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 학교 슈트라 (5)
“수호 씨….”
“수호 학생….”
밤은 이제 막 시작이었다.
루나와 소냐는 아직 모자란다는 듯이 나를 응시했고, 나는 그녀들의 기대에 부응해주기 위해 다시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그렇게 자세를 잡는 순간 아르모니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호 님.]
‘응?’
아르모니아가 관계 중에 통신을 한다라….
목소리에 다급함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분명 좋지 않은 상황이 있다는 건 틀림 없었다.
그리고 그런 내 직감은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다.
[루이스 브란트루프가 카린 브란트루프에게 접근했습니다.]
‘…뭐?’
하지만 내용까지는 예상치 못했다.
혹시라도 루이스가 미친 짓이라도 벌이는 건가 싶어서 걱정했지만, 내가 생각하는 그런 일은 아니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저 대화가 주목적인 것 같습니다.]
‘아… 그렇다면 다행이네. 카린이라면 알아서 다 해결하겠지.’
[문제는 수호 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
[그렇습니다. 대략적인 대화 내용은….]
간단히 말해서 나중에 학교생활을 도와주겠으니, 나와 루나의 사이를 멀어지게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정신머리가 있나?’
분명 루이스는 훗날 학장과 비등비등한 위치에 올라설 정도로 뛰어난 마법 잠재성을 지니고 있다.
뭐, 그 잠재성이 에넬이지만….
하지만 그게 끝이다.
루이스는 모든 것을 교묘하게 설계하고, 진행하는 카린과 남매가 맞나 싶을 정도로 분별없이 행동했다.
‘뭐… 그런 점 덕분에 내가 카린과 안나랑 이어질 수 있었긴 하다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분명 나는 지상 낙원에서 행복을 누리고 있는데, 마음속에 검은 안개가 살포시 자리 잡은 느낌이었다.
걷어내지 않고 떠나기에는 껄끄러운 그런 안개가….
카린이라면 알아서 잘하겠지만….
뭔가… 좀 더….
‘아!’
[…?]
생각났다.
‘흐흐흐… 루이스를 끝장낼 방법이 생각났어.’
나는 그렇게 웃으며 아르모니아에게 부탁했다.
***
루이스는 무표정한 카린과 마주 보며 입을 열었다.
“마법을 개화했다며? 마나의 흐름이 느껴지는 것을 보니 진짜였나 보네.”
“….”
루이스는 살면서 카린에게 단 한 번도 축하 멘트를 건넨 적이 없었다.
냉정한 거 아니냐고?
전혀 냉정하지 않았다. 그건 카린도 똑같았으니까.
앙숙 같던 두 사람 사이에 축하나 격려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질투와 괄시뿐….
그렇게 철천지원수보다 못한 관계였지만, 루이스는 살면서 처음으로 카린에게 칭찬과 축하 멘트를 건넸다.
“축하한다. 내년에는 슈트라에 입학할 수 있겠네.”
“…그래. 축하해줘서 고마워.”
카린은 분명 감사의 인사로 답했다.
하지만 카린의 표정은….
‘저 쓰레기 같은 표정 어떻게 못 하나?’
마치 루이스를 길바닥에 존재하는 오물을 보듯 표정을 찡그리고 있었다.
입가에 미소조차 걸치지 않은 채….
루이스는 카린의 표정에 신경 쓰였다. 하지만….
‘아냐. 오늘은 분란을 만들려고 온 게 아니야. 최대한 숙여주자.’
루이스는 평생 카린을 봐왔지만, 아직 카린에 대해 몰랐다.
저자세로 카린을 대하는 것이 오히려 독이 된다는 사실을….
“만약 필요한 게 있다면 말해줘. 그래도 하나뿐인 누이가 후배로 들어오는데, 모른척할 정도로 매정하지는 않으니까.”
“나는 매정한 쪽이 편하겠는데?”
“…하아.”
처음부터 잘 풀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시작부터 매몰찬 대우를 받을 것이라는 생각도 못 했었다.
‘참자… 조금만….’
루이스는 분노를 속으로 삭이며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그래. 혼자 노력하는 건 좋지. 뭐, 말 길게 하는 거 좋아하지 않는 건 알고 있으니까 본론부터 말할게.”
탁, 탁, 탁, 탁, 탁.
루이스는 식탁을 중지로 두드리며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시작했다.
카린에게는 씨알도 안 먹혔지만….
카린에게 씨알도 안 먹히던 루이스의 행위는 그의 대사로 분위기를 급변시켰다.
“너… 성수호 그 새끼랑 그렇고 그런 관계지?”
“….”
카린의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루이스는 그런 카린의 표정을 보며 살짝 죄책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카린은 겉으로는 루이스를 비난하고, 괄시했지만 딱 한 번 다정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루이스가 침대 밑에 숨어 있을 당시에 성수호에게 루이스를 잘 대해달라고 말하던 카린의 말.
‘…그래도 가족이라는 건가.’
카린이 했던 말이 루이스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 그녀의 계획된 대사라는 것도 모른 채….
루이스는 죄책감을 잠시 머릿속 깊숙이 박아놓고 다시 이야기를 진행했다.
“그런 표정 짓지 마. 누구한테도 말한 적 없어. 다른 사람도 모르는 사실일 거고…. 아직은 말이지.”
루이스의 말에 서서히 강압적인 분위기가 담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루이스의 강압에도 불구하고, 카린은 자세를 꼿꼿이 유지한 채 굳은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마치 루이스가 무슨 말을 할지 기다린다는 듯한 표정….
루이스는 카린의 생소한 표정에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말했다.
“보니까 대화는 수월하겠네. 카린 브란트루프… 나랑 거래하자.”
“…거래?”
눈썹을 찡그리는 카린.
하지만 정작 루이스는 자신을 매정하게 보는 카린에게 매혹이라는 것을 느꼈다.
‘참아… 저년은… 창녀야….’
증오심만 가득했던 그녀에 대한 감정은 어느새 뒤틀린 욕망으로 루이스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시도 때도 없이 발작처럼 일어나는 흥분.
하지만 루이스는 무작정 참아내지는 않았다.
‘어차피… 식탁 때문에 보이지도 않을 거고….’
그렇게 안도하며 카린의 상태를 다시금 확인했다.
카린은….
‘…진짜 기분 나쁘네.’
마치 루이스의 상태를 알고 있다는 듯이 혐오스러운 감정을 담아서 그를 쏘아보고 있었다.
루이스는 그런 카린의 표정을 무시하며 입을 열었다.
“너랑 성수호… 두 사람이 있었던 일은 내가 무조건 비밀에 부쳐줄게. 대신… 나랑 루나가 이어지게 도와줘.”
루이스는 지금껏 루나의 사랑을 받기 위해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
자신만의 힘으로 그녀의 마음을 잡고 싶었던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성수호… 그 새끼를 믿을 수 없어.’
묘지에서 있었던 싸움.
성수호도 당시에 느꼈을 것이다.
루이스가 살의를 가지고 마법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아니, 오히려 믿어서는 안 돼. 분명… 분명 내가 모르는 곳에서 이상한 계략을 꾸미고 있겠지.’
루이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카린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런데 카린의 표정은….
‘응? 뭐지? 내 말이 그렇게 의외였나?’
잠깐이지만, 당황하며 눈동자를 희미하게 떨었다.
하지만 이내 금세 정신을 차리고는 다시 무표정으로 루이스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래가지 않아서 결정했다.
“좋아.”
“…정말?”
루이스는 몸을 앞으로 내세우며 진심으로 놀라 했다.
루이스가 아는 카린은 철두철미하게 계산적인 여자였다.
단순한 답이야 즉답한다고 하지만, 사람과 관련된 일에 이렇게 즉답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루이스는 카린의 다음 말에 오히려 기분이 엉망이 된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대신 성수호 씨랑 내가 이어지게 너도 도와줘야겠어.”
“하아… 그런 새끼….”
루이스는 카린의 말에 현기증과 더불어서 하복부로 또다시 욕망이 들끓기 시작했다.
성수호에게 성노예처럼 취급받던 카린의 모습이 지금 눈앞에 있는 그녀와 겹쳐 보였기 때문이었다.
카린은 그런 루이스의 반응 따위는 관심 없다는 듯이 재차 물었다.
“네가 도와주면 나도 너를 도와줄 거야.”
“…정말이지?”
“물론이야. 못 믿겠으면 계약서라도 써줄까?”
루이스는 카린의 말에 헛웃음을 흘렸다.
이런 일에 계약서를 쓴다는 이야기도 못 들었고, 쓸 이유도 없었다.
나중에 서로 불만족한 결과가 나오면 그 계약서를 가지고 어디에 가지고 가서 항의하겠는가?
루이스도 카린의 말이 그저 말장난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적당히 받아쳤다.
“됐어. 너랑 내 사이에 무슨 계약서는….”
“…방금 전에 기분 좋았는데, 지금 말 때문에 기분이 오물통에 쑤셔진 기분이야. 너랑 나랑 사이를 논할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
“하아….”
이걸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카린은 평생 겉으로는 루이스의 존재를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흥… 속 마음 정도는 좀 내비치면 덧나나?’
루이스는 카린의 마음속을 알고 있다는 착각을 위안으로 삼으며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씨발… 분명 내 몸인데, 왜 제어가….’
아직 테이블 아래에 루이스의 추잡한 물건이 앞으로 솟아난 상태였었다.
한번 발기되면 도통 진정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신경을 쓰면 쓸수록 루이스를 더 곤란하게 만들 뿐이었다.
루이스가 그렇게 우물쭈물하자, 카린이 짜증이 서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갈 거면 빨리 가주면 안 될까?”
“이, 이왕 온 거 조금만 구경하고….”
“….”
카린은 루이스의 말에 진짜 발기한 모습을 본 것처럼 혐오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저 방에 좀 더 머무르겠다는 말이 저런 표정을 만들어낼 줄은 몰랐던 루이스는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씨발! 누가 보면 내가 덮치기라도 한 줄 알겠네!’
카린은 그렇게 속으로 분노를 삭이며 진정하던 루이스의 모습을 뚫어지게 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너는 나를 어떻게 도와줄 건데?”
“….”
루이스는 카린의 말에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루이스의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을 되살리며 하복부를 자극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침묵하는 것도 좋지 않았다.
서로의 이득을 위해 손을 잡은 상태.
시작부터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면 의미가 없어진다.
“일단… 슈트라 내부의 사정은 내가 더 잘 알잖아. 학교에 입학하면 내가 그 녀석을 꿰어서 자주 만나게 해줄게.”
“뭐… 그건 확실히 도움이 되겠네.”
천하의 카린도 슈트라 내부의 사정까지 완벽하게 꿰고 있지는 않았다.
졸업한 학생들에게 정보를 사더라도 한계가 있었다.
슈트라의 내부는 결국 교수들의 결정으로 돌아가는 곳이다.
교수들이 바뀌고, 내부 규정이 바뀌면 반쪽짜리 정보일 뿐이었다.
카린이 그렇게 마음에 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루이스는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야. 그러고 보니까 아까 성수호가 빈 객실 쪽을 돌아다니더라.”
“…빈 객실?”
성수호의 이야기에 카린의 눈빛이 마치 태양 빛처럼 광채를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광채에는 불안감도 섞여 있었다.
카린은 루이스의 말을 듣자마자 바로 문을 나가서 시종에게 뭔가 말하기 시작했다.
‘정보력이 좋은 여자니까… 성수호가 어디 갔는지 찾으려는 건가?’
루이스도 궁금했다.
성수호는 오밤중에 갑자기 빈 객실 쪽을 향했을까?
당시에는 궁금했지만, 차마 그를 막아 세우거나 쫓을 수 없었다.
아까는 성수호가 말한 루나에게 떨어진다는 소리를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루이스의 물건이 거의 다 진정될 때쯤, 카린은 시종에게 정보를 듣고 마치 분노한 듯이….
쾅!
문을 쾅 닫으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뭐야? 갑자기 왜 문을….”
“…지금 다른 여자랑 빈 객실에 몰래 들어갔대.”
“하하하….”
루이스는 실소를 흘렸다.
여색이 짙다 못해 아예 흘러넘치는 놈이라는 건 진작 알았다.
‘멍청한 녀석… 하필 이 년의 심기를 건드리냐. 뭐… 네가 선택한 여자니까 잘 해결해라. 슬슬 진정도 됐겠다. 슬슬….’
루이스는 그렇게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순간이었다.
카린의 짜증이 섞인 말이 그의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하필 상대해도 이미 결혼한 여자를….”
“…뭐? 무슨 말이야?”
루이스의 질문에 카린은 피 묻은 칼처럼 섬찟한 느낌의 목소리를 흘렸다.
“소냐 프리드리히 교수. 그 여자랑 빈 객실에 들어갔다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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