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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여자를 빼앗는 방법-712화 (712/898)

위그드라실 (6)

한가을은 문틈으로 보이는 성수호의 모습에 얼굴이 새빨갛게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이씨….”

생각 같아서는 지금 당장 문을 박차고 들어가서 그를 끄집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한가을은 문고리를 잡은 채 고개를 저었다.

한가을이 위그드라실에 와서 배운 것이 있다면….

‘아냐… 그렇게 해서 뭐해….’

감성에 강하게 휘둘릴수록 훗날 이성의 혹독한 매질을 견뎌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이 집은 분명 한가을의 소유였다.

그리고 성수호를 내쫓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한창 자위하는 성수호를 끄집어낸다?

몰래 봤다는 사실을 말해야 한다?

거기까지는 사실 전혀 문제가 없었다.

한가을이 두려워하는 점은 바로….

‘언니들이 저 녀석 편을 들면….’

평생 자신의 편에 설 것 같은 민하연과 한봄이 성수호의 편을 들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이었다.

평생 가족처럼 지내오며 인연의 끈을 주렁주렁 매단 민하연.

비록 폭력적인 부분이 강하지만, 가족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한봄.

인생에서 제일 믿어도 될 것 같은 두 사람이….

‘지금이라면 두 사람… 진짜 저 남자 편에 설 거 같아.’

자신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가을이 이런 결론을 내린 이유는 성수호의 실력과 리더쉽 때문이었다.

위그드라실의 정상을 찍을 수 있을 것 같은 압도적인 실력과 절대 동료를 배신하지 않는 신뢰.

어제 민하연과 성수호가 집에 돌아오지 않았을 때, 한봄에게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던 성수호의 이야기.

민하연, 한봄은 성수호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중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한가을과 성수호의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어차피 나는 여기에 머물 거니까… 두 사람은 떠나가겠지? 그래… 저 남자가….’

그렇게 생각하며 한가을은 다시 문틈 사이를 확인했다.

‘…저런 놈이 도대체 뭐가 좋다고!!!’

남의 집에서 자위하는 남자.

한가을에게 성수호는 이미 그런 캐릭터로 자리 잡았다.

출중한 실력을 갖췄어도 그녀는 보지 못했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동료를 지키는 모습도 보지 못했다.

한가을의 눈에 성수호는 남의 집에서 무례하게 자위하는 남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아, 하아, 하아….’

속으로 분노를 몇 차례 삼킨 뒤, 조용히 문틈을 닫기 시작했다.

한가을은 새빨간 얼굴을 하면서도….

‘저… 저딴 게 뭐가 좋다고….’

이중적인 의미를 담아서 성수호의 모습을 끝까지 눈에 넣으며 문을 닫았다.

..

..

보랏빛과 더불어서 그 빛과 어울리는 은은한 라벤더 향기가 피어오는 장소.

목소리 한마디 내는 것조차 죄를 짓는 것 같은 고풍스러운 장소.

그런 장소에 휩쓸리듯 남자 네 명이 서로 눈치를 보며 침묵을 유지했다.

“….”

그렇게 침묵하며 바라보는 상대.

테이블 건너편에 앉아 있는 망토를 쓰고, 신분을 은연중에 감춘 여인.

그녀는 눈을 감고 한동안 분위기를 잡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쉽지만… 오늘은 결과가 좋지 못할 거 같네.”

“하아….”

그녀의 목소리에 네 명이 동시에 한숨을 쉬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뭐, 언제나 좋을 수는 없겠지.”

제일 앞에 서 있던 남자가 테이블에 손을 얹고는 포인트를 전송하기 시작했다.

예지를 보거나 포인트를 전송하기 위해서는 상대방과 접촉해야 한다.

하지만 그녀의 가게에 있는 테이블은 그런 접촉을 피하게 만들어주는 아이템이었다.

그저 서로 테이블에 손만 가져다 대면 상대방과 접촉한 것으로 간주해주는 테이블.

망토를 쓴 여인은 남자에게 포인트를 받고, 고고하게 앉아서 그들이 나가는 것을 바라봤다.

배웅이나, 인사는 없었다.

그게 언제나….

“하아….”

한가을의 영업 방식이었다.

한가을은 몽롱한 보랏빛으로 물든 방에 어울리는 컨셉을 버리고는 머리를 덮고 있는 망토를 벗으며 한숨을 쉬었다.

“하아… 피곤해….”

한가을의 얼굴에 아까 보여줬던 고고한 점술사의 분위기 따위는 없었다.

그저 피곤함에 찌든 미녀의 모습뿐이었다.

얕게 다크써클이 깔리고, 목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테이블로 숙여졌다.

그녀가 이렇게 피곤한 이유….

“괜히 신경 쓰여서 잠을 못 잤네.”

성수호의 자위 장면을 본 것 때문이었다.

처음 봤을 때는 분노 하나만 차오른 탓에 속으로 울분을 풀며 간신히 잘 수 있었다.

하지만 어제 본 장면은 한가을의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왜지… 왜….”

그냥 화만 났다면 평소대로 잤을 텐데, 알 수 없는 감정이 한가을의 잠을 계속 방해했다.

한가을은 다시 성수호의 자위 장면을 지우기 위해 머리를 흔들었다.

“한가을, 정신 차려… 손님 받을 때, 이런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되잖아.”

한가을은 자신이 지금까지 지켜왔던 컨셉을 유지하는 데에 꽤 큰 노력을 들여왔다.

진상 손님 앞에서도 침착하게 분위기를 휘어잡는 컨셉.

그 컨셉 덕분에 그녀를 찾아온 손님들은 그녀를 더욱더 신뢰했다.

그렇게 다음 손님이 올 것을 대비해서 망토를 쓰는 순간이었다.

“다행히 영업하고 있네.”

걸걸한 남자의 목소리.

한가을은 바로 목소리의 주인을 알 수 있었다.

성수호 파티가 처음 3층에 왔을 때, 시비가 붙었던 녀석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저번에 무료로 해준다고 해서 오늘 들렀어.”

동쪽 던전을 관리하는 리더이기도 했다.

참고로 그가 동쪽 던전을 ‘관리’하는 것뿐이지, 단체전의 지배자는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지배자의 따까리일 뿐….

“좋아. 약속은 지켜야지.”

한가을은 분위기를 잡으며 그가 테이블에 앉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그가 앉자마자 테이블 위에 손을 얹었다.

남자는 한가을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똑같이 테이블 위에 손을 얹었다.

“내가 뭐에 관해서 물어볼 줄 알고?”

“훗… 오늘 치르는 단체전 경기에 대해서 알려달라는 거잖아?”

“오우… 역시 예언가는 다르군.”

한가을은 남자의 친근감이 담긴 목소리에 반응해주지 않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렇게 한가을이 예지하려는 순간이었다.

“…?”

예지가 되지 않았다.

뭔가 싶어서 눈을 떠보니….

“…뭐 하는 거야?”

남자가 테이블에서 손을 떼고 한가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한가을의 건너편에 앉아 있는 남자는 처음부터 한가을에게 이렇게 얌전하게 굴었던 건 아니었다.

성수호 파티에게 하던 것처럼 한가을에게 추근덕거렸지만, 결국 그녀의 능력이 자신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포기한 것이었다.

‘설마 예전처럼 귀찮게 굴려는 건 아니겠지?’

한가을은 내심 속으로 귀찮아하면서도 최대한 침착하게 그를 바라봤다.

남자는 잠시 바라보더니, 기분 나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번에 온 그 녀석들이랑 친하게 지내고 있지?”

“….”

남자가 말하는 그 녀석이 누군지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성수호.

잊으려고 했더니, 남자 덕분에 또 떠올라 버렸다.

“그냥 위그드라실에 오기 전의 인연이야. 점 볼 거 아니면 당장 나가.”

“워, 워 진정해. 진짜 하고 싶은 말은 그다음이야.”

남자는 분위기를 잡더니, 한가을을 향해 비릿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늘 경기에 나오는 친구들… 적당히 구슬려서 그만두게 해줬으면 좋겠는데?”

“…하아.”

익숙한 광경이었다.

사실 이런 식의 거래를 걸어오는 사람은 생각 외로 많았다.

그리고 이 남자도 과거에는 자주 이런 식으로 거래를 걸어오기도 했었다.

예언이란 완벽하지 않지만, 사람의 심리를 뒤흔드는 기묘한 능력이다.

그리고 부정적인 말은 자신감을 위축시키기 마련이다.

하지만 한가을에게….

“내가 그런 거래 받지 않는다는 건 네가 더 잘 알 텐데?”

그런 거래는 의미가 없었다.

그녀는 그런 거래를 거는 놈들에게는 강경 수단을 쓰면서 내쫓기도 했었다.

바로 한 달간 가게 출입 금지.

그리고 그건 눈앞에 있는 남자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공짜 점 봐주는 건 다음으로 해야겠네. 한 달 동안 내 가게에 얼씬도 하지 마.”

그렇게 일어서서 남자를 내쫓으려는 순간이었다.

“후회하지 않았으면 해서 제안하는 거라고? 이건 내가 제안하는 게 아니라. 케닐 형님이 전해달라고 한 말이야.”

“….”

케닐이라고 하면 지금 단체전의 지배자 팀을 이끄는 리더였다.

‘하아… 하긴… 개인전 지배자가 그렇게 박살이 났으니 초조하겠지.’

3층에서 안정적으로 지내는 한가을이라고 해도 케닐을 무시하는 건 쉽지 않았다.

물리적인 보복은 불가능해도 가게의 매출에 영향을 주는 보복은 충분히 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보름 추가. 1개월 15일 동안은 내 가게에 얼씬도 하지 마.”

“…후회할 거야.”

남자는 그 말만 남기고 한가을의 가게를 떠나갔다.

그 뒤에 한가을의 가게에는 손님이 들어오지 않았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슬슬 닫을까?’

주말에 장사가 더 잘 되는 여타 가게들과 다르게 한가을의 점집은 주말에 오히려 손님이 적은 편이었다.

아무리 포인트가 중요해도 다들 주말에는 쉬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들르는 손님들은 대개 단체전 운세를 보는 손님들 정도….

“더 이상 안 오겠네. 닫자.”

한가을은 그렇게 말하며 가게 문을 닫고, 밖으로 나와서 바람을 쐬기 시작했다.

그녀가 그렇게 바람을 쐬며 머리를 식히는 이유는 하나였다.

‘…언니를 말릴까?’

아까 남자가 했던 말 덕분이었다.

당연히 남자가 한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개인전은 단체전과 달라. 심지어 성수호… 그 사람도 출전하지 않고. 언니가 만약 결승전까지 가서 지게 되면….’

경기에서 지는 건 괜찮았다.

어차피 콜로세움의 경기는 죽어도 부활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지는 과정이었다.

‘케닐….’

케닐의 팀은 실력도 좋고, 노력도 하는 것으로 유명한 팀이었다.

문제는 그 팀이….

‘쓰레기 같은 놈들만 모여서 문제라는 거지….’

성격이 좋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는 것이다.

경기 시간이 끝날 때까지 상대방을 가지고 놀면서 굴욕스러운 모습을 즐기는 녀석들….

얼마 전까지 토너먼트 전 지배자였던 도미 드레크도 성격이 좋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케닐 팀은 좋지 않다는 범주에 넣을 수 없을 정도로 악질로 유명했다.

다만 그게 콜로세움 경기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 좋아하는 요소가 되었지만….

만약 케닐 팀이 한봄 팀과 싸우게 된다면….

‘…아냐. 언니 팀이 아무리 세다고 해도 첫 출전부터 결승을 치를 리가 없지.’

단체전은 개인전과 차원이 다르다.

지금까지 첫 출전에 A등급까지 단번에 찍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한가을은 한봄이 B등급에서 적당히 머무르리라 판단했다.

그렇게 한봄을 걱정하며 산책하다 보니….

와아아아아!!!

콜로세움 쪽에서 커다란 함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슬슬 경기 시작하나 보네.’

한가을은 멍하니 콜로세움을 보다가….

‘…한번 가보자.’

콜로세움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콜로세움에 가까워질수록 소리는 점점 커져 왔다.

그리고 한가을은 왕관과 같은 모양을 한 콜로세움을 앞에 두고 한숨이 새어 나왔다.

‘겨울이, 걘 맨날 여기 오고 싶어 해서 예전에는 매일 관람했었지….’

태생적으로 트러블을 싫어하는 한가을과 다르게 한겨울은 트러블을 달고 살았다.

성격만 놓고 보자면 한봄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다혈질인 아이.

그리고 그런 성격에 걸맞게 콜로세움 경기를 좋아했었다.

‘…겨울이도 결국 결승까지 가지는 못했지.’

그렇게 과거의 추억이 하나둘씩 떠오르자, 서서히 심장 속으로 죄책감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진짜 혼자 보내는 게 맞았을까? 그냥 나도 같이 갈 걸 그랬나?’

이곳에서 안전을 추구하자고 설득한 한가을, 그리고 그런 설득을 전혀 듣지 않은 한겨울.

한겨울을 동생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애초에 한겨울이 한가을을 언니로 생각하지도 않았으니까.

결국 한가을은 한겨울을 설득할 뿐, 그녀를 따라가지 않았다.

안전하고 싶다는 이기심.

그리고 안전을 추구한 결과는… 죄책감이라는 큰 덩어리였다.

그리고 그 죄책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날로 커졌고, 다른 가족을 만남으로 인해서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언니가 져서 상처받으면 어떡하지?’

한봄의 실망한 모습을 볼 것 같은 불안감이었다.

민하연이 바람을 피우는 것보다 충격적이었던 게 한봄의 변화한 모습이었다.

남자에게 푹 빠져 있는 모습… 한가을의 입장에서 한봄은 나약해진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남자에게 기대는 한봄의 모습은… 하늘을 지배하던 매가 깃털을 잃어서 인간의 품에 안기고, 인간의 손길을 갈구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야생성이 사라진 모습.

‘그래… 그건 괜찮아. 언니가 평생 혼자 살았으면 한 건 아니니까. 하지만….’

한가을이 불안해하는 건 그런 한봄이 예전과 다르게 진짜 나약해졌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지금이라도 가서 말릴까?’

전에 잘못한 선택을 바로 잡고 싶은 마음에 콜로세움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와아아아아아!!

<한봄 선수!! 이럴 수가!!>

한가을은 관람석으로 향하는 복도를 뚫고 들어오는 확성기 소리를 듣고….

“언니!?”

빛이 강하게 쏟아져 들어오는 복도 끝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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