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그드라실 (6)
한가을은 가게 문을 닫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첫날부터 팍 줄었네.”
손님이 줄어들 것이라는 건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예언가이지만, 예언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
케닐의 눈 밖에 났다면 도미 드레스도 분명 같이 움직였을 것이 분명했다.
그 둘은 이 도시에 적지 않은 세력을 구축한 소환사들이다.
비록 도시를 움직일 정도는 아니지만, 최소한….
“나 같은 소환사 한 명을 곤란하게 만드는 건 일도 아니겠지.”
예언가에게 예언을 듣는다고 무조건 그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다.
그리고 듣지 않는다고 해서 곤란한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상점을 이용하지 못하거나, 숙소를 이용하지 못하거나, 더 나아가서 던전을 이용하지 못하는 것처럼 삶에 큰 지장을 주지도 않는다.
심지어 괜히 안 좋은 미래를 들으면 그날 하루 기분이 잡치는 게 바로 한가을의 예지였다.
그럼에도 이 위그드라실이라는 대자연이 숨겨 놓은 죽음의 그림자에 휩쓸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덕분에 한가을의 가게는 나름대로 장사가 잘되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 나름 잘나가던 장사도 오늘부터 귀찮음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었다.
하지만 한가을은 한숨을 쉴지언정 큰 걱정을 얼굴에 담지는 않았다.
“…월세 낼 정도는 되겠지.”
비록 사치를 즐기는 행위를 대폭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렸지만….
한가을은 가게 문을 닫고, 도시를 산책하기 시작했다.
평일 낮.
3층 유희 도시, 레티티아.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이곳도 한가을이 살던 대한민국과 다를 바가 없는 곳이었다.
월요병을 안고 던전으로 향하는 소환사들… 자기 능력을 과대평가하며 콜로세움에 도전하는 소환사들… 자신의 모든 것을 카지노에 거는 소환사들까지….
삶을 유지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
한가을은 조용한 도시를 돌아다니며 쓸쓸하게 중얼거렸다.
“…나는 이렇게 있어도 되는 걸까?”
도미 드레크와 케닐 때문에 손님이 줄었지만, 먹고 사는 건 지장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지금뿐이었다.
만약… 만약 정말 성수호와 한봄 팀이 패배해서 도미 드레크와 케닐이 다시 지배자가 된다면?
안정적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의 보금자리가 어느 순간 뱀의 똬리로 변할지도 모른다.
자신의 보금자리가 언젠가 자신을 집어 삼키는 뱀이 될 지도 모르는 상황….
“하아… 한가을… 정신 차려. 과대망상이야.”
한가을은 정신을 차리고 다시 도시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래도 계획은 세워놔야겠지. 뭔가… 뭔가 해야 하긴 하겠는데….”
그렇게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는 순간이었다.
스스스슥!!
“응?”
눈앞에 노이즈가 발생한 것처럼 한가을의 시점이 흐릿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한가을은 이 현상을 알고 있었다.
‘확정 예지? 갑자기?’
자신이 원하지 않아도 확정적인 미래가 뜨면 그것을 한가을에게 보여주는 능력이었다.
제일 마지막으로 본 확정 예지는 성수호 파티는 만나는 장면이었다.
‘신기했지… 그때는 한여름이랑 성수호… 두 사람은 분명 예지에 없었는데.’
한가을은 확정 예지에 대한 불신을 살짝 품으며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집중하자 그녀의 눈에 음습한 장소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철창? 동굴?’
한가을은 둘러보는 것을 그만두고 바로 자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리고 보이는 장면은….
‘무… 묶여 있어?’
손발이 묶인 채….
‘여기 감옥 같은데!? 잠깐! 도시 감옥 같은 게 아니야! 뭔가 던전 감옥 같은…!’
한가을의 미래 예지는….
스스스슥!
“….”
예지는 그렇게 허무하게 끝을 맞이했다.
한가을의 몸은 얼음장에 갇힌 것처럼 서서히 떨리기 시작했다.
확정 예지.
100%에 가까운 확률로 사건이 일어날 때, 강제로 그녀에게 보여주는 스킬이었다.
그런 확정 예시로 본 한가을의 모습은 누가 봐도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빠, 빨리….”
한가을은 떨리는 목소리로 고개를 돌려서 안전한 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 비치는 건 텅텅 빈 마을뿐이었다.
분명 안전해 보이는 낮임에도 주변에는 경비원이나 사람이 전혀 돌아다니지 않았다.
한가을은 점점 불안한 마음이 피어나는 것과 동시에 제일 안전한 장소를 떠올렸다.
“지, 집으로…!”
안전지대가 펼쳐져 있는 자기 집을 떠올렸다.
그곳에 들어가기만 한다면 누구도 자신을 건드릴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발걸음을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어?”
분명 조금 전에 온 길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한가을이 돌아가려는 순간 그 길목에는 망토를 두른 정체불명의 괴한 두 명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 괴한들은….
“당신이 그 유명한 점쟁이인가?”
“!?”
머리 위에 붉은색 보석을 달고 있었다.
***
카드가 드러나는 것과 동시에 딜러가 흔들리는 동공과 함께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포카드… 한여름 고객님의 승리입니다.”
딜러의 말과 동시에 고객 중 한 명이 벌떡 일어나서 소리쳤다.
“이런 씨발! 너희들 짰지!?”
딜러와 한여름을 번갈아 보며 고함을 지르는 고객.
그의 이름은 콜슨.
오늘 한여름과 며칠째 같이 도박하던 남자였다.
그는 운도 좋고, 실력도 괜찮아서 이 도시에서 부유한 층의 속하는 남자였다.
하지만 그 부유한 층에 속하는 것도 오늘로 종지부를 찍었다.
한여름이 나타난 덕분에….
“난동을 피우시면 곤란하십니다.”
“닥쳐!! 한번을 못 이기는 게 말이 돼!?”
말이 된다.
상대가 한여름이라면….
한여름은 그런 남자의 칭찬 같지 않은 칭찬을 듣고 있음에도 전혀 미소를 짓지 않았다.
그저….
“….”
허탈하게 자기 손목을 볼 뿐이었다.
2,000만 포인트.
1시간간 만에 벌어들인 포인트였다.
하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
성취감이 생기기는커녕 오히려 좌절감이 한여름을 뒤덮을 뿐이었다.
콜슨은 그런 한여름의 모습이 오히려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며 분노하기 시작했다.
“내 포인트 내놔!!”
“이 이상의 난동은 허가할 수 없습니다.”
딜러의 말과 동시에 카지노를 지키고 있던 경비원들이 콜슨의 양팔을 잡고 밖으로 끌고 나가기 시작했다.
“놔! 놓으라고!! 내 포인트 내놔 이 새끼들아!!!”
그의 비명은 모습이 사라지고 나서도 계속 한여름 귀에 들어왔다.
원래라면 저런 절규를 들으며 행복을 느꼈을 한여름이었지만….
“하아….”
한여름의 속에는 그저 답답함이 심장을 꽉 채울 뿐이었다.
한여름은 그렇게 성수호의 명령을 착실히 수행한 뒤, 호텔에 돌아와서 얌전히 앉아서 창밖을 바라봤다.
그런 그의 모습에 채널의 존재들이 서서히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노예는 내 시절에도 없었는데….
└크읍… 왜 내가 살았을 때는 저런 애가 없었을까?
└진짜 최고의 노예다. 여친, 여동생, 포인트… 모두 다 갖다 바치다니.
한여름은 채팅을 보면서 좌절감을 다시 분노로 전환 시키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그냥 닫아놓고 무시하면 그만인 채널.
그렇게 짜증이 나고, 화가 나는데도 한여름이 채널을 닫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그건 바로….
└윤회애애애애애….
└그만 좀 해 ㅋㅋㅋㅋ
좌절감으로 인해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 계속 열어 놓는 것이었다.
‘맘대로 지껄여…. 아니, 차라리 계속 지껄여줘라. 나 좀 빡치게….’
좌절과 절망보다는 짜증과 분노가 낫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한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자, 오늘도 시작해 봅시다.
└제5회, 한여름 죽이기 대회를 개최하겠습니다.
└다들 한여름이 자살할 수 있는 비효율적이고, 최악의 방법을 제시해주세요!
한여름을 죽이기 위해서 혈안이 된 채널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여름에게 지금 당장 제일 중요한 1순위는 죽음이었다.
지독하리만치 절망적인 노예 족쇄를 푸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자살할 수 있는 기막힌 방법이 나오길 간절히 바라며 채널을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채널에서는 한여름이 죽을 수 있는 방법을 저마다 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이 내놓는 답들은 하나 같이….
└숨을 참는다!
└먹지 않는다!
└오줌을 싸지 않는다!
“하아… 씨발….”
한여름의 이마를 새빨갛게 만들 정도로 짜증 나는 것들 뿐이었다.
애초에 정상적인 것을 바란 건 아니었다.
다만 하나라도 좋으니 뭔가 걸리기를 바랄 뿐….
그렇게 오늘 하루도 쓸모없는 채널의 대화를 보는 중에 한여름의 정신을 번뜩이는 채팅이 눈에 들어왔다.
└야, 그러고 보니까 계약 파기서라는 아이템도 있지 않았나?
-[계약 파기서]-
이름만 들어도 무슨 효과를 지닌 아이템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다만 한여름은 기대와 별개로 의심의 눈초리로 채팅을 볼 뿐이었다.
‘…괜히 나 놀리려고 말 꺼낸 거 아냐?’
채널의 존재들은 언제나 소환사 놀리기에 진심인 녀석들이었다.
아니, 그게 주목적이었다.
자신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해줄 언어 샌드백이 필요한 녀석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간혹 놀리기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낚시하는 녀석들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채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엥!? 그런 아이템이 있나?
└어, 있어. 나도 예전에 들은 적 있어.
└나는 직접 본 적도 있어.
└오오오오오!!!!
한여름에게 희망을 불어넣는 대화를 줄지어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대화는 한여름의 기분을 고양하는 것과 동시에 다시 절망감을 불어넣었다.
└그런데 그거… 구하기 빡세지 않아?
└하긴… 계약서를 강제로 파기할 정도면 길거리에서 파는 아이템은 아니겠지.
일단 대충 이야기를 들어보면 3층에서 구할 수 있는 수준의 아이템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못해도 4층… 더 나아가서 5층쯤은 돼야지 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수준의 희귀한 아이템이라는 이야기였다.
유용한 정보는 맞지만, 현재 도움이 되는 정보는 아니라는 소리였다.
‘…씨발.’
희망이라는 꽃잎들이 수북이 쌓여 있던 장소는 다시 바람이 불어오며 꽃잎들을 걷어냈다.
그렇게 꽃잎이 날아간 뒤에 남은 건….
└똥을 참는다!!
└미친놈 ㅋㅋㅋㅋㅋㅋ
절망이라는 더러운 퇴비뿐이었다.
그렇게 채널을 보며 또 생산성 없이 하루를 흘려보냈다.
그렇게 해가 저물어갔고, 객실에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 똑, 똑.
“!?”
한여름은 경기를 일으키듯 화들짝 놀라며 문을 바라봤다.
그리고 한여름의 채널도 그와 다르게 발광하기 시작했다.
└끼아아아악!!! 왔다!!!
└나 채널 끌 거야! 끌 거라고!!
└너희들도 익숙해지는 게 어때? 행복을 너무 멀리서 찾으면 안 돼.
└미친 새끼 ㅋㅋㅋㅋㅋㅋㅋ
다들 저마다의 방식으로 채널에서 발광하기 시작했다.
한여름도 그들과 같이 비명을 지르며 당장 유체 이탈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철컥.
“오늘도 모셔다드리겠습니다. 가시죠.”
문을 열어서 매춘 업소에서 온 경비원을 맞이했다.
한여름의 얼굴이 썩어 문드러져 가는 중에도 경비원은 내색하지 않고, 그를 데리고 업소로 향하기 시작했다.
한여름을 이끌고 가는 자들의 숫자는 다섯.
딱 봐도 실력깨나 있는 녀석들이었다.
한여름은 그런 경비원들을 보며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씨발… 도저히 빈틈이 안 보여.’
혼자 이동하면 그나마 뭔가 시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경비원들은 한여름과 아무도 마주치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이듯 사람이 적은 곳만 골라서 이끌고 갔다.
다들 돈으로 고용된 경비처럼 보였지만, 딱히 열심히 한다는 느낌은 없었다.
어차피 한 사람을 그냥 업소까지 끌고 가는 일이었다.
심지어 이런 안전한 도시 안에서….
그렇게 업소에 거의 다다를 때쯤이었다.
선두에서 이끌던 남자가 멈춰서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너희 뭐야?”
남자의 목소리에 한여름은 고개를 들어서 어둠 속에 파묻힌 존재를 바라봤다.
그림자와 같은 존재는….
“너희들에게는 볼일이 없다.”
한여름 무리를 향해 신형을 쏘았다.
“커억!”
선두에 있던 경비원은 비명을 지를 틈도 없었다.
아니, 더 이상 비명을 지르지 못하게 되었다.
툭.
머리가 몸과 분리되어서 바닥에 먼저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그와 동시에 한여름의 옆에 있던 경비원들이 상황을 파악하며 무기를 꺼내 들었다.
“이런 씨발! 레드 소환사야!”
“조심해! 옆에서도! 크억!”
경비원들은 무기를 꺼내 든 것이 무색하게 갑자기 나타난 그림자들에 의해서 나머지 네 명의 머리도 몸과 분리된 채 바닥에 떨어졌다.
두려움에 떨어야 할 것 같은 한여름은….
‘씨발 죽여!!! 나를 죽이라고!!!’
속으로 환호를 지르기 시작했다.
성수호가 목숨과 관련해서 절대 함부로 하지 말라는 명령 때문에 입 밖으로는 내뱉지 못했지만, 그는 속으로 그들을 향해 애원했다.
‘죽여달라고!! 제발!!’
그리고 채널도 난리가 났다.
└끼아아악! 드디어 죽는다!!!
└똥 먹는 거 보지 않아도 된다!!!
└미친 새끼야 똥을 왜 먹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들 축제의 장이 된 듯이 기뻐하는 모습들….
하지만….
“네가 한여름이지?”
“…그래.”
괴한들이 봤을 때, 한여름의 모습은 그저 너무 놀라서 조현병 환자처럼 실실 웃는 모습처럼 보일 뿐이었다.
“흥… 무서워서 정신을 놨냐?”
“….”
한여름은 정신을 놓긴 했다.
‘죽여 달라고!!!’
너무 기뻐서….
하지만 그의 희망찬 미래는 생각만큼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잘 묶어서 데리고 오도록.”
“네!”
한여름은 자신을 죽이지 않는 레드 소환사를 향해 조그마한 반항을 시도했다.
“자… 잠깐… 지금 무슨….”
어떻게 해서든 죽여줬으면 하는 발악이었다.
하지만 그의 발악에도 불구하고, 레드 소환사의 살인 욕구를 자극하지는 못했다.
“귀찮으니까 기절시켜.”
“네!”
한여름은 콧속으로 들어오는 연기를 들이켜며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죽여줘!!! 제발 나를… 죽여….’
한여름은 그렇게 속으로 애원하며 기절했다. 그리고 그의 의지를 잇겠다는 듯이 채널에서는….
└죽여!!!!!!!!!!!!!
└킬!!!!!!!!!!!!!!!
└시네!!!!!!!!!!!!!
죽음을 부르짖는 채팅의 향연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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