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그드라실 (6)
와아아아아!!
“으읏….”
한가을은 빛의 장막을 뚫고 나가자마자 사람들의 환호성에 파묻혔다.
사람이 상황을 파악할 때, 시각과 청각에 의존한다.
그건 한가을도 마찬가지였다.
그 중의 시각을 확인하는 눈동자는 빛으로 인해 강제로 감겼고, 청각은 사람들의 환호성에 파묻혔다.
그렇게 하늘에서 내리쬐는 빛과 주변에서 터져 나오는 환호성에 파묻힌 한가을은 점점 더 두려움에 휩싸였다.
자신의 망설임 때문에 가족의 기둥과 같았던 한봄이 무너지는 게 아닌가 하는 죄책감.
‘언니… 내가… 내가 좀 더 생각이 있었다면….’
그렇게 이미 모든 것을 잃은 듯이 후회하며 간신히 눈을 뜨는 순간이었다.
눈동자에 쏟아지던 빛이 서서히 거둬지면서 경기장이 서서히 눈 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녀가 본 장면은….
‘…언니?’
한봄과 그녀의 동료들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한봄 선수! 힐러였습니다!! 위그드라실에 몇 없는 최고의 서포터!>
그리고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려오는 것과 동시에 주변에서 한봄에 대해 평가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야… 그 희귀하다는 힐러네.”
“그러게… 어제부터 아무 짓도 하지 않길래 그냥 버스 타는 여자인 줄 알았더만….”
“이대로면 토너먼트 전에 이어서… 풀리그 전도 지배자가 바뀌는 거 아냐?”
다들 한봄의 이야기만 주고받고 있었다.
경기장 안에 있던 한봄과 그녀의 일행들은….
‘…동료라.’
서로 하이 파이브를 하며 경기장을 나가고 있었다.
그녀들의 모습은 흡사 이곳에 막 도착해서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아오던 한가을과 한겨울의 모습과 흡사했다.
위험한 순간을 뛰어넘고 서로가 지니고 있던 믿음을 확신하는 순간.
한봄과 그녀 동료들의 모습은 한가을의 추억을 새록새록 떠오르게 해줬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잘 지내려나.’
죄책감이 다시 도지기 시작했다.
한가을은 그렇게 죄책감은 품은 채….
‘온 김에 끝까지 보자.’
한가을은 경기장 관람석에 앉아서 경기를 관람하기 시작했다.
간혹 지나가던 사람이 그녀를 알아보듯 쳐다봤지만, 그녀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없었다.
‘이럴 때는 편하네….’
그간 그녀가 점집을 영업하면서 해온 컨셉 덕분이었다.
대답이 필요한 경우가 아닌 한 한가을은 외부에서 아는 척을 해오는 사람을 무시로 일관했다.
그녀의 무시에 기분 나빠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결국 그게 그녀의 컨셉을 더 확고하게 잡아줬다.
냉정하고, 미스테리한 분위기는 원래 사람의 마음을 혹하게 만드는 법이다.
한가을의 점집이 잘 되는 건 결과적으로 그녀의 컨셉 덕분이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마음속의 공허함이 새어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겨울이가 떠나고… 언니들이 오기 전에는 누구랑 대화를 나눴던가?’
가게 손님이 와서 물어보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없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분명 본인이 원해서 혼자가 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게 맞는 걸까?’
자기 자신의 길을 서서히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신의 길을 의심하며 경기장을 멍하니 바라보자, 마침 경기가 시작되었다.
‘…모르겠네.’
한가을은 망토를 두른 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경기를 관람했다.
..
..
한가을은 한봄 팀의 경기를 보며 연신 감탄했다.
‘어제 첫 출전 하고는 하루 만에 A급이라고…?’
성수호와 민하연이 개인전에서 활약한 건 대충 이해는 갔었다.
성수호의 실력은 고막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고, 민하연은 과거를 알고 있어서 수긍이 갔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개인전은 가끔 그렇게 활약상을 보이는 사람이 간혹 나타나기도 했었다.
하지만 한봄의 팀이 출전한 단체전은 이야기가 달랐다.
실력만이 아니라, 경험과 합이 중요한 경기.
그런 여러 가지 요인이 필요한 경기에서 연승으로 하루 만에 A급으로 우뚝 선 것이었다.
‘언니의 회복 능력도 대단하지만, 저 손혜은이라는 여자… 정말 장난 아니네.’
전설 직업은 진짜 전설처럼 사람들 입방아에 오를 뿐이었다.
한가을도 위그드라실에 오고 나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전설 직업.
그 전설 직업을 가진 손혜은은 무쌍(無雙)이 뭔지 보여줬다.
군마를 타고 콜로세움을 휘저으며 적을 순식간에 제압하는 능력.
그리고 동료가 위험에 처하면 바로 달려가서 호위하는 판단력.
심지어 조금 전에 이겼던 상대는 한가을조차 걱정했던 상대였다.
‘아까 가게에 와서 말만 번지르르하게 날리고는 저 꼴이라니….’
오전에 한가을을 찾아왔던 동쪽 던전 패거리였다.
그의 능력은 손혜은과 같은 창술.
하지만 같은 창술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실력 차이가 확연히 드러났었다.
손혜은의 투창 한방에 남자는 자신이 들고 있던 창을 놓치며 도망치기 바빴다.
이게 모두….
‘그 성수호라는 남자의 작품이라는 거지?’
손혜은, 박진희, 그리고 민하연까지….
전설 직업을 지닌 세 사람은 직업을 가진 것만으로도 콜로세움의 밸런스를 깨뜨렸다.
다들 특수 직업을 얻고 싶어서 혈안이 되어 있는 세상이다.
그런데 그런 특수 직업조차 어린애처럼 상대하는 전설 직업.
한가을은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한봄 팀을 보며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나도… 그 사람을 따라가면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예언자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가을은 자신의 미래를 불안해했다.
그런 한가을의 성격 덕분에 예언자라는 직업이 추천으로 뜬 것으로 생각될 정도였다.
그리고 그녀의 스킬 레벨은….
‘생각해보니까… 레벨을 올린 지도 꽤 됐네.’
14~15 정도였다.
이곳에 정착한 이후 딱히 올려야겠다는 생각을 못 한 것이었다.
그리고 더 이어 나가서 그녀의 채널은….
‘채팅 올라온 지도 오래됐네.’
단 한 명도 채팅을 치지 않았다.
채널의 존재들이 제일 싫어하는 상황 1순위가 채널을 닫는 것이었다.
어떤 상황이든 고요한 것보다 소환사를 보는 것을 좋아하는 게 그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한가을의 채널은….
‘…그만큼 재미없다는 거겠지.’
고요함 그 자체였다.
한가을을 보며 매번 놀리며 하루하루를 즐기던 채널의 존재들….
그들은 한가을의 평범한 일상이 지루해졌는지 어느 순간 채팅 한 줄 쓰지 않았다.
처음에는 고요했던 채널에 누구보다 기뻤던 한가을이었지만….
‘…내가 문제인 걸까?’
서서히 외로움에 잠식되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울함을 한껏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자! 드디어 오늘의 하이라이트 경기! 풀리그전의 지배자 자리를 건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와아아아아!!!
한가을이 제발 오지 않았으면 하던 경기가 눈앞에 다가온 것이었다.
한가을은 다시 고민의 시간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언니를 막을까?’
무서웠다.
한봄이 지는 건 무섭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케닐의 팀에게 농락당하며 두려움이 심어질까 무서웠다.
‘아냐… 그래도 팀이 좋잖아? 어쩌면….’
한가을은 어두워진 콜로세움에 유일하게 빛이 쏟아지는 경기장을 바라봤다.
한봄 일행이 저 멀리 걸어왔고, 케닐 팀이 거기에 맞춰서 다가가고 있었다.
멀리서 봐도 케닐의 표정에는 비웃음이 묻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A급과 지배자는 하늘과 땅의 차이의 실력을 지녔다고 봐도 무방했다.
초기에는 실력이 비슷비슷했을지 몰라도 계속 들어오는 엄청난 양의 포인트는 그 실력 차이를 점점 벌리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이었다.
개인전과 단체전 지배자로 군림하는 자들은 반년을 넘게 그 자리를 확고하게 지켜냈다.
‘언니… 제발 아무 일 없어.’
한가을은 예언자라는 직업답지 않게 양손을 모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도저히 불안해서 경기를 직접 바라보지 못했다.
한가을은 그렇게 눈을 감고, 귀에 들려오는 신경을 차단하며 결과를 기다렸다.
싸우는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주변의 환호성만 들려올 뿐….
그리고 환호성에 따라서 콜로세움을 울리는 확성기 소리조차 한가을의 귓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무아지경과 같은 기도.
그녀는 진심으로 한봄의 무사함을 기원했다.
‘져도 좋아… 져도 좋으니까….’
그저 그녀가 상처를 입지 않길 빌 뿐이었다.
그렇게 세상과 동떨어진 자신만의 공간에서 다른 사람과 다른 시간을 보내던 한가을은….
<아아! 한봄 선수!!!>
확성기 소리에 정신을 번뜩 차릴 수 있었다.
‘언니… 설마….’
한가을은 눈을 떴지만, 도저히 경기장을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자신의 우유부단한 선택 때문에 한봄이 좌절하는 모습.
그것을 볼 용기가 없었다.
그걸 보는 순간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처럼 세상이 다시 한번 무너져 내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언니… 내가 못 막아서 미안해….’
그렇게 또다시 후회에 늪에 빠지는 순간이었다.
<한봄 선수! 역시 힐러! 자칫 패배할 수 있는 상황을 역전했습니다!>
“…뭐?”
한가을은 핏기가 없는 얼굴을 들어 올려서 경기장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 안에 들어온 장면은….
<상태 이상에 걸렸던 손혜은 선수와 치명타를 입었던 박선희 선수를 순식간에 회복시켜서 전황을 다시 바로 잡았습니다!!>
열심히 싸우고 있는 한봄의 모습이었다.
멀리서 보이는 한봄의 모습에는 두려움이나 머뭇거림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언제나 가족들 앞에서 당당하던 가장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었다.
한가을은 그런 한봄의 모습을 보며….
‘그래… 언니는 저랬지.’
쌓여갔던 죄책감과 불안감을 씻어낼 수 있었다.
마치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에서 아슬아슬하게 천국으로 판결받은 듯한 그 느낌.
구원받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한가을은 그런 구원 받은 기분을 느끼며 경기장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언니… 꼭 이겨.’
이 순간만큼 한봄의 경기를 끝까지 지켜봐 주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한봄 팀은 위험한 순간을 넘어서서 다시 케닐 팀과 싸우기 시작했다.
한봄 팀은 아까의 위기를 넘긴 게 오히려 호재로 작용한 덕분인지 싸움을 유리하게 이끌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킬.
<케닐 팀, 한 명 아웃!!!>
손혜은이 제일 위험하다고 판단한 케닐 팀의 서포터를 제압했다.
대신 손혜은도 만만치 않은 피해를 입어 버렸다.
바로 그녀가 소환한 군마가 공격당해서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겉으로 보면 뼈를 취하고, 살을 내준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저 사람… 군마를 탔을 때만 실력 발휘를 한다고 들었는데….’
손혜은의 주된 능력은 소환술이다.
탈것을 타야지만, 온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사령기사.
즉, 탈 것이 없는 손혜은은 직업이 없는 무직업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이대로는… 응?’
케닐 팀이 손혜은의 빈틈을 노려 그녀를 공격하는 순간이었다.
콜로세움이 무너질 정도로 강한 확성기 소리가 한가을의 귀를 뚫고 들어왔다.
<맙소사!! 없어진 줄 알았던 군마가… 다시… 다시 나왔습니다!!>
진행자의 말처럼 사라졌던 손혜은의 군마가 재소환되어서 그녀를 다시 태우고 활개치기 시작했다.
<저거 사기 아닙니까!?>
진행자는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한편으로 진심도 들어있는 듯 들렸다.
그리고 그건 콜로세움에 있는 관객들… 그리고 한가을도 마찬가지였다.
‘사기다… 진짜 사기야….’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능력.
그저 직업을 운 좋게 얻었을 뿐인데….
‘전설 직업… 진짜 사기다….’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경험을 깡그리 짓밟을 정도로 전설 직업은 엄청난 위용을 발휘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견고했던 풀리그전의 지배자가 바뀌었습니다!!!>
풀리그전의 지배자가 교체되었다.
와아아아아아아!!!
콜로세움이 무너질 정도로 쏟아지는 함성.
그리고 그 함성에 파묻혔음에도 전혀 기가 죽지 않은 세 사람.
한가을은 그런 세 명의 여인을 보며 부러워하기 시작했다.
‘나도…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었을까? 그 사람이랑 같이 시작했으면?’
콜로세움 VIP 관람석에서 여유롭게 모든 사람을 내려다보는 남자.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만, 한가을은 그런 남자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 고개를 치켜올려서 VIP 관람석 들을 자세히 관찰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안돼… 낮에도 내부가 보이지 않게 처리되어 있는데, 밤이라고 볼 수 있을 리가 없지.’
한가을은 성수호를 찾는 것을 포기하고, 경기장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승리의 축하를 만끽하는 손혜은과 박진희… 그리고 한봄.
세 여자를 보며 한가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 남자를 따라가면… 언니처럼 될 수 있을까?’
한가을은 그렇게 생각하며 성수호의 파티를 만나기 위해 관객석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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