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그드라실 (6)
도미 드레크와 케닐, 그리고 케닐의 동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싸울 것처럼 자세를 취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 소환사라면 붉은색 보석을 머리에 달고 있는 소환사를 보면 으레 취하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싸울 자세를 취하는 것치고는 공격할 의사는 내비치지 않았다.
도미 드레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네… 그런데 여기는 어쩐 일이지?”
이미 예전에 아는 사이인 것처럼 나누는 대화.
레드 소환사와 알고 지낸다는 건 일반 소환사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도미 드레크는 딱히 그런 것을 내색하지 않았다.
옆에 있던 케닐도….
“설마 우리를 노리고…?”
도미 드레크와 마찬가지로 알고 있는 사이였기 때문이었다.
레드 소환사는 망토를 쓴 채 미소를 머금은 입만 드러냈다.
“너희가 타겟이었다면 너희는 내 모습을 보기도 전에 하데스의 축복을 받았을 거다.”
“….”
도미 드레크와 케닐은 안도하는 것과 동시에 이마에 핏줄을 새겨 넣기 시작했다.
“우리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당할 놈들로 보여?”
“시비를 걸러 온 거라면 상대를 잘 못 찾은 거 같은데….”
두 남자의 반응에 레드 소환사는 낄낄 웃었다.
“네 녀석들이 호락호락하게 당해줄 놈들이 아니라는 건 알지. 하지만….”
“…?”
레드 소환사는 그들의 식탁에 차분히 앉아서 여유롭게 입을 열었다.
“우리가 너희도 처리 못할 정도로 약한 놈들처럼 보여?”
“….”
도미 드레크와 케닐은 침을 삼키며 서로 눈치를 봤다.
그리고는 분을 삼키며 자리에 천천히 앉았다.
레드 소환사는 두 사람의 모습에 흡족해하며 손뼉을 쳤다.
“좋아. 이제야 대화가 되겠군.”
“대화라… 무슨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왔지?”
“내가 여기 찾아온 이유라면 하나뿐이지 않아?”
“설마….”
“그래.”
케닐의 말에 레드 소환사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예전 고객들께서 곤란한 거 같아서 도움을 줄까 해서 왔지.”
예전 고객.
도미 드레크와 케닐은 과거, 이 레드 소환사에게 의뢰를 맡긴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 레드 소환사는 언제나 의뢰를 충실히 수행했다.
그 의뢰 내용은….
“성수호… 그놈을 잡아주지.”
경쟁자가 되는 자들을 처리하는 일이었다.
레드 소환사의 말을 들은 도미 드레크와 케닐은 서로 마주 보더니….
“…좋아. 너라면 안심하고 맡겨도 되겠지.”
고개를 끄덕이며 수락했다.
그리고 그렇게 두 사람이 수락하자마자 레드 소환사가 낄낄 웃으며 이야기를 진행했다.
“좋아. 그럼 의뢰금에 대해서 말해보자고.”
“얼마를 원해?”
“50퍼센트.”
“50퍼센트? 무슨 소리지?”
과거, 그들이 이 레드 소환사에게 의뢰할 때는 언제나 정확한 포인트로 계산했었다.
50만 포인트, 100만 포인트, 200만 포인트….
날이 갈수록 비싸졌지만, 그만큼 경쟁자를 확실하게 죽여줬기 때문에 거금을 내고 의뢰를 맡겼었다.
그리고 경쟁자가 없어진 순간… 더 이상 의뢰를 맡기지 않았던 것이었다.
“정확히 말해주지 않으면….”
“말했잖아. 50퍼센트.”
“설마….”
케닐이 미간을 와락 구기자, 레드 소환사가 그 모습에 기쁘다는 듯이 말했다.
“너희가 지배자에 잇는 동안 수익의 50퍼센트를 받았으면 좋겠군.”
“미친 소리!”
도미 드레크뿐만 아니라, 케닐과 그의 동료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분개했다.
“그게 말이나 되는 수치 같냐!?”
“적당히 하는 게 어때? 우리도 이번 의뢰를 푼돈으로 넘어갈 생각은 없어.”
두 사람의 말에 레드 소환사는 고개를 절레거리며 말했다.
“대신 이번에 계약하면 평생 보장해주지.”
“….”
두 사람은 서로 바라보며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눈앞에 있는 녀석과 마지막으로 거래를 한 것이 대략 석 달 전이었다.
그 거래를 마지막으로 도미 드레크와 케닐은 적수를 만나지 못할 정도로 날아다녔다.
평생 이 자리를 지킬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50퍼센트는 너무 많아. 30… 아니, 35퍼센트 어때?”
다음에도 성수호나 한봄 팀 같은 존재가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케닐의 조정된 조건을 들은 레드 소환사는 고개를 저으며 투덜거렸다.
“그러면 수지 타산이 안 맞아.”
“….”
레드 소환사의 말에 케닐은 더 이상 밀어붙일 수 없었다.
괜히 억지로 밀어붙였다가 없던 일이 되어버리면 곤란해지는 건 자기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케닐이 고민하는 순간….
“좋아.”
도미 드레크가 먼저 수락했다.
그의 말을 들은 레드 소환사가 망토 안에 입가를 씩 올리며 흥얼거렸다.
“그렇게 나올 줄 알았지. 좋아. 그럼 바로 녀석들을….”
“대신 조건이 있다.”
“…조건?”
도미 드레크는 식탁 위에 주먹을 꽉 쥔 채 분노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며 입을 열었다.
“생포… 꼭 산 채로 잡아서 고문하는 모습을 보여줘야겠어.”
“아하….”
레드 소환사는 살짝 곤란해하면서도 흥미롭다는 듯이 대답했다.
“굉장히 힘든 일이겠는데….”
“그게 아니면 네 제안을 수락할 수 없겠군.”
“으흠….”
레드 소환사는 고개를 돌려서 케닐을 확인했다.
케닐은 한숨을 푹 쉬더니, 팔짱을 끼며 도미 드레크의 말에 동조했다.
“생포… 나도 그게 좋겠군. 그 여자들… 그냥 죽이는 건 조금 아깝다고 생각해서 말이지.”
“이런… 이런….”
레드 소환사는 귀찮은 일에 휘말리면서도 즐기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더니,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좋아. 전부 생포해주지.”
***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나를 반긴 건 난장판이 된 한가을의 거실이었다.
‘…개판이네.’
개판 오 분 후가 무슨 상황인지 보여주는 장면.
그나마 다행이라면 거실을 더럽히는 요인이 전부 술과 음식들이라는 것 정도였다.
누군가 실례를 한 장면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아직 꿈나라에서 헤매는 여자들을 두고, 마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다만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건 쏟아져 있는 술이었다.
안주들은 어쩔 도리가 없이 전부 손으로 치웠다.
내가 그렇게 거실을 정리하고 있을 때….
“흐음…? 일어나셨네요?”
마침 한가을이 잠에서 막 깬 얼굴로 침실에서 나왔다.
“아… 네. 어지럽혀서 죄송합니다. 바로 치울게요.”
“괜찮아요. 애초에 제가 권한 건데요.”
한가을은 그렇게 대답하며 나와 같이 치워주기 시작했다.
치우면서 나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는 한가을.
그녀는 주변에 널브러졌다는 표현을 해도 될 정도로 바닥과 한 몸이 되어 있는 여자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술 정말 강하시네요. 하연이 언니랑 술 대적할 수 있는 사람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하하… 제가 좀 마시죠.”
사실 나는 술을 못 마신다.
에넬로 숙취를 제거했을 뿐….
만약 내가 숙취를 없애지 않고 민하연처럼 마셨다면 이틀 정도는 산송장으로 지냈을 것이다.
그렇게 한가을과 같이 정리를 마쳤다.
“저는 오전에 영업이 있어서 바쁠 거예요. 나가실 때는 실례가 안 된다면 뒷문을 이용해주세요.”
“네. 명심하겠습니다.”
한가을은 그렇게 말한 뒤, 영업 준비를 하기 위해 1층으로 내려갔다.
나는 그런 한가을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뭐랄까…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거 같지?’
[그런 것 같습니다. 굉장히 호의적입니다.]
[저도 그렇게 느꼈어요.]
내 착각이 아니었다.
아르모니아와 강한나가 저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변한 건 확실했다.
저렇게 호의적인 것을 보면 자위 사건은 넘어가 준 것으로 판단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자… 오늘도 수금하러 가보실까.”
자고 있는 민하연과 한봄에게 짤막한 쪽지를 남기고 호텔로 향했다.
..
..
나는 의자에 앉아서 내게 포인트를 건넨 한여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흐뭇하게 웃었다.
“좋아. 잘했어. 한여름.”
“으으윽….”
내 행동에 새빨개지는 한여름.
쑥스러워하긴….
나는 그런 한여름의 모습에 만족하며 내 포인트를 확인했다.
‘캬… 미쳤다.’
8,120만 포인트.
한여름에게 포인트를 받을 때마다 온몸에 전율이 돋았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 마약 하는 기분이 이런 기분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도파민이 폭죽처럼 터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열심히 포인트를 벌어준 한여름을 보며 다시 머리를 두드려줬다.
“잘했어. 역시 내 노예는 다른 녀석들과 달라.”
“크끄끄끅.”
내게 어떻게 해서든 욕설을 쏟아내고 싶어 하는 한여름의 모습.
하지만 결국 그의 입에서 나온 건 괴상한 신음뿐이었다.
이제 한여름에게 볼일은 끝났다.
“나는 간다. 오늘 하루도 열심히 일해라.”
그렇게 한여름을 격려하며 방을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야….”
“응?”
나는 한여름의 부름에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서 그를 바라봤다.
한여름은 축 처진 눈으로 내게 한 가지 부탁했다.
“쉬는 시간… 잠깐이라도 산책할 수 있는 시간이라도 줘라….”
“….”
한여름에게 쉬는 시간?
절대 줄 생각 없었다.
회귀자는 기회만 있다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실행에 옮기는 미친놈들이다.
자유 시간을 줬다가 무슨 변수가 생기면 굉장히 골치 아파진다.
‘평생 이렇게 가둬 놓고 노예로 부리고 싶긴 한데….’
살짝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다.
노이로제나 과로 같은 거 걸려서 죽어버리면?
다음 회차 때 한여름을 구슬리기 굉장히 힘들어진다.
최악의 상황에는 내게 도전하지 않을 수도 있고….
‘고행이란, 끝이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자신을 스스로 채찍질하며 버틸 수 있는 거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한여름에게 말했다.
“좋아.”
“진짜!?”
한여름은 지금까지 내게 보여주지 않았던 기쁜 표정을 지으며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그의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말 잘 듣고, 포인트 많이 벌어다 주면 생각해볼게.”
“그… 그게 무슨!”
“왜? 싫어?”
“….”
한여름은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숙인 채 중얼거렸다.
“알았다…. 부디… 약속은 지켜줘라. 제발….”
“오케이. 말만 잘 들으라고~”
나는 그렇게 한여름에게 거짓의 희망을 그의 가슴 속에 쑤셔 넣으며 호텔을 떠났다.
..
..
한봄이 암흑으로 물들어 있는 던전을 보며 중얼거렸다.
“던전이라….”
한봄의 표정에 불안이나 두려움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긴장감이 너무 없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그건 한봄뿐만이 아니었다.
내 옆에 있던 손혜은이 어깨를 으쓱하며 내게 질문했다.
“저희가 던전에 들어갈 필요가 있을까요?”
우리가 앞둔 던전은 동쪽에 있는 던전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대부분 소환사는 이런 던전을 돌파해서 벌어들인 수익으로 하루하루 생계를 유지하는 중이다.
그런 생계를 유지하는 던전은 우리에게….
“사실 필요는 없죠.”
크게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이렇게 멤버들을 이끌고 이곳에 온 이유는 간단했다.
“오늘 이곳에 온 건 포인트를 벌거나, 경험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
“진희 씨의 소환수를 구하러 온 거죠.”
“아!”
다들 박진희를 바라봤다.
박진희는 강령술사임에도 아직 소환수로 부릴 시신을 구하지 못한 상태였다.
오늘도 난전에 참가할 예정인데, 시신도 없이 들어갔다가는 다굴당할 게 뻔했다.
“마침 저희가 들어가려는 던전이 방어계통 몬스터가 많은 장소라고 하네요.”
잡기는 빡세겠지만, 잡아서 박진희의 소환수로 묶어 놓으면 오늘 난전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냥 네크로멘서 같은 게 아닌, 강령술사라는 전설 직업이니까….
그렇게 다들 내 말에 수긍하고는 들어갈 준비를 마쳤다.
나는 준비를 마친 모두를 보며 한가지 주의 사항을 읊었다.
“참고로 오늘 들어갈 던전은 주의해야 할 게 있어.”
“주의?”
민하연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주변을 둘러보자, 다른 여자들도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
그건 바로….
“오늘 들어갈 던전… 침입이 가능한 던전이라고 했어.”
“아….”
개별 위상이지만, 침입이 가능한 던전.
사실 침입이 가능하다고 해서 무조건 위험한 던전은 아니다.
침입이 가능할 뿐, 대부분은 다른 파티와 섞이지 않게 자기네들 위상을 이용해서 들어가는 편이니까.
그리고 주의해야 할 뿐, 딱히 심각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누군가 실수로 침입하는 경우는 있어도 악의를 가지고 침입하는 경우는 없대.”
“아… 하긴….”
악의를 가지고 침입한다?
레드 소환사가 되고 싶은 놈이거나, 아니면 진짜 레드 소환사이거나….
“뭐… 애초에 방어계통 몬스터가 즐비하는 던전이라 인기도 적어서 들어오려는 사람도 없을 거야. 지금처럼….”
동쪽의 던전은 총 세 개였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자리한 곳에는 아무도 줄을 서고 있지 않았다.
방어계통 몬스터는 잡기가 귀찮으니, 다들 우리가 서 있는 던전을 기피하는 것이었다.
즉, 오늘 이 던전은….
“아마 다른 사람이 들어올 일은 없을 거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야.”
나는 그렇게 말하며 앞장서기 시작했다.
“자, 들어가자.”
“응.”
“네.”
다들 내 말에 대답하고는 바로 내 뒤를 따라 들어오기 시작했다.
***
“자, 들어가자.”
“응.”
“네.”
성수호 파티가 던전에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수풀에 숨어 있던 두 명이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3번 던전이군.”
“어… 시간이 꽤 걸리는 곳이 들어가네.”
방어계통 몬스터가 주류로 나오는 3번 던전은 공략 시간이 다른 곳보다 긴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사람도 없고….
하지만 지금 들어간 파티는 성수호 파티.
“실력이 좋으니까 2시간… 아니, 1시간 안에 끝낼지도 몰라.”
“하긴… 다른 녀석들과 비슷하게 보면 안 되겠네.”
“자, 빨리 가서 보고하자.”
그들은 그렇게 대화를 마치고 조용하고, 빠르게 자리를 이탈했다.
붉은색 보석을 머리에 단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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