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 학교 슈트라 (5)
수호 상조.
좋은 곳으로 모셔다드리게… 아니, 이게 아니지.
저렇게 말하니까 상조 분위기가 아니라, 저승길 안내원 분위기네.
내 말을 들은 노라가 화들짝 놀라며 입을 열었다.
(설마 저랑 남편을 묘지에 보내주시려는 건가요?)
“네.”
(어머, 어머!)
노라는 옆에 있던 위르겐의 팔짱을 끼며 흥얼거렸다.
(여보. 드디어 아버님을 다시 뵙겠네요. 당신, 그렇게 뵙고 싶어 했잖아요.)
(…그렇지.)
뭐랄까 딱히 기뻐하는 표정 같지 않았다.
위르겐의 표정을 보자면 오묘한 표정이라는 단어가 어떤 의미인지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표정에 너무 많은 감정이 담겨 있어서 어떤 감정을 품는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뭘까….’
매번 저런 표정을 짓는다고 해서 기분 나쁘다는 건 아니었다.
그저 궁금했다.
그가 왜 저런 표정을 짓는지….
하지만 본인이 말할 생각이 없어 보이니 나도 딱히 먼저 묻지는 않았다.
일단 시신이 있는 장소는 얼추 알아냈다.
문제는 옮기는 것이다.
“일단 저녁에 옮기는 걸로 하죠.”
아무리 내가 철면피처럼 행동할 수 있는 권력이 있다고 해도 시신을 대낮에 옮길 정도로 정신머리가 없는 건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아틀러 성은 국왕의 행차로 인해서 분주한 상황이었다.
밤이 되면 성 뒤편에 있는 화단과 뒷산까지 신경 쓰지 못할 것이다.
밤에 조용히 옮긴다면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밤에 다시 오는 것으로 결정하고는 방으로 돌아가려는 순간이었다.
“야.”
“….”
단어 하나로 내 뇌를 기분 나쁘게 만들 수 있는 인물은 몇 되지 않았다.
그리고 아틀러 성에는 단 한 명만 있다는 사실도 이미 알고 있었고….
나는 이미 정체를 알고 있음에도 혹시나 하는 희망을 품고 나를 부른 상대방을 확인했다.
그리고….
“하아….”
한숨과 함께 안구로 인지한 상대방의 얼굴 때문에 머릿속이 짜증이 곰팡이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한숨을 쉬자, 루이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왜 한숨이냐? 오히려 한숨을 쉬어야 할 건 나인 거 같은데?”
“그래. 그래, 여기서 한숨 많이 쉬어라. 나는 떠나줄 테니까.”
나는 루이스를 무시한 채 다시 몸을 돌려서 방으로 향하려고 했다.
일말의 희망을 품은 채 내디딘 내 발걸음은….
“멈춰.”
“….”
루이스의 말에 또다시 무너져 내렸다.
나는 일단 얌전히 루이스의 말에 따라 멈춰서 고개만 돌렸다.
“왜?”
“여긴 왜 온 거야?”
생각 같아서는 여기에 남아서 루이스의 속을 벅벅 긁으며 기분을 풀고 싶었다.
하지만….
“그냥 산책하러 나온 것뿐이야.”
“….”
나는 그저 조용히 상황을 마무리 짓는 것에 집중했다.
내 대답을 들은 루이스는 한동안 침묵하더니, 코웃음을 치며 입을 열었다.
“뭐… 그래. 조만간 슈트라에 돌아가야 할 테니까 많이 봐둬라. 네가 이런 성안에 언제 들어와 보겠어? 안 그래?”
“…설마 그 이야기하려고 부른 거냐? 나는 이만 간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내딛는 것과 동시에 또 루이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만간 폐하와 수많은 귀족이 루나를 축하하기 위해서 이곳에 와.”
“…?”
이미 세 번째다.
학장과 루나에 이어서 세 번째 듣는 이야기였다.
두 사람에게 들었을 때는 신선했는데, 저 새끼한테 들으니까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뭐… 소냐나 카린이 말해주면 신선하겠지만….
“그런데 그게 왜?”
“부디 폐하가 계시는 동안은 조용히 있길 바란다. 괜히 나대다가 사고치고 슈트라에 돌아가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지 않게.”
“…?”
뭔 미친 소리인가 싶었다.
오히려 국왕이 나를 향해 고개를 조아릴까 봐 내가 걱정하고 있구만….
‘뭐지? 반역이랑 포츠 백작에 관한 이야기를 못 들었나?’
루이스도 귀가 있다면 내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을 것이다.
레빈 왕궁에서 벌어진 반역을 해결하고, 포츠 백작까지 잡아들였다는 사실을….
너무 득의양양한 모습에 의문이 깊어질 뿐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아르모니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반응이….’
[걸러져서 들었을 것입니다.]
‘걸러져?’
[카린 브란트루프가 제거해달라던 귀족들… 그들이 전부 죽은 상태라 루이스 브란트루프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할 자가 없어진 것 같습니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마 카린 브란트루프가 중간에 잘 꾸며서 수호 님의 이야기가 루이스의 귀에 들어가지 않은 듯싶습니다.]
‘오….’
사실 내심 루이스가 내 활약을 몰랐으면 했었다.
이유는 단 하나.
여자들의 내 평가가 오로지 내 존재만으로 이루어진다는 착각을 했으면 해서였다.
레빈에 벌어진 반역을 해결하고, 루나의 과거 문제를 해결한 업적.
루이스가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나를 욕하면서도 속으로 인정했을 것이다.
루나와 카린이 나를 좋아하는 모습을 증오하면서도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모르는 상태에서 일개 평민이라고 생각했던 내게….
‘엄마와 누나… 그리고 사랑하는 여자가 자진해서 다리를 벌리면 장이 아니라, 혈관이 전부 뒤틀리는 느낌이겠지.’
그런 루이스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라도 최대한 내 업적을 숨기고 싶었다.
‘크… 카린을 꼬시길 잘했네.’
카린을 포섭한 건 신의 한 수였다.
나는 나를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루이스의 모습을 확인한 뒤, 고개를 돌려서 그가 보이지 않게 미소를 지었다.
“나는 오히려 좀 주변에서 조용히 해줬으면 좋겠다.”
“…건방진 새끼.”
나는 그렇게 루이스의 짜증이 담긴 목소리를 들으며 기분 좋게 화원을 떠날 수 있었다.
내가 그렇게 화원을 떠나서 방으로 향하자, 클라우디아가 내게 화통이 터진다는 듯이 말했다.
(야! 너는 뭐 저런 녀석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주고 있어!? 고추에 불떵이를 쏴버릴 것이지!)
“….”
잠깐이지만, 루이스가 화염구를 맞는 상상을 하니 나도 모르게 허벅지가 움츠러들었다.
나는 흥분한 클라우디아를 진정시켰다.
“그렇게 싸워봤자 좋을 거 없어요.”
(하지만!)
“그리고….”
내가 말꼬리를 흐리자, 클라우디아와 주변에 있던 위르겐과 노라도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그들을 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오늘 밤에는 두 분을 묘지로 옮겨드려야 하잖아요. 괜히 말싸움 붙으면 저 녀석이 계속 귀찮게 할 수도 있어요. 사람 귀찮게 하는 거 잘하거든요.”
(….)
내가 루이스와 말싸움을 피하려고 했던 이유가 바로 녀석의 심기를 건드리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오늘 밤 조용히 위르겐과 노라의 시신을 옮겨야 했다.
그런데 루이스와 말싸움을 벌여서 녀석이 계속 나를 주시하게 된다면 두 사람을 옮기는 데에 귀찮아질 수도 있다.
내 말을 들은 클라우디아는 헛기침을 몇 차례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크흠… 너, 생각보다 신중한 녀석이었구나.)
클라우디아의 말에 노라가 위르겐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후후… 저희 루나가 남자는 잘 만났죠?)
(…참을성은 인정하지. 가정을 가진 가장으로서 중요한 덕목이지.)
위르겐도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내 시선을 회피했다.
분위기가 갑자기 좋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생이란,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위르겐의 모습에 클라우디아도 한마디 거들었다.
(엉. 저 녀석 참을성 하나는 타고났더라. 어제 그 루나라는 애도 저 녀석 참을성에 뻑이 가서….)
그 이후의 이야기는 나도 모른다.
도망치기 바빴으니까….
..
..
드디어 해가 저물었다.
그 말인즉슨 거사를 치를 시간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내 옆에 따라붙은 위르겐은….
(너, 나중에… 꼭 혼령 상태로 변해서… 나랑 단둘이… 이야기 좀 하자.)
“….”
이를 갈며 내 거사 준비를 방해하고 있었다.
까드득 거리는 위르겐의 이가는 소리가 내 내면에 있는 공포심을 풍선처럼 계속 부풀렸다.
나는 시선과 대답을 동시에 모르는 척 피하며 화단으로 향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노라가 옆에서 위르겐을 진정시키고 있다는 것 정도였다.
(여보. 그만 해요. 루나가 애도 아니고….)
(아니,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노라가 간신히 진정시키나 싶으면….
(그래. 나이는 큰 문제가 아니지. 서로 기분만 좋으면 장땡이지.)
클라우디아가 또 위르겐의 속을 벅벅 긁었다.
까드득….
위르겐은 클라우디아의 말에 반박하지 못한 채 이를 또 갈았다.
자칫 무례한 모습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그의 시선이 나로 고정된 탓에 클라우디아는 딱히 기분 나쁜 느낌을 받지 못한 듯 보였다.
그야 클라우디아 덕분에 나는….
‘하아… 빨리 위르겐이랑 노라 쪽 해결하고 슈트라로 가고 싶다….’
미치도록 불편했지만….
클라우디아 혼자만 상대하는 것도 벅찬데, 두 사람도 상대해주려니 슬슬 진이 빠질 것 같았다.
그렇게 간절하게 속으로 삭이는 순간, 화단에 도착할 수 있었다.
창문 곳곳으로 빛이 새어 나오는 아틀러 성과 다르게 화단은 마치 귀신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음산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진짜 귀신 세 명이 있긴 하네.’
나는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이쪽으로 오세요!)
노라는 분위기상 먼저 손을 들고 나를 이끌기 시작했다.
괜히 위르겐이 먼저 나섰다면 시간이 지체되었을 텐데… 노라 덕분에 살았다.
아마 그런 것까지 고려해서 먼저 나선 거겠지만….
도착한 장소에는 화단 중에 제일 많은 꽃이 피어 있는 장소였었다.
(여기예요….)
“…꽃이 많네요.”
공교롭게 화단에서 제일 아름다운 장소를 들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드니, 쉽게 행동으로 옮길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여기서 세월아, 네월아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
나는 몇 차례 숨을 들이쉬며 집중한 뒤, 팔을 뻗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파아아앗!
마법진이 생성되면서 주변의 흙더미들이 옆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흙더미들이 옆으로 갈라지는 것과 동시에 클라우디아가 경악이 담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뭐, 뭐야! 마법진이 그냥 튀어나오네!?)
클라우디아는 그렇게 호들갑 떤 뒤, 위르겐과 노라를 보며 물었다.
(요새는 다 저렇게 마법 쓰냐!?)
클라우디아의 외침에 노라와 위르겐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아뇨. 저분이 특이한 분이세요.)
(…저도 저걸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두 사람의 말을 들은 클라우디아는 내 마법진을 보며 감탄의 감탄을 내뱉을 뿐이었다.
(와씨… 저 녀석 내 시절에 태어났으면 그 양반만큼 대우받았을 거 같은데?)
생각으로 구사하는 마법진.
생각해보면 루나와 나를 잇게 해준 능력이기도 했다.
‘…루나에게도 가르칠 수 있을까?’
솔직히 모르겠다.
이 능력이 에넬로 뚫는 게 아닌, 노력으로 배울 수 있는 건지….
‘그건 일단 나중에 생각하자.’
그렇게 고민을 털어버리고, 흙을 파내는 것에 집중했다.
나는 지금 화단 관리를 위해 마법을 쓰는 게 아니었다.
시신을 파내는 중이었다.
자칫 시신이 훼손되면 좋은 일을 하면서도 죄책감이 드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었다.
‘과정도 중요하지만, 역시 결과가 좋은 게 최고지.’
나는 그렇게 속으로 읊으며 흙을 파냈다.
그렇게 마법으로 조심스럽게 파내기를 3분 정도 지나자….
(…내 모습이지만, 전혀 알아볼 수가 없군.)
백골 두 구가 나란히 껴안은 채 파묻혀 있었다.
(어머 창피해라….)
노라가 창피한 듯 고개를 돌리며 미소를 지었다.
껴안고 있는 모습이 창피하다는 건지, 해골 모습이 창피하다는 건지 헷갈렸다.
아니면 둘 다일 수도 있겠고….
“그럼 옮기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뒤, 두 사람의 유골을 가지고 온 보자기 위에 조심스럽게 올리기 시작했다.
생각 같아서는 정성스럽게 관 같은 곳으로 옮기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다른 사람 눈을 속이고 이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애초에 두 사람 관을 나 혼자 짊어질 수도 없고….
무엇보다 만약 그런 식으로 거창하게 진행했다면….
(…대충해라. 어차피 죽고 남은 잔해일 뿐이야.)
(맞아요. 그렇게 정성스럽게 할 필요 없어요.)
시신의 주인들이 오히려 지금보다 더 부담스러워했을 것이다.
나는 두 사람의 말을 들으면서도 정성스럽게 유골을 전부 보자기에 옮긴 뒤, 조심스럽게 덮어서 양손으로 들어 올렸다.
“가시죠. 뒷산으로….”
내가 그렇게 분위기를 잡으며 이동하자….
(뭐, 큰 거 한다고 분위기 엄청 잡는구만.)
“….”
클라우디아가 딴지를 걸었다.
그냥 분위기 띄우려는 건지 아니면 정말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녀 덕분에 뒷산으로 가는 발걸음이 좀 가벼워졌다.
산으로 오르기 시작하자, 클라우디아는 나한테 관심을 끊고 노라와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이야… 예전에 이런 길이 없었는데. 계단 까느라 개고생했겠네.)
(관리에도 힘썼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여자의 수다를 떠드는 사이에 계단을 오르는 내 옆에 위르겐이 조용히 자리했다.
그리고는 두 사람이 들리지 않게 조용히 입을 열었다.
(…고맙다.)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나와 위르겐은 조용히 뒤에서 들려오는 여자들의 수다를 들으며 산 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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