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그드라실 (6)
크롸아아아!
끼에에엑!!
거대한 풍채의 트롤과 가고일.
“저, 저게 뭐야!”
괴수들의 모습에 소리를 지른 자의 이름은 덴프.
희귀 아이템이 탐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동료를 죽여서 레드 소환사가 된 자였다.
이기적이고, 즉흥적인 성격이었지만, 한편으로 침착하기도 했다.
자신을 거둬준 붉은 초승달에 들어온 이후에는 이기심보다는 조직의 간부가 되고자 침착하게 모든 일을 수행했던 그였다.
붉은 초승달에 들어오고 나서 단 한 번도 당황한 적이 없던 그는….
“이런 미친!”
트롤과 가고일의 모습에 처음으로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동굴을 꽉 채우는 두 괴물의 모습은 침착하게 대기하던 붉은 초승달 조직을 혼란에 빠뜨렸다.
그냥 등장만 한 것이라면 적당히 넘어가 줄 만했을 것이다.
하지만 두 괴물은….
콰아앙! 파앙!
붉은 초승달이 열심히 설치해놓은 함정을 전부 헤집으며 그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평범한 몬스터들이었다면 함정을 밟는 순간 지독한 상태 이상의 맛을 보며 기절했겠지만….
“둘 다 보스 몬스터입니다! 함정이 전혀 통하지 않습니다!”
던전의 보스 몬스터라는 특성 덕분에 상태 이상에 전혀 걸리지 않았다.
당혹은 금세 분노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씨발!”
최상급 함정.
그것도 3층에서는 절대 구할 수 없는 비싼 함정들을 설치했다.
성수호라는 존재가 그만큼 위험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설치한 값비싼 함정들은….
콰아앙! 치지지직!!
트롤과 가고일에 의해서 길거리에서 저렴하게 살 수 있는 폭죽 신세로 전락해 버렸다.
예쁜 폭죽.
하찮지만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그런 예쁜 폭죽.
그들의 희귀한 함정들은 그렇게….
파아앙! 파파팡!!
예쁜 폭죽들로 전락해버렸다.
덴프의 분노가 끝없이 치솟아 올랐다. 그는 오래간만에 느낀 분노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이런 씨발!! 죽여! 저 괴물을 죽여 버려!”
“하, 하지만… 싸우는 중에 녀석들이 나타나면….”
“됐어! 보스 몬스터가 이렇게 활개를 치는 것을 보면 녀석들에게 뭔가 문제가 생긴 걸 거다!”
가고일은 공중을 돌아다니며 소환사 무리를 귀찮게 하고, 트롤은 한번 어그로가 끌리면 던전을 빠져나가기 전까지 절대 어그로가 풀리지 않는 보스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숨어 있을 수만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 머리 위에 떠다니는 옵저버 때문이었다.
“옵저버가 보고 있어서 숨어도 소용이 없어! 일단 빨리 처치한다!”
“예!”
조직원들이 리더의 말을 듣고, 수긍하며 바로 두 몬스터를 향해 달려가는 순간이었다.
쏴아아악! 콰직!
“어……?”
달려가던 조직원 중 한 명의 머리에 뭔가 관통하더니,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고꾸라져 버렸다.
“무… 무슨!? 헉!”
쏴아아악! 콰직!
조직원들이 당황하는 사이에 머리에 시원한 바람구멍이 생긴 동료가 추가되었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붉은 초승달들은….
“저, 적이다! 뒤, 뒤쪽이야!”
다들 놀란 표정을 지으며 뒤를 돌아서 자신들을 공격한 존재들을 확인하기 위해 전투 자세를 취했다.
그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존재는….
“남은 건 세 명?”
사신처럼 자신들을 바라보는 성수호였다.
덴프가 떨리는 목소리로 성수호에게 물었다.
“어… 어떻게…?”
“글쎄….”
성수호의 미소와 함께 그의 파티원들도 어둠 속에서 차근차근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건 죽고 나서 너희들끼리 이야기해보는 게 좋을 거 같은데?”
“크윽….”
퇴로는 성수호 파티로 인해 막혔고, 반대편은….
크롸아아악!
끼에에에엑!!
두 마리의 괴수들이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사면초가.
가만히 있다가는 진짜 죽을 수도 있는 상황.
덴프는 인벤토리에서 몰래 아이템 하나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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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겁자의 술법
사용 시, 투명화가 되는 것과 동시에 기척을 완전히 숨길 수 있다.
지속시간 3분.
지속시간 동안 공격 불가, 아이템 사용 불가, 스킬 사용 불가.
=====
붉은 초승달에서 조장에게만 지급되는 아이템이었다.
조장을 제외한 조직원들은 아이템의 존재도 모르는 그런 아이템.
원래 지급 목적은 목숨을 위해서가 아닌, 살아와서 보고하는 용도로 지급한 것이었지만….
‘일단 나부터 살고 봐야지!’
그는 살고 싶다는 욕망에 더 무거운 추를 걸며 아이템을 사용했다.
“어!?”
“어, 어디 가신 거지!?”
남은 조직원 두 명은 자신들의 조장인 덴프가 사라지자, 놀라서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아이템의 존재조차 모르다 보니 자신들을 놓고 도망칠 것이라는 생각도 못 한 것이었다.
그리고 놀란 건 성수호의 파티도 마찬가지였다.
“사라졌어!?”
“에이 씨… 설마 도망친 건가?”
덴프는 성수호 파티의 반응에 만족하며 재빠르게 자리를 이탈하기 시작했다.
‘좋아…. 이대로 옆으로 몰래… 응?’
그가 그렇게 기척을 완벽하게 숨긴 채 성수호 파티의 옆을 빠져나가려는 순간이었다.
파티원 중 한 명… 성수호가….
“….”
자신의 이동 방향에 따라 고개를 천천히 돌리고 있었다.
리더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피식 웃었다.
‘착각이겠지. 볼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가 가진 아이템은 위층에 존재하는 엘프들의 감각에도 걸리지 않는 특수 아이템이었다.
조직에서 강등당하는 것… 아니, 제거당하는 것을 각오하고 쓰는 아이템.
덴프는 조직에서 제공해준 [비겁자의 술법]을 믿고, 재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착각은….
“신기한 아이템이네.”
“!?”
성수호의 목소리로 인해서 착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냐! 그, 그럴 리가!’
덴프는 성수호의 목소리를 무시하며 달렸지만….
타아앙! 콰직!
“끄아아아악!!”
엄청난 파공음과 함께 그의 허벅지를 무언가 관통하며 덴프의 도주를 막아버렸다.
비명과 함께 바닥에 쓰러지자마자 모습을 드러내는 덴프.
그는 쓰러진 채 두려움에 떨며 성수호에게 물었다.
“끄아악… 어… 어떻게…?”
“…글쎄?”
성수호는 피식 웃으며 한 마디를 남겼다.
“아까도 말했잖아. 그건 죽고 나서 너희들끼리 대화로 풀어봐. 이제부터 대화할 시간 많아질 테니까.”
성수호는 마지막 말과 함께 덴프의 머리를 향해 화살을 쐈다.
***
파칵!
붉은 초승달 머리 위에 화살이 박히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리며….
“끄어억….”
천천히 그 자리에서 고꾸라졌다.
추하게 도망치려고 했던 녀석의 말로는 추한 죽음이었다.
그렇게 녀석의 기질창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뒤, 고개를 돌려서 남은 녀석들을 확인했다.
저 멀리서 굉음을 내며 달려오는 두 괴수와 우리를 번갈아 보며 덜덜 떨고 있는 두 녀석.
불쌍해 보이냐고 하면… 전혀 불쌍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우리를 잡으려고 했던 녀석을 불쌍하게 여길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있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건 민하연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할까?”
민하연의 의미심장한 물음이 주변에 있던 여자들의 시선도 잡아끌었다.
그녀들 모두, 눈빛에 동정심 따위는 담기지 않았었다.
그저 자신들을 산 채로 잡으려고 했던 레드 소환사를 향한 복수심만 불타오를 뿐이었다.
그리고 그녀들의 복수심은….
“죽이자.”
나도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
두 명의 붉은 초승달이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욕설과 함께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이런 씨발!”
“이대로는 못 죽어!!”
하지만 그들의 발악은 우리에게 닿기도 전에….
쏴아아악! 콰직!
“컥….”
“끄억….”
창과 화살에 맞으면서 이승과 이별을 고했다.
나는 묘지기에게 일거리를 늘린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며 쓰게 미소를 지었다.
내가 그렇게 죽은 녀석들을 바라보자, 뒤에서 소우타가 놀란 표정으로 물어왔다.
(야, 아까 그 녀석 어떻게 단번에 찾아낸 거야?)
“….”
아이템 [비겁자의 술법]
투명화와 기척 감지를 동시에 부여하는 사기성 아이템.
소우타의 말로는 5층에 살고 있는 엘프의 감지에도 걸리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성능을 지닌 아이템이라고 설명해줬다.
소우타는 리더 같은 녀석이 분명 그 아이템을 쓸 테니, 주의하라고 신신당부했었다.
만약 그 아이템을 쓰게 된다면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 정도로 강한 마법을 사용하라는 조언까지….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기질창.
그걸 한번 띄워놓는 순간 내 앞에서 은신 계통 능력은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니까….
하지만 나는 기질창에 대해서 알려줄 수 없었기 때문에 적당히 둘러댔다.
“감으로 알아냈지.”
(미친… 너, 진짜 뭐 하는 녀석이냐?)
소우타는 내 말을 믿는 듯 보였다.
내가 지금까지 보여준 기행을 생각하면 믿는 게 정상이긴 했다.
일단 그렇게 첫 번째 붉은 초승달 관문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이게 다 소우타 덕분이었다.
“고맙다. 설마 보스 몬스터가 상태 이상 면역일 줄은 몰랐네.”
(아니, 나는 그 사실을 몰랐다는 게 더 놀랍네.)
나를 포함한 우리 파티는 지금까지 계층 보스 몬스터를 상대한 게 전부였다.
쇼크 비, 케르베로스.
일반 던전 보스 몬스터? 상대하기는커녕 만나는 것도 오늘이 처음이었다.
“지금 알았으면 됐지. 뭘….”
(…천하 태평하네.)
나는 그렇게 소우타에게 칭찬을 듣고는 멤버들을 향해 말했다.
“앞에 두 무리 정도 더 있다고 하니까… 계속 이런 식으로 진행하자.”
“응!”
나는 의욕이 충만한 멤버들을 이끌고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앞장선 건 다름 아닌 옵저버였다.
원래라면 우리도 시야에 넣으며 주변에 있는 몬스터를 끌고 오는 귀찮은 녀석이지만….
“이거 진짜 신기하네요. 저도 눈을 뜨고 앞을 보는데, 옵저버의 시야도 동시에 느껴져요.”
지금은 박진희의 세 번째 소환수가 되어서는 우리의 눈이 되어 주고 있었다.
아까도 먼저 정찰을 보내고, 옵저버의 시야를 가고일과 트롤에게 공유시켜서 붉은 초승달을 격퇴하는 데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소환수 자리 하나를 차지하지만, 그만큼 성능도 확실하네요.”
“네. 수호 씨… 정말 고마워요.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다뤄볼게요!”
열성적인 박진희의 모습을 보니, 오늘 이곳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박진희는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늘어난 소환수와 소환수의 활약을 보니, 자신감이 순식간에 차오른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저기 앞에 한 무리 더 있을 거야.)
“오케이.”
아까와 같은 방식으로 붉은 초승달을 쓸어 버렸다.
..
..
붉은 초승달 한 명이 내게 애원했다.
“사, 살려….”
“안돼 안 바꿔줘. 바꿀 생각 없어. 빨리… 죽어.”
“이런 씨… 컥!”
녀석은 욕설을 목구멍으로 뱉어내지 못한 채 내 화살을 맞고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이로써 침입한 붉은 초승달 조직은 전부 처리했다.
나는 옆에서 흐뭇하게 지켜보던 소우타를 보며 물었다.
“시신은 어떻게 처리해야 해?”
(던전에 생존자가 전부 나가면 그 던전은 자동으로 소멸해.)
즉… 죽은 자들은 알아서 소멸한다는 이야기였다.
민하연과 내가 살던 대한민국에 이런 장소가 있었다면 엉망진창이 됐을 것이다.
증거 인멸하기에 딱이니까….
“편해서 좋네. 그럼 너는 어떻게 할래?”
소우타는 자신이 만든 붉은 초승달이 무너지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어 했다.
한동안 계속 같이 다닐까 싶었지만….
(야… 나 지금 청소 중에 갑자기 불려와서 혼나게 생겼다. 일단 보내줬다가 나중에 필요하면 다시 소환해줘.)
“….”
거참 엄청 성실하시네.
아니면 묘지기가 무서워서 그런가…?
“알았어. 필요하면 부를게.”
나는 그렇게 말하며 소우타는 2층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멤버들을 향해 말했다.
“목적은 전부 달성했으니까. 나가자.”
“응.”
“네!”
나는 활기찬 멤버들을 이끌고 던전을 나갔다.
그렇게 던전을 나가자마자 우리를 맞이한 건….
“으아… 오늘 하루 다 갔네.”
붉은색 석양빛으로 물든 숲이었다.
원래라면 점심 좀 지나서 나왔어야 했겠지만, 갑자기 등장한 붉은 초승달 덕분에 시간이 지체된 것이었다.
나는 멤버들을 보며 물었다.
“다들 고생했으니까 오늘은 비싼 거 먹을까요?”
“네! 먹어요!!”
다들 내가 어디로 데리고 갈지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방실방실 웃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카지노에 존재하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도착하고 나니, 해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도시에는 저마다 개성 넘치는 불빛이 주변을 아름답게 비추기 시작했다.
“밥이다!”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식사가 나오자, 다들 아까까지 레드 소환사의 타겟이 된 것도 잊은 채 웃으며 식사를 즐겼다.
참 신기한 광경이었다.
과하게 긴장하는 건 좋지 않지만, 이렇게 긴장을 풀 줄은….
[그만큼 당신이 의지가 된다는 거겠죠.]
뭐… 이런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전부 먹고 나서 모두와 같이 한가을의 가게로 향했다.
하지만 가게는….
“어? 왜 문이 닫혀 있지?”
한봄의 말대로 문이 닫혀 있었다.
문제는 그냥 닫혀 있다는 게 아니라, 아예 사람이 없는 것처럼 가게 안에 불이 전부 꺼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뭐지…? 어디 갔나?”
오늘 있었던 사건 때문인지 한봄은 점점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없었다.
그렇게 가게 앞에서 몇 분 정도 서성이고 있자….
“아, 여기에 계셨군요!”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요사스러운 복장을 한 여성이 등장했다.
그 여자는….
“여긴 어쩐 일로…?”
매춘 업소의 마담이었다.
다들 갑자기 등장한 여자가 나와 친분이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심히… 기분이 좋지 않다는 듯이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던전 안에서 받던 대우와 극과 극인 상황….
“잠깐 따로 이야기를….”
마담은 평소와 다르게 다급한 표정으로 나를 이끌고 멤버들과 떨어졌다.
적당히 거리를 벌리자, 마담은 다급함이 담긴 표정으로 찾아온 이유는 내게 설명했다.
“저희 경호원들이 한여름 씨를 데리고 오는 도중에… 괴한 무리의 습격을 당해서 한여름 씨를 빼앗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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