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 학교 슈트라 (5)
행복한 밤이었다.
다시 가까워지지 않을 것 같았던 소냐와 모든 감정을 다시 이었고, 루나는 그런 감정을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해줬다.
다른 여자였다면 나와 소냐를 보고 질투한 나머지 오히려 망가뜨릴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하지만 루나는 달랐다.
루나는 내 여성 편력을 이해해준 것을 넘어서서 아예 불편했던 관계까지 깔끔하게 해결해준 것이었다.
나는 양옆에서 내 팔 하나씩을 베개로 삼고 있는 두 여성을 바라봤다.
오른쪽에는 루나, 왼쪽에는 소냐.
두 여자는 아침 해가 뜰 때쯤 체력과 정신력을 소진한 뒤, 내 팔을 베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어차피 슈트라로 돌아가는 건 내일이니까 깨울 필요는 없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두 사람의 머리에 베어져 있는 팔을 조심스럽게 빼기 시작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머리를 지탱하는 팔을 빼내는 건 쉽지 않았다.
억지로 뺏다가는 자칫 잠이 깰 것이고, 타이밍 봐가며 빼자니 한세월 걸릴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하나였다.
‘…일단 소냐 쪽이 느슨하니까.’
두 사람의 잠자리를 보장하기 위해 천천히 빼내기 시작했다.
소냐를 빼낸 다음 루나를 빼내고 나서 간신히 침대를 나올 수 있었다.
그렇게 침대를 빠져나와 옷을 갈아입은 뒤, 방을 나왔다.
나는 햇빛에 축복을 받고 있는 듯한 복도를 걸으며 무수히 하품을 내뱉었다.
더 자고 싶었다.
루나와 소냐가 잘 때까지 나도 한숨도 못 잤으니까.
하지만 어제 일을 수습하지 않고 나태하게 있다가는 나중에 귀찮아질 것이다.
일단 첫 번째로 방문한 곳은 루이스의 방이었다.
내가 떠올린 미래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분노하며 만나주지 않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그냥 얼굴도 마주하지 않고 만나주지 않는 것이었다.
어떤 식이든 만나주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
경비원이 안에서 루이스와 이야기를 나누더니, 나를 흔쾌히 들여보내 줬다.
방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
“…와라.”
“….”
좀비처럼 식탁에 앉아 있는 루이스였다.
나는 그런 좀비처럼 앉아 있는 루이스의 말에 대꾸 없이 그의 건너편에 앉았다.
그동안 엄친아 같던 루이스는 어느새 히키코모리 꼴로 변해 있었다.
그동안 내게 여자를 뺏겨도 분노라는 장작으로 의지를 태우던 루이스였다.
하지만 루나가 품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바로 이 꼴이 된 것이었다.
루이스는 내가 앉은 것을 보고는 죽은 자의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며 본론을 꺼냈다.
“… 왜 거짓말했냐?”
“무슨 거짓말?”
“….”
루이스는 있는 힘을 다해 어금니를 꽉 깨물며 나를 질타했다.
“어제… 분명 루나랑 더 이상 가까워지지 않겠다고 말했잖아.”
“아아… 그거…?”
나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으며 피식 웃었다.
루이스는 그런 내 웃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자기 할 말만 이어 나갔다.
“그냥 나를 화나게 하고 싶었냐? 말해봐…. 왜… 왜….”
루이스는 그렇게 몇 차례 말을 떨더니….
“왜 루나가 너 같은 녀석이랑 같이 있어!!!”
루이스가 소리를 지르자, 바깥에 경비원이 황급히 들어와서 상황을 확인했다.
나는 경비원을 향해 고개를 저으며 나가라고 신호를 줬다.
경비원은 내 신호를 받자마자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나갔다.
나는 경비원이 나가자마자 바로 차음마법을 펼친 뒤, 입을 열었다.
“왜긴. 어제 루나가 말한 거 잊었어?”
“닥쳐… 분명… 분명 루나가 너한테 약점을 잡혀서….”
“하아… 약점은 무슨….”
한숨이 나오는 한편 이해는 갔다.
루이스의 입장에서 나와 루나가 서로 어떻게 좋아하게 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하겠지.
마법진 구사를 시작으로, 캐비닛, 조교수의 손아귀로부터 구출해준 것 등등….
몇 개월 동안 루나와 과분할 정도로 많은 추억을 쌓았다.
그래… 루이스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으면 천하의 개 쌍놈인 루이스도 최소한 이해는 할 것이다.
루나가 왜 나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하지만 나는….
“네 덕분에 루나랑 이어진 거지 뭐….”
“…뭐?”
“네 덕분이라고.”
“우, 웃기지 마! 내가 무슨 상관인데!”
루이스를 골려주기 위해 그의 머릿속에 거짓이라는 독극물을 풀기 시작했다.
“네가 처음에 나한테 친절하게 대해줬잖아?”
“그… 그건….”
루이스도 기억할 것이다.
입학할 당시의 루이스는 친절한 얼굴로 나를 대해줬다.
하지만 나는 그때 대충 느끼고 있었다.
‘너는 친구가 아니라, 너를 우수하게 보여줄 비교 대상이 필요했던 거였지.’
최하위 등수, 평범한 외모, 그리고 평민….
루이스는 그런 자신과 비교가 될 만한 인물로 나를 찍었고, 나를 소위 말하는 시다바리처럼 부려 먹으려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우월감을 느끼고 싶었겠지.
하지만 그와 같이 입학했던 루나는 완전 달랐다.
“그에 비해서 루나는 쌀쌀했지.”
“그… 그랬지.”
친분이라는 개념을 좋아하지 않던 루나는 내 악수도 거절하며 거리를 뒀었다.
루이스가 지금까지 루나의 마음을 기다린 이유가 그것 때문일 것이다.
루이스라는 친구 이외에는 남자와 거리를 두는 여자.
그게 루나였으니까.
루이스는 내가 침묵하며 미소를 짓자, 퀭한 눈으로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는 거야? 결국 루나가 너를 좋아할 이유가….”
“말했잖아. 네 덕분이라고.”
“아니, 그러니까! 도대체 왜 내가….”
“루나한테 너랑 친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으니까 마음을 천천히 열어주더라.”
“…뭐?”
루이스의 모습은 아까까지 좀비였다면 이제는 안구가 달린 스켈레톤의 모습이었다.
피부가 완전히 하얗고, 건조하게 쫙쫙 갈라져서 마치 지점토를 붙여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런 루이스를 보며 속에 우러나오는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네 이야기로 말문을 틔우니까 루나도 점점 말수가 늘어나더라.”
“너… 너… 너….”
나는 말을 더듬으며 초점이 지워진 루이스를 보며 계속 웃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그렇게 친해지고, 서로 껴안고, 키스도 하고, 그다음은… 잘 알지?”
“너… 너 이….”
루이스는 유일한 수분을 보유한 눈으로 핏줄을 무수히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살짝 위험해 보였다.
만약 이대로 이성을 잃고 내게 마법을 사용하면 또 귀찮은 사건으로 번질 테니까.
하지만 다행히도….
“이… 이…. 이….”
루이스는 내게 욕설을 날리지도 못한 채 양손을 꽉 쥘 뿐이었다.
‘좋아… 다행히 현실을 받아들였구만.’
나는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차음마법을 해제하는 것과 동시에 루이스의 어깨에 손을 올려서 그에게 속삭였다.
“야… 부탁 하나만 해도 돼?”
“부… 부탁?”
루이스는 갑자기 분위기를 바꾼 나를 보며 의문을 품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에게 마지막 일침을 날렸다.
“제발 부탁인데, 루나랑 있을 때 분위기 좀 망치지 마. 루나가 짜증 내 하더라.”
“무… 루… 루나… 가….”
“알았지? 잘 부탁한다.”
나는 그렇게 허공을 바라보는 루이스의 등을 두드려준 뒤, 그의 방을 나왔다.
..
..
내가 다음으로 향한 곳은 칼의 방이었다.
칼도 루이스만큼은 아니지만, 초췌한 표정으로 나를 맞이했다.
그리고 방에 들어가자마자 어제와 똑같은 사과를 해왔다.
“어제 일은 죄송합니다.”
나는 그런 칼을 오히려 말리느라 진땀을 뺐다.
“이러지 마세요. 칼…. 어제 일에 대한 사과를 받으러 온 게 아니에요.”
그렇게 한참 동안 실랑이를 벌이고 나서야 칼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칼과의 실랑이가 끝나고 나서 칼은 테이블에 앉자마자 본론을 이야기했다.
“혹시라도 소냐에게는 말하지 말아주세요. 제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정말… 계속 숨기실 건가요?”
칼은 내게 소냐를 부탁하고, 루나에게 사실을 털어놨다.
이 중에서 사정을 모르는 건 소냐만이 유일했다.
그렇다면 피해자는 소냐였을까?
아니다…. 누가 봐도 제일 큰 피해자는 칼이었다.
하지만 그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아내의 행복을 바라는 것이었다.
“저는… 지금 제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나는 더 이상 그를 몰아세우지 않았다.
제일 가슴 아픈 사람은 칼일 테니까.
나는 그렇게 칼과의 대화를 마치고, 방을 나오자 칼이 내게 마지막 부탁을 해왔다.
“슈트라에 돌아가고, 제가 있더라도 절대 눈치 보지 말아주세요. 그냥… 그게 자연스러운 것처럼 소냐를 위로해주세요.”
“…네.”
그렇게 인사를 마무리하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아까 루이스의 방에서 나왔을 때와 다르게 발걸음이 무거웠다.
‘거참… 불쌍하네.’
아내를 사랑한다.
그리고 그 사랑만큼 칼은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이다.
그렇게 무수히 쌓여가는 죄책감을 소냐의 행복을 위해 감내하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칼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끼며 복도를 걷는 순간이었다.
아르모니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만약 괜찮다면 수호 님의 죄책감을 덜어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엥?’
설마 위로의 말이라도 건네주려는 건가 싶었다.
그런데 아르모니아의 목소리가 아닌 내 눈앞에 홀로그램이 띄워졌다.
칼의 기질창이었다. 그 기질창에는….
[칼 프리드리히에게 있던 기질은 지워졌습니다.]
참고로 아르모니아가 말하는 기질이라는 건 [발기 부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어… 그럼 해결된 거 아냐?’
칼이 내게 소냐를 맡긴 건 온전히 [발기 부전] 때문이었다.
그게 없다면 이제 소냐를 내게 부탁할 이유가 전혀 없어진 셈이 된 것이다.
[이게 끝이 아닙니다.]
‘엥?’
갑자기 무수히 나열된 기질들이 내 눈앞에 나열되었다.
[네토라세], [성적 희열], [자위]….
나열된 기질만 보자면 절대 평범한 사람의 기질창이 아니었다.
네토라세는 간단히 말해서 자기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 안기는 것에 흥분을 느끼는 성도착증이라고 할 수 있다.
‘…설마?’
[네. 그렇습니다. 칼 프리드리히에게 개화된 기질들입니다.]
‘…미친.’
참고로 칼에게 저런 기질은 지금까지 없었다.
칼이 내게 소냐를 부탁했을 때, 그가 가지고 있던 기질은 [발기 부전]이 전부였다.
즉, 어제 사건으로 [발기 부전]이 사라진 대신 엄청난 양의 부정적 기질이 발현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안심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
안심이 아니라, 일이 더 커진 거 같은 건 내 착각인가?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르모니아의 말처럼 내 속에 있던 죄책감이 점점 바람을 타고 휘날리기 시작했다.
‘후우… 어쩔 수 없지.’
[…?]
나는 미소를 지으며 통신으로 말했다.
‘칼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게 노력해야지.’
[….]
[….]
나는 그렇게 두 사람의 침묵 같은 칭찬을 들으며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내가 도착한 곳은….
“어제 즐거우셨나요?”
카린의 미소가 반기는 그녀의 방이었다.
나는 카린의 안내를 받아 방에 들어가자마자 감사의 말을 건넸다.
“어제 갑작스러웠을 텐데. 바로 행동해줘서 고마워요.”
“후후… 별말씀을요.”
어제 나는 루이스가 카린을 찾아왔다는 사실을 그녀의 시점으로 알아차린 다음 그녀에게 통신으로 부탁했었다.
아마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편지를 보낸 것도 기겁할 일인데, 내 목소리가 갑자기 머릿속에 들려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카린은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서 절대 입을 열지 않았다.
카린은 그저….
“필요한 일이 있다면 언제든 편하게 말하세요.”
나를 바라보며 정열적인 눈빛을 보내올 뿐이었다.
“그럼 한 가지 묻고 싶은데요.”
“후후… 정말 빠르네요. 저야 당신에게 쓸모 있는 여자라는 느낌이 들어서 오히려 좋지만요.”
“하하…. 제가 물어볼 건….”
나는 전에 있었던 루이스의 연금에 관한 내용을 물어봤다.
“루이스가 연금됐을 때, 일부러 나갈 수 있도록 유도한 거… 카린이 한 거 맞죠?”
“네. 맞아요.”
카린은 머뭇거림 없이 즉답했다.
“그럼 혹시 뭔가 계획이 있었나요?”
“네. 있었어요. 다만…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에요.”
카린은 당시에 꾸몄던 계획을 내게 술술 불기 시작했다.
정말 카린의 말대로 그녀의 계획은 거창한 건 아니었다.
심지어 계획도 어디까지나 운이 따르는 그런 계획이었다.
나야, 카린답게 리턴이 적은 만큼 리스크를 0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우수하다고 판단했지만….
그런데 카린의 계획을 들은 나는….
“카린… 혹시 이번에 슈트라로 같이 갈 때…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어요?”
루이스를 한 번 더… 아니, 아예 지옥 밑바닥까지 쑤셔 넣을 방법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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