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 학교 슈트라 (5)
“아, 아버지…?”
루나는 이게 꿈이라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 채 위르겐을 만났다는 기쁨에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루, 루나야….”
루나의 눈물에 머뭇거리던 위르겐은….
“루나야!”
루나를 껴안고는 울부짖기 시작했다.
생소한 위르겐의 모습에 루나는 한동안 넋을 잃은 채 그의 품 안에서 머뭇거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버지….”
위르겐을 꼭 끌어안으며 그와 같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 꼭 끌어안은 채 하염없이 울었다.
그렇게 몇 시간 같은 몇 분 동안 지칠 정도로 운 두 사람은 그제서야 서로의 몸을 떼고는 서로의 얼굴을 정식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평소에 눈물을 잘 흘리지 않는 모녀가 너무 울어서 그런지 눈이 빨갛게 팅팅 불어 있었다.
“내가… 또 너를 울렸구나.”
“아버지께서는… 처음 우셨네요.”
두 사람은 그렇게 말하며 서로 실실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화원이었다.
그것도 과거, 루나가 아직 어렸을 시절에 존재하던 화려한 화원.
루나는 그런 화원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라… 화원이 이렇게 됐었나?”
“일단 앉아서 이야기하자꾸나.”
“아… 네.”
루나는 아까의 감흥을 지우고, 어린 시절 위르겐을 대한 것처럼 다소곳한 포즈를 위하며 조심스럽게 걷기 시작했다.
머리와 어깨가 흔들리지 않게 목에 힘을 꽉 주고, 상체와 하체가 쓸데없는 유혹을 담지 않게 굳은 채 발을 천천히 한 발짝 내디뎠다.
그런 루나의 모습을 본 위르겐은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루나야.”
루나는 위르겐의 목소리에 흠칫 놀라며 양손으로 치마를 잡고 양발을 멈춰 세웠다.
“네, 아버지! 호, 혹시 제가 실수를….”
“그러지 않아도 된다.”
“…네?”
루나는 고개를 들고 위르겐의 표정을 바라봤다.
루나가 알던 위르겐이라면 지금 같은 상황에서 호통을 치며 자세를 교정해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교정 후, 일과가 끝나면 그날 있었던 잘못을 전부 모아서 벌을 받을 생각을 하며 두려움에 몸을 떨었을 것이다.
하지만 루나의 눈동자에 들어오는 위르겐의 모습은 그녀가 지금까지 알던 위르겐이 아니었다.
“이제… 이제 그러지 않아도 된다.”
죄책감이 담긴 눈물로 호소하는 생전 본 적 없던 위르겐의 모습이었다.
“내가… 내가 너무 너를 모질게 대했다.”
위르겐은 그 이후에 루나에게 자신이 했던 잘못에 대해서 읊으며 사과하기 시작했다.
“아비로서, 그리고 가주로서 책임도 못 진 주제에 너에게 엄격한 낙인만 찍어 버렸어. 나는… 나는 너에게 아버지라고 불릴 자격도 없는 녀석이다.”
“아버지….”
루나는 눈물이 흐르는 위르겐의 눈가를 손으로 훔치며 말했다.
“저도… 분명 어린 시절에는 서운했어요. 하지만… 지금 와서 알게 되었어요. 아버지의 가르침 덕분에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요.”
“루나야….”
두 사람은 그렇게 지긋이 바라본 뒤, 천천히 화원을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걸어 다니며 이야기를 나눴다.
과거의 이야기를 나누다가, 현재로 점점 넘어오는 이야기.
대화 시작 부분은 위르겐의 입술이 많이 움직였지만, 대화 후반으로 갈수록 루나에게 점점 토스 되어갔다.
그리고 대화 막바지에 가문의 복권과 영지를 회수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클라이맥스에 도달했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들임에도 위르겐은 마치 처음 듣는 것처럼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네 덕분에 나와 노라… 그리고 우리 가문이 전부 살아났구나.”
그리고 위르겐은….
“아… 아버지….”
루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흐뭇하게 웃었다.
생전에 바라던 딸의 머리를 쓰다듬는 행위. 살아서는 못 했지만, 이렇게 꿈속에서 그의 소원을 이룰 수 있었다.
그리고 위르겐의 그 소원이면서 한편으로 루나가 꿈꾸어왔던 소원이기도 했다.
루나는 생소한 경험에, 얼굴을 붉히며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의 손… 정말 따뜻하네요.”
“…지금이라도 느끼게 해줘서 다행이구나.”
루나가 그렇게 위르겐의 쓰다듬을 받으며 기분이 나른해지는 순간, 아직 전해주지 않은 소식을 떠올릴 수 있었다.
마지막까지 잘 간직하다가 알려주려고 했던 그 소식.
“아… 그… 아버지. 제가 사실….”
“….”
위르겐은 머뭇거리는 루나를 보며 다시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이미 다 안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좋아하는 자가 생긴 것이냐?”
“아… 네!”
루나는 위르겐에게 성수호에 관한 이야기를 쭉 읊어주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만날 때부터 레빈에 와서 터진 사건을 해결할 때까지….
위르겐은 루나의 말을 듣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엄청 좋은 남자구나… 내가 해주지 못했던 걸 대신 해주다니….”
“아버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아버지에게 너무 많은 걸 받았어요.”
루나는 어린 시절 느꼈던 위르겐의 압박을 느끼면서도 그를 향해 품었던 존경심과 사랑을 전부 말로 설명했다.
위르겐은 이미 잘 꿰매져 있던 첫 단추를 다시 확인하듯 루나의 진심을 들으며 화단을 산책했다.
분명 같은 이야기들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표정에는 지루함이라고는 단 1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게 이야기가 이어지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흘렀는지 날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루나는 석양빛에 상관없이 미소를 지으며 계속 입을 여는 반면에 위르겐은 슬슬 준비하듯 쓰게 미소를 지었다.
“루나야.”
“네. 아버지.”
루나는 지금껏 위르겐에게 보여주지 않던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위르겐은 속이 쓰리면서도 참고 결국 그녀의 미소를 지우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슬슬 돌아갈 시간이구나.”
“아….”
루나는 꿈속이라 그런지 위르겐의 말을 이별의 신호라고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저 즐거운 일과를 마무리하자는 식으로 들려온 것이었다.
위르겐은 서글픈 표정을 짓는 루나를 보며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 말을 남기기 시작했다.
“루나야. 네가 좋아하는 남자… 정말 괜찮아 보이더구나.”
“아… 정말 다행이에요. 아버지께서 마음에 드셨다니….”
루나는 자신의 칭찬을 받은 것처럼 볼을 연분홍빛으로 물들이며 미소를 지었다.
위르겐은 그런 루나의 표정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붉은빛을 띠던 화단이 어느새 어둠에 점점 파묻히기 시작했다.
어둠이 내려앉기 바로 직전, 위르겐이 루나에게 한 마디를 건넸다.
“사랑한다. 루나야.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아버….”
루나가 그렇게 대답하려는 순간 세상이라는 연극이 끝난 것처럼 전부 어둠으로 뒤덮였다.
..
..
“지…?”
루나는 마지막 말을 입 밖으로 내보내며 자신을 바라보는 상태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아까까지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위르겐은 사라졌었다.
오로지….
“좋은 꿈 꿨어? 계속 웃던데.”
밝게 웃는 성수호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
루나는 위르겐과 만났던 생생한 장면을 떠올리며 헐레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꿈인지 모르고 계속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눴던 위르겐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무릎베개를 해주고 있던 성수호가 있을 뿐….
루나는 그제야 아까 있었던 일이 전부 꿈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걱정스러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성수호.
루나는 크게 한숨을 쉬며 마음을 안정시켰다.
“네… 좋은 꿈 꿨어요.”
“무슨 꿈인지 물어봐도 돼?”
“…아버지를 뵀어요. 평생 꿈에서 단 한 번도 나오시지 않으셨는데….”
루나는 꿈속의 이야기를 성수호에게 모조리 털어놓았다.
성수호는 그런 루나의 말에 표정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며 들어줬다.
루나는 위르겐과 노라의 묘지를 보며 울먹임을 참으며 간신히 마지막 말을 맺었다.
“마지막에… 인사를 제대로 못 드렸어요.”
루나는 꿈속에서조차 부모님에게 제대로 된 인사를 건네지 못했다는 사실에 자괴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현실에서 했던 후회를 꿈에서도 되풀이한 셈이었다.
성수호는 그런 루나를 살며시 껴안으며 속삭였다.
“그러면 여기서 마저 하자.”
“하지만 이미 늦었….”
“아냐. 늦지 않았어.”
성수호는 루나를 살며시 떼어낸 뒤, 그녀를 보며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말했다.
“예전에 못 했다고 후회하고, 꿈에서도 못했다고 후회해봤자 소용없다고 생각해. 중요한 건… 지금 하는 거지.”
“….”
루나는 성수호를 껴안은 채 무덤을 힐끗 쳐다봤다.
마음의 응어리.
생각해보면 루나는 무덤 앞에 와서 인사를 건넸어도 떠날 때 인사를 건네지는 않았다.
이미 후회해봤자 늦었다는 식으로 또 다른 후회를 계속 낳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 나는 애초에 생각을 잘못하고 있었어.’
루나는 그렇게 속으로 다짐하며 성수호에게 말했다.
“고마워요… 수호 씨가 없었으면 계속 후회할 뻔했어요.”
“자… 그럼 정식으로 인사드리자.”
“네….”
성수호의 말을 들은 루나는 눈물을 닦고, 표정과 자세를 바로잡으며 입을 열었다.
“아버지, 어머니… 뒤늦게 이렇게 인사드려서 죄송해요. 그리고… 사랑해요.”
루나는 자신의 마음의 응어리를 전부 털어낸 듯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루나는 자신의 응어리를 전부 풀어낸 뒤,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건물에 설치된 화려한 창문으로 마치 빛 세례를 연상시키는 황금빛 기둥들이 건물 안에 있는 묘지에 하나씩 비추고 있었다.
“전에는 느끼지 못했는데, 건물 정말 잘 지어놨다. 아침마다 햇살이 묘지를 전부 비추는 것을 보면….”
“그러게요… 전에 왔을 때는 못 느꼈었는데….”
예술 작품이 고스란히 현실에 드러난 모습이었다.
그리고 저 멀리 그 예술 작품의 주인공 같은 남자가 우두커니 서서 커다란 묘비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석고상이 서 있다고 해도 모든 사람이 믿을 정도로 견고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학장은 그렇게 태양 빛에 비친 클라우디아의 묘비석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다가와서 쓰게 미소를 지었다.
“허허… 미안합니다. 나이를 먹다 보니 시간관념이 없어져서 아침이 온 줄도 몰랐군요.”
“괜찮습니다. 저희는 잠까지 잤는걸요.”
“허허허. 그럼 슬슬 돌아갑시다.”
학장에게 너스레를 떨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루나는 그렇게 학장에서 너스레를 떠는 성수호를 보며 간이 쪼그라드는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수호 씨는… 과연 나랑 어울리는 남자일까?’
루나는 그저 배려심 하나만으로 성수호를 무작정 용서하거나, 이해해주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가진 재능과 그가 베풀어준 은혜, 그리고… 사랑.
이 모든 것이 루나에게 압도적인 부담감을 안겨줬기 때문에 성수호의 바람기를 이해해준 것이었다.
질투심 하나 때문에 성수호라는 남자의 인내심을 건드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늘 꿈속에서 했던 위르겐의 말 때문인지, 가뜩이나 가늠할 수 없는 성수호의 평가가 더 올라간 상황이었다.
아무리 꿈이라고 해도 그 엄격했던 위르겐의 검증을 받았다는 사실이 루나에게는 생각보다 큰 자리를 차지한 것이었다.
그렇게 부담감을 가지며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던 루나에게 성수호가 말을 건넸다.
“루나… 괜찮다면 떠나기 전에 혼자 5분 정도만 시간을 줄 수 있을까?”
“5분이요? 뭘 하시려고요?”
“…두 분한테 인사드리고 떠나고 싶어서.”
“그거라면 지금이라도….”
“음… 몰래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서….”
“…알았어요.”
루나는 성수호의 모습에 마음에 쌓였던 부담감을 털어낼 수 있었다.
‘수호 씨는 보상을 바라고 나한테 잘해준 게 아니야. 나도… 못 해주는 것에 대한 부담감보다는 해줄 수 있는 것을 찾아보자.’
그렇게 생각하며 성수호에게 말했다.
“그럼 저는… 건물 밖에서 기다릴게요.”
루나가 학장의 눈치를 보며 입을 열자, 학장은 눈치 빠르게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저도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귀찮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허허허. 사과받았으니, 나중에 또 부탁해도 된다는 뜻으로 받겠습니다.”
“하하하….”
그렇게 성수호와 대화를 마친 학장이 먼저 발걸음을 옮겼고, 루나는 그 뒤를 따라가다가 성수호의 모습을 힐끗 바라봤다.
진지하게 묘지를 보며 묵념하는 성수호의 모습.
‘…나도 그저 받기만 해서는 안 돼. 뭔가 해줘야 해.’
루나는 속으로 다짐하며 건물 밖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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