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 학교 슈트라 (5)
나는 창고를 나오자마자 바로 방으로 향했다.
아틀러에 오자마자 분주하게 움직여서 그런지 피곤함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방으로 향하는 길에는….
“여보? 오늘따라 왜 그래요?”
“아냐. 아무것도….”
노라와 위르겐도 자연스럽게 나를 따라왔다.
두 사람은 나를 따라오면서 내가 앞에 있음에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신들의 대화를 나누었다.
“혹시 아까 손에 오른 전기 때문에 그래요?”
“여보… 내가 고작 그런 거로 이러겠어?”
“에이… 당신 어렸을 때, 벌한테 쏘여서 울었던 적도 있잖아요. 그래서….”
“그, 그건 어렸을 때 이야기잖아!”
두 사람의 대화를 들어보니, 생각보다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인연임을 알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귀족으로 태어났다면 주변 귀족들을 자주 만났을 것이고, 그중에 한 명이 연인이 되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나와 루나, 카린이 좀 독특한 케이스라고 할까나?
두 사람을 봐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내가 이곳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루나는 루이스와 맺어질 가능성이 컸을 것이고, 카린은 제프와 이어졌을 것이다.
내가 나타난 덕분에 그런 거지 같은 상황을 회피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이동하다 보니 어느새 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자… 그럼 한숨 자 볼까?’
나는 그렇게 푹신한 침대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그런데 문 안에서 침대가 아닌….
“이제야 오셨네요. 기다렸어요.”
루나가 싱긋 웃으며 내 방 안에서 나를 맞이해줬다.
..
..
나는 루나와 같이 점심을 먹고 아틀러 성을 산책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피곤했던 눈도 루나와 같이 다니다 보니 어느새 말똥말똥해진 상태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산책은 우리 둘만 하는 게 아니었다.
“날씨 좋네요.”
“끄음….”
노라와 위르겐이 거리를 두고 계속 따라오며 본인들의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다만, 노라는 산책을 즐기는 반면에 위르겐은 나만 노려볼 뿐이었다.
나는 최대한 신경을 쓰지 않으며 루나와 대화를 나눴다.
산책하며 나온 첫 번째 주제는 나와 루나와 굉장히 밀접한 인물에 관한 것이었다.
“루이스… 괜찮을지 걱정이네요.”
연금된 루이스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전혀, 전…혀, 전~~~혀, 저어어어어어녀~ 걱정되지 않았지만, 루나의 말에 맞춰줬다.
“그러게. 포츠 백작이랑 연관이 있다고 하던데… 도대체 무슨 관계인지….”
“아마 이번 사건 전에는 카린 님과 관련된 이야기를 자주 나눴다 보니 그게 오해를 불러일으킨 거 같아요.”
루나는 루이스가 포츠 백작과 같이 역모를 꾸몄다는 사실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사실 그게 맞기도 하고….
그럼, 여기서 루이스를 다른 귀족들처럼 처형하면 편하지 않을까 싶겠지만, 그 방식은 패스하기로 했다.
‘갑자기 그렇게 죽어버리면 루나가 평생 마음에 응어리를 안고 살아가겠지.’
그리고 안나도 루나와 마찬가지로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살아갈 것이다.
죽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어차피 루이스는 이제 내 손으로 제어가 되는 수준으로 전락한 상태였다.
메인 목표였던 루이스의 처리는 나중에 천천히 해도 늦지 않는다.
그리고 조디악의 입장에서도 루이스가 허무하게 죽지 않길 바랄 것이다.
가령 강한철처럼 다음 주인공이 나오는 시기를 늦추기 위해 오히려 계속 살려두는 것처럼….
그렇게 루이스에 관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우리는 아틀러 성 뒤편에 있는 화단에 도착할 수 있었다.
화단의 상태가 썩 좋지는 않았다.
일단 꽃이 많이 자라있긴 했지만, 엉망진창이라는 느낌이 강했고.
잡초가 무성한 탓에 화단이 아니라, 들판을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루나는 들판 같은 화단을 바라보며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거 아세요?”
“…?”
내가 의아한 듯 루나를 바라보자, 루나는 화단을 끊임없이 바라보며 쓰게 미소를 지었다.
“여기, 예전에는 정말 예뻤어요.”
“아하….”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는 듯싶었다.
하지만 정작 루나의 말에 반응한 건 내가 아니었다.
“….”
“….”
우리 곁에서 어슬렁거리던 위르겐과 노라였다.
복잡한 심경의 표정으로 루나를 바라보는 두 사람.
나는 루나가 아닌 두 사람이 안쓰러운 나머지 루나의 손을 잡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어? 수호 씨?”
“안에 들어가 보자.”
나는 드레스를 입은 루나를 이끌고 화단으로 향했다.
화단에 있는 돌길은 이미 잡초로 무성한 탓에 돌길이 아닌 수풀을 헤쳐 나가는 기분이었다.
문제는 가는 길이 마냥 순탄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루나는 푸른색 드레스를 입은 상태였고, 드레스 안은 하이힐을 제외하고 맨다리였다.
그런 상태로 이런 수풀을 헤집고 들어가면 치마 안으로 들어온 풀잎에 다리가 사정없이 베일 것이다.
신고 있는 하이힐이 돌길에 삐끗해서 넘어질 우려도 있었다.
나는 수풀 같은 돌길을 들어서기 전에 루나를 양팔로 들어 올렸다.
“꺄아앗!”
“읏차….”
나는 루나는 양팔로 들어 올린 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루나는 양팔로 내 목을 감싸며 나를 향해 다급하게 소리쳤다.
“수, 수호 씨. 제가 알아서 걸어갈 수 있어요! 이러다가 넘어지면….”
“괜찮아.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너를 껴안고 가는데, 내가 넘어지겠어?”
“하… 하지만….”
하지만은 무슨… 이미 좋아라 웃으면서….
그리고 루나뿐만 아니라, 우리를 지켜보던 노라도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어머… 젊었을 때, 당신 보는 거 같아요!”
“…흥.”
나는 루나를 양팔로 들어 올린 채 천천히 화단 중앙에 있는 가제보로 향하기 시작했다.
루나는 분명 가볍다.
그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가볍다고 가는 길이 쉽다는 건 아니었다.
현재 안내원 역할을 해줄 돌길은 무성한 잡초들에 의해서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만약 발을 헛디뎌서 넘어지는 순간, 이 로맨틱한 분위기는 바로 북극 한파로 변하게 될 것이다.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간신히 가제보에 도착할 수 있었다.
“후우… 다행히 여기는 상태가 좋네.”
지금까지 거쳐온 잡초가 무성한 돌길에 비해서, 가제보는 상태가 괜찮은 편이었다.
마른 풀잎과 꽃잎이 사방에 뿌려져 있었지만, 어차피 바닥에 드러누우려고 온 게 아니니까 문제는 없었다.
나는 가제보 안에 들어오자마자 루나를 내려주고, 석조 벤치 위에 있던 먼지와 풀잎을 손으로 털어냈다.
그리고는 루나에게 말했다.
“앉자.”
“…네.’
루나는 흐뭇하게 미소를 짓고는 나와 같이 벤치에 앉아서 조용히 주변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관리가 되어있지 않은 것을 증명하듯 주변에는 사람이 돌아다니지 않았다.
가끔 몇몇 사람이 성 뒤편을 지나가긴 했지만, 이곳에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못 했는지 단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주변을 감상하는 중에 루나에게 제안했다.
“정식으로 영지를 받으면 여기부터 꾸미면 어떨까?”
아틀러 성은 그 위세에 비해서 내부가 투박한 편이었다.
교역 도시이고, 실용적인 것에 중점을 두는 건 이해가 갔다.
하지만 이 화단은 루나의 추억이 있는 만큼 먼저 손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루나는 고개를 절레거리며 쓴 미소를 지었다.
“여긴… 모든 것이 안정되고, 여유가 되면 관리하고 싶어요.”
“왜?”
좀 의외였다.
지금도 추억을 회상하듯 감미롭게 바라보는 루나였다.
그 추억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라도 내 말에 동조할 줄 알았는데….
루나는 내 물음에도 화단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저는 이제 이곳의 영주예요. 그리고 백작이죠. 제 어리숙한 욕심 때문에 이곳에 터를 내고 살던 백성들이 힘들어서는 안 돼요.”
“….”
순간이지만, 내가 알던 루나가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른 사람으로 보였다.
루나는 멍하니 바라보는 나를 힐끗 보더니,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만약 제가 제 욕심으로 화단을 꾸미면….”
“…?”
루나는 말꼬리를 흐리며 벤치에서 일어나서는 가제보 끝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아틀러 성 위쪽을 향해 고개를 들어 올리며 하늘을 쳐다봤다.
루나는 그렇게 푸르른 하늘을 보며 아름다운 음색의 말을 흘렸다.
“저희 부모님이 저를 한심하게 생각하실 거예요.”
“아….”
“그리고 두 분의 명예를 간신히 되찾았잖아요. 저 때문에 또 이상한 말에 휩쓸리면 안 돼요.”
루나의 입장에서는 더 없는 기회가 주어진 셈이었다.
가문의 영광… 그것도 부모님의 명예를 되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그 기회를 자신의 욕심으로 소모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나는 루나의 말을 듣고, 두 사람의 반응이 궁금해서 고개를 조심스럽게 돌려봤다.
하지만….
‘응? 어디 갔나?’
아까까지 우리를 지켜보던 위르겐과 노라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쑥스러워서 잠수를 탔나 싶은 마음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주변을 둘러봤다.
하지만 위르겐과 노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 타이밍 굿!’
일부러 자리를 비워준 건가?
나는 그렇게 생각한 뒤, 아틀러 성을 지긋이 바라보는 루나의 등 뒤를 껴안은 다음 그녀에게 속삭였다.
“지금 두 분이 루나를 보면 자랑스러워하실 거야.”
“…고마워요.”
루나는 내 말에 위안을 받았다는 듯이 고개를 돌려서 내게 미소를 보여줬다.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분위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주변에 사람들도 없고, 위르겐과 노라도 없는 상황.
심지어 간간이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이곳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내려서 천천히 루나 얼굴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행동에 맞춰서 고개를 들어 올리는 루나.
그렇게 나와 루나가 입을 맞추자….
파스스슷….
산들바람이 주변을 휘몰아치며 감미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분명 분위기는 좋았다.
‘응?’
호숫가의 물결처럼 우리를 스치고 지나가던 산들바람이….
파스스스슷!
점점 바닷가의 파도로 변하며 나와 루나의 머릿결을 휘날리기 시작했다.
루나의 긴 머릿결이 휘날리자, 나는 천천히 입술을 떼어내서 루나를 확인했다.
루나는….
“하아….”
주변 상황 따위는 관심 없다는 듯이 그저 내 입술이 떨어진 것에 대한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나는 그런 루나의 모습에 피식 웃고는 주변을 확인했다.
아까까지 화창했던 하늘은 어느새 먹구름이 잔뜩 끼어서 가시거리가 좁아지기 시작했다.
“루나, 비 내릴 거 같은데? 슬슬 들어갈까?”
내가 그렇게 루나에게 제안하는 순간이었다.
(루나!!)
“응?”
타탁, 타탁… 타타타탁… 쏴아아아아악!!
물방울 튕기는 소리가 몇 번 들려온 뒤, 갑자기 바다 한 가운데에 폭풍우를 맞이한 것처럼 거센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뭐지? 무슨 소리가 들렸던 거 같은데….’
하지만 지금 당장 누군가의 외침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비가 내리는 순간 가시거리라는 개념이 사라져 버렸다.
지금 나와 루나는 서로의 얼굴만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주변이 검은 회색 안개로 물들어 있었다.
루나는 쏟아지는 폭우를 보더니, 나를 힐끗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대로 들어가기는 힘들 거 같은데요?”
루나의 말대로 지금 당장 돌아가기에는 너무 위험했다.
가뜩이나 보이지 않는 돌길이 폭우로 인해서 미끄러울 것이다.
누군가를 부르자니, 폭우 소리 때문에 눈앞에 있는 루나와도 대화가 쉽지 않았다.
“일단 안쪽으로 들어가자.”
나는 폭우로 인해 튀기는 빗방울을 피하고자 루나를 이끌고 가제보 중앙으로 들어왔다.
쏴아아아아아아아악!!
홍수가 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쏟아져 내리는 폭우.
다행히 가제보 위쪽은 석조로 된 덮개가 씌워져 있어서 비가 새는 일은 없었다.
가제보는 실용성에 중점을 둬서 만들었는지 폭우가 쏟아지고 있음에도 내부로 물방울이 튀기는 일은 없었다.
나는 곤란한 얼굴로 말했다.
“미안. 괜히 들어오자고 했다가 갇혔네.”
“….”
루나는 내 곤란한 얼굴을 오히려 즐겁게 바라보며 갑자기 내게 포옹했다.
그리고는 속삭였다.
“수호 씨는 참 이상해요.”
“…?”
“나는 오히려 좋은데 왜 사과를 하시는 거죠?”
나는 애교가 섞인 루나의 목소리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사실 나도 좋았어.”
“후후….”
나는 그렇게 속삭이며 루나를 천천히 껴안았다.
루나를 껴안으며 아까 느껴졌던 외침을 떠올렸다.
폭우가 쏟아지기 직전, 누군가 루나를 부른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루나의 부모님인가? 아니, 두 사람이 굳이 루나를 불렀을 리가 없는데… 뭐, 잘못 들었나 보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루나의 드레스 상의를 조심스럽게 벗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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