, 한가을이 한심하다는 듯이 그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제정신이야!?’
한여름이 성수호를 싫어한다는 사실은 두 사람의 모습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동료를 잡기 위해 미끼가 되어주겠다는 말에 즉답한다는 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레드 소환사는 한여름의 말에 만족하며 한가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너는?”
“….”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살고 싶다.
심지어 성수호는 자신과 큰 친분이 있는 남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성수호는….
“…거절하겠어.”
한봄이 사랑하는 남자였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가족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었다.
레드 소환사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나 죽는 걸까?’
눈을 감고 운명을 받아들이려는 순간이었다.
“잠깐!”
“?”
한여름이 옆에서 소리치며 주목받은 뒤, 입을 열었다.
“어차피 지금 당장 뭔가 할 수는 없잖아. 내가 얘를 설득하겠어.”
레드 소환사는 한여름의 태도에 마음에 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리고는 한마디 덧붙였다.
“적극적인 건 마음에 드는군. 제안하는 김에 하나 더 해주지.”
“???”
한여름이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우자, 레드 소환사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 성수호라는 녀석과 거래 때문에 제약이 있는 듯하던데…. 말만 잘 들으면 [계약 파기서]라는 아이템을 주지.”
“정말이냐!?”
“…시끄럽군.”
레드 소환사가 짜증 난 목소리로 다른 조직원들을 이끌고는 한마디를 남겼다.
“기한은 하루 주겠다. 서로 잘 이야기해보도록.”
그렇게 말만 남기고, 두 사람의 포박을 풀어준 뒤에 떠나갔다.
감옥 안에는 한가을과 한여름, 단둘만 남았다.
한가을은 레드 소환사가 떠나간 것을 확인한 뒤에 한여름을 질타하기 시작했다.
“너 미쳤어!? 저 녀석들 말을 듣는다고 진짜 살려줄 거 같아!?”
“그럼 어떻게 하려고? 그냥 죽자고?”
“…그래도 나는 동의 못해.”
한여름 말대로 녀석들의 제안을 수락하지 않으면 당장 죽을 것이다.
하지만 무슨 일을 시킬지 모르는 녀석의 제안을 수락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도 성수호를 위험에 처하게 만드는….
한여름은 그런 한가을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너는 지켜보기만 하던가. 내가 다 처리할 테니까.”
“….”
한가을은 더 이상 억지를 부릴 수는 없었다.
한여름은 실실 웃으며 한가을의 모습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혼자 실실 웃었다.
..
..
한여름의 채널은 뒤집혔다.
└드디어 끝이 보이는 건가!?
└한여름과 성수호… 과연 누가 죽을까?
└자, 제6회 한여름과 성수호의 대결. 판돈 거세요~
다들 지금까지와 다른 태도로 채널이 캠프파이어처럼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전까지 한여름의 좌절하는 모습에 불타올랐다면 오늘은 한여름의 기발한 행동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의아해하는 녀석이 하나 있었다.
└저 제안을 어떻게 수락한 거야? 이 녀석, 성수호 노예라서 성수호한테 해를 입히지 못하게 제약 걸리지 않았나?
원래의 한여름이라면 성수호에게 해를 끼치는 계약을 수락할 수 없었다.
원래라면 말이다….
└아냐. 성수호한테 해를 끼치지 않는 것보다 더 중요한 제약이 있어서 가능하지.
└엥?
한여름은 성수호에게 노예가 되는 것과 동시에 세 가지 제약을 받았다.
첫 번째, 민하연과 한봄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할 것.
그리고 두 번째….
└이 녀석, 민하연과 한봄 다음으로 자신의 목숨을 최우선으로 두라는 명령이 있어서 수락할 수 있었을걸?
자신의 목숨을 우선시할 것.
성수호는 한여름이 자살할 것을 우려서 이런 명령을 두 번째로 놔둔 것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한여름은 레드 소환사에게 죽지 않기 위해서 거래를 받아들일 수 있던 것이었다.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된 채널의 존재들이 한여름을 칭찬하기 시작했다.
└캬… 그건 대단하네.
└와… 우리 여름이가 머리를 쓰는구나?
└머리는 무슨 ㅋㅋㅋㅋㅋ 그냥 운이 좋은 거지.
간혹 한여름의 기분을 잡치는 존재들이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마음대로 지껄여라. 이번에 일이 잘 풀리면 진짜, 채널을 닫아줄 테니까.’
한여름은 그렇게 생각하며 아까 있었던 일을 아쉬워했다.
‘그냥 수락하지 않고, 죽었으면 좋겠지만….’
채널에서 나온 말처럼 한여름은 레드 소환사의 제안을 수락하고 싶어서 수락한 것이 아니었다.
제약 때문에 강제로 입이 벌려져서 수락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일 보 전진한 셈이었다.
그리고 한여름은 그와 동시에 한가지 희망찬 미래를 꿈꿀 수 있었다.
‘만약 성수호를 죽이고, 계약 파기서 아이템을 정말 구할 수 있다면….’
그 상태로 4층만 올라갈 수 있다면 성수호라는 존재를 완전히 지울 수 있었다.
이건….
‘기회야!!’
한여름은 그렇게 속으로 희열을 느끼며 레드 소환사들이 다시 오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
동굴 안에 얕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바로 준비할까요?”
“아니, 예언자 년이 수락하면 진행해. 어차피 시간은 넉넉해.”
“만약 기다리다가 녀석들이 먼저 찾아오면….”
남자의 불안한 목소리에 선두에 있던 레드 소환사가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우리 아지트가 애들 놀이터처럼 들락날락할 수 있는 곳처럼 보여?”
“아, 아닙니다. 실언이었습니다.”
“…녀석들 소식은 결국 없는 거지?”
“…네.”
성수호 파티를 생포하라고 보낸 조직원들.
그들에게서 어떠한 연락도 받지 못했다.
그리고 성수호 파티는 별 탈 없이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를 즐겼다는 사실을 보고 받았다.
참고로 한여름을 잡기 전에 들은 보고였다.
동료들은 무소식에, 타깃들은 희희낙락하며 던전을 빠져나왔다.
결론은 하나였다.
“…보통 녀석이 아닌 거 같으니까 내가 따로 명령을 내리기 전에 섣불리 다가가지 마. 알았나?”
“네,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나는 간부 회의실에 있을 테니까. 급한 용무가 생기면 부르도록.”
“네!”
그의 대답과 함께 조직원들이 전부 자리를 떠나갔다.
그리고 그 장소에 홀로 남은 그는….
“흥… 실력이 좋아도 일개 소환사야. 이제 막 3층에 온 놈이 여기를 뭔 수로 찾아내겠어. 다음에는… 꼭 죽여주마.”
그 말을 남기고는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략 5분 정도 지난 뒤에, 어둠 속에서 그림자 하나가 빼꼼 튀어나오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흐음~ 이런 곳에 아지트를 만들어 놨네?”
(만들 때, 개고생 좀 했지.)
“누가 들으면 네가 직접 벽돌 날라서 만들 줄 알겠다.”
(흥… 이제 어디로 갈 거야?)
그림자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며 한마디를 남겼다.
“일단 한여름이랑 한가을부터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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