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 학교 슈트라 (5)
“…너 설마?”
들썩이는 이불….
루이스의 시력이 마이너스가 아니라면 이불 안에 사람이 있다는 것쯤은 간파했을 것이다.
루이스는 그런 이불 안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노기가 잔뜩 서린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이런 미친 새끼가… 여기가 지금 어딘 줄 알고….”
“어디긴. 내 객실이지. 크흐흣!”
“이런… 미친 새끼가….”
루이스는 혐오감이 잔뜩 묻어난 표정으로 나와 이불 안에 있는 인물을 노려볼 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만약 안나와 카린이 동행한 상태였다면 진작에 달려와서 이불을 걷어냈을 것이다.
분명 둘 중의 한 명이라고 확신했을 테니까.
그리고 다행히….
“쓰레기 같은 새끼….”
지금 이불 안에 있는 여자가 자신과 전혀 관계없는 존재라고 확신하는 것 같았다.
루이스는 욕설을 남기고 마치 더러운 오물을 본 것처럼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리고는 객실 문까지 다가가서는 다시 고개를 슬며시 돌리며 입을 열었다.
“어이, 거기 이불 안에 있는 여자.”
“흐읍….”
루나는 순간 경직된 채 이불 안에서 얌전히 루이스의 말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루이스는 멈춘 이불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네가 어떤 여자인지는 상관하지 않겠다. 그런데… 만약 지나가다가 나와 마주하면 눈도 마주치지 말도록 해라. 기분 더러워질 거 같으니까.”
콰당.
루이스는 그렇게 말한 뒤, 방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지금 당장 이불 바깥으로 뛰쳐나가서 루이스의 얼굴에 죽방을 갈기고 싶었다.
하지만….
“츄으읍, 츄르릅….”
“크읏, 루나….”
루나는 몇 차례 내 자지를 목까지 넣고, 빼며 펠라를 한 뒤에 내게 말했다.
“수호 씨… 대신 사과할게요. 이걸로 기분 풀면 안 돼요?”
“….”
나는 루나의 기분이 상했을까 봐 걱정했지만, 정작 루나는 또 내 기분이 상했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루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
“조금만 더 해주면 풀릴 거 같은데….”
“후후… 알았어요. 츄으읍….
그 이후, 루나의 펠라를 받으며 아침잠을 완전히 깰 수 있었다.
..
..
첫날, 새벽부터 위르겐에게 교차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나는 당연히, 위르겐이 나를 가르치며 거침없이 폭언을 내뱉을 줄 알았다.
하지만 위르겐은 생각보다 점잖고, 진지하게 교차술을 가르쳐줬다.
그야, 내가 너무 못 알아듣는다 싶으면 답답해하면서 화를 내기는 했지만, 절대 도를 넘는 수준의 화를 내지는 않았다.
그렇게 새벽 내내 벼락치기로 배운 교차술을 이용해서 문제를 풀어본 결과….
“…실패했습니다.”
두 번째 문을 통과하기에는 어림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위르겐은 혀를 차면서 입을 열었다.
“애초에 하루 만에 전부 알려줄 수 있었으면 이런 고생도 하지 않았겠지.”
위르겐의 말대로 애초에 하루 만에 배울 것을 상정하고 이렇게 가르침을 받는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내가 이렇게 두 번째 문의 문제를 풀려고 했던 건 혹시 모를 기대 때문이었다.
운 좋게 맞춰서 열리면 좋으니까….
“일단 가르치는 것만 생각하면 사흘은 걸릴 거다. 응용하는 건 아예 다른 이야기겠지만….”
“그렇군요… 그럼 다시 가시죠.”
“….”
그렇게 정식 시도가 실패한 뒤, 다시 강의를 듣기 위해 방으로 향했다.
방에 도착했을 때, 방 안에 있는 건 나와 위르겐뿐이었다.
노라는 방해가 될 것 같다며 자진해서 자리를 비켜준 것이었다.
나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자리에 앉아서 위르겐의 교차술을 들을 준비를 했다.
“그럼 시작하시죠.”
“….”
위르겐은 공중에 뜬 상태로 내 말에 반응하지 않고, 나를 유심히 바라볼 뿐이었다.
이번에는 또 무슨 트집을 잡힐까 싶어서 얌전히 그의 말을 기다렸다.
내가 조용히 기다리니 오히려 강한나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왜 그렇게 다 받아주고 그래요? 당신이 뭘 잘못했다고….]
강한나의 목소리에 불만이 섞여 있었다.
사실 강한나의 말대로 내가 잘못한 건….
아, 있구나.
결혼도 하지 않은 딸내미랑 물고 빨았으니 빡칠만 하네.
하지만 그렇게 따지자면 루나가 나한테 받은 도움도 만만치 않았다.
조교수에게 당할뻔한 걸 구해줬고, 그 뒤에 성적에도 도움을 줬다.
심지어 본국에 와서 루나에게 있던 모든 문제까지 해결해주기까지 했다.
오히려 내가 어깨를 펴고 위르겐을 대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위르겐에게 낮은 자세를 유지하는 건 단순했다.
‘루나 아버지잖아요. 거기다 죽은 양반. 이 정도는 해줘야죠.’
[…저도 모르게 답답해서 그랬어요.]
강한나의 입장도 이해가 갔다.
원래 이런 건 당사자는 참을 수 있어도 삼자가 보면 답답하기 마련이니까.
그렇게 강한나와 대화를 나눈 뒤, 위르겐의 상태를 확인했다.
내가 시선을 주자, 위르겐은 몇 차례 헛기침한 뒤에 입을 열었다.
“좋아. 시작하지.”
그렇게 다시 위르겐에게 교차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
..
어느덧 사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거의 쉬지 않고, 위르겐의 강의를 듣는 것에 집중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조그마한 문제가 있긴 했다.
루나와의 만남을 소홀했다는 것 정도?
다만 루나도 주변에 신경 써야 할 게 많다 보니 서로 바쁜 일에 집중하느라 소홀했어도 마음이 상하는 일은 없었다.
다만, 마음이 상하는 일이 없다 뿐이지 섭섭한 마음이 없는 건 아닌 듯 보였다.
나는 위르겐의 강의를 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루나에게 방에 들르지 말 것을 부탁했다.
문제는 그 부탁을 들은 루나가 섭섭해한 모습이 눈에 보였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다시 만나면 금세 풀리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위르겐의 강의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렇게 열심히 듣던 위르겐의 강의는….
“이걸로 교차술은 전부 알려준 거다.”
그의 마지막 말과 함께 마칠 수 있었다.
나는 강의를 마무리 지은 위르겐을 보며 감탄했다.
“와… 대단하시네요. 예전에 배우신 수업을 전부 기억하고 계신 건가요?”
“크흠… 뭐, 그렇지.”
위르겐은 퉁명스럽게 대답하면서도 얼굴에 미소가 띄워지기 시작했다.
칭찬이 대단하긴 대단하네. 저런 양반 입술도 움직이게 만드는 걸 보면….
사실 장난스럽게 표현하긴 했지만, 위르겐이 대단하다는 사실은 확실했다.
위르겐은 혼령 상태라 책을 읽을 수도 없고, 타인과 교류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예전… 그것도 대략 20년도 더 전에 다녔던 학교에서 배웠던 지식을 내게 완벽하게 알려준 것이었다.
‘학장이 이름을 기억하고 있던 이유가 있긴 하구나.’
학장은 전에 루나와 같이 식사할 때, 위르겐의 이름을 직접 언급한 적이 있었다.
‘그만큼 위르겐에게 인상 깊은 무언가가 있었다는 이야기겠지.’
그렇게 강의를 마치고 나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난 뒤, 주변을 둘러봤다.
강의를 들을 때만 하더라도 해가 막 떠오르는 참이었는데, 어느덧 태양 빛이 자취를 감추고 달빛이 흘러들어왔다.
나는 옷매무시를 가다듬은 다음 객실 문으로 향하며 입을 열었다.
“그럼 가서 시도하고 올게요.”
그렇게 말하며 문을 잡고 열려는 순간이었다.
“잠깐….”
“…?”
문을 열기 전. 위르겐이 나를 불러 세웠다.
나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그의 말을 기다렸다.
“….”
위르겐은 평소에 침묵할 때처럼 표정을 굳히고 나를 지긋이 바라보기 시작했다.
기다리는 건 괜찮지만, 슬슬 하고 싶은 말 정도는 시원하게 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속으로 답답함을 호소하는 순간이었다.
“어째서냐?”
“네?”
“어째서… 루나를 그렇게 도와주는 거냐?”
굉장히 생뚱맞은 질문이었다.
당연히 루나가 좋아서다.
다만 질문의 의도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너무 확실한 답이라 오히려 망설여졌을 정도였다.
하지만 고민은 잠시였다. 내 입에서 나온 답은 간단했다.
“당연히 좋아서죠.”
“…알았다. 괜히 붙잡아서 미안하다.”
내 귀가 잘못된 건가 싶었다. 저 양반이 갑자기 웬 사과를?
내가 멍하니 위르겐을 바라보자, 위르겐은 내 시선이 쑥스러웠는지 질타하는 목소리로 외쳤다.
“빨리 가서 시도나 해봐. 어차피 한번에는 못 열겠지만….”
“…갔다 오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한 뒤, 위르겐을 뒤로 하고 창고로 향했다.
이번에는 위르겐이 걱정하는 것처럼 통과 못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뭐, 풀지 못해도 다 방법이 있으니까.’
사실 교차술을 쓰지 않아도 풀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존재했다.
에넬을 쓸 거냐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또 다른 방법이 존재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우주 최고의 조합술….
‘몇 번 시도해보고 안되면 연금술이라도 사용해보자.’
바로 연금술이었다.
[왜 지금까지 쓰지 않은 거예요?]
첫날에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두 번째 시도부터는 연금술이라는 해결법을 생각해 냈었다.
그럼에도 내가 지금까지 연금술을 쓰지 않은 이유는 단순했다.
‘너무 쉽게 해결하면 루나의 부모님의 마음을 얻기 힘들 거 같아서요.’
나는 일부러 두 사람의 앞에서 노력하며 열심히 공부했다.
그야 거짓된 배움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나는 이 방법을 고수하며 위르겐에게 강의를 들었다.
‘속사정을 알면 헛수고처럼 보이지만,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 노력을 알아주는 법이죠.’
[흐음… 그건 좋네요.]
나는 강한나의 칭찬을 들으며 창고에 들어간 뒤, 가보가 숨겨진 벽에 도착했다.
일단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벽에 첫 번째 마법진을 그렸다.
쏴아아악….
얕은 파동 소리를 내며 벽이 문으로 바뀌었고, 나는 최대한 조용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자… 그럼 이 녀석이 문제인데.’
들어간 공간에서 나를 맞이해주는 또 다른 문.
벽으로 된 투박한 문이 아닌, 화려한 장식이 새겨진 고풍스러운 문이었다.
내가 문 앞에 다가가자마자 문에서 두 개의 마법진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사아아앗….
교차술 문제였다.
아까 말했다시피 연금술을 쓰면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겠지만….
‘심심한데 풀어보죠.’
[재미있겠네요. 마법은 저도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문제는 재미있죠.]
[저도 집중하겠습니다.]
그렇게 위르겐의 강의를 들은 세 명이, 머리를 싸매고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일단 첫 번째 문제는….
파아앗….
‘아, 실패.’
잘못된 마법진을 그리며 실패했다는 사실을 알려왔다.
그리고 두 번째 문제도….
파아아앗….
[아… 분명 맞은 거 같았는데.]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마법진이 빛 가루로 흩어지면서 실패를 알려왔다.
틀리는 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슬슬 그냥 연금술로 때울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제가 생각한 답입니다.]
아르모니아가 자기가 생각한 마법진을 내 눈앞에 띄워줬다.
[앗! 저도 답 하나 생각해 놓은 거 있는데….]
첫 번째는 내가 답을 제출해서 틀렸고, 두 번째는 강한나가 답을 제출해서 틀렸다.
나도 강한나와 마찬가지로 생각한 답이 있었지만, 한번 틀렸던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아르모니아가 제시한 답에 더 마음이 갔다.
‘이번에는 아르모니아가 알려준 답을 내보죠.’
[아흐… 네.]
강한나는 이런 지식을 논하는 곳에서는 승부욕을 숨기지 못하는 체질이었다.
원래 이런 승부욕은 자신이 맞추는 것만큼 상대방이 빨리 맞추는 것에 불안감을 가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아쉽게도….
파아아아앗!!!
[앗! 설마 정답!?]
강한나의 불안감은 패배감으로 변한 뒤, 한동안 그녀의 심장에 머무를 예정이었다.
지금까지 틀려서 나온 반응과 확연히 다른 반응이었다.
문 전체가 빛을 발하며 천천히 양옆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오밤중에 창고 안에 엄청난 빛이 쏟아져 나왔지만, 다행히 첫 번째 문은 이미 닫혀서 벽으로 위장하는 중이었다.
이 빛을 보는 건 나와 아르모니아, 그리고 강한나뿐이었….
파아아앗….
…다고 생각했다.
문이 환하게 열리는 중에 가냘픈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기에 누가 들어오는 건 오랜만이네.”
“허….”
그와 동시에 문이 양옆으로 완전히 열렸다.
열린 문 안에 고풍스러운 테이블이 존재했고, 그 테이블 위에 한 여성이 단아하게 앉아 있었다.
적갈색의 단발머리, 새하얀 드레스, 그리고 붉은색의 윤기가 나는 입술… 그 입술에서….
“이건….”
“…?’
“이건 또 어디서 굴러들어온 얼간이 새끼야?”
마치 얇은 걸레 한 겹이 덮인 것 같은 여자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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