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 학교 슈트라 (5)
어둡지만, 마나석으로 인해 길을 밝혀주는 복도.
그 조용했던 복도를 두 남자가 빠르게 걸어가며 스산한 분위기를 강하게 풍겼다.
그리고 뒤에 쫓던 훤칠한 외모의 남자가 난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루이스…. 도대체 오밤중에 어디를 가는 겁니까?”
선두에서 빠르게 걷고 있는 건 루이스였다.
그리고 그를 따가서 열심히 뒤따르는 훤칠한 외모를 지닌 남자의 정체는….
“잠시만 시간을 내어주세요. 칼.”
소냐의 남편, 칼 프리드리히였다.
그는 오밤중에 루이스의 갑작스러운 부름에 응해서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이런 밤중에 갑작스러운 부름을 받아도 마냥 수긍할 칼이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는 소냐의 제자.
루이스가 귀족인지는 그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소냐의 제자라는 것과 친분을 생각해서 수긍한 것이었다.
칼은 루이스의 강압적인 태도에도 크게 기분 나쁜 기색 없이 따라갔다.
즉, 불편한 마음은 딱히 없었다.
다만 불안한 마음만 있을 뿐….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오밤중에….’
그렇게 루이스의 뒤를 따라가던 칼은 어느 순간 발걸음의 속도를 늦추기 시작했다.
본인의 의사로 늦춘 게 아니었다.
루이스가 점점 속도를 낮췄기 때문이었다.
성 내부의 복도는 음산하기 그지없었다.
칼이 거주하는 객실 주변과 다르게 이쪽 객실들은 아무도 거주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듯 설치된 마나석이 대부분 작동하지 않는 것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조용한 복도에….
(하앙… 하아아앙!)
(히으으으윽!)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교성이 울려 왔다.
칼은 여자들의 교성이 진짜 귀신의 목소리인 줄 알았다.
하지만 점점 목소리가 퍼져나가는 방에 가까워질수록….
‘이… 이건….’
딱 봐도 남자와 여자가 이루어낸 합작에 의한 발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당황하는 칼을 바라보는 루이스는 비린내 나는 미소를 지으며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루이스가 멈춰선 장소는….
(하아앙! 더! 더 깊이!)
(저도! 저도 해주세요! 흐으읏!)
교성의 근원지인 방이었다.
칼은 처음부터 이해하지 못했던 상황을 더 혼란스럽게 만든 루이스에게 묻기 시작했다.
“루이스 학생. 빨리 지나가는 게….”
“아닙니다. 제가 오려던 곳이 이곳입니다.”
“…네?”
루이스는 마치 자신이 방 안에 있는 남자인 것처럼 흥분하며 칼에게 말했다.
“칼, 저를 믿으시나요?”
“…의도를 알 수 없군요.”
칼은 기분 나쁜 기색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대답했다.
루이스를 싫어하냐고 하면 확실하게 부정할 수 있었다.
그를 싫어하지 않았다.
하지만 좋아하냐고 하면… 애매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인 소냐가 루이스를 거북해하기 때문이었다.
칼이 루이스가 아닌 성수호에게 먼저 속사정을 말한 건 온전히 소냐의 태도 때문이었다.
루이스를 향하는 불편함과 성수호를 향하는 애정을 캐치했기 때문에 성수호에게 소냐를 부탁한 것이었다.
하지만 루이스는 신뢰도 쌓지 않은 상태로 믿음을 강요해왔다.
“이해합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믿음을 강요했으니까요. 하지만… 하지만 딱 한 번만 믿어주세요. 저는 온전히 칼을 위해서 이곳에 온 거예요.”
“…알았습니다.”
칼은 루이스를 믿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인 게 아니었다.
소냐의 제자를 믿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인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믿음과 지금 상황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럼 들어가겠습니다.”
“…네? 자, 잠시만요!”
칼은 루이스의 행동을 보고 자신이 엄청난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루이스는 칼이 제지할 시간을 주지 않고, 그대로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쾅!
결례.
아니, 이건 결례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한창 사랑을 나누고 있는 남녀의 방을 쳐들어가는 행동.
루이스는 당황한 칼의 제지를 무시하고 그대로 방을 박차고 들어가서 입을 열었다.
“지금 당장 나와!”
“!?”
루이스의 목소리는 그동안 세상과 단절되어있던 침대를 강제로 현실에 연결시켜 버렸다.
“흐읏!?”
“흐읍!?”
커튼이 두꺼워서 침대 내부의 사람은 정확하게 구분할 수 없었다.
확실한 사실은 커튼 안에 사람이 있고, 그게 남자와 여자라는 사실이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칼은 루이스의 행동에 분노가 아닌 창피함이 몰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남의 방에 쳐들어가는 것도 심각한 상황인데, 소리까지 지르며 악행을 낙인찍는 행위.
변명의 여지가 완전히 차단된 것이었다.
칼은 침대 안에 있는 남녀가 들리지 않게 목소리에 힘을 실어서 루이스에게 귓속말했다.
“루이스 학생! 지금 도대체 뭐 하는 겁니까!? 빨리 사과하고 이 방을….”
“기다리세요. 제가 부른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될 겁니다.”
이유 따위는 알고 싶지 않았다.
그저 이 방에 있는 두 사람에게 사과하고 이 방을 뛰쳐나가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하지만 칼의 사과를 하고 싶은 마음은 루이스의 목소리에 의해서 처참하게 무너져내렸다.
“나오라고! 빨리!”
“하아….”
한숨은 주인은 칼이 아니었다.
침대 안에서 들려오던 소리였다.
커튼이라는 단절된 세상 속에서 남자가 실루엣이 등장하며 부스럭거리기 시작했다.
실루엣 상태를 보니, 옷을 갈아입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 누구야 도대체….”
그렇게 한참을 구시렁구시렁하며 옷을 갈아입고 커튼이라는 장막을 걷고 나온 인물은….
“루이스랑… 칼…!?”
당황한 것을 넘어서서 경악한 표정을 한 성수호였다.
“성수호 학생? 어째서 여기에….”
그리고 성수호의 본 칼은….
‘잠깐 지금 성수호 씨가 침대에서 나왔다는 건….’
칼 프리드리히는….
‘설마….’
침대를 보며 평생 잊을 것 같았던 흥분을 오랜만에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흥분하되, 흥분한 이유가 다른 루이스가 미소를 지으며 성수호를 바라봤다.
‘내가 너랑 소냐 교수의 추문을 여기저기 떠들고 다닐 수는 없지. 하지만 칼… 이 남자에게 알려주는 건 별개의 문제지.’
루이스는 혹시 모르는 사태를 대비해서 변명 거리도 준비해 놓은 상태였다.
정체 모를 남자와 소냐가 이 방에 들어갔다는 사실만 봤다고 변명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변명한다면 소냐와 칼에게 비난받을지언정 성수호의 비난은 면책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변명한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끝나고 나면 소냐랑 성수호가 개지랄하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루이스는….
‘칼이 두 사람의 일을 주변에 떠벌려주면 그것만으로 충분해.’
희망찬 미래를 기대하며 모든 것을 감내할 결심을 한 것이었다.
그리고 성수호와 소냐를 옭아맬 하나의 족쇄가 더 있었다.
방 안에 성수호가 있다는 사실은 확인됐다.
그럼 이제 마지막 보험을 들 차례였다.
“성수호. 너, 허가받고 여기 이용하는 거냐?”
“….”
합당한 질문이었다.
성수호가 아무리 루나와 친하다고 해도 아틀러 성 내부의 객실을 함부로 이용하는 건 문제의 소지가 있었다.
결례를 넘어선 중죄.
아틀러 성은 온전히 루나의 소유이고, 객실을 이용할 때는 루나의 권한 없이 함부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만약 무단으로 이용한 사실이 알려지더라도 루나가 용서할 것이다.
친구니까.
하지만….
‘루나한테 알려지는 걸 피할 수는 없겠지?’
성수호가 침묵하자, 루이스는 사냥꾼의 눈빛으로 그를 더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왜 아무 말도 안 해? 네가 정직하게 대답만 하면 순순히 물러나겠어.”
루이스의 협박성이 담긴 제안에 반응한 건 성수호가 아닌, 칼 프리드리히였다.
“루, 루이스! 그만… 그만 갑시다! 지금 이런 무례를….”
칼은 두려웠다.
저 커튼 안에서 숨 쉬는 여자가 소냐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하지만 두려움의 종류가 달랐다.
만약 소냐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소냐가 상처 입을까 봐 두려웠던 것이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하아, 하아… 소냐….’
오랜 시간 느껴보지 못했던 욕망의 덩어리가 아랫배에 차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욕망은 주변을 감싼 어둠 덕분에 감출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감춰진 칼의 욕망을 자극하는 루이스의 발언.
“칼. 저를 믿어주세요.”
“미, 믿어 달라니….”
루이스는 어물쩍거리는 칼의 모습에 만족하며 다시 성수호를 향해 외쳤다.
“말해 보라고! 성수호! 만약 허가받고 사용한 거라면 내가 무릎 꿇고, 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사과할게. 하지만 네가 무단으로 사용한 거라면….”
루이스는 달빛의 환영을 받는 성수호를 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이 사실을 영주에게 알릴 수밖에 없지.”
“하아….”
성수호의 짜증이 담긴 한숨이 루이스의 뇌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마치 마약 같았다.
계획대로만 흘러간다면 루이스는 소냐와 성수호의 비난과 루나의 신뢰를 교환할 수 있는 것이다.
루이스의 계획대로라면….
“그리고 거기 침대 안에 있는 여자!”
“….”
침대 내부는 커튼 때문에 확인할 수 없었지만, 이불이 들썩거리며 사람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여자다.
아까 교성도 분명 여자였다.
그리고 루이스는 이미 그 여자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당신도 나와 보는 게 어때? 허가도 없이 성 내부를 마음대로 이용한 사실은 중죄라고!”
루이스의 말에 반응한 건 또 칼 프리드리히였다.
그는 더 이상 못 버티겠다는 듯이 그의 팔을 붙잡고 끌어당겼다.
“루, 루이스 학생! 그만합시다! 아무리 문제가 있는 상황이라고 해도 우리가 이렇게 할 이유까지는…!”
“가만히 있어 보세요! 칼! 나와 보라고! 감히 영주에게 허락도 없이 성을…!”
루이스가 그렇게 신나게 성수호를 몰아세우는 순간이었다.
멜로디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아름다운 음색을 띤 목소리가 벽을 훑으며 루이스와 칼의 귀에 깃털처럼 흘러들어왔다.
“나갈게요.”
“후….”
루이스는 그제서야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소냐… 권위로 찍어 누르고 싶어도 남편이 있다면 어떻게 할 수 없겠지.’
루이스도 소냐가 남편과 사이가 좋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분명 천생연분 같은 관계임에도 왜 이렇게 바람을 피우는지 모르겠지만….
하지만 이로써 한 가지 사실은 확실해졌다.
‘끝이다.’
화려한 연극이 클라이막스를 앞뒀다는 사실이었다.
루이스는 침대 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동시에 성수호의 표정을 바라봤다.
짜증이 나다 못해 분노한 얼굴로 침묵하는 성수호.
‘그래. 그렇게 짜증과 분노로 입 닫고 있어라.’
루이스는 성수호의 모습에 만족하며 고개를 슬며시 돌렸다.
칼은 루이스와 마찬가지로 달빛이 닿지 않는 공간에 같이 있었지만, 서로의 표정을 확인할 정도로 가까웠다.
칼은 마치 미래를 예견한 것처럼 경직된 표정으로 침대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루이스는 그런 칼의 모습에 죄책감이 아닌 흥분의 미소를 건넸다.
‘칼… 미안하지만, 당신도 결국 평민이잖아. 내가 그동안 당한 걸 당신도 당하지 않으면 안 되지.’
귀족인 자신이 고통받았는데, 혼자만 행복해한다?
루이스는 칼의 행복을 지옥에 던지고, 자신의 행복과 교환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지옥 불구덩이의 행복을 빠뜨린 칼은….
“허읍!?”
갑자기 고개를 획 돌려서 루이스의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획 돌려버렸다.
마치 보면 안 되는 것을 봤다는 것처럼….
루이스는 그 모습에 뇌가 폭발할 것 같은 희열을 느꼈다.
‘좋아… 표정을 보아하니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겠네. 그럼 이제 적당히 연기를….’
루이스가 칼의 반응에 만족하며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내가 허락했어.”
“…뭐?”
분명 아까 목소리와 비슷한 음색이 담긴 목소리였다.
아까 목소리는 커튼의 방해를 받고 날개로 흩어지는 듯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지금 목소리는 마치 그 깃털들이 전부 모여 광활한 날갯짓을 하는 듯한 강인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날갯짓 같던 목소리의 주인을 본 루이스는….
“어… 어어… 어어어……….”
마치 실어증이 걸린 사람처럼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의 눈에 비친 존재는….
“내가 수호 씨를 이 방에 데리고 온 거니까 허락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루이스?”
남자 정복 망토만 걸친 채 맨다리를 매혹적으로 드러낸 루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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